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09화
“자아, 맛있게들 드세요.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발휘했으니 기대해 주시고요.”
세이아는 만들어둔 음식을 내왔고, 두명의 바이칼을 제외한 다수는 전부터 풍겨오던 맛있는 냄새 덕분에 기대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크와 리오 사이에 앉아 둘과 한참 신나게 대화를 한 탓에 예전의 기억을 잠시 잊은 노아는 세이아가 가져다놓은 멋진 요리를 보고 예전과 같이 구토감을 느끼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이상하다 생각될 정도로 세이아의 요리가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상해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는데‥? 분명히 고기 요리인데도 불구하고 속이 울렁거리지가 않아요.”
그러자, 세이아는 싱긋 웃으며 노아에게 말했다.
“포도주에다 양파하고 마늘을 잘 배합한 소스를 사용했거든요. 호홋‥.”
“‥?”
노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 없이 세이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크가 노아를 데리고 한참 식사를 하는 동안, 일찍 식사를 끝낸 리오는 바이칼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왔고, 둘은 진지한 얼굴로 본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바이칼은 바이칼 나름대로 리오에게 애기할 것이 있었고 리오는 리오 나름대로 현 상황에 대해서 얘기할 것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정신이 음식쪽에 쏠려 있는 동안은 진지한 대화를 나눌 절호의 기회였다. 바이칼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이 행성의 성계신에 대한 일‥알고 있나.”
“‥음. 그런데 그 전에‥.”
그러자, 리오는 고개를 끄덕인 후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고 바이칼의 입 주위에 묻어 있는 음식물을 닦아 주었고, 리오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아, 계속 하시죠.”
“‥쳇. 어쨌든, 아까의 질문에 대답을 해.”
바이칼은 리오로 부터 약간 거리를 두며 말했고, 리오는 현관 앞 계단에 걸터 앉은 후 얘기를 시작했다.
“주신께서도 이 세계의 성계신에 대해선 말씀해 주시지 않았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나 스스로 성계신을 찾아 보호하라는 임무도 내리셨지. 이 행성의 성계신이란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도 알고 있어. 그래서 나름대로 찾고 있기는 하지. 하지만 맘에 걸리는 것이‥세이아와 라이아가 예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야. 하지만 능력은 남아 있어. 아무래도 둘중에 한명이 이 행성의 성계신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 이 세계의 사람들이 세이아와 라이아를 노리고 온 일도 있었고, 동룡족도 이 근처에 나타났던 일이 있었으니‥내 생각이 맞다면 잘 된 것이겠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거나. 그건 그렇고‥넌 동룡족 때문에 이곳에 온 것 같은데‥?”
“잘도 아는군. 드래고니스의 첩보부와 다른 용왕들 산하의 정보부에서 동룡족들이 이 세계에서 심상치 않게 움직이고 있다는 말을 몇달 전부터 했다. 게다가 성계신의 존재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이곳에서의 일이기 때문에 탐탁치 않지만 너에게 이 일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었다.”
“‥흐음, 그랬었군. 아 참‥그런데, 너와 여자 바이칼 말인데‥인간적으로 너무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녀의 겉모습은 네가 술에 만취해서 변했을때의 모습과 똑같단 말이야. 음‥뭐, 물론 넌 네가 변한 모습을 본 일이 없어서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 모습을 본 지크나 나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고 느끼고 있어. 넌 좀 불쾌하게 생각되겠지만 한번 알아보는게 어떨까‥하는데.”
그러자, 바이칼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고, 그는 화가 난 나머지 리오의 옷자락을 움켜 쥐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아보라는 소리야! 어마마마께? 아니면 돌아가신 아바마마께!! 네녀석 도대체 무슨 뜻으로 지껄인건지 말을 해!!!”
“‥아, 미안‥. 내가 말을 실수했구나. 사과할테니 진정해.”
바이칼이 그렇게 흥분하는 것을 자주 본 일이 없는 리오는 자신 역시 그에게 심한 말을 했다 생각을 했는지 즉시 사과를 했고, 가만히 리오의 눈을 쏘아보던 바이칼은 조금 후 옷자락을 놓으며 나지막히 말했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더러운 일의 가능성은 없다‥절대로! 한번만 더 그런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어!!”
“알았어, 다시 사과하지. 정말 미안하다.”
“‥흥.”
