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0화
날이 저물고 달이 중천에 떴을 때, 리오 일행은 첫 번째 드워프족 마을인 뉴파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마을의 앞에 도착했을 때 일행은 거대한 동굴이 마을이라는 리오의 설명을 듣고서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리오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걱정도 태산이군. 설마 볏짚 깔고 재워주기야 하겠어? 어서 들어가자고.”
리오의 말대로 마을에 들어오자 키가 작은 드워프들은 오랜만에 온 인간들을 보고 반가이 맞이하였다. 촌장까지도 달려나올 정도였다.
“아니, 아니! 손님이시라고?! 어서 오십시오! 뉴파사에 잘 오셨습니다!!”
촌장은 자신보다 약 두 배는 커 보이는 리오와 악수를 청했다. 리오도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에게 답례를 해주었다. 촌장은 일행을 보다가 머셀을 보고서 그에게 다가왔다.
“아니, 엘프족 손님까지…. 복장을 보니 숲의 엘프 같은데 어떻게 잡혀가지 않았니? 다행이구나. 아, 여기서 얘기할 것이 아니고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제가 직접 대접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만 저희는 그냥 여관에….”
그때 리오가 키세레의 말을 막아서며 촌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히 했다.
“고맙습니다 촌장님! 촌장님의 호의를 거절하면 쓰나요, 하하하!”
촌장은 매우 유쾌한 표정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키세레는 자존심이 상한 듯 리오를 계속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키세레가 드워프족들의 예절을 잘 몰랐기에 그런 것이었다. 드워프족들은 자신들의 집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만약에 그 청을 거절한다면 그들은 굉장히 난감해하게 된다. 리오는 뒤통수를 긁으며 촌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촌장의 안내를 받으며 자신들이 생각했던 동굴 안의 드워프족 마을과는 영 딴판인 것에 새삼 놀랐다. 넓은 공간 안에 다른 촌들과 다를 바 없이 꾸며놓은 것이다. 역시 드워프족은 재주꾼이라 생각하며 일행은 안으로 들어섰다.
돌집이라 내부가 차가울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난방 시설도 굉장히 잘 되어 있었다. 촌장은 자신의 부인에게 음식을 내오라고 하며 일행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촌장 집 답게 넓은 탁자가 있었다. 일행과 촌장은 둘러앉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괴물들 때문에 사람들의 통행이 뜸했는데 여러분들께선 어찌 오셨군요? 굉장히 강하신가 보죠?”
리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하하, 아닙니다. 운이 좋은 것뿐….”
그러나 키세레와 리오를 제외한 아이들은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리오를 가리켰다. 촌장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체형을 봐서 비범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님이신가요?”
“아, 예…. 그렇습니다.”
“그럼 잘 됐군요! 무기를 만들고 판매하는 제 친척이 마침 와 있습니다, 한 번 보기라도 하시지요. 여보게, 나와보게 아르만!”
리오는 아르만이라는 이름을 듣고서 낯익은 이름이라 생각했다. 일전에 라이논에서 만났던 드워프의 이름이었다. 리오는 혹시 하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한 드워프가 짐을 등에 지고서 걸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바로 아르만… 엇?! 당신은!!”
“역시 당신이었군, 역시 세상은 넓고도 좁다니까.”
아르만은 짐을 방 구석에 던져놓고 서둘러 리오에게 인사했다.
“아, 기억해주고 계셨군요! 아저씨, 이분이 바로 전에 말씀드렸던 그 기사님이십니다.”
촌장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락토레리움으로 만들어진 검을 가지고 다니는 키 큰 기사. 촌장은 머리를 치면서 리오에게 사과를 하였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몰라 뵙고 감히 무기를 보여드린다는 말을 꺼냈으니….”
“아닙니다. 그런데 아르만 씨가 이곳에 사는 드워프인 줄은 몰랐습니다?”
아르만도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여기서 당신을 뵙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 올시다.”
곧 음식이 나오고 일행과 촌장, 그리고 아르만은 식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리오는 가이라스의 일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가이라스의 왕실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없었습니까? 요즘 사람들의 원성이 대단하던데….”
아르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왕이 전에 없던 공포 정치를 시작했으니까요. 다 그놈의 왕비 때문입니다…. 그 요망한 계집이 왕비가 된 뒤부터 왕께서도 이상해지셨으니까요.”
“왕비?”
