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가즈 나이트 – 64화


“여기서 기다려요.”

지크는 말만을 남기고 슛 소리와 함께 잔상을 남기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디 가요!”

그와 동시에 슈의 눈앞엔 사람의 팔뚝이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잘려서 그런지 잠시 꿈틀거리다 곧 멈췄다.

“크아아악―!!”

비명소리가 숲을 뒤흔들었고 곧 토막 난 사람의 몸이 나무 아래에서 떨어졌다. 지크가 아닌 건 확실했다. 적어도 그의 복장은 아니었으니까.

“이런…! 저 여자라도 죽이자!!”

슈의 바로 위에서 사나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슈도 호장이라 불릴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에서 짧은 검을 수직으로 내리고 공격해 오는 검은 복장의 사나이들에게 반격을 선사했다. 순간적인 반격에 그들은 놀란 채로 목을 날려야만 했다. 슈의 전투 나이프 [레반스]가 오랜만에 피로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세 명의 암살자들이 나무 위에서 내려 슈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슈에게 왼팔을 잃은 사나이가 몸으로 슈를 감싸며 그들의 공격을 도와주었다. 슈는 몸에 힘을 가하며 그 사나이를 떼어놓으려 했으나 결코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세 명의 암살자들은 동료의 복수에 눈이 벌개져 있었다.

슈슉!

몇 개의 잔상이 달려오는 사나이들의 사이에 스쳐갔다. 그리고 무명도를 뒤로 돌려 들고 한쪽 무릎을 굽힌 지크의 모습이 바람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세 사나이는 동작을 멈췄다.

“몽환잔영인(夢幻殘影刃)―.”

푸푸풋―!

지크가 일어서며 검을 집어넣자 절묘한 타이밍으로 세 사나이의 몸은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 그 장면을 허망하게 보고 있던 사나이의 빈틈을 노린 슈는 팔꿈치로 사나이의 늑골을 강타했다. 몸이 자유로워진 슈는 나이프를 사나이의 목에 가져갔다.

“자, 누가 시킨 일인지 말하시지, 안 그러면 재미없을 줄 알아.”

그러나 사나이는 침묵을 지켰다. 지크는 슈에게 잠시 비키라고 말했다. 지크는 사나이의 눈을 본 후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니 걱정 마라.”

파직!

슈는 지크가 사나이의 안면 급소를 가격해 즉사시키는 걸 보고서 깜짝 놀랐다.

“아니, 물을 것이 많은데 죽이면…!”

지크는 걱정 말라는 듯 손가락을 내저었다.

“어차피 말 안 할 거요. 그리고 자결하려고 했는데요 뭘. 자, 계속 갑시다.”

슈는 아무 말 않고 지크와 함께 숲을 계속 걸어 나갔다. 처음 숲에 들어올 때와는 달리 슈도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긴장감은 더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살피던 지크가 갑자기 멈춰 섰다. 거대한 홈이 패여 있는 아름드리나무의 앞이었다. 슈는 목소리를 최대한 죽이고서 지크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죠? 또 암살자인가요?”

지크는 나무를 둘러보았다. 그리고선 그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데요? 왜 나무 안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죠?”

“네?!”

슈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나서 그녀 또한 나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숲에 사는 엘프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듣지 못한 소리를 엘프가 아닌 사람이 들었다는 건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진짜로 들리나요?”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슈는 잠시 망설이다 결심한 듯 지크에게 물러서라고 말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면 안 돼요, 알았죠?”

지크는 다시 끄덕였다. 그러나 슈는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알았어요, 약속할게요.”

슈는 곧바로 손을 모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엘프어였다. 지크는 멍청히 그녀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나무의 패인 부분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크의 귀에 들리던 비명이 이번에는 슈의 귀에도 들리는 것이었다.

“저런!”

지크는 무명도에 손을 가져간 채 빛속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슈도 곧 따라 들어갔다. 그곳에선 대 살육의 현장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프의 시체들이 즐비하게 흩어져 있었다. 피비린내가 둘의 코를 자극했다. 지크는 앞으로 계속 달려 나갔다. 그곳에는 검은 갑옷을 걸친 사나이가 엘프 노파의 멱살을 잡고 뭐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그러나 노파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검은 투구 사이로 보이는 붉은색의 눈이 강한 살기를 내뿜었다. 슈는 그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리오와 검으로 대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인 마장기사 요우시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었을 텐데…?’

“멈춰라!”

지크와 슈가 나타나자 요우시크와 그를 엘프 마을까지 안내한 다크 엘프의 눈이 의외라는 듯 커졌다. 그리고 엘프들은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사람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슈! 슈 누나!”

엘프들 사이에서 슈를 부르는 소리가 튀어나오자 슈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퍼니오드에서 헤어진 꼬마 도둑 티퍼였다.

“리, 리오는?”

티퍼는 슈가 왔으니 리오도 당연히 왔을 거라 생각했으나 옆에 서 있는 장신의 남자는 불행하게도 리오가 아니었다. 티퍼는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쳇…. 운이 좋구나… 엘프들…. 그러나 불행히도 나를 상대할만한… 녀석은 오지 않은 것 같은데….”

