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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58화


3장 [수라도]

“…2분 전.”

슈렌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룬가르드를 감싸고 있던 헝겊을 풀었다. 그것을 신호로, 전방을 맡은 전룡단 단장들은 즉시 휘하 전룡단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와 같이 있던 지크, 그리고 데스 발키리 알테미스레베카, 츄우 역시 전투 준비를 하였다. 알테미스는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혀로 핥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레베카와 츄우는 각자의 무기인 토울 해머흉창 바로크를 꺼내며 일전을 다짐했다. 지크는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쳇, 나도 무명도를 헝겊에 싸고 다닐까. 맨날 장갑만 죄고 있으니 원…. 다른 사람들 준비하는 거 보기가 민망하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레베카와 츄우는 지크를 쏘아보며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허이구, 가즈 나이트 주제에 전투를 장난으로 알고 있잖아? 재수 없게….”

“호호홍~ 맞아 맞아. 얼굴은 꼭 뭐처럼 빼짝 말라가지고… 리오나 슈렌이란 남자는 멋있기나 하지. 주제에 썰렁한 개그나 하고~ 호호호홍.”

“….”

“앗! 지크님, 참으십시오!!!”

릭은 마악 무명도를 빼어들려던 지크를 뒤에서 잡아 말리기 시작했고, 지크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츄우와 레베카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거 놔!!!! 저 여자들이 나에게 언어 폭력을 가했단 말이다!!!!!”

“메롱~.”

츄우는 손가락으로 한쪽 눈을 내린 뒤 혀를 내밀며 지크를 더욱 도발했고, 지크는 씩씩대며 더더욱 화를 냈다. 그를 말리던 릭은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가 슈렌인 것을 상당히 다행으로 생각해 보았다.

이윽고, 슈렌이 말한 2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전룡단은 제1대대를 시작으로 모스크바 동쪽을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특히, 슈렌은 다른 작전 때완 달리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한 레소드의 등에 올라타 최전방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한편, 웨드들에 의한 후방 기습에 휘말려버린 동룡족의 부대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동룡족 장군들이 최선을 다해 병사들의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했으나 웨드들의 갑작스럽고 폭발적인 화력 앞에 장군들마저 목숨을 잃어갔다. 결국, 총사령관인 **’솔런’**은 전방에 내보내려 했던 가변형 전차 **’귀골’**들을 전격적으로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대로 후퇴해 죽는 거나 싸우다 전사하는 거나 결과는 같다!!! 모두 목숨을 걸어라!!!”

솔런은 후방에 있는 모든 동룡족 병사들과 장군들을 전방으로 돌린 후, 모든 연락망을 동원해 바이오 버그들과 귀골들의 ⅔를 웨드들이 있는 후방에 집중시켰다. 솔런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인지, 동룡족 병사들과 장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사히 전방으로 이동을 개시했고 그와 동시에 웨드들은 커다란 위기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 . . . . . . .

「알겠나!!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플루소 장군!!! 귀공의 능력에게 이번 작전의 성패가 달려있다!!!」

“…존명.”

최전방에서 적들과 격돌하기만을 기다리던 플루소에겐 솔런으로부터의 특명이 떨어졌다. 바로 전방에서 공격해오는 적들을 최대한 차단하라는 것이었다. 플루소는 즉시 진형을 방어형으로 바꾸었고, 언제나 공격적인 진형만을 고집하던 플루소가 방어형 진형을 사용하자 휘하 병사들은 어리둥절해 했지만 그녀의 명령은 절대적인 탓에 병사들은 재빨리 진형을 바꾸어갔다.

진형이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 전방을 감시하던 한 병사의 보고가 들어왔다.

「장군님!! 적과의 거리 3분입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자, 그 보고를 기다렸다는 듯 플루소는 자신의 삼절곤을 봉의 형태로 바꾼 뒤 맨 앞으로 나섰고, 뒤를 돌아 전 군단을 바라보며 기합이 실린 목소리로 그들에게 외쳤다.

