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63화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가즈 나이트라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 건 이해하겠지만 임무 완수를 위해 자신의 제자가 사랑했던 사람과 제자를 극악무도하게 베어버릴 수 있는 거야! 내 얼굴을 봐, 아무리 화장을 해서 흉터가 지워지긴 했어도 내 얼굴에 흉터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
리오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곧 피아노 연주를 멈춘 슈렌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리오는 슬쩍 자리를 비켜준 뒤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고, 슈렌은 플루소의 앞에 앉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때의 모든 일은 나의 실수였다. 물론 이 말을 한다 해서 네 얼굴의 상처는 물론 마음의 상처까지 없앨 수는 없겠지. 지금 와서 내가 말을 한다 해도 결과는 같을 테고….”
그러자, 플루소는 잘 됐다는 듯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고,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와인 병의 끝을 깬 뒤 그것을 슈렌의 목에 갖다 대며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호오, 그럼 죽는다 해도 할 말이 없겠군.”
“…어차피 여기서 죽는다 해도 난 죽은 장소의 시간으로 3개월 후면 다시 살아난다. 나에 대한 너의 복수는 네 스스로가 포기하거나 죽을 때까지 멈추지 못해. 지금의 상황으로는….”
“…흥….”
김이 샜다는 듯 플루소는 깨진 병을 탁자 위에 던져 버렸고, 슈렌을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김 새는 말만 하는군. 좋아,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한번 이것도 가르쳐 보시지.”
그녀가 그렇게 물어오자, 슈렌은 눈을 뜨고 플루소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플루소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백 년 전 슈렌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슈렌이 자신에게 무엇을 애원하는 듯한 눈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 탓이었다. 슈렌은 그 상태로, 플루소에게 말했다.
“…내 얘길 들어줘. 잠시만이라도.”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레스토랑 앞 벤치에 앉아 예전보다는 많이 맑아진 하늘과 묵묵히 하늘을 오고 가는 서룡족의 레이더 관제기를 바라보던 리오는 지금의 슈렌이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는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다.
“…그 녀석, 오늘은 왜 그렇게 슬픈 얼굴로 피아노를 연주한 거지. 보통 땐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묵묵히 피아노를 쳤는데…. 이상하군. 도대체 그 플루소라는 동룡족 여장군과 무슨 관계인 거야?”
한참 그렇게 중얼거릴 무렵, 갑자기 레스토랑 문이 열렸고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린 플루소가 안에서 뛰쳐나왔다. 깜짝 놀란 리오는 무슨 일이냐며 플루소에게 물으려 했지만, 플루소는 몸을 돌린 채 리오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먼저 말했다.
“…당신들 본부엔 나 혼자 돌아가겠어. 도망칠 걱정은 하지 마. 그럴 정도로 비굴하진 않으니까. 그럼 이만…. 오늘 고마웠어.”
“아… 잠깐!”
그러나, 플루소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고, 리오는 무슨 일인가 하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리오의 불안과는 달리 슈렌에겐 아무 일이 없었고, 슈렌은 플루소가 깨 버린 와인 병의 뒷정리를 손수 하고 있었다. 리오는 그래도 불안했는지 슈렌을 불러 보았다.
“…슈렌, 도대체….”
“…음. 아무 일도 아니야. 걱정할 필요는 없어.”
슈렌은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리오에게 대답을 했고, 플루소와 슈렌의 상반된 반응에 머리가 혼란해진 리오는 결국 피식 웃어넘기며 슈렌에게 다시 물었다.
“…그 깨진 와인, 네 아르바이트 비용에서 제하는 거지?”
“…그럴걸.”
슈렌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모든 번뇌에서 해방된 사람처럼….
※※※
오후 늦게 본부로 출근한 릭은 다른 전룡단 단장들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비어 있었던 제2 전룡단 단장의 자리가 정해졌다는 것과, 그 새로운 전룡단 단장이 상상도 못한 인물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아, 아니 도대체 마마께선 무슨 생각을 하시고…!! 레소드, 어떻게 된 건가!!”
“…모르겠어. 오늘 정오에 행해진 포로 협상 직후 전격적으로 행해진 인사라서 나도 마마의 뜻을 이해할 수 없군. 아, 어디 가나 릭!”
레소드는 자신의 대답을 듣자마자 멀찌감치 뛰어가는 릭을 불렀고, 릭은 계속 달리며 레소드에게 말했다.
