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25화
곧이어, 수라와 나찰들의 안쪽에선 수십여 개의 붉은 섬광이 번뜩였고, 곧 그들은 몸에서 세포질을 뿜어대며 집단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리오는 디스파이어를 손에 든 채 혀를 살짝 내밀고 있는 아란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의 검술 실력이었고, 그들이 데스 발키리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을 감안했을 때 시간적으로 계산하면 자신을 충분히 능가하고도 남을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란이 리오를 향해 윙크를 하며 말했다.
“훗, 연약한 여자 혼자 싸우는 것을 보고만 계실 건가요? 너무하군요.”
“아, 아아‥미안.”
리오는 바이칼과 독립적으로 싸우기 위해 그의 등에서 날아올랐고, 바이칼 역시 몸의 크기를 정상적으로 키운 후 브레스를 뿜으며 다시 몰려드는 나찰과 수라들을 흔적 없이 태우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어디서 들었던 적이 있던 말 같은데‥.’
리오는 열심히 파라그레이드를 휘두르며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방금 전 아란이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그녀의 그 대사가 이상하게도 머리에 남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리오의 등 쪽은 완전히 노출되고 말았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나찰 한 대가 엄청난 스피드로 그의 등을 노리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아란은 흠칫 놀라며 리오에게 소리쳤다.
“리오 씨! 위험해요!”
순간, 리오의 머리 위로 파라그레이드가 튀어 올랐고, 그의 양손에선 출력을 낮춘 마법 ‘코메트’의 가느다란 빛이 각각 분출되었다. 왼손에서 분출된 빛은 아란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갔고, 오른손에서 분출된 빛은 그의 뒤로 접근하던 나찰의 두부를 일순간에 날려 버리고 말았다. 아란은 급히 자신의 뒤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자신의 뒤로 접근하던 나찰과 수라 두 대가 리오의 마법에 의해 관통당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리오에게 잠시 신경을 쓰는 바람에 그 두 대가 접근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아란은 쓴웃음을 지었고, 리오는 다시 떨어지는 파라그레이드를 오른손으로 잡으며 씨익 웃어 보였다.
“훗, 그쪽이야말로.”
“‥그렇군요, 후훗‥.”
둘은 다시 정신을 집중한 뒤 전투에 전념했고, 나찰과 수라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거대 수송기 두 대는 바이칼에 의해 일찌감치 파괴된 상태였고, 10여 분 후엔 작동을 하는 수라와 나찰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상황이 정리된 것을 느낀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파라그레이드를 거두었고, 아란 역시 디스파이어를 귀환시킨 뒤 숨을 돌렸다. 둘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고, 바이칼은 몸의 크기를 줄인 뒤 한 건물의 옥상에 내려앉은 뒤 둘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악신 측에서 인간을 도울 줄은 생각도 못 했는걸? 설마 당신 자신의 의지로 날 도와준 것인가?”
리오의 물음에, 아란은 소화전 위에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어제 밤에 긴급 임무를 받았죠. 악마계를 우습게 본 버릇없는 인간을 처리하라는 임무에요. 잠을 자고 있는데 깨우더니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버릇없는‥인간? 무슨 소리지?”
리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고, 아란은 빙긋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지금 처리한 로봇들의 생체 구조가 인간과 악마의 세포질이 융합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당신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처럼 대량의 로봇들을 만들려면 인간도 인간이겠지만 악마들의 희생도 만만치 않았겠죠? 전령의 말을 들어보니 인간 한 명이 이상한 괴물들과 함께 악마계에 침입해서는 고급, 저급 가릴 것 없이 악마들을 쓸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대로 예전의 일이었는데, 긴급 회의를 하신 악마왕 일곱 분들은 결국 연수 중인 저희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인간을 잡아오라는 임무를 주신 거죠. 정식 임무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결국 명령대로 당신들과 협력하에 일을 처리하기로 했어요. 불만 있으신가요? 후훗‥.”
아란의 말을 들은 리오는 눈을 감으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지만, 악신 측과 협력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리오 역시 처음이었기에 뭔가 찜찜함을 없앨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데스 발키리에 대해 탐색을 한다는 셈 치고 그들과 협력할 것을 결정했다.
“‥좋아, 강한 동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그럼, 지금 이 세계에 와 있는 데스 발키리는 모두 몇 명이지?”
“흐음? 음‥지금은 현재 세 명이에요. 어제 본 츄우와 레베카, 그리고 저까지 셋이죠. 다른 두 명은 올지 안 올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군. 자아, 그럼 이제부터 뭘 할 건가? 난 돌아다닐 곳이 많아서 확실히 정하질 못하겠는데?”
리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했고, 아란은 소화전에서 몸을 일으키며 리오의 옆에 몸을 붙이고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그럼‥당신 가는 곳 어디라도. 후훗‥.”
“흐음‥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상당히 진하게 행동하는군. 이봐, 바이칼! 넌 어떻게 할 거지?”
옥상에 앉아 가만히 둘을 바라보던 바이칼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나도 가볼 곳이 있다. 볼 일이 끝나면 지크의 집 쪽으로 만나도록 하지. 난 그럼 이만.」
말을 마친 바이칼은 재빨리 날아올랐고, 멀리 사라져가는 바이칼을 보며 리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저렇게 급한 거지? 자, 어쨌든 출발하지 아란.”
“훗‥이름을 불러주시니 기쁜데요?”
………………….. . . . . . . .
“이봐 츄우. 우리가 왜 이 행성의 성계신에게 협조를 해야 하는 거지?”
