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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1화


두 개의 마을을 거치며 리오 일행은 수십 마리에 달하는 괴물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리오와 아르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매우 지쳐있었고 물품도 떨어졌으며 키세레의 마법력도 거의 떨어져 있어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제길…. 운동 좀 해둘 것이지. 아르만, 자네는 어때?”

아르만은 프키라스의 뿌리를 동료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칼로리가 높아 식량 대용으론 그만이었으나 지금의 동료들의 상황은 그런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 괜찮아요. 리오도 체력이 대단하네요, 전투의 대부분을 혼자 처리하면서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에요.”

리오는 웃어 보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산뿐, 그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클루토와 리카, 그리고 머셀은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고 있었으며 키세레도 앉아는 있었지만 생기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야말로 난감했다.

“아르만, 다음 마을까지는 얼마나 걸리나?”

“반나절 이상은 걸어야 합니다. 그것도 앞에 괴물들이 없었을 때의 얘기지요. 정말 저도 난감하군요, 괴물들이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라임이나 코볼트 따위가 아닌 거대 괴수들 뿐이에요. 이 고원엔 원래 괴물이란 있지가 않은데 말이죠. 도대체 가이라스에선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우리들이겠지. 리오는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리오는 몸을 일으켰다.

“자, 친구들, 반나절이다. 반나절만 걸으면 돼.”

일행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키세레가 일어나지 않자 머셀이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다. 잠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 키세레는 자신의 모자를 벗고 약간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린 뒤 모자를 다시 썼다.

“아르만은 이제부터 뒤를 맡아줘. 앞 열은 내가 맡지.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괴물이 나타나면 키세레를 중심으로 뭉쳐있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알겠지?”

클루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리오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리오와 아르만 둘이서 어떻게 괴물들을 막아내려고…!”

리오는 윙크를 하며 클루토에게 말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나와 아르만을 응원만 해주면 돼.”

리오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투의 여신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한 시간가량 걸었을 때 또다시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쿠웅.

길에 거대한 발이 나타났다. 철로 만들어진,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일곱 마리의 거대한 골렘들이 일행의 앞을 다시금 막아서고 있었다. 클루토와 리카, 머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희망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서…. 키세레도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르만도 도끼를 고쳐 잡으며 피식 웃었다.

“리오 씨,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그리고 모두들….”

아르만은 다음 말을 잇기 위해 침을 꿀꺽 삼켰다.

“조금 있다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후후후….”

리오는 앞에서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골렘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에서 삶을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다섯 명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디바이너를 뽑아들었다.

“훗, 살기 싫단 말이야 모두들? 날 믿지 못한단 말이야!!”

리오는 노기가 어린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주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리오는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키세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엔 반짝이는 것이 어느샌가 나와 있었고 뺨을 타고 곧 흘러내렸다.

이와 같은 상황이 언젠가 한 번 있었던 것 같았다. 언제였더라…? 자신의 앞에서 수정으로 변해가며 비슷한 말을 한 누군가가 리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전에 한 번 더 있었던 것 같았다…. 수정으로 변한 그녀와 얼굴이 똑같이 생긴 또 한 명. 그녀는 피를 흘려가며 리오에게 마지막으로 그 말을 했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리오는 왼팔을 부르르 떨면서 천천히 굽혔다. 그리고 나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뭐가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아―!!”


“자아, 전하. 여기를 보세요. 또다시 몇 명의 사람들이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번의 사람들은 꽤 많이 다가왔는데요?”

검은색의 화사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의자에 앉아있는 가이라스 3세를 불렀다. 가이라스 국왕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여인은 국왕의 어깨에 가녀린 팔을 두르며 국왕과 같이 일곱 마리의 골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요염한 목소리로 국왕에게 속삭였다.

“어떠세요 전하? 즐겁지 않으세요?”

국왕은 얼어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지가 전혀 담기지 않은 목소리였다.

“즐겁구만….”

검은 드레스의 여인은 국왕의 볼에 키스했다. 주름진 국왕의 볼이 씰룩거렸다.

“말로만요 전하?”

가이라스 3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좋아요 전하. 자 이제 같이 지켜봐요. 저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말이에요.”

수정구를 바라본 여인의 눈은 잠시 후 크게 커졌다. 사람들 중 누군가가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기 시작해서였다.

“아니, 이것은…?”


리오는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잠깐 번쩍이자 일행은 모조리 의식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다시 골렘에게 시선을 고정한 리오는 디바이너를 자신의 앞에 꽂았다. 그리고 나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양팔을 굽혀 허리에 가까이 했다.

“크아아아앗!”

