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12화
“음‥알았어. 거절할 이유도 없지.”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했고, 슈렌은 나가기 위해 현관의 문을 열었다.
탕!
“아얏!”
순간, 바깥쪽으로 열린 현관문에 무엇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그와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슈렌은 눈을 살짝 뜨며 아래쪽을 바라보았고, 현관문 앞엔 케이크 상자를 안은 채 바닥에 넘어진 한 여성이 있었다. 슈렌은 묵묵히 그녀에게 손을 뻗었고, 벌써 빨갛게 부어오른 이마 한쪽을 쓰다듬던 그녀는 움찔하며 슈렌을 올려다보았다. 슈렌은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하오.”
“‥?”
그때, 저녁 식사를 만들던 레니가 현관 쪽으로 나와 보았고, 그녀는 현관문 앞에 쓰러진 여성을 알고 있는지 리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루이, 괜찮니?”
“‥이모? 제가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었나요?”
슈렌은 가만히 둘을 바라보았고, 보다 못한 리오가 결국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사과는 나중에 하자고. 지금 상황이 안 좋잖아.”
“‥그렇군.”
슈렌과 리오는 곧바로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둘을 바라보던 루이는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자, 잠깐! 그 붉은 머리의 남자‥설마?”
“음? 리오 씨? 너도 알고 있었니?”
레니는 루이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고, 제대로 선 루이는 레니를 바라보며 급박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저 두 사람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두 분? 아아‥BSP 본부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서‥가시는 것 같던데?”
그 순간, 루이는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레니에게 맡긴 후, 자신도 어디론가 뛰어 가며 레니에게 소리쳤다.
“죄송해요! 나중에 다시 찾아뵐게요!”
현관 앞에서 상자를 든 채 멍하니 서있던 레니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케이크 상자를 열어본 그녀는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생크림 케이크인데‥다 뭉그러졌네.”
※※※
“아앗–!!”
퍼억–!!!
아란의 일격을 방어밖엔 할 수 없었던 챠오는 결국 벽에 등을 강하게 부딪히고 말았다. 계속 방어만 하느라 팔도 심하게 저려왔고, 아란의 일격 한 방 한 방이 너무나 강했기에 직접 공격을 받지 않았어도 챠오의 몸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녀를 벽까지 몰아친 아란은 천천히 챠오에게 접근을 했고, 챠오와 완전히 밀착 상태가 된 아란은 챠오의 귓볼을 치아로 살짝 깨물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후훗‥맘에 드는 타입이야 넌. 그런데 이걸 어쩌나‥너하고 즐길 장소가 마땅치 않네? 후후후훗‥. 미안해, 더 재미있는 상대가 나타났거든?”
“‥으윽‥!”
아란은 챠오의 목을 매만지며 옆을 살짝 돌아보았다. 그곳엔 어느새 이곳에 도착한 지크와 케빈이 버티고 서 있었다. 지크는 씁쓸히 웃으며 아란에게 말했다.
“이런‥조금 늦게 올걸 잘못했나? 한참 즐기기 전인 모양인데‥헤헷. 하여튼 꽤 괄괄한 여자분 같은데 어디 나랑 한번 실력 대결을 해 보실까?”
“후훗‥좋아요. 원하던 바였어요.”
아란은 챠오에게서 떨어진 뒤, 양 손에 힘을 넣으며 지크에게 다가왔고, 지크는 움찔하며 표정을 굳혔다. 엄청난 느낌이었다. 챠오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과 같을 정도로‥.
‘뭐야‥여자 바이칼에 이어서 나타난 여자 리오인가? 무슨 여자가 이렇게 강한 기를 가지고 있지?’
“‥케빈, 챠오를 데리고 의무실에 들러줘. 아무래도 좀 레벨이 높은 아가씨 같으니까 말이야.”
“호오, 그래? 아쉽군, 정말 미녀인데‥.”
케빈은 곧 챠오를 부축한 뒤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도중에, 그는 존 박사와 눈을 마주쳤고, 씨익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 미안하오. 지금은 동료가 먼저라서‥나중에 선배나 후배들이 몰려올 테니 걱정 말고 놀고 계시오. 이제 얼마 놀지도 못할 테니까.”
“….”
케빈과 챠오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자, 지크는 자신의 주먹을 풀며 준비를 했고, 아란은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한번 묶은 뒤 나름대로의 자세를 취했다. 그것을 본 지크는 속으로 그녀가 더더욱 리오와 닮았다고 생각을 했다.
‘‥피부가 흰 것 빼고는 리오랑 비슷하네. 머리를 묶으니 더해. 이런, 잡념은 버려야지‥.’
“자아‥예의상 레이디 퍼스트. 맞는 것도 레이디 퍼스트–!!”
타악–
“‥어라?”
지크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힘이 꽤 실린 정권이 아란의 손바닥에 가볍게 막혀 버린 것이었다. 지크가 재빨리 주먹을 빼자 아란은 자신의 손바닥을 입김으로 후우 분 뒤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후우‥안타깝군요. 접근전 기술은 최고라는 바람의 가즈 나이트의 정권 지르기가 겨우 이런 정도인가요?”
“‥뭐? 당신‥도대체 누구지?”
슈웅–!!!
