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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9화


마지막 마을로 향한 이틀째 낮. 리오 일행은 간헐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로 가득한 계곡을 지나고 있었다.

“제기랄, 구름 속을 걸어가는 느낌이군.”

리오는 투덜대며 얼굴에 묻은 증기 방울을 닦아내었다. 다른 일행도 증기로 옷이며 얼굴이며 다 젖어 있었다. 불쾌 지수로 본다면 건들기만 해도 싸움이 날 상황이었다. 리오가 투덜대는 것도 당연했다. 클루토는 증기에 젖은 모자를 툭툭 털며 아르만을 보았다.

“아르만 아저씨, 여긴 매일 이런가요?”

아르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상황에 단련이 되어서인지 그리 불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이곳 지하에 온천이 엄청난 압력으로 흐르고 있단다. 어쩔 때는 수십 가론의 높이로 치솟을 때도 있지. 오늘은 좀 괜찮구나.”

아르만의 말을 듣고서 클루토는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나서 그는 리카를 흘끗 보았다. 리카의 성격상 소리치지 않을 리가 없어서였다. 그러나 리카는 잠자코 걷고 있었다.

“괴물들이 통 나오지 않는군. 심심한데…?”

계속 주위를 둘러보며 리오가 중얼댔다. 히드라 다음부터는 괴물들이 한 마리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서였다. 좋은 일이었지만 리오는 그것이 더 불안했다.

계속 걸어 나가자 증기가 옅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차가운 고원의 공기가 일행을 반겨주었다. 리오는 좀 낫다는 듯 한숨을 쉬어 보았다. 다른 일행들도 차라리 차가운 것이 낫다는 표정이었다.

“자, 계속 가자.”

클루토는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일행이 다섯밖에 없는 것이었다. 곧 그의 눈이 경악으로 가득 찼고 클루토는 소리치기 시작했다.

“리오! 큰일 났어요, 큰일!!”

리오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클루토를 바라보았다.

“큰일? 무슨 일이야 클루토.”

“키세레 수녀님이 사라지셨어요! 이럴 수가…!!”

리오와 일행도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아차! 아까 키세레님이 피곤하시다며 제 뒤로 가셨는데… 설마 그때?!”

아르만은 당황하며 아까전에 일어난 일을 말했다. 리오는 인상을 쓰며 간헐천 지역을 쳐다보았다.

“아르만, 여기서 마을까지 얼마나 걸리나?”

아르만은 여전히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거의 다 왔으니까 대략 한 시간 정도면….”

리오는 푸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좋아, 내가 그 피곤한 아줌마를 모시고 뒤따를 테니까, 자네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먼저 가주게, 알았지?”

“어, 그러다가 리오가 안 오면….”

걱정이 담긴 말투로 클루토가 말하자 리오는 클루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불길하게시리! 나를 못 믿냐. 걱정 말고 한 시간 내에 마을에나 무사히 가줘. 넌 나만 걱정되니?”

클루토는 머리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카와 머셀은 리오에게 잘 갔다 오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리오는 간헐천 쪽으로 다시 뛰어갔다.

“키세레님은 걱정이 없으시겠어….”

뛰어가는 리오의 뒷모습을 본 아르만은 중얼거리며 아이들과 함께 마을로 향하였다. 아이들은 가면서 뒤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아앗…!”

키세레는 발목을 쓰다듬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떨어질 때 발목을 다친 것이었다. 기도력을 집중시키자 발목 부위에서 흰 빛이 머물렀다. 그리고 우두둑 소리와 함께 발목은 깨끗이 치유가 되었다. 하지만 피곤함은 가시지가 않았다.

“…나아진 것 같았는데.”

그녀의 저혈압 증세는 리오가 치유를 해준 뒤부터 말끔히 나아져 있었다. 키세레는 물론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가슴이 상쾌해졌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체력만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보다도 먼저 지치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근데, 여기는 어디지?”

모자를 고쳐 쓰며 키세레는 자신이 떨어진 곳을 둘러보았다. 꽤 넓은 동굴이었다.

“빠져나가는 게 좋겠어. 하지만….”

너무나 높았다. 그리고 동굴의 벽도 올라가기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엄청나게 점프력이 좋거나, 곤충처럼 벽에 달라붙어 자신의 체중을 지탱할 수 있거나, 날 수 있지 않는 한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다른 길이 있을까….”

키세레는 주문을 외워서 구체를 만들어 내었다. 빛의 구체는 동굴의 내부를 환하게 비춰주었다. 구석의 틈새로 통로가 보였다.

“저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으면….”

그녀는 통로로 향하면서 십자가를 자신이 떨어졌던 곳에 떨어뜨려 놓았다. 만에 하나, 느낌 좋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서였다.