리오의 기합성이 터져 나오자 그의 몸 안에 축적되어 있던 기와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방출되기 시작했다. 산지가 진동을 했고 주위의 대기가 흐름을 멈췄다. 리오의 몸 주위엔 강렬한 에너지 스파크가 일었고 주위의 잔 돌들은 모조리 밀려났다.

리오의 눈은 적색으로 빛을 뿜고 있었다. 그는 디바이너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내 동료들을 너희들의 깡통 발 밑에 채이게 할 수는 없지. 너희들은 의식이 없는 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디바이너를 뽑자 기가 검에 흐르기 시작했다. 에너지가 주체를 못하고 넘쳐 땅에 흘러내렸다. 땅은 에너지에 습기를 완전히 잃은 듯 쫙 소리를 내며 갈라지고 터졌다.

“덤벼 봐라 무쇠 머리들, 완전히 고철로 만들어 줄 테니!!”

구워어어어!

아이언 골렘들은 자신들의 무쇠 주먹을 리오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리오는 피하지 않았다.

떠엉!

산도 열흘이면 부순다는 아이언 골렘의 무쇠 주먹이 리오의 손에서 그대로 멈췄다. 리오는 기가 흐르고 있는 디바이너로 골렘의 오른팔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에너지의 검날이 골렘의 오른쪽 팔을 반쯤 잘라 놓았다. 아마도 돌 골렘이었으면 팔이 날아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타아앗!!”

리오는 몸을 골렘의 몸 위로 날리며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을 휘둘러 나갔다. 공격을 받은 골렘의 양팔이 완전히 땅에 떨어졌고 리오는 골렘의 머리 위에서 기합성을 질렀다.

“낙월참(落月斬)―!!”

그는 골렘의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디바이너로 내려 그었다. 골렘의 움직임은 잠시 동안 멈추었고 곧 굉음을 내며 골렘의 거대한 철제 몸체는 정확히 양분이 되었다.

구오오오오!!

아이언 골렘 여섯 마리는 눈을 번뜩이며 한꺼번에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들 빗나간 주먹은 주위의 돌산들을 철저히 파괴했다. 그리고 주먹 한발이 빗나갈 때마다 골렘의 몸은 디바이너에 의해 그어졌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인간이 존재할 수가…? 타르자님도 이것만은 말씀 안 하셨는데…?”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는 그 여인의 얼굴엔 경악이 깃들어져 있었다. 십여 가론(십여 미터)에 이르는 철제 골렘들이 2가론(2미터)가 채 안 되는 한 사람의 인간에게 묵사발이 되고 있는 광경을 본 어떤 인간이라도 그 표정을 지을 것은 당연했다.

“이 남자…. 정말로 강한데? 후훗….”

그녀의 표정은 경악을 뛰어넘어 있었다. 수정구 안에 비춰지고 있는 사람의 힘에 점차 매료되고 있는 것이었다. 벌써 골렘의 수는 둘로 줄어있었다.


“없어져 버렷―!!”

리오는 검기를 폭발시키며 골렘의 몸을 세로로 그어 내렸다. 거대한 검광이 골렘의 몸을 휩쌌고 곧 철이 녹는 냄새와 함께 두 조각의 대형 철덩이가 땅으로 쓰러졌다.

왼팔을 잃은 골렘이 마지막이었다. 리오는 자신이 있다는 듯 검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이제 마지막인가? … 어라?!”

리오는 갑자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짧은 시간 안에 기의 소모가 극한에 이르렀기 때문에 오는 일종의 탈진 상태였다. 검에 의지하여 겨우 일어나고 있는 리오에게 기회를 줄 골렘은 아니었다. 어느새 골렘의 오른발이 리오의 머리 위에 있었다. 리오는 온 힘을 다해 디바이너로 지면을 찍었다. 그 힘으로 리오는 골렘의 처음 공격을 피할 수 있었으나 그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다시금 발을 드는 골렘의 모습이 리오의 시선에 들어왔다.

“… 이대로 개죽음당할 수는 없다!”

리오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디바이너 검신의 중앙에 있는 검은색 선을 내리 그었다. 그러자 검은색의 선이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가주마, 봉인 해제! 세인트 디바이너!!”

디바이너의 보라색 검신이 반으로 갈라지며 땅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손잡이 부분에는 검신을 고정하고 있던 뾰족한 부분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곧 그 뾰족한 부분이 또다시 반으로 갈라지며 그곳으로부터 흰색의 빛이 뿜어져 나와 리오의 몸을 감쌌다.

세인트 디바이너(Saint Diviner), 별칭은 주신의 단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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