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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8화


“좋아, 이 정도는 되어야 우리 여섯 명을 상대할 수 있겠지. 자, 진형은 아까 말한 대로다!”

공격면에서는 히드라가 ‘보통의’ 드래곤보다 범위가 넓다. 입에서 토하는 브레스가 여섯 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히드라는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한 번에 넓게, 또는 집중해서 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연속으로 쏘면 모를까. 또 하나 뛰어난 점은 많은 머리로 모든 공격 방향을 커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못하는 부분은 단 한 군데 뿐….

키세레의 손에서 푸른 빛들이 쏟아져 나와 다섯 명을 감쌌다. 5급의 성호막이었다. 드래곤의 브레스라면 마법력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성호막도 3급이 아니면 견디지 못한다. 5급의 성호막이라면 히드라의 브레스를 다섯 번까지는 막을 수 있다.

“선제공격이다!”

머셀은 화살을 활 시위에 놓았다. 보통의 방법은 아니었다. 엘프 사냥꾼만의 기술, 드라이브 슛의 방법이었다. 시위에 걸은 채 화살을 특별한 방법으로 꼰다. 그렇게 되면 화살은 나갈 때 엄청난 회전력도 가지게 된다. 동물들의 육체에 이 화살이 박히게 되면 살만 뚫는 것이 아니라 뼈마저도 파고 들어간다.

“가라!”

화살은 핑― 소리를 내며 앞까지 다가온 히드라의 머리로 날아갔다. 그러나 머셀이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 있었다. 히드라의 가죽은 두께가 엄청나다. 보통 동물들의 털가죽과 비교한다면 벽돌과 종잇장일까…. 회전력 때문에 박히긴 했지만 히드라는 느끼지 못한다는 듯 계속 전진해 왔다.

“이런…?!”

클루토가 앞으로 나섰다. 모아두었던 주문을 한 번에 개방했다.

“화이라만―!!”

“멍청이!!”

클루토가 화이라만을 쏘아내자 리오가 소리쳤다. 클루토는 움찔하며 리오를 쳐다보았다. 화이라만은 히드라의 몸에 직격으로 맞아 폭발하긴 했어도 히드라는 별 대미지를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저 녀석은 냉동계와 대기계에 약하단 말이야! 5급의 화이라만은 별로 통하지 않는다구!”

“쿠오오오―!!”

리오가 말하고 있는 동안 히드라는 일행의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두 개의 머리가 파이어 브레스를 일행에게 뿜어냈다. 불기둥 두 개가 일행을 덮쳐왔다.

“리오!”

성호막을 입지 않은 리오가 걱정된 클루토가 불속에서 소리쳤다. 리오는 불을 뚫고 날아올라 거대한 호선을 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4급 주문! 썬더 피스!!”

공중에 그린 호선이 푸른 빛을 발하자 하늘에 낀 먹구름에서 거대한 번개 기둥 다섯 개가 히드라에게 떨어졌다. 불을 뿜어내던 머리 중 하나가 번개에 맞아 박살이 나고 히드라는 고통에 몸을 뒤틀었다.

“구오오오―!!”

리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디바이너를 뽑아들고 마법 검을 걸기 시작했다.

“무속성의 힘으로 모든 것을 파괴한다! 마법 검, 크림슨 브레이커!!”

진홍색의 빛이 리오의 왼손에서 뿜어져 나왔고 그 빛은 디바이너로 전해져 기묘한 빛을 뿜어냈다. 일행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리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셀이 중얼거렸다.

“리오란 남자의 한계는 어디까지지…?”

아르만도 역시 도끼를 들고 히드라의 다리를 공격해 들어갔다.

“후아앗!!”

기합성과 함께 도끼로 히드라의 발목 부위를 내리치자 가죽이 반 이상 갈라져 나갔다. 아르만은 계속해서 도끼로 공격해 들어갔다. 히드라는 아까 전 썬더 피스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지 계속 머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으랴아아앗―!!”

히드라의 거대한 몸체 중 한 부분을 디바이너로 내리긋자 그어진 부분에서 진홍색 빛이 나오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이어진 고통에 히드라는 눈이 벌개졌다.

“쿠오오오옷―!”

사방으로 불길을 쏘아대며 맹렬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한 히드라의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아르만도 거의 밟힐 뻔했으나 다행히 피할 수가 있었다. 그보다도 좁은 계곡에서 불길에 완전히 휩싸인 일행이 문제였다. 뒤쪽에서 공격받지 않자 히드라는 정면에 머리를 돌리고 한꺼번에 붉은 숨결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은 불길뿐, 클루토, 키세레, 머셀, 그리고 리카는 성호막의 두께가 눈에 띄게 얇아진 것을 보고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클루토가 냉동계 주문을 외우고 반격에 들어갔다.

“5급! 알자르만!!”

그러나 둥그런 냉동탄은 히드라에 미치기도 전에 녹아 없어져 버렸다. 클루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을 잡아당겼다.

“누구…?!”

불길을 뚫고 리오가 클루토를 붙잡은 채 날아올랐다. 리오는 히드라의 뒤에 클루토를 내려놓고 다시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안 뜨거운가…?”

다시 불길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리오의 머리 위로 보였다. 히드라의 머리였다.