바이칼은 곧 돌아서서 집 안으로 들어갔고, 리오는 구겨진 자신의 옷자락을 손으로 툭툭 털어 풀은 후 턱에 손을 대며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바이칼이 어지간한 일엔 저렇게 흥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방금 전 그의 행동이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나‥? 하지만 전대 용제에 대한 일은 내가 가즈 나이트가 되기 전의 일이라 나는 모르는데‥. 저 녀석이 저렇게 흥분하는걸 보면 예전에 무슨 일이 있던게 분명할지도‥아니면 기분탓이던가.’
결국, 지금 상황에선 결론을 도출할 수 없었던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흐음, 괜히 친구 관계만 벌어졌군. 잊어 버리길 바래야 하겠지‥.”
리오는 터벅터벅 집 안으로 들어갔다.
※※※
“‥정말 고마워요 지크씨. 지크씨 덕분에 오늘 하루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노아를 집 앞까지 바래다준 지크는 그녀가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자신에게 그렇게 말 하자, 이해가 안가는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노아는 빙긋 웃으며 계속 말했다.
“지크씨와 같은 BSP분들은 정말 생사를 걸고 바이오 버그들로 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시잖아요. 그리고 일하는 도중에도 몇일 전에 벌어졌던 광경을 한두번 보시는게 아니실테고‥. 그런데 전 ‘재미’로만 그 일을 하겠다고 했고, 그런 광경이 눈 앞에 벌어졌을때의 각오를 하지도 않은채 각본대로 될 것이다 라고만 생각했었죠. ‥하지만 제가 생각치 못한 NG가 나버렸죠. 그리고 전 BSP여러분들이 매일같이 보시는 광경을 한번 보고 몇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심한 충격에 빠져 버렸어요. 전 이제 더이상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답니다. 너무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그런 일을 실제 상황으로 매일 접하시는 지크씨는 저처럼 집에 와서 덜덜 떨기 보다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재미있게 지내시고 계셨죠. 그걸 보고, 전 한참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세상에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많은데, 그런 일을 한번 당했다고 해서 공포감에 아무것도 못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정말 죄송해요 지크씨. 괜히 걱정만 시켜드리고‥.”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지크는 곧 씨익 웃었고, 양 손으로 그녀의 볼을 살짝 매만지며 말했다.
“헤헷, 나 역시 경험 안해본게 많은건 마찬가지라구. 난 너처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일도 없고, 드라마 대본등을 외울 머리도 안돼. 사람들은 각자 잘 하는 것이 따로 있기 마련이야. 넌 잠깐 네가 할 수 없는 일을 경험한 것 뿐이지. 아마, 내가 가수가 된다고 했다면 너랑 똑같은 상황에 빠졌을지도 몰라. 사람은 각자의 본분만 지킨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라고 난 생각해. 헤헷‥이거 원, 선생님 같은 얘기만 하는데?”
“‥괜찮아요. 저도 그렇게 느꼈는걸요. 아, 엄마가 걱정하시겠어요. 저 이만 들어가 볼께요.”
그녀의 말을 들은 지크는 곧 그녀를 놓아 주었고, 노아는 손을 흔들며 천천히 자신의 집 현관으로 향했다. 지크는 오토바이에 시동을 건 후, 노아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다.
“다음 음반이 나오면 보내줘야해. 알았지?”
“‥걱정 마세요 지크씨. 그럼, 시간이 나면 또 찾아뵐께요.”
“헤헷, 언제든지 환영이지! 자아, 그럼 식사 잘 하라구!”
지크와 그의 오토바이는 천천히 노아의 집으로 부터 멀어져 갔다. 노아는 점점 작아지는 지크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바람‥같아요. 아주 상쾌한‥. 지크씨는 정말 바람 같아요.”
노아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생각한 지크에 대한 느낌이 아닌, 지금 방금 자신의 주위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도 이상스럽게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 . . .
다음날 조회시간.
처크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지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아의 부모와 그녀의 측근으로 부터 그녀가 하루만에 달라졌다는 말과 함께 몇시간동안 감사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지크에 대한 칭찬도 겸하고 있어서 더더욱 그러했다. 처크의 그런 시선을 느낀 지크는 흘끔 처크를 바라보았고, 깜짝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오늘은 아무짓도 안했는데요‥?”
계속 지크를 바라보던 처크는, 곧 실소를 터뜨렸고 지크를 비롯한 모든 대원들은 멍하니 처크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크는 약간 흘러내린 자신의 선글라스를 고쳐 쓴 후,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채 말했다.