“때가 왔다, 동룡족의 전사들이여!!! 우리 동룡족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각자의 목숨을 위해 싸울 때가 왔다!!!! 여기서 후퇴하는 자는 주룡께 죽음을 당할 것이고, 여기서 싸우다 죽는 자는 동룡족 전사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다!!! 자, 일어서라–!!!!”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그녀를 선두로, 동룡족 병사들은 각자의 소울스톤을 꺼내든 뒤, 다가오는 전룡단을 향해 필사적으로 마법탄들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릿속엔 이기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패배한 뒤엔 죽음, 만약 살아서 돌아가도 죽음…. 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승리뿐이었다. 그런 각오로 정신 무장이 된 동룡족 병사들은 현재 어느 특수부대 이상의 전투 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 상태였다.

………………… . . . . . . .

“…레소드, 후방으로 물러나길 바라오.”

레소드의 등에서 멀리 다가오고 있는 동룡족 군대를 바라보고 있던 슈렌은 레소드의 등을 벗어나며 그렇게 지시했고, 레소드는 깜짝 놀라며 슈렌을 바라보았다.

「예? 하지만 전 슈렌님의 부관….」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곳이오…. 따라주시길.”

슈렌의 목소리에 깔린 엄숙함. 레소드는 슈렌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엔 묵묵히 명령을 내리고 앞으론 잘 나서지 않던 슈렌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피가 끓어 오르는 사람처럼 살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마치, 다른 가즈 나이트들과 마찬가지로….

「…예, 지시를 기다리겠습니다.」

레소드가 고도를 높여 후방으로 빠짐과 동시에, 슈렌은 그룬가르드를 평소와는 달리 역방향으로 잡았고, 심호흡을 하며 기염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그 모습은 가까이 접근하고 있던 플루소의 눈에도 띄었고, 슈렌의 몸으로부터 발산되는 엄청난 살기에 플루소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도 심하게 쓰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저 녀석…?!”

그러는 동안, 동룡족 병사들이 쏜 마법탄들은 전룡단과 슈렌을 향해 퍼부어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전열의 전룡단들은 방패를 이용해 자신들의 몸을 보호했다. 그러나, 슈렌에게 날아가던 몇 발의 마법탄들은 마치 고무공이 튀기듯 슈렌의 몸 근처에 가자마자 사방으로 튕겨졌고, 그것을 본 플루소는 자신의 예상이 맞아 떨어진 것에 분노를 토하며 병사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모두 진격을 멈춰라!!! 살고 싶으면 방어 마법을 사용해!!!!!”

그때, 감겨있던 슈렌의 눈이 번쩍 떠졌고 그의 오른손은 왼손에 역방향으로 들려있던 그룬가르드의 끝을 향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여졌다.

“…비살검(秘殺劍), 수라도(修羅刀)…!”

슈렌은 그룬가르드의 끝을 오른손으로 잡은 뒤 시계 방향으로 끝부분을 살짝 틀었고, 그 순간 생긴 그룬가르드의 균열 부위에선 거대한 화염이 갇혀있던 공기가 진공의 세계로 빠져나가듯 분출하기 시작했고, 창의 끝을 잡은 슈렌의 오른손은 계속해서 바깥쪽으로 부드럽게 밀려나갔다. 그 모습은, 일자형으로 생긴 긴 자루에서 태도(太刀)를 뽑는 모습과 흡사했다. 수초도 지나지 않아, 왼손에 들린 그룬가르드는 칼집으로, 오른손에 들린 그룬가르드의 끝은 거대한 화염을 머금은 긴 태도의 모습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물론 외형이 달라진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룬가르드 안에 숨겨진 또 하나의 무기가 세상에 드러난 것뿐이었다.

진격하던 동룡족 병사들은 슈렌의 수라도가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 마법을 이용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플루소의 명령을 듣고 방어를 할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다. 수백 미터 떨어진 지점 위에 떠있는 슈렌의 몸에서 뿜어지는 화염의 살기가 그들의 몸을 반응시킨 것이었다.