자신들이 맡은 수라와 나찰들이 더 남아 있는지 확인하던 레베카는 인상을 찡그리며 츄우에게 물었고, 츄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모올라. 하지만 악마왕님들의 임무를 보다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아란의 말이 있었으니 믿고 하는 수밖에. 흐흥~ 그건 그렇고 이 애들 약해도 너무 약하다. 어떻게 한 대당 한 방씩에 날아가 버릴 수 있니?”
“200대 가까이나 되는 녀석들이었으니 이보다 조금 더 강했으면 피로만 가중되는 거지 뭐.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리 어디로 가면 되는 거야?”
레베카의 물음에, 츄우는 춤을 추듯 크게 손짓을 하며 대답해 주었다.
“아아~ 글쎄올시다. 한참 몰려오는 적들을 처리한 우리의 주인공 츄우와 레베카! 그들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그들의 앞엔 과연 어떤 적들이 버티고 있을 것인가!! 여러분, 다음을 기대해 주세요!! 호호호홋‥.”
레베카는 그렇게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츄우를 보며 손으로 이마를 짚을 뿐이었다.
“‥머리 아파.”
※※※
모니터를 지켜보던 사이보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와카루에게 다가가 씁쓸히 상황 보고를 시작했다.
“와카루 박사, 대한민국 수도에 보낸 나찰과 수라가 10여 분 만에 전멸되었소.”
그러자, 와카루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겠지. 거기엔 당신들보다 훨씬 강한 괴물들이 버티고 있는 곳인데 하나라도 살아남았다면 이상한 것이오. 흠‥그런데 거 참 이상하군. 그 도시의 끝에서 끝으로 분산시켜 보냈는데 시간차 없이 한꺼번에 전멸하다니‥. 설마 예전처럼 일곱 명이 다 와 있는 것인가? 험험‥.”
“‥일곱 명? 무슨 소리요 그게?”
사이보그의 질문에, 와카루는 듬성듬성 난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며 키보드를 두드렸고, 모니터엔 곧 와카루가 말한 ‘일곱 명’의 사진이 떠올랐다. 와카루는 옆에 놓인 커피를 들이킨 후 천천히 설명을 해 주었다.
“저기 꼭대기에 보이는 붉은 장발의 남자는 저번에 대한민국 종합청사인가 뭔가에서 만나 봤으니 알 것이고‥. 다른 여섯 명은 그와 비슷하거나 이상의 힘을 가진 남자들이오. 작년에 내 계획이 실패한 것도 다 저 청년들 때문이라오. ‘가즈 나이트’라 불리는 청년들인데, 최상위 신이 개조한 고급 전사들이지.”
와카루의 설명을 들은 사이보그는 입을 비죽 내민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신’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엄청나다는 것을 와카루로부터 익히 들었던 그는 결국 입 속에 껌을 넣고 질겅질겅 씹으며 다시 와카루에게 물었다.
“‥뭐, 좋소. 그럼 다음 계획은 뭐요?”
“없소.”
“….”
와카루의 간단한 대답에, 그 사이보그는 순간 인상을 찡그렸고 와카루는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헛헛헛‥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오. 이제 곧 멋진 손님이 한 분 오시기 때문이외다.”
“‥멋진 손님? 박사는 참 손님도 많군요. 그래, 이번엔 또 무슨 괴물들이오?”
“‥힘으로 그 ‘가즈 나이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존재들이지‥! 허허허허헛‥만나서 이쪽으로 끌어들이기 참 힘들었다오.”
“‥?”
사이보그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입으로 풍선을 푸우 불며 가만히 와카루를 바라보았고, 와카루는 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와카루 FATHER, 위성으로부터 대한민국 수도에서의 전투 장면이 전송되었습니다. 모니터로 돌릴까요.”
그때, 넬슨이라 불리는 푸른 피부의 바이오 버그가 와카루에게 다가와 말했고, 와카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곧, 화면엔 한참 부숴지고 있는 나찰과 수라들의 모습이 들어왔고, 곧이어 붉은 머리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드래곤 한 마리의 모습이 비춰졌다. 와카루는 예상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붉은 머리의 여성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허어‥리오라는 청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찰과 수라를 부술 수 있는 아가씨가 있었단 말인가? 이거 의외인걸‥? 가즈 나이트는 남자로만 구성되었다고 들었는데‥혹시 저 청년의 따님이라도 되나?”
“‥저런 딸을 둘 나이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사이보그는 껌으로 만든 풍선을 다시 입 안으로 집어넣으며 중얼거렸고, 와카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지역의 전투 장면을 돌려 보았다. 역시 처음엔 나찰과 수라가 신나게 부숴지는 모습이 나왔고, 곧이어 스파크가 흐르는 거대한 망치를 든 스포츠 머리의 여성과 창을 든 검은 머리의 여성이 모습을 나타났다. 와카루는 더더욱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무엇인고? 지크나 휀이라는 청년을 기대했건만 아가씨들만 주루룩 나오다니, 허어, 참‥. 의외의 일이로다‥.”
와카루는 자신의 계산이 한참 틀어진 것을 느꼈는지 다시 담배를 물며 한숨을 쉬었고, 사이보그는 모니터에 비춰진 세 명의 여성을 보며 나지막히 한마디를 남겼다.
“‥거 참, 무슨 모델 대회를 보는 것 같군‥. 나도 저기에나 끼어볼까‥?”
“예끼 이 사람, 농담도‥.”
와카루는 약간 화가 난 말투로 중얼거렸고, 사이보그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와카루 FATHER, 기다리시던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때, 넬슨이 다시 다가와 와카루에게 말했고, 와카루는 눈을 빛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오, 그래! 자자, 손님을 맞이하러 가세나. 허허헛‥.”
와카루는 넬슨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했고,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사이보그는 껌으로 다시 풍선을 불며 중얼거렸다.
“‥어떤 녀석이길래 저 할아범이 저렇게 좋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