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594화
“어, 어딜 감히!!!”
그때, 지크의 뒤에서 사이킥 유저 소년이 ‘힘’을 높이며 소리쳤고, 지크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흔든 후 그 소년을 쏘아보며 중얼거렸다.
“‥맞는다.”
“!”
소년은 순간 흠칫 놀라며 뒤로 주춤했고, 그 소년의 몸에서 뿜어지던 힘도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억눌렸다고 하는 것이 더 옳았다. 지크는 곧 붉은색 강화복의 청년을 바라보며 충고하듯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너희들 실력으로는 저기 있는 무서운 얼굴의 아가씨조차 이기지 못한다구. 저 아가씨를 화나게 하면 나도 못 말리거든. 후우‥생각만 해도 끔찍해. 나 떨고 있지? 게다가 내 주위엔 저런 난폭한 여자들만 잔뜩 있어서‥윽!”
순간, 지크는 저편에서 밀려오는 강한 살기에 흠칫 놀라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쪽엔 챠오 말고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지크는 손으로 얼굴을 덮은 후, 그 청년을 왼팔로 떠밀며 조용히 말했다.
“‥큰일났군. 자, 넌 빨리 동료들 데리고 사라져. 한 번만 더 우리에게 도전한다느니, 시험한다느니 하면 진짜 천사로 만들어 버릴 테니 알아서 하라구. 그럼 안녕.”
지크는 손을 흔들며 챠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고, 단 몇 초 사이에 풍비박산이 나 버린 엔젤 더스트들은 동료들을 추스르며 자신들의 전용 차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엔젤 더스트의 전용 차량. 다름 아닌 거대한 컨테이너 트럭이었다. 기절한 동료들의 무기들을 벗긴 후 회복용 침대에 눕힌 다른 멤버들은 피곤함이 갑자기 밀려오는지 한숨을 길게 쉬며 의자에 푹 눌러앉았다. 갑작스레 당한 탓도 있었지만, 너무나도 무력하게 지고 만 충격이 더한 듯했다.
“‥시험은 어땠나.”
얼굴에 주름이 깊게 잡힌 큰 키의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멤버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고, 의자에 앉아있던 멤버들은 그 노인이 들어옴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인은 됐다는 손짓을 한 후 자신의 의자에 앉으며 붉은 강화복의 청년에게 물었다.
“‥유천, 세계 최강급의 남자와 겨루어본 감상이 어떤가?”
그러자, 그 청년은 고개를 푹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껄껄 웃으며 모든 멤버들에게 말했다.
“그래, 아직 초기 상태인 ‘어드밴스 슈트’로 그를 한번 상대해 보라는 것은 너무 큰 과제였을 거야. 자연 상태의 펀치 파괴력이 8톤을 상회하는 괴물인데 당연하고도 남지. 아마 바이오 버그의 등급으로 본다면 A++이상? ‥그러니 너무 낙담하지 말아.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더 강해지지 않으면 ‘삼천당 여사’가 예언한 그 ‘파괴신’의 도래를 막을 수 없으니까. 그럼 오늘은 푹 쉬도록.”
그 노인의 말을 들은 붉은 강화복의 청년과 다른 멤버들은 축 늘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노인은 다시 지팡이를 짚고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난 ‘타롤 레이저’의 렌즈 조정을 해야 하니, 자네들은 이만 좀 쉬게나. 몸은 몰라도 마음은 상당히 피곤해 보이니. 그럼.”
노인은 곧 문을 열고 다른 방으로 향했고, 붉은 강화복의 청년은 침대에 누우며 한숨을 길게 뿜어 보았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사이킥 유저 소년은 침대 쪽으로 걸어가며 청년에게 물었다.
“‥형, 정말 그 아저씨 강하긴 했어‥. 너무 낙담하진 마.”
그러자, 청년은 힘없이 웃으며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낙담하는 게 아니야. 정말, 우린 그 남자의 말대로 병아리에 불과할지도 몰라. 우리는 사실 생긴 지 몇 개월은 됐어도 작년의 혼란기 때문에 무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고, 트레이닝만 했을 뿐이었잖아. 우라늄 등의 핵 연료가 다시 돌아온 이후에나 무기를 사용했고, 바이오 버그와도 그때부터 싸워왔으니‥몇 년이나 몇십 년간 바이오 버그들과 싸워온 BSP들과는 경험에서 밀리지. 아까 그 지크라는 남자에겐 다섯 명이 동시에 덤벼들었는데도 이기질 못했고‥. 이래가지고는 ‘파괴신’조차 물리치지 못할 거야.”
