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15화
레베카는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결국엔 몸을 일으켰고, 리오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플래임 랩소디의 직격타는 레베카에게 확실히 먹혀 들어간 상황이었고, 레베카는 지금 리오가 두 명으로 보이는 상태였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츄우 역시 레베카의 현재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함부로 나서진 못했다. 힘의 차이가 꽤 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앙〜아란을 그냥 보내지 말걸‥흑흑흑.’
츄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울상을 짓고 말았다.
둘의 상황을 한참 보던 리오는 레베카가 비틀비틀거리며 자신이 있는 곳까지 언제 올지 예측 불가능이어서 지루함도 달랠 겸 디바이너와 파라그레이드를 거두며 둘에게 말했다.
“좋아, 오늘은 내가 진 것으로 해 두지.”
그러자, 레베카와 츄우의 눈은 번쩍 떠졌고 특히 레베카는 주먹까지 불끈 쥐며 리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무, 무슨 소리야! 우리가 무서운 건 아니겠지!!!”
리오는 손바닥을 펴 보인 채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그렇진 않아. 하지만 이런 시범 경기에 무리하고 있는 너도 좀 그렇게 보이고, 시범 경기에서 진다 해서 손해 볼 건 없잖아. 게다가 진짜 진 게 아니라는 건 너희들이 더 잘 알 테고.”
“‥!!”
리오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츄우와 레베카는 움찔했고, 리오는 곧 둘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자, 난 내 형제들을 도와주러 가 볼 테니 나중에 보지. 물론 불미스러운 일로는 안 만나길 바래. 후훗‥.”
손을 흔들며 지하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는 리오를 보며, 츄우는 자신의 창 바로크를 거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시험 결과는 자신들의 참패였기 때문이었다.
“‥칫, 원래 리오·스나이퍼 정도의 강자는 건들지 않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레디나 사바신들은 지크를 보니 그리 강하진 않은 것 같지만 휀이나 바이론 정도의 녀석들은 아란이나 ‘알테미스’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겠어. 흑흑‥레베카, 넌 어떻게 생각하‥.”
츄우의 질문은 거기서 끝이었다. 상대방은 이미 기절해 바닥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츄우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레베카를 어깨에 부축한 뒤 징징대며 어디론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자살했군. 약을 먹은 건가.”
리오는 지하 주차장에 만들어둔 간이 데스크 위에 쓰러져 눈을 뒤집고 있는 존 박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리오는 곧 바닥에 떨어져 파손되어 있는 노트북에 시선을 돌렸고, 반으로 나누어져 있는 노트북을 들어 올린 후 왼쪽에 장치된 레이저 디스크 장치를 뽑아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기억장치엔 별 이상이 없었고, 리오는 또 다른 기억장치가 있는지 다시금 살펴보았다. 파손된 노트북 오른쪽엔 또 하나의 기억장치인 젤·디스크가 장치되어 있었다.
“‥인간의 기억세포를 응용해 만들었다는 ‘젤·디스크’가 이것이군. ‥어쨌거나 둘 중 하나에서 쓸 만한 걸 구할 수 있겠지.”
두 개의 장치를 챙긴 리오는 곧바로 본부 안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 . . . . . . . .
헤이그와 마키, 티베 등은 정체불명의 생체 병기와 한참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본부 내 복도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고급 마법을 썼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티베는 거의 활약을 못하고 있었고, 헤이그 역시 중화기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마키 뿐이었다.
“하앗–!!”
마키의 날카로운 돌려차기가 전신 타이츠를 입고 있는 인간형의 생체 병기에게 날아들었으나, 그 병기는 간단히 마키의 공격을 피해 그녀에게 반격을 가했다. 물론 마키도 그 공격을 피했으나 처음부터 현재까지 그런 상황의 반복이어서 마키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팔에 장치된 이온 쇼크건으로 마키를 엄호하던 헤이그의 걱정은 점점 커져갔다. 지금 세 사람으로도 생체 병기 하나를 못 잡고 있는데 리진과 케빈, 사이키가 가 있는 다른 쪽도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례하겠소.”
