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02화
9화 [또다른 용족]
“오, 아가씨 왔군. 마침 주문한 초콜렛이 방금 들어 왔지.”
제과점 주인은 가게 안에 들어온 바이칼에게 하트 모양의 조그만 상자에 담긴 초콜렛을 내 주었고, 바이칼은 즉시 대금을 지불한 뒤 바람처럼 제과점을 빠져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제과점 주인은 추억에 잠긴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긴, 나도 젊었을적 화이트 데이때 저랬지. 좋은 때야‥.”
밖에 나갈 처지가 아닌 리오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집을 지킬 뿐이었다. 리오 자신도 이게 무슨 꼴인가 하며 한탄했지만 다른 세계로 가서 처리할 별다른 사건도 요즘은 거의 없었기에 다른 수도 없었다.
“다, 다녀왔습니다.”
그때, 잠깐 나갔다 온다는 바이칼이 돌아왔고 리오는 상체를 일으키며 바이칼에게 물었다.
“음, 그런데 어딜 갔다 온‥.”
그러나, 바이칼은 리오에게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윗층으로 올라갔고, 리오는 인상을 살짝 쓴 채 다시 소파에 누우며 중얼거렸다.
“‥뭐지? 저 하트 모양의 상자는. ‥뭐,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리오는 다시 TV에 시선을 돌렸고, TV뉴스에선 한참 바쁜 백화점과 유명 제과점의 모습을 비추며 한참 기사를 보도하고 있었다.
「내일은 성·발렌타인 데이. 덕분에 최근 백화점과 유명 제과점에선 초콜렛이나 사탕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합니다. 40년 전 있었던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져 내려온 이 날은 원래의 취지와는 상당히 달라져 있지만 그래도 연인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하루 앞둔 오늘 여성들의 얼굴은 밝기만 합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가만히 TV를 보던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발렌타인 데이가 초콜렛 주는 날이었나? 아닌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날 저녁, 리오는 티베와 마키마저 퇴근 하자 마자 윗층으로 후다닥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이상하게 생각한 리오는 옆에 앉은 시에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오늘은 셋 다 이상하구나. 전부 집에 들어오자 마자 윗층으로 뛰어 올라가니‥. 시에는 이상한거 느끼지 못했니?”
“초콜렛 냄새가 나는 것 말고는 몰라.”
시에의 후각 성능이 상당히 좋다는 것을 알고 있는 리오는 결국 실소를 터뜨렸고 시에의 머리를 손으로 부비며 말했다.
“‥후, 그랬군. 하지만 티베나 마키는 이해를 하겠는데 바이칼 녀석은 누구에게 주려고‥음?”
순간, 리오는 뭔가 불길한 느낌에 인상을 찡그렸고 시에는 깜짝 놀라며 리오에게 물었다.
“앗, 리오 왜 그래?”
“‥아, 아니야. 설마 나는 아니겠지. 아닐거야‥.”
리오는 그렇게 부정을 하면서도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바이칼이 알고 지내는 남자는(현 상태에서) 자신과 지크 뿐이기 때문이었다.
………………. . . . . . . . . .
“음? 나?”
라이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부른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근처 남자 고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그 학생은 손에 꽃을 든 채 나름대로 멋지게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고, 라이아는 가만히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학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와 꽃을 건네 주며 말했다.
“훗,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정말 예쁘구나. <XX여자 중학교 라이아·드리스>.”
“‥나한테 무슨 볼일이세요?”
라이아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물어오자, 남학생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다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후훗, 현재 모델 출신인 나의 유혹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하지만 괜찮아, 너의 아름다움은 그 모든 것을 이해시킬 수 있어.”
‘느끼하군.’
라이아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 학생을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키는 꽤 큰 편이었고, 얼굴도, 몸매도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라이아의 눈엔 찰 이유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전 당신보다 키도 더 크고 얼굴도 더 잘 생기고 몸도 더 좋은 사람을 알고 있는데요? 죄송하지만 사양할래요.”
그러자, 그 학생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약간 화가 난 말투로 라이아에게 말했다.
“어떤 녀석이길래 그러는거지! 학생 모델 중에서 나같은 녀석은 없다구! 난 다음달이면 음반도 나온단 말이야!!!”
턱–
그때, 남학생의 뒷덜미를 누군가가 잡았고, 학생의 발은 지면에서 살짝 들어 올려졌다. 학생은 공중에 붕 뜬 채 뒤로 반바퀴 돌려졌고 그를 잡아 올린 남자는 떫떠름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이런 이런, 연기도 잘 하고 좋은 녀석인줄 알았더니 인간성은 꽝이군. 자, 연애 작전을 계속 실행할 생각 있니?”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그 학생은 긴장이 잔뜩 실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고, 그를 들어 올린 남자는 씨익 웃으며 그 학생을 내려 주었다.