리오의 눈은 비취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특수 능력 중에 하나인 `적안(赤眼)’이었다. 증기로 가득 찬 지역에서 사람을 빨리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시각적으로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그러나 가시광선이 아닌 적외선을 보는 눈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색으로 보이진 않지만 전혀 굴절되지 않는 시각을 가질 수 있으니 악조건하에서의 수색에는 다른 것이 필요 없었다.

“제기랄, 어디로 빠진 거지?”

리오는 다시 얼굴에 흐르는 물방울을 닦아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빠질 만한 큰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더운 증기가 또다시 리오의 얼굴을 때렸다.

“두고 갈 수도 없고, 젠장….”

리오는 다시 길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 나갔다.


“후우…. 점점 더워지네?”

키세레는 방한복을 벗어 옆에 낀 후 다시 동굴을 헤쳐 나갔다. 끝이 거의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녀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동굴이 아래쪽으로 나 있다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녀의 얼굴에도 불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결국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키세레는 발길을 돌렸다.

후우우우우―

“음?”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숨소리에 가까운 바람 소리였다. 뒤가 섬뜩해진 키세레는 발을 빨리했다.

후우우우우―

소리가 계속 가까워졌다. 발걸음을 빨리하면 할수록 소리도 점점 가까워졌다. 키세레는 손을 앞으로 모았다.

“5급 성호막…!”

발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발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동굴이 울려왔다. 키세레는 뛰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괴성과 함께 누군가가 키세레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동굴의 천장에서 흙이 떨어져 내렸다.

“!”

키세레의 등에 강한 충격이 왔다. 성호막 덕분에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앞으로 굴러야만 했다. 그녀는 쓰러진 채 뒤를 돌아다보았다.

“꺄―악!!”

괴물이 그녀를 향해서 침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끔찍스럽게 생긴 생물이어서 구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온몸이 녹아내린 듯이 생긴 형태에 내장 기관도 비어져 나와 있었다. 점액까지 흘러내렸다.

“으윽…!”

키세레는 입을 막으며 계속 뛰었다. 그 괴물도 그녀를 쫓기 시작했다. 거리를 벌려 놓으려고 갓 핸드의 주문을 썼으나 이상하게도 괴물에게는 아무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퍼억!

“아앗!”

키세레는 앞에 무언가 단단한 물체에 부딪혀 뒤로 넘어졌다. 아픈 곳을 문지를 새도 없이 그녀는 일어섰다. 그리고 물체는 밀치고 가려 했을 때 그녀의 손에 집힌 건 거친 질감의 헝겊이었다. 그녀는 움찔했다.

“뭐해요….”

키세레는 사람의 말소리가 물체에서 들려오자 정신을 가다듬고 그것을 보았다.

“리, 리오?!”

리오는 한심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키세레는 갑자기 나타난 리오의 앞에 손가락을 교차시키며 주문을 외웠다. 제령의 주문이었다. 리오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사람 진짜 못 믿네…. 환각이 아니라니까요, 진짜 나에요.”

키세레는 뚫어지게 리오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진짜…에요?”

리오는 그녀의 오른손을 살며시 잡아 손바닥을 핀 후, 다시 자신의 오른손을 키세레의 오른손 바닥에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손을 빼려고 했던 키세레였지만 손바닥에 오는 차가운 감촉에 그대로 있었다. 리오가 덮은 손을 들자 그녀의 손에는 작은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이것 덕분에 찾을 수 있었어요. 자, 그건 그렇고 뭐에 쫓기는 것 같던데….”

“쿠워어어어―!!”

리오가 말을 채 하기도 전에 괴물은 기형으로 생긴 입을 벌리며 둘의 앞에 나타났다. 리오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 괴물을 쳐다보았다.

“[에누오]잖아?!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괴물의 정체를 아는 듯 중얼대며 리오는 키세레를 자신의 뒤로 돌렸다.

“내 뒤에 꼭 붙어 있어요, 이번에도 싫다고 그러면 책임 안 질 거요. 알았죠?”

키세레는 아무 말 않고 리오의 뒤로 몸을 돌렸다. 리오는 왼손가락을 교차시키며 주문을 외웠다.

“성스러운 힘이여, 내 검에 힘을 부여해주소서! 마법 검, [홀리]!!”

흰색의 빛이 검을 감쌌고 디바이너는 이내 흰색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갓 핸드를 사용했죠?”

“예….”

키세레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갓 핸드도 성스러운 마법이긴 한데, 마법의 힘으로 공기를 조종하는 것뿐이라서 저 녀석에게 타격을 입힐 수 없어요. 마법은 1급 마법 홀리의 경우만 피해를 입힐 수 있죠. 상당히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놈이라서….”

리오는 자세를 취하며 에누오를 쏘아보았다. 에누오도 쉽사리 리오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디바이너에서 느껴지는 성스러운 힘 때문이었다.

“자, 와라. 비극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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