그때, 헤이그의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고 헤이그는 무심결에 몸을 벽에 붙였다. 그러자, 그의 앞을 푸른 장발의 남자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고 그가 온 것을 본 마키와 티베는 한숨을 돌리며 그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헤이그는 그 남자의 오른손에 들린 긴 창을 바라보았다. 짙은 적색의 창‥주인의 푸른 장발과는 상반되는 색을 지닌 창이었다. 그 창의 주인은 창을 들고 자세를 취하며 헤이그에게 말했다.
“다른 쪽 사람들을 도와주십시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은 헤이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티베와 마키가 그의 가슴을 손으로 밀며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어머머머머머, 걱정 마세요 선배님, 이쪽은 이제 상황 끝이니까요. 호호홋.”
“마, 맞아요 선배님. 저희는 걱정 마시고 케빈 선배들을 도와주세요.”
“뭐? 하지만‥흠, 좋아. 얘기는 나중에 듣도록 하지. 그럼 부탁해.”
헤이그는 곧 케빈 등이 있을 다른 구역으로 향했고, 그가 멀리 사라지자 티베는 장갑을 벗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으에〜더워. 오래간만에 뛰니 왜 이리 덥니.”
“티베, 엎드려!!”
순간, 마키가 티베의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그녀를 덮쳤고, 둘이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그들의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티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화염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슈렌 씨, 위험하잖아요!!!”
“‥이쪽으로 피하시오.”
슈렌의 그 말을 들은 티베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아까 그들의 위를 지나간 화염탄 안엔 자신들과 싸우던 생체 병기가 들어 있었고, 슈렌이 가한 화염 공격에 의해 겉을 둘러싼 타이츠 복이 검게 그을려 버린 그 병기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티베와 마키, 정확히 말하자면 슈렌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티베는 결사적으로 피하려 했으나 자신의 위에 있는 마키가 잘못 쓰러졌는지 의식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재빨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결국, 슈렌은 달려오는 생체 병기를 자신의 어깨로 다시 밀쳐 내었고, 티베는 마키를 부축해 겨우 일어나 슈렌의 뒤로 갈 수 있었다.
슈렌은 그 생체 병기를 묵묵히 바라보며 티베에게 말했다.
“‥나중에 선배라는 분을 뵈면 적당히 이야기를 돌려주시길 바랍니다.”
“예? 하지만 어떻게‥.”
그러나, 슈렌은 티베의 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몸에서 기염력을 뿜으며 적에게 돌진했고, 상대방 역시 슈렌에게 맹렬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탁–!
자세를 낮춘 슈렌은 무턱대고 달려드는 상대방의 목을 왼손으로 잡았고, 뒤에서 지켜보던 티베는 그때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슈렌의 몸에서 뿜어지던 화염이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먼지처럼 슈렌의 왼손에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티베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귀를 막고 몸을 숙였고, 그와 동시에 슈렌의 왼손에 응축된 기염력이 대 폭발을 일으켰다.
“케엑–!!!!”
목 부위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생체 병기는 풀려난 슈렌의 손으로 부터 멀찌감치 날아갔고, 반대편 복도의 벽에 충돌하며 바닥에 힘없이 흘러내렸다. 자세를 바로 한 슈렌은 왼손가락을 조금 움직여본 후 바지 주머니에 넣었고, 티베 쪽으로 슬쩍 돌아서며 말했다.
“‥저희들의 이름은 밝혀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이 세계 출신이 아니라는 것만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
“예? ‥예예예예예. 호호호호홋, 걱정하지 마세요. 가즈 나이트라는 것도 밝히지 않을 테니까요.”
