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66화
릭은 자신의 앞자리에서 열심히 사무 처리를 하고 있는 플루소의 모습을 몇 번씩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전룡단 제2 단장이 된 후 한 달 반 정도가 흐른 지금, 플루소의 얼굴에 난 흉터는 예전에 비해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플루소가 화장을 하고 다닌 탓도 있지만, 그런 것을 떠나 플루소의 흉터는 상당히 좋아진 상태였다.
“… 용건이 있으십니까?”
릭의 시선을 느꼈는지, 플루소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릭과 눈을 마주치며 그에게 물었고, 릭은 움찔하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플루소. 그냥, 오늘은 너무 아름다우셔서….”
순간, 릭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얼굴을 붉혔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플루소는 곧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고맙습니다 릭 단장님.”
플루소는 다시 사무를 보기 시작했고, 릭 역시 자신의 서류에 눈을 돌리며 자신이 플루소에게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내,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아아, 난 여자에게 너무 약해!!’
그도 그럴 것이, 릭은 가족 중에서도 여자는 어머니 한 명뿐이었고 학교 역시 남자 사관학교를 다닌 탓에 여자와는 그리 많이 대면해보진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전룡단 단장 중에서 여자는 플루소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단 두 명뿐이었기에 일자리에서도 여자와는 많이 만나보지 못했었다. 그런 그에게 요즘 드디어 고민이 생기고 만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 한 구석은 이미 세이아에게 빼앗겨 틈만 나면 고뇌에 빠져야만 했고, 제2 전룡단 단장으로 플루소가 부임된 후 사무직을 할 때면 그녀와 언제나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요즘 그는 마음이 더더욱 싱숭생숭했다. 게다가, 예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난 흉터 때문에 그리 예뻐 보이지 않던 플루소가 요즘 들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예뻐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릭의 눈에.
“릭 단장님, 식사 안 하십니까.”
“네에!?”
한참 고민을 하던 자신에게 플루소가 그렇게 물어오자, 릭은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플루소를 바라보았고, 플루소는 오늘 따라 릭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약간 인상을 찡그리며 릭에게 다시 물었다.
“…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왜 그러시죠?”
“… 아,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식사하러 가실 겁니까?”
“예. 지금은 점심시간이니 시간 엄수는 해야겠죠. 같이 가시겠습니까?”
순간, 릭의 머리는 멈춰 버렸고 플루소는 릭이 아무 대답 없이 자신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지 결국 쓸쓸히 웃으며 뒤로 돌아섰다.
“… 릭 단장님께선 아직 절 믿고 있지 못하신 듯 하군요. 그럼, 저 혼자 가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자, 잠깐!!!’
그러나, 속으로만 그렇게 외칠 뿐인 릭이었다. 결국, 플루소는 사무실에서 나가버렸고 조금 후 겨우 의식이 회복된 릭은 자신의 책상을 손으로 후려치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어, 어째서 난…!!! 왜 아무 말도 못한 거야!! 그저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을 뿐인데–!!!!”
하지만, 릭은 아직 사무실 안에 전룡단 단장들과 그들의 부관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릭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고, 그것을 모르고 있는 릭은 책상 위에 엎드린 채 계속 울분을 토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저런 이유로, 릭의 일진은 그날 최악이었다.
다음 날.
“지, 지크님!!”
릭은 식당에서 한참 햄버거를 씹고 있는 지크에게 다가가 그에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고, 릭의 이상 반응에 지크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릭에게 물었다.
“… 왜 그래 릭? 오늘 식권이 안 나온 거야?”
“… 그, 그게 아닙니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지크님!”
“… ?”
지크는 곧 릭에게 식당에서 끌려나오다시피 했고, 그는 햄버거를 씹으며 릭의 고민을 듣기 시작했다. 가족부터 여자가 없었고, 또 지금까지 이성과의 대화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릭의 역사를…. 릭의 눈물겨운 사연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지크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 바아보….’
“… 어제도 플루소 씨에게 너무 실례를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아,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지크님…!”
그러나, 지크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있어보지 못했던 릭은 한 가지 모르는 점이 있었다. 보통 때의 지크는 그런대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장난기’가 발동한 지크는 도움은커녕 위험하다는 것을….
“… 헤헷, 좋아. 가르쳐 주지.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아, 예! 감사합니다!”
………………………. . . . . .
다음 날.
사무실 안의 전룡단 단장들은 모두 릭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평상시엔 제복 외엔 입고 다니지 않던 릭이 그날 따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정장을 빼 입고 온 것이었다. 그렇게 입고 온 릭 역시 상당히 부끄럽고 어색해 하고 있었으나, 각오만큼은 단단했다.
이윽고, 플루소가 출근을 했고 그녀가 자신의 앞자리에 앉자마자 릭은 자리에서 일어나 플루소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뒤 당당히 그녀에게 말했다.
“… 플루소 단장. 오늘 저녁에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습니까?”
“… 네?”
릭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릭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경악을 했고, 플루소는 약간 당황한 눈으로 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릭은 진지한 얼굴로 플루소에게 말을 계속 해 나갔다.
“… 며칠 전의 일도 사과드릴 겸, 오늘은 제가 저녁을 내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플루소 단장.”
플루소는 아무 말 없이 릭을 바라보다가, 곧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릭에게 말했다.
“… 죄송합니다. 전 릭 단장님께 그럴 제의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아직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아….”
플루소로부터 자신의 제의를 거절당한 릭은 순간 침울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릭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그와 동시에 릭을 알고 있는 모든 전룡단 단장들은 사무실 밖으로 약속이나 한 듯 나가버리고 말았다. 릭은 그 사람들이 왜 그러나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사실, 릭은 지크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만약 제의를 거절당했을 때에도 ‘지크가 말 한 대로’ 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릭은 곧바로 지크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고, 지크의 안색은 그 순간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 너, 너 진짜로 한 거야!?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 예? 그렇습니다만….”