이윽고, 슈렌은 오른손에 든 칼집을 공중으로 높게 띄웠고, 그 즉시 수라도를 양손에 잡은 뒤 광범위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것과 함께 슈렌이 있는 지점으로부터 거대한 화염의 해일이 동룡족을 향해 급속도로 뻗어나갔고, 처음의 한 방은 동룡족 병사들도 무사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보통의 해일도 한 방이 끝은 아니었다. 점점 파워를 더해 밀려오는 화염의 파도에 동룡족 병사들은 한 명, 두 명씩 힘을 잃어 재로 변하기 시작했고, 예전에 이 기술을 당한 적이 있던 플루소는 온 힘을 다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물론 병사들에 대한 지시도 잊진 않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 어서 위로 올라와!!!!! 계속 막고만 있다간 재도 남기지 못한단 말이다!!!!”

그러나, 플루소의 생각과는 달리 동룡족 병사들은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순간이라도 방어를 푸는 날엔 그녀의 말대로 재도 남기지 못하는 상황과 접하게 되는 탓이었다.

약간 떨어져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데스 발키리 레베카와 츄우는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거대한 살극에 숨을 죽이고 말았다. 그녀들로서도 저런 광경은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같이 그 광경을 보던 지크 역시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슈렌이 강한 탓이었다.

“…저것이 그룬가르드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칼날… 수라도인가. 그룬가르드가 응축하고 있던 화염의 에너지를 몽땅 소모하는 것 같은데?”

지크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레베카가 인상을 찡그리며 그에게 물었다.

“…이봐, 바람의 가즈. 리오라는 남자와 저 남자, 그리고 너까지 셋은 서로 형제라며 저걸 처음 보는 거야?”

“엣, 처음 보면 어쩔 건데. 난 슈렌이 오늘 입고 나온 속옷 색깔도 모른다구.”

“…….”

“…내가 어째서 가즈 나이트가 된 건지 물어보고 싶은 얼굴이군.”

레베카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고, 츄우 역시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슈렌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한편, 같은 데스 발키리인 알테미스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 태워버리면 피를 못 보잖아…! 난 피가 보고 싶어…!! 피가…!!!”

그런 그녀의 말을 멀찍이 들은 지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속으로 생각했다.

‘…약간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이 나오면 안 되는 건가… 이곳은….’

수라도에 의한 슈렌의 화염 난사가 끝날 무렵, 동룡족 병사들의 수는 화염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모스크바 동쪽 일부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까지 합해서 상당수 감소되어 있었다. 슈렌은 곧바로 마이크폰을 이용해 전룡단에게 전진 지시를 내렸고, 전룡단들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고함을 지르며 시커멓게 그을려버린 대지 위를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편, 슈렌은 지크와 데스 발키리들에게 따로 작전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안에서 작전을 계속하고 있을 웨드들이 시간적으로 위험하니 네가 데스 발키리들을 데리고 그쪽으로 먼저 가보도록 해. 그리고… 피직!!」

“얼라! 슈렌!! 슈우렌!!!!”

갑자기 잡음과 함께 통신이 끊기자, 지크는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슈렌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슈렌의 기는 아직 정상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지크는 일시적인 전파 방해인가 생각하며 데스 발키리들에게 소리쳤다.

“자, 드디어 우리 차례야 언니들!!! 가서 휩쓸어버리고 오자구!!!!”

“오옷!!!!”

“호홍~ 좋아요~.”

몸에 힘을 불끈 넣으며 전의를 다지는 두 사람과는 달리, 알테미스는 희열에 찬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이빨로 살짝 깨물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즐거운 이벤트를 앞둔 어린아이와 같이 흥분한 채….

………………….. . . . . . .

슈렌은 자신의 머리 대신 가까스로 마이크폰을 부순 플루소의 삼절곤을 수라도로 방어한 채 묵묵히 플루소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플루소는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삼절곤에 힘을 더더욱 밀어 넣으며 슈렌에게 말했다.

“…드디어 꺼냈군, 내 미래와, 내 얼굴을 망쳐 논 그 수라도를…!! 내 휘하 부대까지 전멸한 이상, 너완 여기서 반드시 결판을 내고 말겠다!! 가즈 나이트 슈렌!!!”

그런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슈렌은 안타까움이 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뒤로 물러선 뒤, 수라도를 양손에 다시 쥐고 자세를 취하며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플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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