티베의 입에서 가즈 나이트라는 말이 나오자, 슈렌의 눈이 잠깐 꿈틀거렸으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돌아섰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음? 그럼 헤이그 선배님 쪽은 어떻게 해요?”
그러나, 슈렌은 대답 없이 사라져갔고, 티베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쳇, 매너 빵점이군. 그건 그렇고 이 아가씨를 어떻게 옮긴다‥.”
티베는 자신의 옆에 쓰러져 있는 마키를 조용히 내려다 보았다. 그러나 마키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 . . . . . . . . .
“으앗!! 케빈! 어떻게 좀 해 봐!!”
리진은 지크 이상의 몸놀림으로 자신의 육탄 공격은 물론 케빈의 총탄까지 피하고 있는 여성형 생체 병기에게 결국 블래스터를 쏘기 시작했다. 하지만 케빈이 맞출 수 없는 상대방을 리진이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리진은 사격면에선 그리 출중한 실력이 아니었다. 케빈 역시 긴장하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권총 두 개로 집중 사격을 펼쳐 얻은 결과라고는 그 생체 병기가 자신과 리진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쿠웍–!!!”
순간, 생체 병기의 입을 막고 있는 마스크가 떨어져 나간다 싶더니, 곧 입에서 체액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리진은 간발의 차이로 그 체액을 피할 수 있었고, 곧 복도 벽에 명중한 체액이 아연 합금판으로 만들어진 복도 벽을 융해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이오 버그 중에서도 이런 체액 공격을 하는 개체들이 있기 때문에, 리진과 케빈은 즉시 경험에 따른 산성 체액 공격에 대한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도망치자!!”
사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체 물질은 부수거나 해서 맞대응을 할 수 있지만, 액체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방어 외엔 방법이 없었고, 자신들에게 공격을 하고 있는 생체 병기의 움직임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케빈과 리진은 대 산성액 방어 장비가 없는 지금 후퇴뿐이었다.
그들이 후퇴하는 모습을 본 생체 병기는 엄청난 스피드로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고, 결국 리진은 다시 멈춰서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말 짜증 나는 녀석이군!!!”
순간, 리진의 몸에선 분홍색의 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 빛 덩이는 곧 복도에 작은 장벽을 만들어 내었다. 그 장벽에 충돌한 생체 병기는 주먹으로 그 장벽을 세차게 쳐 댔으나 리진의 초능력은 BSP 사이에서도 수준급이었기에 쉽게 뚫고 들어올 수는 없었다. 리진은 계속 정신을 집중한 채 생체 병기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흥, 우리가 괜히 도망치는 줄 알아! 만약에 본부 밖이었다면 넌 오늘 입관이었어! 감히 그것도 모르고 반항을‥앗?”
그때, 리진이 만든 장벽을 쳐 대던 생체 병기가 이상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거기에 놀란 리진은 말을 잊고 말았다. 케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쿠우‥크으으으으으으으‥!!!!”
병기의 몸을 감싸고 있던 특수 타이츠가 갑자기 터져나간다 싶더니 드러난 손가락에선 야수 이상의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났고, 이빨도 날카롭게 돋기 시작했다. 게다가 몸도 거대해 져서 리진은 과연 자신의 방어벽으로 저 괴물의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파지직–!!!!
리진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가 초능력으로 만든 방어벽은 그녀의 정신이 혼란한 탓이었는지 한 번에 깨어져 나갔고, 그 생체 병기는 곧 거대해진 입을 벌리며 입안에 흰 연기가 나는 산성 체액을 모으기 시작했다. 케빈은 재빨리 권총으로 사격을 했으나 아무리 하데스 웨폰의 757 구경 탄환이라 해도 스펀지와 같이 부풀어 버린 생체 병기의 몸엔 통하지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리진, 빨리 일어나!!!! 리진!!!”
그러나, 리진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초능력으로 만든 방어벽에 깨진 후 그녀의 초능력이 뇌에 역류하는 바람에 리진의 몸은 현재 마비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 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