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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40화


란바랄은 너무도 쉽게 그 회색의 거인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회색의 거인은 사악한, 그것도 광기가 서린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두꺼운 오른손으로 란바랄의 입을 틀어 막은 후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동룡족‥장군같군. 크크크크큭‥. 이름이 뭔가.”

“‥으, 으으으읍‥!!!”

“‥오, 이런 이런‥입을 내가 막고 있었군. 크크크크‥어쨌거나, 제대로 대답하면 살려주겠다. 크크크크‥대답할 수 있다면‥크하하하하하하하핫–!!!!!!”

“으으으으으읍!!!!!!”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입을 막은 그 회색 거인의 손 힘이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탓이었다. 결국 란바랄은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하지 못했고, 회색의 거인은 씨익 웃으며 란바랄의 얼굴을 잡은 엄지와 중지에 힘을 약간 가하였다.

뚜둑–!!

“으읍!?”

란바랄은 움찔하며 자신의 앞에 있는 회색 거인을 쏘아 보았고, 회색 거인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란바랄에게 말했다.

“‥크큭, 자아‥넌 이제 코로 호흡을 들이쉴 수는 있지만, 내 쉴 수는 없다. 호흡을 내 쉬려면 입을 벌리는 수 밖에 없지‥. 크크크큭‥아주 재미있는 게임 아닌가? 크크크크크크‥괴로워해라‥울부짖지도 못할 정도로‥더욱 괴로워하다 죽는거다!!! 이 바이론을 즐겁게 해 주는거다!!!!!”

“흐, 흐으으읍–!!!!”

‘바, 바이론‥!? 설마, 암왕(暗王) 바이론·필브라이드!!!!’

란바랄은 호흡이 곤란한 상태에서도 공포감에 젖어 예전에 주룡 쥬빌란과 다른 상급 장군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살기 위해선 절대 접촉하지 말아야 할 존재, 선신계와 악신계, 그리고 주신계를 통틀어 최강의 전사라 불리우는 광황 휀·라디언트와 악마계의 5분의 1을 단신으로 부숴버린 공포의 존재이며 휀과 동급이라 지칭되는 삼인중 한명, 암왕 바이론·필브라이드. 그리고 동룡족 사이에선 사신(死神)이라 지칭되는 패왕 리오·스나이퍼. 그들 중 한명이 바로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가장 극악무도 하다 전해지는 공포의 존재, 바이론이.

란바랄은 의식이 점점 멀어져감을 느꼈다. 숨을 내 쉬지 못하고 죽는 경우는 처음 들어 봤지만, 결코 즐겁지 못한 경험이라는 것도 느끼면서‥.

그 순간, 바이론이 미처 부수지 않은 동룡족의 전함이 바이론과 란바랄을 향해 일제 포화를 날렸고, 전함에게 등을 보이고 있던 바이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란바랄을 내 던진 뒤 자신의 암흑 투기를 포화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집중시켰다. 곧, 대폭발과 함께 바이론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고, 란바랄은 폭발의 영향 때문에 힘없이 날아가면서도 한껏 숨을 내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등과 어깨에 심한 충격이 왔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았기에 란바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곧 의식을 회복한 뒤 바이론이 있는 곳과 전함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전함은 그가 의식을 회복하는 사이 격침되어 지상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고, 바이론은 미친 듯이 얼굴을 가린 채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란바랄은 그때 심한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자신으로선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존재인 바이론과 명예를 두고 싸울 것인가. 결국, 란바랄은 분루를 삼키며 슬그머니 사라졌고, 바이론은 도망치는 란바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

“뭐야아〜. 기껏 날라오니 폐허하고 시체더미 뿐이잖아! 게다가 회색분자!! 넌 또 뭐야!!!”

지크는 헛수고를 한 것에 상당히 화가 난 듯 바이론에게 소리쳤고, 위스키를 오크통째로 마시며 전투의 피로를 풀던 바이론은 지크를 흘끔 본 뒤 싱겁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크큭‥어쨌거나 날 수 있게 된 모양이군 바람꼬마. 그런 의미에서 한잔 어떤가? 크크크크크‥.”

바이론이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술통을 들며 자신에게 술을 권하자, 지크는 쓰디쓴 표정을 지은 채 손을 흔들며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쳇, 됐어. 그건 그렇고‥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아가씨들? 일이 이렇게 됐으니‥허억‥?”

같이 온 데스 발키리 쪽을 바라보던 지크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데스 발키리 중 가장 최근에 합류한 알테미스가 동룡족의 시체에서 흘러 나오는 피에 손을 적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피에 흠뻑 젖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고, 옆에 있던 아란은 못 본 척 주위의 폐허를 둘러보고 있었다. 알테미스의 모습을 본 바이론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지크를 향해 중얼거렸다.

“‥호오‥꽤 멋진 취미를 가진 여자군‥. 데스 발키리인가‥? 크크크큭‥.”

“‥지금은 모른 척 하고 싶어. 그건 그렇고 넌 이제 어떻게 할거야? 우리랑 합류할거야?”

지크는 바이론의 앞 폐허에 걸터 앉으며 그에게 물었고, 술 한 통을 다 비운 바이론은 다른 술통을 손에 잡고 마개를 뜯어내며 대답해 주었다.

“‥큭, 너희들과 같이 일하면 잠이 와서 견딜 수 없지‥. 그리고 나만의 임무가 있기 때문에 너희들과 합류는 할 수 없다. 그건 그렇고, 저기 있는 저 정신 나간 여자나 책임져 주시지. 크크크큭‥멋진 표정을 짓고 있군‥.”

지크는 바이론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동룡족에게 저항하던 일본의 초능력자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 있었고, 그녀는 완전히 자아 붕괴가 된 얼굴로 몸을 굳게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네가 키스라도 한거야? 왜 저래?”