“‥그래.”
그 청년의 힘없는 소리를 들은 소년은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 청년에게 주먹을 뻗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하면 되잖아. 유천 형이 매일같이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도 그거고.”
그러자, 청년은 다시 미소를 지은 후 소년과 주먹을 몇 번 부딪히며 파이팅을 해 보았다.
휀이 다녀간 이후, 그때부터 리오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져 있었다. 시에나 바이칼이 말을 걸어도 그냥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일 뿐이었다.
띵동– 띵동–
그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고 가만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리오 대신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있던 티베가 현관으로 나갔다.
“네에, 누구세요?”
“예, 옆집에서 온 세이아 인데요.”
그러자, 티베의 얼굴은 잠깐 굳었다가 다시 미소를 띠우며 문을 열어 주었다.
“어머, 오셨어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이런 밤중에?”
티베의 질문에, 세이아는 대답 대신 광주리 하나를 건네주었고 티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광주리를 덮은 보자기를 살짝 들어 보았다.
“‥응? 이건 빵 아니에요? 와아, 맛있는 냄새!!”
“예, 집에서 조금 구웠거든요. 같이 드시라고 몇 개 가져왔답니다. 그런데‥리오 씨는‥.”
‘‥기억을 잃었다 해도 리오 씨를 찾는 건 여전하군‥.’
티베는 속으로 그렇게 꿍얼대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리오 씨요? 음‥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 같던데‥. 그럼 들어와 보세요, 마침 거실에 계시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티베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온 세이아는 소파에 앉아 상념에 잠긴 리오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세이아는 리오의 건너편 소파에 살짝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저어‥무슨 일 있으신가요? 안색이 좋지 않으시군요‥.”
“‥아니요. 그건 그렇고 밤중에 웬일이세요?”
리오는 희미한 미소를 띠우며 세이아에게 물었고, 세이아는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아, 아뇨. 빵을 구워서 갖다 드리려고‥. 아, 그게 아니라 빵을 많이 구웠거든요. 그, 그래서‥.”
세이아는 말이 잘 나오지 않는지 약간 횡설수설을 했고, 리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정말 고맙습니다.”
“고, 고마우실 것까지는‥.”
그러는 동안, 1층 계단 뒤에서 가만히 리오와 세이아의 모습을 보고 있던 바이칼은 곧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돌려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음‥며칠에 한 번씩 계속 가져다주시니 고맙지 않을 수‥.”
쿠웅–!!!
리오가 말을 하던 순간, 갑자기 계단 쪽에서 상당히 큰 소리가 들려왔고 리오는 깜짝 놀라며 일어서서 계단 쪽으로 향해 보았다.
“엇? 바이칼, 괜찮아?”
“아야얏‥.”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바이칼은 약간 긁혀 피가 나는 정강이를 손으로 감싸며 짤막한 신음 소리를 냈고, 리오는 머리를 흔들며 몸을 숙여 바이칼에게 말했다.
“이런 이런, 나무 계단은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했잖아. 상처 보여줘 봐. ‥이런, 생각보다 크게 까졌잖아. 다른 덴 아프지 않아?”
“‥히이잉‥.”
바이칼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울기 시작했고, 리오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바이칼을 안아 일으킨 후 소리를 듣고 내려온 마키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상처 좀 보살펴 주실래요? 다른 곳의 상처는 제가 보기 힘드니까요.”
“아‥예.”
마키는 바이칼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리오는 팔짱을 낀 채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후우‥하여튼 걱정을 적당히 시키게 하는 녀석이 아니라니까. 아, 죄송해요 세이아 씨.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돼서‥.”
“아, 아니에요 리오 씨. ‥저, 그만 가보겠습니다.”
세이아는 왠지 어색한 얼굴로 리오에게 인사를 했고, 리오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세이아에게 말했다.
“예? 벌써 가시려고요? 흠‥예. 그럼 제가 집까지 같이 가 드리지요.”
“바, 바로 옆 집인걸요. 동생도 들어올 때가 됐으니 전 이만‥.”
세이아는 왠지 피하려는 모습으로 급히 집을 나섰고, 리오는 현관 문을 닫으며 고개를 저었다.
“흠‥. 지금은 위험한데‥.”
리오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바이칼의 상태를 보기 위해 위층으로 천천히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