“헤헷, 음반 기대할께. Get out!”
학생은 재빨리 사라져갔고, 그 모습을 통쾌하게 바라보던 라이아는 빙긋 웃으며 남학생을 쫓아준 청년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 주었다.
“역시이, 보디가드 하나는 확실하네요.”
“쳇, 돈도 안주면서 원. 그건 그렇고 꼬마한테 잘도 달라 붙네. 어째 바이오 버그나 다른 녀석들은 달라붙지 않고 저런 얼간이들만 둥둥 나오지?”
“꼬, 꼬마라니요!”
“넌 나랑 팔짱도 못끼잖아. 40cm 가까이 키 차이가 나는데‥쯧.”
“흥!”
라이아는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픽 돌렸고, 지크는 옆에 세워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자자, 어서 타시죠 슈퍼모델양.”
그러자, 라이아는 곧 씨익 웃으며 지크의 뒷자리에 탔고, 그의 자켓 주머니에 무언가를 넣어 주며 말했다.
“자, 돈은 아니지만 더 좋은거 드릴께요.”
“잉?”
지크는 자신의 자켓 주머니를 뒤져 보았고, 그의손엔 작은 초콜렛 상자가 들려 나왔다. 지크는 결국 크게 웃으며 오른팔로 라이아의 목을 둘러 감고는 즐거워 하기 시작했다.
“오오! 헤헤헷, 정말 돈보다 더 좋은 건데!!”
“아, 아야얏! 그만 해요!!”
둘의 그런 모습은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도발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들의 따가운 눈총을 아랑곳 하지 않고 유유히 학교를 빠져 나갈 수 있었다.
※※※
다음날 아침, 라이아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본부에 출근을 한 지크는 놀랄만한 이벤트를 몸으로 접할 수 있었다. 대원들이 회의실로 가려면 상황실을 지나야 하는데, 상황실에 방송 장비들이 잔뜩 포진해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방송 관계자들도 여럿 모여 그들만의 작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공금이라도 횡령하셨나? 이건 또 무슨 난리지?”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송 장비들을 이리저리 피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고, 그는 그곳에서 더더욱 놀라운 이벤트를 접할 수 있었다.
“‥선배님, 그 나비 넥타이는 뭐죠? 케빈은 머리에 왠 동백 기름을 바르고 왔고‥루이는 왠일로 또 머리를 풀고 왔니?”
그 뿐이 아니었다. 자신과 마키, 챠오를 제외한 전 대원이 잔뜩 모양을 내고 출근을 해 있는 것이었다. 헤이그와 케빈은 헛기침을 할 뿐이었고, 루이 역시 자신의 노트북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진의 옆자리에 앉았고, 어깨로 그녀를 툭 건들며 물었다.
“‥오늘 누가 결혼이라도 한데? 전부 다 번쩍번쩍 차려 입고 나오‥.”
“음? 뭐라고?”
다른 방향에 고개를 돌리고 있던 리진은 지크가 물어오자 그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고, 지크의 얼굴은 순간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말 문이 잠시 막혀 있던 그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지 인상을 가볍게 쓴 채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오늘 아침 반찬이 육회였니?”
“‥무슨 헛소리야. 아, 입술? 호호홋, 신경좀 썼지. 아, 잊을 뻔 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리진은 곧바로 자신의 갈색 자켓 주머니를 뒤적거렸고, 그녀는 곧 지크에게 작은 초콜렛 상자 하나를 건네 주었다. 그러자, 지크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오오오! 역시 역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잊지 않고 있었구나!”
“그러엄, 당연하지. 가지고 있다가 집에 가서 리오씨한테 건네줘. 알았지?”
“아, 물론이‥지. 하하하‥.”
지크는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에게 초콜렛을 건네준 후, 리진은 냉정히 거울을 보며 입술에 립스틱을 다시 바르기 시작했다.
‘‥리오 녀석이 언제 리진에게 까지 마수를 뻗은거지? ‥아무래도 휀이나 바이론 녀석으로 바꿔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인기 관리가 위험해 졌어!’
지크는 고개를 푹 숙인채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자, 다들 모였나? 음? 사이키가 아직 오지 않았군.”
그때, 처크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지크는 힘없이 고개를 들며 자리에 앉는 처크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지크의 얼굴은 다시금 굳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 오늘 주례라도 보시나요?”
“‥무슨 소리야.”
처크는 오히려 지크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처크의 모습은 그야말로 중년의 신사였다. 지금까지 입고 있던 갈색 제복 대신 ‘높은 자리’에 갈 때만 입던 흰색의 제복에 머리까지 멋지게 모양을 내고 있던 것이었다. 지크는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은채 옆에 앉은 챠오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오늘 회의 안건이 설마 ‘이상한 나라의 지크’는 아니겠지?”
“….”
챠오는 묵묵히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