지크는 인상을 찡그린 채 바이론을 바라보며 물었고, 바이론은 말없이 술을 마심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결국, 지크는 한숨을 푸우 쉬며 바이론에게 말했다.

“‥뭐, 좋아. 이쪽에 있는 BSP에게 보호를 부탁하면 되겠지. 물론 찾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 그럼, 우린 떠날테니까 나중에 또 보자구 회색분자.”

“‥글쎄, 그럴까?”

바이론의 말이 나온 순간, 지크는 주위를 휩싸기 시작한 기분 나쁜 느낌에 정신을 집중하며 데스 발키리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들 역시 지크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각자 무기를 꺼내들며 주위를 살폈고, 지크는 오래간만에 전투라는 듯 주먹을 풀며 느낌이 가장 강한 부분을 바라보았다.

“‥바이오 버그‥녀석들인가? 헤헷, 기다렸다 귀염둥이들. 이 지크님께서 한참 몸이 근질거릴 때라서 말이야‥!!”

그의 말과 동시에, 폐허 사방에서 백여 마리에 가까운 바이오 버그들이 튀어 나왔고, 그들은 각기 알테미스, 아란과 지크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이론은 몸 주위에 결계를 친 채 그대로 술을 마실 뿐이었다. 반면, 시선은 막 전투를 시작한 지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앗–!!!!!!”

지크는 바이오 버그들이 달려드는 동안 몸의 기를 한껏 끌어 올렸고, 이윽고 그의 몸을 부드러운 기류가 휘감았다. 전투 준비가 끝난 순간, 정면에서 달려오던 바이오 버그의 날카로운 팔이 지크의 안면에 날아들었고 지크는 여유있게 몸을 숙여 공격을 피한 뒤 몸을 일으키며 팔꿈치로 바이오 버그의 기나긴 턱을 가격했다.

퍼엉–!!!

지크의 팔꿈치에 가격당한 턱은, 아니 바이오 버그의 머리는 순간 윗 쪽 방향을 향해 터져 버렸고, 지크는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의 파괴력에 자신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의 팔꿈치를 바라보았다.

“‥오늘 내가 뭘 잘못 먹고 왔나? 아닌데‥?”

한편, 바이오 버그들은 자신의 동료가 처참히 당하는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크에게 무차별로 덤벼들었고, 지크는 한번 시험해 보자는 생각에서 또한번 정면을 향해 권의 일격을 날렸다.

“간다!! 외식(外式),

석충권(石衝拳)

–!!!!!”

퍼어억–!!!!

“으잉?”

챠오의 가문에서 배운 권격 기술 중 하나인 지크의 석충권을 복부에 맞은 바이오 버그는 충격에 이기지 못하고 동료들에 휩싸여 뒤로 멀찌감치 날려졌고, 벽에 충돌한 바이오 버그의 더미들은 지크에게 얻어 맞은 바이오 버그를 중심으로 완전히 벽에 달라 붙어 체액을 뿜어댔다. 그것을 본 지크는 자신의 공격 위력이 예전에 비해 훨씬 향상된 것을 느꼈는지 크게 웃으며 사방에서 몰려드는 바이오 버그들을 향해 일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헤헷‥으하하하하하하핫–!!!!! 버전 업이 된 바람의 지크님을 방해하지 말아랏!!!!! 음우하하하하하하하하핫–!!!!!!!!”

마치 탈곡을 당하는 볍씨들과 같이, 바이오 버그들은 정확히 한 마리 당 한대씩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갔고, 술을 마시며 그런 지크의 모습을 바라보던 바이론은 씨익 웃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또 한번 성장했구나 지크·스나이퍼‥크크크큭‥. 멋지군‥.”

바이론의 시선은 곧 다른 곳으로 향했다. 다름아닌 데스 발키리, 아란이 싸우고 있는 현장이었다. 그녀의 붉은색 검,

‘디스파이어’

는 검의 표면보다 약간 옅은 붉은 잔광을 어지러이 남기며 주위의 바이오 버그들을 깨끗이 잘랐고, 바이론은 그녀의 시간이 정지된 듯 한 검술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 여자가 데스 발키리 아란인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골치 아픈 상대가 되겠군‥.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깨끗한 자세야‥.’

바이론은 시선을 이번엔 짙은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성, 알테미스에게 돌려 보았다. 그녀는 유리와 같이 투명한 정체불명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검의 표면은 깨끗했지만, 검의 날은 마치 톱과 같이 날카로웠기 때문에 그녀의 일격을 받은 바이오 버그들은 체액과 내장을 공중에 흩뿌리며 쓰러져 갔다. 알테미스는 틈이 날 때 마다 검의 날에 낀 바이오 버그의 내장과 피를 털어 내었고, 그 모습을 보던 바이론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침묵의 광기인가‥. 저런 디자인의 검을 여자가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의외군. 어쨌거나 긴장감이나 흔들림 없이 잘도 싸우는군. 마치 휀을 보는 것 같아‥크크큭, 그 녀석이 약간 더 착한가?’

이윽고, 전투는 끝났고 지크는 약간 피곤한 듯 이마의 땀을 닦으며 바이론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신기하게도, 바이오 버그들은 자아 붕괴 상태의 여자는 건들지 않았고 바이론 역시 결계에 충격을 받은 일이 한번도 없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차별로 파괴하는 바이오 버그들의 평상시 행동 치고는 약간 이상하다 생각하며, 지크는 처참히 파괴된 일본의 도쿄시를 가볍게 둘러 보았다. 서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거리에 시체가 있고 없고의 차이 뿐이었다. 지크는 일본 도쿄 지부 BSP들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바이론이 자신에게 책임지라 말 한 그 여성에게 터벅터벅 다가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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