가즈 나이트 – 59화
“리오! 뭐해요, 빨리 도망가지 않고!!”
클루토는 리오를 향해 힘차게 외쳤다. 그러나 리오는 도망가지 않고 태연히 팔짱을 낀 채 절벽 위에 서 있었다.
“어이, 드래곤들. 얘기 좀 하자.”
리오는 드래곤 중 레드 드래곤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그 드래곤은 순순히 리오에게 다가왔다. 전음이 들려왔다.
「가즈 나이트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응, 너희들 드래고니스까지 얼마나 걸리나? 바이칼에게 연락을 취했으면 하는데…. 해줄 수 있겠니?”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거기까지 가려면 이틀은 걸릴 겁니다. 지금 궤도가 다르거든요. 내용은 뭡니까?」
“그 녀석에게 나보다 먼저 가이라스 왕국의 수도로 가 달라고 말해줘. 그 뒤에 일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해. 알았지?”
「예.」
계곡 아래로 내려가려던 리오는 다시 돌아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아, 한 가지 더. 요새 죽거나 한 너희 동족이 있나? 말을 듣기로는 드래곤 좀비들이 이 고원에 있다고 하던데.”
블루 드래곤이 얘기를 했다.
「저희도 그 일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저희 동족 다섯 명이 한 달 전에 사라졌거든요. 그중에서 세 명은 저희들이 발견해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두 명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찾아야 하는데…. 드래곤들에게 좀비가 되는 것 이상으로 치욕적인 건 없답니다. 만약에 찾게 되시면 저희들 대신 장례를 치러주십시오. 부탁합니다 가즈 나이트.」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을 마친 두 드래곤은 다시 어디론가 날아갔고 리오는 일행에게 돌아왔다. 일행은 모두 리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클루토는 허겁지겁 리오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니…. 어떻게 드래곤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지요? 용들은 자신보다 약한 상대의 말은 들어주지 않는다는데…!”
리오는 별거 아니라는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클루토, 내가 뭐라고 했지?”
클루토는 입을 막았다. 어떤 신기한 일이 생겨도 알려고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리카도 머셀도 미리 약속을 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 계속 가자.”
계곡을 넘어서 고원에 겨우 들어선 일행은 보이는 것이 산지뿐이어서 막막함을 더했다. 지도를 보고서 길을 찾은 리오는 얼마간 쉬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이봐 리카. 너 이 고원에 대한 전설 들어봤니?”
입이 심심했던지 머셀은 앞에 가던 리카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이 에르파라스 고원에는 아주아주 오래전에 [신의 전차]가 떨어졌었대. 사람들은 그 신의 전차에 들어가 보려고 무진 애를 썼었는데 들어가지 못하자 화가 나서 신의 전차를 부수려고 했다나 봐. 그래서 노한 신이 신의 전차에 잠들어있던 마신을 깨워서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 이 고원의 땅속으로 들어가 다시 잠을 잔대. 그 마신의 이름은 에르파이고 이 고원의 이름은 고대어로 에르파의 집이란 뜻에서 유래된 거래.”
신나게 이야기를 하던 둘에게 리오가 반갑지 않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내가 신호하면 모두 엎드려.”
고원의 하늘로 기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피유우우우―
“매 소리 같은데요?”
클루토의 질문에 리오는 디바이너를 빼어들며 말했다.
“매면 내가 검을 뽑겠니? 그리고 너 가이아 드라이버 주문할 수 있지? 준비해 둬.”
클루토는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왜 그래?”
“지(地) 계열의 주문은 못하는데요?”
리오는 클루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멍청이, 그럼 아무거나 써. 풍(風) 계열인 것 빼고. 알았지? 그리고 머셀은 다시 한번 교감을 할 수 있도록 해봐.”
머셀은 공중을 바라본 상태에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했다.
“… 온다, 엎드려!”
순간 공중에서 거대한 발톱이 일행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사자의 몸,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를 가진 괴수 그리폰이었다.
“자식들―!”
리오는 땅을 박차고 날아가는 그리폰의 사자 꼬리를 붙잡았다. 그리폰은 괴성을 지르면서 리오를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강격(强擊)!!”
보라색의 반원이 그리폰의 몸을 수직으로 꿰뚫었고 그리폰은 두 조각으로 나뉘며 땅으로 떨어졌다. 리오가 땅으로 착지하였을 때쯤 다른 그리폰 세 마리가 공중에서 다가왔다.
“화이라만 – !!”
클루토의 손에서 불덩이가 뻗어나왔으나 그리폰들은 간단히 피하며 일행에게 돌진해 들어왔다. 번쩍이는 그리폰의 발톱이 일행의 육체를 노리고 번쩍였다.
“드라이브 숏!”