“마마를 뵙겠어!! 이유를 들어 봐야 할 것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제궁에 도착한 릭은 궁인들에게 물어 물어 바이칼 전용의 식당으로 들어갔고, 장로, 그리고 리디아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바이칼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큰 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그만큼, 릭이 들은 소식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마마! 제1 전룡단 단장 릭·발레트!! 실례를 무릅쓰고 마마를 뵙습니다!!!”
릭이 궁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와 인사를 하자, 스테이크 조각을 씹고 있던 바이칼은 떫은 표정을 지으며 물을 마신 뒤 릭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와 봐.”
“예! 감사합니다 마마!!”
릭은 곧 바이칼의 옆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고, 다시 큰 소리로 바이칼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비어 있던 제2 전룡단 단장의 자리를 분명 어제까지 포로였던 동룡족 장군 플루소에게 맡기셨는지, 이 릭은 감히 듣고 싶습니다!!”
“…쳇.”
그러자, 바이칼은 약간 거칠게 식기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고 릭은 움찔하며 고개를 더더욱 숙였다. 릭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동안 내려다보던 바이칼은 한숨을 후우 쉬며 릭에게 말했다.
“…아까 지크 녀석이 발광한 게 끝일 줄 알았는데 설마 너까지 이럴 줄은 몰랐군. 뭐, 좋아. 어차피 식사도 맛이 없던 참인데 대답해 주지. 그전에 한 가지 묻겠다. 넌 동룡족을 증오하나?”
“…예?”
바이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릭은 당황하며 바이칼을 올려다보았다. 바이칼은 여느 때와 같이 냉랭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릭은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도, 동룡족 자체를 증오하진 않습니다. 선왕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들 역시 같은 용족이기 때문입니다.”
“…알면서도 식당까지 쳐들어와 식사를 방해한 거군. 그래도 지크 녀석보단 똑똑한 대답을 했으니 처벌하진 않겠다. 사라져.”
“네?”
릭은 다시금 멍하니 바이칼을 바라보았고, 바이칼은 식사를 그만하려는 듯 물을 천천히 들이키고 있었다. 그때, 리디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이칼에게 말했다.
“…저어, 바이칼님. 식사를 남기시면 안 돼요.”
“…’오라버니’. 그리고, 식사를 남기든 버리든 내 맘이야.”
“…예, 오라버니.”
리디아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 식사를 했고, 둘의 그런 모습을 보던 장로는 한숨을 내 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 그리고 제2 전룡단 단장이라고는 했지만 그녀는 당분간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슈렌의 보좌를 하게 된다. 슈렌이 나가지 않으면 그녀 역시 출격하지 않으니 뒷통수를 맞을 염려는 안 해도 좋아.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니 어서 사라져.”
“예… 예!”
릭은 곧바로 경례를 붙인 뒤 식당을 빠져나갔고, 한숨을 쉬며 제궁을 빠져나가 자신의 집무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오후 아홉 시. 장로 입회 하에 전룡단 단장들의 임시 회의가 열렸고 그 회의 때 제2 전룡단 단장으로 임명된 플루소가 장로를 통해 모든 전룡단 단장들에게 소개되었다. 물론, 전룡단 단장의 대부분은 그녀를 그리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종종 일어나는 용족끼리의 국지전 때 그녀와의 일기토에서 사망한 전룡단 단장들이 한둘이 아닌 탓이었다. 그 사망자 명단엔 그들의 형제도, 친구도 끼어 있었기에 전룡단 단장들이 그녀를 환영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자리를 비운 전 제2 전룡단 단장은 그녀와의 일기토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명단에 끼어 있었다. 어쨌거나, 플루소는 다른 전룡단 단장들에게 거수경례를 하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신임 제2 전룡단 단장. ‘플루소·스나이퍼’ 입니다. 이번 용족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임시로 제2 전룡단 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스, 스나이퍼!?”
전룡단 단장들은 새로 붙여진 그녀의 성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특히 릭은 얼굴이 하얗게 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 . . . . . .
“…조카라… 하아하하하하하하….”
그날 정오부터 저녁 늦게까지, 지크는 자신의 집 지붕에 올라앉아 하염없이 슬픈 웃음소리를 냈고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리오 역시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슈렌만은 달랐다. 그는 보통 때와는 달리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조용히 그룬가르드를 닦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