“아차!”

히드라는 넓은 머리로 리오를 그대로 받아 계곡의 한쪽으로 그를 처박아 놓았다. 히드라의 박치기에 갑작스럽게 당한 리오는 다시 바위 사이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다섯 개의 머리가 동시에 뿜어내는 불길에 망토로 몸을 감쌀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불기둥의 압력이 점점 거세져 왔다.

“뭐야! 리오만 집중적으로 공격하잖아?!”

뒤따라온 아르만과 불길에서 겨우 벗어난 나머지 일행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빠져나와요 리오! 할 수 있잖아요!!”

키세레가 고개를 저었다.

“여섯 개의 히드라 머리가 뿜어내는 압력은 엄청난 거야, 압력만으로도 100가론(100m) 앞에 있는 성벽도 날려버릴 수 있다고 들었어. 지금은 다섯 개지만…!”

히드라의 없어졌던 머리 하나가 다시 재생이 되어 나왔다. 눈을 뜬 머리도 재차 불길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저렇게 놔두면 리오가 죽을지도 모른다구요!!”

키세레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녀는 손을 꼭 쥐며 리오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할 수 있잖아요….”

“이, 이 자식…!!”

리오는 팔을 교차해 압력을 막아내며 계속 버티고 있었다. 열기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 주위의 바위도 녹기 직전일 것이다.

“멜튼보다는 차가운 거지, 헤헷…. 그런데 어쩐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디바이너를 휘둘러 빠져나갈 상황은 더욱 아니었다. 리오의 망토도 치직 소리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좋아, 도박이다 도마뱀 녀석!!”

리오는 자신을 가리고 있던 망토를 펼쳤다. 열기가 직접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온몸의 기를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하아아아앗―!!”

바위조차 시뻘겋게 변하여 녹을랑 말랑 하자 더 이상 일행은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두꺼운 가죽을 통과할 정도의 무기나 마법은 없었다. 키세레의 갓 핸드도 타격계의 마법이라 그리 유용하진 않았다.

“…방법이 있다!”

리카가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 룬 브레이드를 뽑았다.

“자, 머셀! 나 좀 도와줘!!”

리카는 머셀에게 검을 넘기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화살 대신에 이 검을 쏘아보는 거야! 이 검은 적의 약점을 파악해서 공격하니까 보통의 화살보다는 나을 거라고!”

“하지만… 이 활의 탄력으로 과연 날아갈까?”

그러면서도 머셀은 리카에게 검을 받아 활에다 놓아 보았다. 룬 브레이드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러나 화살처럼 깃털이 달려있지 않아 명중률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으으윽….”

머셀은 시위를 힘껏 당겼다. 모두가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라앗―!!”

시위를 놓자, 룬 브레이드는 흰 빛의 흔적을 남기며 히드라의 네 번째 머리를 향해 일직선 상으로 날아갔다.

“쿠오옷?!”

네 번째 머리가 위로 쳐들렸다. 맞은 것이 분명했다. 머셀을 비롯한 일행은 뛸 듯이 기뻐했으나….

“…아무렇지도 않잖아?!”

깊숙이 꽂히지를 않은 것이다. 머리 가죽이 제일 두껍다는 계산을 넣지 않은 것이었다. 일행은 다시 절망적인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때―

히드라가 뿜어내는 화염 저편으로 거대한 빛의 구체가 맺히는 것이 일행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빛의 구체는 공기를 찢는 굉음을 내며 파동으로 변해 화염과 히드라의 머리를 순식간에 밀어내며 창공을 향해 뻗어나갔다.

“쿠아아아아―!!”

히드라의 머리들은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며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다. 일행은 그 장면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염이 사라지자 뻘겋게 달아올랐던 바위가 차츰 식어가는 게 보였다. 머리가 모두 날아간 히드라의 육체는 곧 무너져 내렸다. 일행은 리오가 끼어있던 바위 바로 밑으로 달려가 보았다. 먼지를 툭툭 털면서 누군가가 일행 쪽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리오…?”

“뭐야, 모두 인상을 쓰고 말이야. 또 뭐가 나타난 거야?”

리오는 디바이너를 두어 바퀴 돌린 후 집어넣으며 일행을 쳐다보았다. 일행이 그에게 달려왔다.

“살아있었어! 역시 리오야!”

자신들에게 아이들이 모두 안기자 리오는 멋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야, 징그럽단 말이야! 언제는 안 그랬나 원…. 빨리 떨어져!”

아르만은 허리에 손을 올려놓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키세레님, 전 정말 최고의 행운아 같아요.”

키세레는 아무 말도 않고 십자가를 만지고 있었다. 아르만은 모르는지 계속 말을 했다.

“저희들이 꿈꾸던, 그리고 한 번쯤은 되고 싶던 무적의 영웅을 앞에 두고 있으니까요. 정말…. 걱정이 필요 없는 사람이에요, 그렇죠?”

아르만은 키세레를 바라보았다. 키세레의 십자가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이 보이자 아르만은 깜짝 놀랐다.

“걱정…. 안 해도 될까요?”

키세레는 나지막이 아르만에게 말했다. 아르만은 머리를 긁으며 계속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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