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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17화


“아, 그리고 이것을‥.”

리오는 품 안에서 두 개의 작은 상자형 물건을 꺼내어 헤이그에게 건네주었다. 바로 존 박사의 노트북에서 꺼낸 레이저 디스크와 젤·디스크였다. 리오로부터 그 두 가지를 받은 헤이그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리오에게 물었다.

“이건 왠‥.”

“지하 주차장에 있는 누군가의 시체가 가지고 있던 노트북에서 뽑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번 침입 사건과 생체 병기에 대한 자료가 있을 것 같아 뽑아 보았습니다. ‥전 이런 것을 잘 다룰 줄 모르니 대신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소.”

그때, 의무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곧 문이 열리며 잔뜩 화가 난 표정의 처크가 현재 리오가 있는 의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처크는 대원의 대다수가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낯선 인물 하나가 헤이그의 앞에 서 있자 정색을 하며 헤이그에게 약간 큰 목소리로 묻기 시작했다.

“헤이그,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리고 자네 앞에 있는 히어로 쇼 배우는 또 누구고!”

지크로부터 처크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온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머리를 감쌌다. 아무래도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틀린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아까 슈렌이랑 같이 나갈걸‥.’

※※※

“‥후우‥.”

아란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따뜻한 물이 자신의 몸을 타고 흘러내리자 길게 한숨을 쉬어 보았다. 그리 피곤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리오‥그래, 진짜 리오·스나이퍼야‥후후훗.”

아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샤워를 시작했다.

“리오! 그 녀석을 박살 내 버리겠어!! 이거 놔 츄우!!!”

“아앙〜레베카 제발 진정해줘〜.”

그때, 샤워실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아란은 눈을 뒤쪽으로 살며시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레베카. 후훗, 신나게 당한 모양이군‥.”

아란은 곧 거품이 가득 떠오른 욕조에 자신의 몸을 담그며 다시금 중얼거렸다.

“‥그 남자는 내 거야‥오래전부터‥.”

이윽고, 츄우가 레베카를 데리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왔고, 츄우는 손수 레베카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따뜻한 물로 닦아주며 그녀를 타이르듯 말하기 시작했다.

“거 봐 레베카. ‘디아블로’님께서 가즈 나이트 중 리오, 휀, 바이론 세 명은 절대 건들지 말라고 했잖아. 그분께서 괜히 그런 말을 하셨겠어? 그 리오라는 남자가 그냥 가지 않았으면 너뿐만이 아니고 나까지 끝장났다구.”

“시끄러워! 다음엔 꼭 내가‥.”

“‥그 남자는 내가 맡겠다고 했을 텐데‥레베카.”

순간, 욕조에 들어가 있던 아란이 레베카의 말을 끊었고, 레베카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위축된 것을 느낀 츄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레베카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자자, 레베카 진정하고 코 풀어. 흥〜.”

츄우는 아직도 몸이 흔들리고 있는 레베카에게 손수 비누칠까지 해 주었다. 사실 레베카는 현재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그녀 자신도 설마 리오의 공격이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고, 게다가 방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오의 공격을 맞았기 때문에 그녀의 충격은 더욱 심했다. 하지만 그녀가 더 충격을 받은 것은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데스 발키리로서 연수를 하는 중 그녀의 힘을 제대로 상대한 적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단 한순간에 완전히 전투 불능에 빠져 버렸기 때문에 그녀의 자존심은 상당히 상처를 받은 상태였다.

“‥그 리오라는 남자는 적이 여자라 해도 냉정히 살해하는 사람이야. 설사 그 여자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해도‥. 그것 말고도 700년 이상 별 경험을 다 해 본 사람이니 태어난 지 20여 년밖에 안 된 우리들로선 이기기 어려워. 괜히 우리의 목표가 지크라는 얼간이에게 잡힌 건 아니야.”

아란은 자신의 붉은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올리며 충고하듯 레베카에게 말했다. 레베카는 수긍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아란에게 물었다.