머셀의 화살이 그리폰의 머리에 박혔고 화살은 놀랍게도 강렬히 회전하며 그리폰의 두개골을 파고들어 갔다. 그리폰은 방향을 잃고 다른 곳에 추락했고 다른 그리폰 한 마리는 키세레의 갓 핸드 공격을 받고 공중에서 비틀거렸다.
“키이이이잇―!”
빈틈이 제일 많게 보이는 키세레와 리카 쪽으로 저공 비행해 돌진하는 그리폰에게 일행은 아무런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으랴아아앗!!”
리오는 그리폰의 밑쪽으로 빠르게 대시했다. 어느샌가 그리폰의 밑으로 다가온 리오는 그리폰의 머리를 잡고서 발을 멈췄다. 갑자기 머리를 붙잡힌 그리폰은 괴성을 토하며 땅으로 엎어졌고 그 위로 올라간 리오의 디바이너로 결국 최후를 맞이했다.
“자, 마지막 한 마리…?!”
“꺄아악―!!”
몸이 그런대로 멀쩡한 마지막 그리폰 한 마리는 누군가를 붙잡고 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리오! 키세레님이 붙잡혀 갔어요!”
머셀이 소리쳤다. 그러나 리오는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만약에 키세레를 구출하러 날아간다면 아이들이 위험에 처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걱정 말아요! 키세레님이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리카도 안타까운 듯 소리쳤다.
“꺽다리! 빨리 수녀 누나를 구하러 가란 말이야!!!”
리오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젠장!”
급히 비상 주문을 써 몸을 띄운 리오는 그리폰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리폰은 하늘을 나는 괴수 중에서 톱 클래스의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다. 비상 주문만으로는 그리폰을 따라잡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리오는 다시 한번 거칠게 내뱉으며 기를 개방했다. 오오라가 그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분출되며 그를 가속시켜 주었다. 그리폰을 거의 따라잡았을 때 키세레는 실신했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자식―!!”
리오가 그리폰의 앞을 막아서자 그리폰은 급히 멈추어 섰다. 리오의 몸에선 기가 아직도 분출되고 있었다. 타오르는 듯한 그의 모습을 본 그리폰은 저항할 힘이 없다는 듯 키세레를 공중에서 그냥 놓았다. 떨어지는 키세레를 따라가던 리오는 그리폰의 다리에서 무엇인가가 번쩍이는 걸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일이었고 기절해 있는 키세레가 먼저였다. 그리폰을 따라잡은 스피드로 키세레를 잡는 건 간단했다. 공중에서 그녀를 받자마자 리오는 다시 아이들에게 전속력으로 돌아갔다. 그쪽은 다행히도 아무 일이 없었다.
“리오!”
아이들은 리오가 착지한 쪽으로 달려왔다. 리오는 키세레를 바로 내려놓은 다음 그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신체에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녀를 맡긴 리오는 여기저기에서 뒹굴고 있는 그리폰의 시체를 살펴보았다.
“역시… 가이라스에서 나온 괴물이었군.”
리오는 씁쓸히 미소를 지으며 그리폰의 다리에 붙어있는 쇠고리를 떼어냈다. 그것은 가이라스에서 자랑하는 몬스터 부대의 부대명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에는 뚜렷하게 가이라스의 상징인 피닉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리오는 쇠장식을 움켜쥐며 중얼댔다.
“날 그렇게도 막고 싶은 모양인데…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리오는 천천히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바람의 정령이여, 상쾌함의 바람을 이 사람에게 심어주세요.”
머셀은 간단한 정령 마법을 써서 키세레의 눈을 뜨게 했다. 키세레는 머리를 흔들며 차가운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그리폰은?”
클루토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리오가 해치웠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폰은 먹이를 잡을 때 먼저 발톱으로 상대방의 뼈를 으스러뜨린 다음 둥지로 간다고 했는데, 리오가 그전에 당신을 구했나 봐요.”
“리오 씨가….”
옆에 서있던 리오는 아까 얻어낸 쇠고리를 클루토에게 던지며 말했다.
“야생의 그리폰이라면 잡아서 날아갈 때 으스러뜨린다. 운이 좋은 것뿐이야. 우리가 싸운 그리폰들은 사육된 것이다.”
클루토는 쇠고리에 쓰여있는 문구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왜 가이라스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클루토는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알고 싶으면 오라는 뜻일 거다. 조금 더 쉰 다음 계속 가자, 알았지?”
등을 돌리며 근처를 어정어정 돌아다니는 리오의 모습을 키세레는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마음에 안 들어…. 역시.”
“네? 뭐가요?”
키세레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얼굴을 붉혔다. 속으로 생각한 말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었다. 키세레는 머셀을 쳐다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