순간, 엄청난 스피드의 돌려차기가 지크의 안면에 날아들었고, 지크는 간발의 차이로 그녀의 공격을 피한 뒤 뒤로 약간 물러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란은 빙긋 웃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제 이름은 ‘아란·슈왈츠’. ‘데스 발키리’ 중 한 명이죠. 제 임무는 당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력 평가에요. 당신들이 신계 최강의 사자라는 헛소문을 무마시킬 겸‥호호호호홋‥.”
“‥데스 발키리? 호오‥재미있는데? 난 또 괜히 힘을 뺐잖아. 헤헤헤헷‥. 난 또 챠오랑 비슷한 수준이라구‥. 좋아, 진짜로 상대해 줄게 아가씨. ‥덤벼 봐!!!”
그와 동시에, 둘은 지금까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스피드로 격돌하기 시작했고 눈에 희미하게 보이는 둘의 움직임에 존 박사는 넋을 잃고 말았다.
“미안!”
퍼억–!
그때, 낮은 자세에서 나온 지크의 라이트 어퍼컷이 아란의 복부에 작렬했고, 지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팔의 팔꿈치로 숙여진 아란의 턱을 가격했다. 아란의 자세가 뒤로 젖혀지자 지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 정권 지르기를 마지막 일격으로 선사했다.
“치료비는 대 주지!”
콰앙–!!!!
“‥?”
지크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챠오의 가문에서 배운 ‘석충권(石衝拳)’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란은 멀쩡히 서 있는 것이었다. 아란은 자신에게 주먹을 뻗은 채 가만히 멈춰있는 지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호홋‥석충권이군요. 역시 정보대로 왠만한 전투 기술은 다 익히신 것 같은데요? 그럼‥답례로 비슷한 걸 선사해 드리죠.”
“‥!!!!!”
콰아앙–!!!!!
폭음과도 같은 소리가 BSP 본부의 지하 주차장을 울렸고, 조금 후 지크는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입에서 피가 흐른다는 것을 느낀 지크는 팔뚝으로 피를 닦은 후 다시 몸을 일으켜 보았다.
‘붕권(崩拳)‥? 그런데 무슨 붕권이 이따위로 세지?’
지크는 내장 파열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자신이 의식을 잃은 정도였다면 보통 사람의 경우 내장 파열뿐만 아니라 폭발력이 없는 대전차 포탄을 직격으로 맞은 것과 같은 꼴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지크는 입 안에 고인 피를 옆으로 뱉은 뒤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헤헷, 굉장한 아가씨군. 정말 몇 개월 만에 상대를 만나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하필 여자라니 원‥.”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선 푸른색의 스파크가 튀었고, 곧 그 스파크는 지크의 상체 전부를 타기 시작했다. 지크는 다시 자세를 취하며 아란에게 말했다.
“좋아, 가즈 나이트로서 상대해 주지 언니. 헤헤헷‥Come on baby.”
지크의 그런 모습을 본 아란은 씨익 웃으며 자세를 잡은 뒤 지크에게 말했다.
“후훗, 정신을 차리셨나요? 자아, 다시 즐겨봐요 허니.”
탁–
그때, 아란의 머리 양쪽이 어느 순간 지크의 손에 잡혔고 그녀의 복부엔 지크의 무릎 차기가 강렬히 터졌다.
퍼억–!!!
그녀의 자세가 흐트러진 것을 놓치지 않은 지크는 팔꿈치로 그녀의 후두부를 가격했고, 아란은 얼굴부터 잘 닦여진 콘크리트 바닥에 충돌하고 말았다. 그녀와 충돌한 콘크리트 바닥은 움푹 꺼져 들어갔고, 지크는 마치 축구공을 차듯 그녀의 복부를 발로 가격했다.
파악–!!
아란의 몸은 공중으로 간단히 날려졌으나, 그녀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중심을 다시 잡은 뒤 안전하게 착지한 후 콘크리트 조각이 묻은 얼굴을 손으로 턴 후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정말, 소문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군요. 이것이 가즈 나이트로서의 지크 씨인가요?”
그러자, 지크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대답했다.
“노노〜아직도 놀이라 착각하고 있는 말괄량이 아가씨에게 버릇을 고쳐주려고 한 것 뿐이지. 헤헤헷‥.”
“‥후훗, 스코어는 1대 1이란 소리군요. 그럼 재 역전을 해 볼까요?”
아란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스커트 벨트를 풀었고, 지크는 순간 깜짝 놀라며 아란에게 소리쳤다.
“자, 잠깐!! 미인계는 통하지 않아!!!”
그러자, 아란은 빙긋 웃으며 풀어낸 자신의 벨트를 오른손에 거머쥐었고, 그 벨트는 붉은색의 연기를 뿜어내며 점점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붉은 연기가 걷히고 나타난 것은 날의 색이 새빨간 한 자루의 긴 도검이었고, 그 도검을 본 지크는 눈을 찌푸리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오니마루(鬼丸:おにまる)‥? 호오, 별걸 다 가지고 다니시는군 Sister? 그거 꽤 귀한 칼인데‥?”
“후훗‥당신이 가진 무명도에 비하면 별것 아닐지도‥. 하지만 제 전용 무기를 사용하면 제가 오히려 불리할지 모르니 하는 수 없죠. 아, 그리고 부탁이 있어요.”
그녀가 갑자기 ‘부탁’이라는 말을 꺼내자, 지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머리를 긁적였다.
“부, 부탁?”
그러자, 아란은 살짝 윙크를 하며 지크에게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제 호칭 좀 통일해 주시겠어요? 후후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