“‥알았어. 그런데 아란, 넌 리오라는 남자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글쎄, 후훗‥.”

아란은 레베카의 질문에 뜻 없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다음날 아침.

의식을 되찾은 루이는 의식을 잃기 전 기억나는 장면이 딱 하나 있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섬광, 그리고 그보다 더 빨리 섬광을 향해 창을 던진 푸른 장발의 남자‥. 그리 기억하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남자의 모습에 대한 기억은 자꾸만 떠올랐다.

“‥오늘도 여기서 쉬어야 하나요 아버지?”

“음, 골절 같은 큰 부상은 없지만 몸에 충격이 상당하기 때문에 여기서 좀 지내야 한단다. 그건 그렇고 넌 비 전투 요원이면서 왜 이런 부상을 당한 거니?”

챠오를 제외한 다른 대원들이 순찰을 나간 동안 잠시 루이의 문병을 온 처크는 자신의 선글라스를 닦으며 물었고, 루이는 뭐라고 말할까 하다가 정색을 한 채 눈을 감으며 말했다.

“‥잘 기억이 안나요 아버지. 호출을 받고 차에서 내린 뒤에 갑자기 공격을 당했다는 것 외엔‥.”

“‥그러니.”

처크는 선글라스를 다시 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옆 침대에 있던 챠오가 조심스레 처크에게 물었다.

“저어‥부장님. 오늘 순찰은 어떻게‥.”

“아, 자네는 며칠간 맘 놓고 푹 쉬어도 될 거야. 그 리오라는 헌터 청년이 자네 대신 리진과 함께 순찰을 돌기로 했으니까. 물론 임시지만.”

“‥리오 씨가‥예, 알겠습니다.”

리오는 사실 어제 밤 처크에게 자신은 BH라고 거짓말이 섞인 자기소개를 했다. 헤이그에 대해선 지크에게 믿을 만한 선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정직하게 말을 했지만, 처크에 대해선 그의 직위 문제도 있었고 ‘신’이라는 초차원의 개념이 섞인 사람까지 여기서 활동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처크가 더욱 걱정을 할 것 같아 정직하게 얘기를 하지 못했다. 처크는 의외로 리오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고, 리오에 대해 챠오 대신 잠시간의 활동까지 부탁을 했다. 리오 자신으로선 사실 의외의 부탁이었지만 현재 상당수의 사건들이 BSP와 관련되어 일어나고 있었고, 게다가 집에 대한 경비도 바이칼에게 거의 넘겨진 상태이기 때문에 잠시간이긴 했지만 기꺼이 받아들였다.

똑 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처크는 의무실 문으로 걸어가 밖에 있는 사람을 확인해 보았다. 베이지색 양복에 검은색 목 티를 입은 파란 머리의 청년이 서 있었다. 그를 처음 보는 처크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마이크를 통해 그 청년에게 물었다.

“‥누굴 찾아 오셨습니까?”

“‥루이 양을 찾아왔습니다.”

순간, 처크는 깜짝 놀라며 루이를 바라보았고 루이는 약간 놀란 얼굴로 가만히 상체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챠오가 몸을 일으키며 처크에게 말했다.

“지크와 리오 씨의 형제 되시는 슈렌 씨입니다. 안심하세요 부장님.”

“‥아, 그렇군. 난 또 루이가 언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나 해서‥하하핫. ‥그런데 왜 찾아왔지? 하여튼‥들어오시오.”

곧 의무실의 문이 열렸고, 슈렌은 꽃다발을 들고 의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처크에게 간단히 인사를 한 슈렌은 루이에게 꽃을 주며 문안 인사를 했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쾌유하시길 빕니다.”

난생 처음 남자에게 꽃을 받아보는 입장인 루이는 멍하니 슈렌을 바라보았고, 뒷전으로 밀려난 처크는 인상을 가볍게 쓴 채 슈렌을 바라보았다. 슈렌은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의자에 앉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처크 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루이는 가만히 슈렌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슈렌이 완전히 나가자 처크 부장은 자신의 턱수염을 매만지며 불만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문병’이라는 말 한마디에 민간인을 그냥 통과시키다니‥이게 어제 침입을 당한 본부의 꼴인가? 흐음‥그건 그렇고 그 청년이 들고 온 꽃 말이다, 향기가 나지 않는 걸 보니 꽤 생각이 깊은 청년인 것 같더구나.”