지크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솟았다.

“슈, 주민들을 보호해 줘요. 난 저 녀석의 입버릇을 고쳐줘야 되겠어요.”

손을 꺾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크를 보고 요우시크는 나지막하게 조소했다.

“후후후후…. 얼굴만 리오와 비슷하다고 나랑 싸울 수 있을 것 같나….”

파앙―!

차가운 금속성의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지크의 손에는 어느새 무명도가 들려있었고 요우시크의 손에도 로제바인이 들려 있었다. 음속에 가까운 요우시크의 기습이 실패한 것이었다.

“우웃…?!”

요우시크는 로제바인을 고쳐 잡고 자세를 취했다. 쉬운 상대가 결코 아니라고 그의 정신이 소리쳤다. 지크도 자세를 취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녀석과는 확실히 틀릴 거다 깡통 머리.”

주민들은 멀찌감치 물러섰다. 팽팽히 감도는 긴장감에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기의 대결이었다. 잠시 후 지크는 코웃음을 치며 자세를 바꿨다.

“풋, 별거 아니잖아?”

“!!”

자극을 받은 요우시크는 거칠게 파고들며 선제공격을 가했다. 무기의 내구성은 눈으로 보기엔 로제바인이 훨씬 강해 보인다. 두꺼운 대검이기 때문에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무명도의 내구력은 리오의 디바이너와 맞먹는다. 물질계의 물건이 아닌 이유도 있겠지만 검과 도의 제조 방법 차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우시크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수직으로 검을 강하게 내리치며 공격을 하고 있는 요우시크의 목적은 무기의 파괴였다. 상대방의 피를 빨아들이는 로제바인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전법의 하나였다. 그러나 요우시크는 계산 착오를 깨닫게 된다.

파앙―!

다시 한번 소리가 울려 퍼지고 요우시크의 머릿속엔 `아뿔싸’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온 힘을 다해 내려친 상대방의 무기는 흠 하나 가지 않고 들려 있었다. 다시 검을 되돌리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요우시크의 몸 주위로 지크의 잔영이 몇 번을 오고 갔다. 다시 나타난 지크는 칼을 다시 집어넣으며 요우시크를 돌아보았다.

“물질계에서 세 번째로 빠른 나의 공격이다. 후훗….”

파파파팡―!

요우시크의 온몸을 덮고 있는 마장갑에서 무수한 불똥이 튀겼다. 그것이 끝나자 요우시크의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허리도 끊겨져 나갔다. 보통 사람 같으면 참혹한 광경이 벌어졌을 것이지만 피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지크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계속 자세를 취했다.

“리오 녀석과…. 다를 바가 없는 괴물이구나 너도…!!”

요우시크의 몸은 외다리로 서 있었다. 왼팔과 오른 다리가 놀랍게도 다시 달라붙었다. 그리고 나서 금이 간 그의 갑옷 사이로 검은색의 연기 같은 마투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지크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요우시크의 눈이 다시금 빛을 뿜기 시작했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후하하하하…!!”

한참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슈는 시야가 허전함을 느꼈다. 누군가가 없다…, 마을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없다….

불안한 느낌을 받은 슈는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허무감을 느껴야만 했다.

“꺄아악―!!”

귀에 익은 비명소리였다. 티퍼도 아차 한 듯 고개를 돌렸다.

“이리프!!”

다크 엘프가 몸을 숨기고 마을을 샅샅이 뒤져 이리프를 찾아낸 것이었다. 티퍼를 따라 이리프가 있던 집으로 달려가본 슈였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슈, 티퍼!”

다크 엘프에게 손을 결박당한 채 마법진으로 밀려 들어간 이리프의 모습은 빛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다크 엘프도 따라 들어가려고 했으나 날아온 슈의 전투 나이프에 심장을 꿰뚫려 즉사하고 말았다. 저주받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다크 엘프를 바라보며 티퍼는 땅을 치며 절규했다.

“이럴 수가, 아버지도, 아주머니도 다 살아나셨는데 이럴 수가! 누나―!!”

슈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작에 다크 엘프를 봐 두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슈는 자책했다.

“뭐지?!”

들려온 여자의 비명소리와 다크 엘프의 비명소리를 들은 지크는 고개를 돌렸다.

“성공한 것 같군, 푸훗….”

요우시크는 로제바인을 거두었다. 그리고 나서 공간 이동석을 꺼내어 공간의 문을 열었다.

“이 자식! 어딜 도망가느냐!!”

지크는 무명도를 거세게 휘둘렀다. 요우시크의 육체가 또한번 세로로 잘려 나갔다. 그러나 요우시크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후하하하…. 난 죽지 않는다! 하하하…!”

공간의 문이 닫히고 요우시크의 모습은 마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지크는 무명도를 허망하게 든 채 요우시크가 사라진 곳을 분노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분노에 겨워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푸른색 스파크―기전력(氣電力)이 파지지직 소리를 내며 팔뚝에 흘렀다.

“날 우습게 보다니…!!”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