“‥많이 성장했군 지크. 처음 만났을땐 저런 망나니가 또 있을까 했는데‥하하핫. 자아, 잡담은 이만 하고, 오늘의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처크의 그런 모습을 본 리진은 불가사의한 일을 접한 사람처럼 얼굴이 변했고, 검지의 관절을 손가락으로 살짝 깨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왠일로 지크 칭찬을 다 하시지? 오늘 어디 편찮으신가?’
※※※
“미안하다니까. 오늘은 슈렌을 만나기로 했으니 제발 몇시간만 집을 부탁할께. 음? 알았지 바이칼.”
리오는 손을 모은채 바이칼에게 굽신거리며 부탁을 했고, 계속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바이칼은 시끄럽다는듯 귀를 막으며 말했다.
“알았으니 사라져. 귀찮은 녀석.”
“훗, 고마워. 그럼 갔다오지.”
리오는 바이칼의 머리를 매만져준 후 곧바로 밖으로 나갔고, 바이칼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푸우 쉬며 TV를 켰다. 리오가 없는 동안엔 자신만의 방송을 보는 그는 채널을 만화, 어린이 채널로 바꾸었고, 마침 그곳에선 바이칼이 즐겨 보는 만화가 한참 방영중이었다. 바이칼은 묵묵히 그 방송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바이칼씨도 그 만화 좋아하시네요? 저도 좋아하는데‥.”
“‥’씨’가 아니라 ‘님’이다.”
“‥죄송해요.”
여자 바이칼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채 바이칼의 건너편 소파에 앉았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표정도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둘은 곧 약속이나 한 듯 방송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왠만하면 이 프로젝트는 중단하시오. 이건 사이보그도 아니고‥!”
처크는 흥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존·루이션’ 박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존 박사는 미소를 띄우며 처크에게 말했다.
“‥지부장님. 이 프로젝트가 실용화 된다면 바이오 버그에 의한 BSP대원들의 사망이나 부상등에 따른 비용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 계획은 대원들을 아끼기로 소문난 당신이시라면 협조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아닙니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처크는 한숨을 길게 쉰 뒤, 애용하는 시가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존 박사에게 말했다.
“‥분명히 비용은 절감되겠죠. 나 역시 대원들의 부상이나 사망에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소. 하지만, 로봇이라면 모를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인공 생명체를 바이오 버그와 싸우게 한다는 것은 난 허락할 수 없소. 그건 바이오 버그를 바이오 버그로 상대한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 아니오.”
그러자, 존 박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처크에게 말했다.
“하핫, 잘못 이해하고 계시군요. ‘조안’과 ‘마린’은 바이오 버그와는 다릅니다. 이들의 통제는 최근 NEC에서 개발한 생체 AI칩 ‘B.R.O.X’를 사용해서 지금은 완전 부도 처리된 제네럴 블릭의 BX시리즈 전투 로봇보다 안전하고‥.”
“듣기 싫소.”
처크의 단호한 한마디에 존 박사는 말을 멈추었다. 처크는 의자를 돌려 창 밖에 시선을 둔 후,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조용히 말했다.
“현재 바이오 버그들은 인류 최대의 적‥그러나 그들 역시 인류가 만들어낸, 신에게 인류가 도전한 것에 대한 죄값이오. 당신이 만들어낸 두 생채 병기의 스펙이 엄청나다는 것은 인정하오. 그러나, 그것 역시 잘못 이용이 된다면 또다른 바이오 버그가 될 뿐이오. 난 더이상 인류가 생명 창조에 대한 일에 관여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소. 또 한가지. 그 계획이 실용화 된다면 BSP대원들의 뒷처리 비용은 전부 당신의 은행 구좌에 입금이 되겠지.”
“‥!!”
순간, 존 박사의 얼굴은 굳어졌고 처크는 재를 털며 말을 이었다.
“그런 루트는 당연한 것이니 화내지 마시오. 댓가는 지불해야 하니까. ‥분명히 말하지만, 존 박사 당신이 만든 그 생체 병기를 당신 자신이 없애지 않는 한 천벌을 받게 될 것이오. 예전의 ‘그들’ 처럼‥. 더이상 말 하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시오.”
존 박사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처크의 책상 위에 펴 놓았던 자신의 서류들을 다시 가방속에 넣은 뒤, 말 없이 처크의 방을 나섰다.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한 처크는 담배를 끄고 선글라스를 벗은 후, 창문으로 보이는 파란 봄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불안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