처크는 자신의 딸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렇게 슈렌을 띄워 주었고, 이유를 모르는 루이는 슈렌이 가져온 꽃에 코를 가까이 가져가 보았다. 과연 향기가 거의 나지 않는 꽃이었다.

“진짜네‥? 그런데 향기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아버지?”

“으음, 꽃의 향기가 강한 꽃은 행동을 별로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는 사람들을 향기에 취하게 만들지. 뭐, 천연 물질이긴 하지만 인간의 몸이 그렇게 강하진 않거든. 그래서 문병 땐 가급적이면 향기가 없는 꽃을 권하고 있단다.”

“아아‥.”

루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그 꽃을 바라보았다.

※※※

“리오 씨, 점심 먹어요 점심!”

“맞아요 맞아! 배고프다고요!”

조수석에 앉은 리오는 운전석에선 리진이, 뒷좌석에선 실전 견습을 나온 넬이 계속 재잘거리자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리진은 즉시 항법장치를 꺼내며 근처의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다. 리오는 지크도 꽤나 힘들었겠구나 생각을 하며 차창 밖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에겐 그럴 틈조차 없었다.

“리오 씨! 저 햄버거집이 엄〜청나게 잘하거든요? 빨리 내려요!!”

“하아‥.”

리오는 오래간만에 뒤로 깔끔히 넘긴 자신의 머리를 다시금 매만지며 리진과 넬을 따라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리진은 리오에게 먼저 자리를 맡으라고 한 뒤 카운터로 가며 리오에게 무엇을 먹을 건지 물어왔다.

“저요? 음‥그냥 햄버거 하나에 우유‥아니, 주스 하나면 돼요.”

“헤에? 아니 그렇게 적게 드시면 어떡해요? 음‥알았어요. 자자, 넬 빨리 가자.”

“좋아요! 언니는 뭐 드실 거예요?”

“디럭스 햄버거 세 개! 이 집은 디럭스 햄버거가 갑이거든! 호호호호홋‥.”

리오는 신나게 카운터로 가는 둘을 보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세 명이 앉을 만한 자리를 찾던 리오는 1층에 자리가 거의 꽉 차 있자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2층으로 올라간 리오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바로 2층 남자 손님들의 시선이 한군데에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한 테이블이 빈 것을 본 리오는 그곳으로 가서 앉았고, 앉자마자 머리를 풀며 스타일을 평소대로 바꾸었다. 뒤로 모두 넘기면 깔끔하긴 했지만 머리카락의 양이 많은 리오로선 그리 편하지가 않았다.

“음‥누가 앉았길래 시선 집중이지‥?”

리오는 곧바로 남자들의 시선이 쏠린 쪽으로 자신의 시선을 돌려 보았다.

“‥윽.”

2층 구석 테이블에 앉은 여자 세 명을 본 리오는 순간 움찔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나, 전투 중이 아닌 탓에 그의 행동은 그리 빠르지 못했고, 테이블에 앉은 셋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리오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곧 리오의 앞자리에 앉았고, 리오는 결국 한숨을 후우 쉬며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란‥이라고 했었나?”

“후훗, 이 나라는 정말 좁기도 하군요. 이런 가게에서 설마 당신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리오 씨.”

아란은 입에 담배를 물며 빙긋 웃어보였고, 리오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란에게 말했다.

“흠‥미안하지만 이 음식점은 금연인데 아가씨?”

“어머, 미안해요. 후훗‥.”

그러자, 아란은 다시 담배를 집어넣으며 리오에게 살짝 윙크를 해 보였다. 그 순간 주위의 남자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흥분을 하기 시작했고, 리오는 자신의 입장이 점점 난처해지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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