지크는 잘 알고 있었다. 이후 릭에게 어떤 소문이 쫓아다닐 것인지를…. 지크는 한편으론 후회하면서도, 릭의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본 이상 자신이 벌린 일을 풀기 위해 결국 리오에게 상담을 의뢰했다. 이야기의 전모를 들은 리오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한숨을 길게 내쉬며 지크를 타이르듯 말했다.
“… 이봐,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한 거야…. 게다가 릭은 자신의 말이 뭘 뜻하는지도 모른다면서.”
“… 실제로 그렇게 할 줄은 몰랐다구. 그건 그렇고, 그 순정남을 구해줄 방법은 없을까? 이제 소문이 퍼지면 그 녀석 날 죽이려고 할지 모른다구!”
리오는 상당히 불안에 떨고 있는 지크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슬쩍 고개를 저어 보였다.
“설마 릭 성격으로 널 죽이기야 하겠어. 하지만, 널 원망까진 할 것 같군. 그런데 이런 일로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 이유는 뭐지?”
그러자, 지크는 당연하다는 듯 리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넌 바람둥이잖아.”
“… 빌어먹을 녀석….
……………………… . . . . . .
다음 날. 정오 정도에 전룡단의 사무실을 찾은 지크는 창문을 통해 열심히 사무를 보고 있는 플루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마침, 릭은 전선 방어를 위해 주둔하고 있는 전룡단의 문제로 장로를 만나기 위해 자리에 없었고, 지크는 절호의 찬스라 생각하며 전룡단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 지크님!”
그가 들어오자마자 사무실 안에 있던 전룡단 단장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그에게 경례를 붙였고, 지크는 앉으라는 손짓을 한 뒤 플루소에게 다가갔다.
“이봐, 플루소. 잠깐 시간 좀 내 주겠어?”
“… ? 무슨 일이십니까 지크 숙부님?”
“쳇, 잔말 말고 나와!”
지크는 곧바로 플루소의 목을 자신의 팔로 휘어 감은 뒤 그녀를 납치하듯 밖으로 끌고 나갔고, 그 모습을 보던 전룡단 단장 레소드는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인기가 많군. 심지어는 숙부에게 까지도….”
한편, 플루소를 끌고 식당으로 간 지크는 플루소에게 햄버거와 음료수를 듬뿍 사준 뒤 그녀의 앞에 앉아 양손을 모은 채 부탁을 하고 있었다. 플루소는 이유부터 듣기를 원했고, 지크는 다시 정색을 하며 플루소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 (생략) … 이렇게 말했듯이, 릭 녀석은 비 전투 상황 시 여자 앞에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바보가 된다구. 우리 집에선 세이아를 보고 기절한 적도 있었다니까. 그러니까, 오늘 한 번만 릭하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 녀석 얘기를 좀 들어줘. 제발… 흑흑….”
지크로부터 한참 얘기를 듣던 플루소는 곧 빙긋 미소를 지었고, 그녀가 갑자기 웃자 지크는 인상을 찡그리며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 음? 갑자기 웃은 이유는 뭐지?”
그러자, 플루소는 손으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지크에게 말했다.
“… 실례라면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숙부님들과 한 가족이 된 지 한 달 반 동안 전 정말 놀라운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러자, 지크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고, 플루소는 앞에 산더미처럼 놓여진 햄버거 중 하나를 집어 봉투를 뜯으며 지크에게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 동룡족 장군이었던 시절… 아버님(슈렌)께서 가즈 나이트셨다는 것을 모르던 시절부터 전 가즈 나이트라는 존재가 피도 눈물도 없는, 그저 주신의 명령만을 이행하는 기계 같은 존재인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 가즈 나이트라는 사실을 안 직후, 전 그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숙부님을 포함해 그 주변 사람들과 한 달 반 동안 생활을 하며 전 그 생각을 지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재미있으신 분들이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크는 턱을 괸 채 진지한 미소를 짓고 플루소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플루소는 봉투를 연 햄버거를 지크의 앞에 놓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 전 최근 들어 이 상처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답니다. 이 상처가 있기 전엔 소중한 사람이 한 명이었지만, 이 상처가 난 뒤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탓입니다. 그리고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예전까진 상당히 흉했던 이 상처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아지더군요. 마치 아물듯이 말입니다.”
햄버거를 뒤로하고 플루소의 얘기를 듣고 있던 지크는 정말로 조카를 쓰다듬듯 플루소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슈렌에게도 들었고, 또 너에게도 들었지만 네 얼굴에 난 상처는 슈렌이 만든 상처와 동시에 나버린 마음의 상처인 것 같아. 그러니 무슨 수를 써도 그 상처가 나을 리 없겠지. 상처가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말은 네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는 말일 테고… 헤헷. 이제서야 조카로 보이는군. 루이체도 설득할 수 있겠어. 자, 그럼 식사나 해 볼까!”
“… 저어, 그런데 숙부님들께서 자주 올리시는 ‘루이체’라는 분이 누구십니까?”
플루소는 햄버거를 집어 들며 지크에게 물었고, 순식간에 햄버거 하나를 없앤 지크는 음료수를 마신 뒤 가볍게 대답해 주었다.
“우리들 동생이자 네 이모. 언젠간 만나게 해 줄게.”
“… 그렇군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숙부님.”
“… 나만이라도 제발 삼촌이라고 불러줘. 괜히 나이 들어 보이잖아.”
“후훗…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