일행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네, 가이라스 3세의 왕비이신 아라셀님이 돌아가신 후 왕의 시름을 덜어드리고자 왕국에선 다시 왕비를 간택했지요.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지금의 왕비인 바루나가 뽑힌 것입니다. 그 후로 숲의 엘프족들과 세상에 알려진 뛰어난 인물들을 납치하기 시작했고 이 대륙은 숨겨진 오지가 아니면 모조리 혼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참지 못한 젊은이들이 일어서기 시작했지요. 다른 왕국의 사나이, 태라트를 중심으로요.”
리오는 눈을 크게 떴다. 리카와 클루토도 마찬가지였다.
“태라트?! 정말 태라트요?”
아르만과 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고 말고요. 우리 마을에도 왔었는데요. 정말 대단한 젊은이였죠. 진취적이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단결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를 중심으로 이 대륙엔 큰 규모의 반란군이 결성되어 마침내 수도까지 들어갈 수 있었지만…. 바루나의 직속 부하들이 그때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소문에는 100년 전에 사라졌다는 마장기사 요우시크와 마녀 바만다라도 같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이고요. 반란군은 대패하여 많은 반란군의 중심 인물들이 붙잡혔고 태라트는 다시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이게 3개월 전의 이야기입니다. 아르만도 마을에 돌아와서 이 이야기를 들었지요.”
리오는 요우시크와 바만다라가 살아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생각보다 일이 훨씬 어려워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타르자의 일도 그렇고….
“소문에 의하면 반란군이 다시 조직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어디서, 또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답니다. 드워프족의 젊은이들도 그들을 도와주는 것 같지만요. 아, 세상이 어떻게 될는지….”
이런저런 얘기가 끝나고 일행은 촌장이 마련해준 방에서 피로를 풀 수 있게 되었다. 방에는 깨끗한 침대가 놓여있었다. 마치 고급 여관을 연상시켰다.
그날 밤, 리오는 머셀과 클루토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잠이 오지 않아서였다. 집안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데 방을 나선 키세레와 마주치게 되었다. 키세레는 리오를 보자 움찔하며 휙 돌아섰다. 리오는 맘대로 하라는 듯 그녀를 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문 밖을 나서는 리오를 보며 키세레는 아까와는 다른 표정을 지었다. 양손을 모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마음에 안 드는 남자야.”
다음 날, 더 있다가 떠나라는 촌장의 제의를 사양하고 리오 일행은 길을 떠났다. 일행은 한 명이 더 늘어 있었다. 아르만이었다. 무기 상인인 만큼 그는 무기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행에게 선물을 주었다.
“머셀이라고 했니? 너에겐 이걸 주마. 엘프 사냥꾼들이 갖고 싶어하는 무기 중에 으뜸인 무기지, 바람의 활이란다.”
머셀은 아르만에게 은색으로 반짝이는 무기를 받았다. 여태껏 가지고 있었던 나무 활과는 차원이 달랐다. 균형이 맞아 매우 가벼웠고 시위도 탄력이 대단했다. 머셀은 기뻐했으나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전 이만한 고가품을 받기가 좀 그런데요… 죄송해서.”
아르만은 자기와 키가 비슷한 머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커서 갚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키세레와 클루토에게는 라이트 스태프를 주었다. 빛의 힘을 가진 지팡이여서 언데드 계열의 상대에게는 최고라는 것이고 장비한 자의 마력을 올려주기까지 한다는 고급 지팡이였다. 리카에겐 검을 주려고 했지만 그녀가 가진 룬 블레이드를 보고서 다른 것을 주었다. 바로 리본이었다.
“에? 이게 뭐야 난쟁이 아저씨?”
그 리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아르만은 말했으나 그것은 그냥 상쾌함을 주는 리소폰이란 섬유로 만들어진 리본이었다. 리카는 좋다는 듯 그 리본으로 머리를 묶었다. 아르만은 리오에겐 장비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리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르만은 맨손인 그에게 장갑을 주었다. 검은색의 가죽 장갑이었다. 땀에 의해 검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리오는 고맙다고 말하며 그 장갑을 착용하고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낀 느낌이 오지 않을 정도로 편안했다. 리오도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아르만 자신은 파이어 브레이커란 대형 도끼를 장비했다. 불의 힘이 머금어져 있는 드워프족이 만든 예술품이라고 침을 아끼지 않으며 자랑했다. 갑옷도 두꺼운 중형 갑옷을 장비하고 있어서 둔해 보이기까지 했으나 아르만 자신은 그런 걸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선천적인 드워프의 강인한 체력이었다.
그는 리오와 함께 드워프 족장이 있는 다섯 번째 마을까지만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드워프 젊은이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리오와 그 일행은 계속해서 다음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그들을 감싸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