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700화
지상에서 한창 복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은 햇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하늘을 뒤덮은 대선단을 올려다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또다시 끔찍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들의 터전이 또 얼마만큼 파괴를 당할 것인가….
그러나, 사람들의 염려와는 달리 드래고니스 사령실 안은 이상할 정도의 침묵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모니터에 모습을 드러낸 동룡족의 주룡, 쥬빌란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바이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모니터 안의 쥬빌란에게 물었다.
“… 무기한 휴전 및 동맹…? 도대체 무슨 저의지?”
그러자, 쥬빌란은 옅은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저의라 하시면 너무나 유감스럽군요. 그러나, 한가지 확실히 밝혀 드리는 것은 지금의 제의가 당신에 대한 굴복이나, 또 당신이 말씀하신 불미스러운 ‘저의’가 담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 다만 제 동생인 리디아의 안전이 염려스럽고, 두 종족의 찬란한 미래가 염려스러웠기 때문에 당신께 그 제의를 드리는 것입니다.”
“… 무슨 소린지 확실하게 말하도록. 왜 리디아의 안전이 왜 염려스럽고, 또 두 종족의 찬란한 미래가 왜 염려스러운지…!”
“… 메타트론의 계획 때문입니다. 메타트론은 지금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모두를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와카루 박사의 힘까지 빌려 예언서에 막연히 ‘파괴신’으로 규정된 존재를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와카루 박사는 단순한 인간으로 규정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존재이며, 저희 동룡족 정보대가 모은 정보에 의하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배반의 배반을 거듭하며 자신의 목적을 추구한 악인입니다. 만약 저의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 드릴 것입니다.”
그러자, 바이칼은 묵묵히 눈을 감으며 고민에 빠졌고 휀은 이번 일만큼은 관여하지 않으려는 듯 사령실 밖으로 나가 조용히 담배를 물었다. 한참 동안 고민을 하던 바이칼은 다시 쥬빌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 난 몇 달 전 그대들이 행한 용신제 직후의 기습 작전을 당한 이후 그대들을 별로 믿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언제 내 뒤를 칠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고로, 그대들이 나에게 예전의 일을 잊을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줄 수 있다면 난 그 즉시 그대들의 제의를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
쥬빌란의 얼굴에선 조금씩 미소가 사라져갔다. 곁에서 바이칼과 쥬빌란의 반응을 지켜보던 장로는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나 단지 자신들의 피가 반씩 섞은 동생이 있다는 이유로, 또 양 종족의 우두머리라는 이유만으로 싸워야 하는 두 젊은이의 운명에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비상 대기하고 있는 웨드 파일럿들의 턱 아래에 땀이 맺히고 강습 수송기 안에서 자신들의 무기를 매만지고 있는 전룡단 단장들이 침을 계속 넘길 무렵, 쥬빌란은 눈을 감은 채 미소를 띄우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 당신이 제의를 받아들이신다면, 전 이번 전투를 마지막으로 주룡의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
순간, 바이칼의 눈은 크게 떠졌고 드래고니스 사령실 내부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론 동룡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참 동안 모니터 안의 쥬빌란과 시선을 맞대고 있던 바이칼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휙 돌려 버렸고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쥬빌란에게 말했다.
“… 흥, 재미없는 대답이군. 그딴 건 필요 없으니 앞으로 한 시간 내에 칠두지룡을 드래고니스에 접근시키도록. 그 시간을 어기면 우린 즉시 사격을 개시하겠다.”
그러자, 장로와 쥬빌란의 얼굴엔 동시에 화색이 돌았고 쥬빌란은 빙긋 웃으며 바이칼에게 감사를 표했다.
“… 감사합니다 서룡족의 제왕이시여. 그럼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통신이 끊긴 직후, 장로는 곧바로 바이칼에게 다가가며 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사령실 내부의 오퍼레이터들은 비상 해제 신호를 전 함대에 보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아직 진짜 상대가 남아있었지만 서룡족으로선 동룡족이 적이 아닌 아군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늘방석에서 침대로 자리를 옮긴 것과 같은 정신적 안정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마마, 정말 대견하시옵니다!! 이제까지 단 세 번밖에 체결되지 않은 양 종족의 동맹을 마마께서 또 한 번 이루시다니, 이 일은 서룡족, 아니 전 용족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며 브리간트님께서도 상당히 기뻐하실 일이옵니다!!”
그러나, 바이칼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 흥, 난 뭐든 처음이 아니라면 재미없소. 어쨌거나 저들을 맞을 준비나 해 주시오 장로. 쳇, 낮잠을 잘 시간인데….”
바이칼은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사령실 밖으로 나섰고, 장로는 곧 통신병에게 가까이 다가가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 . . . . . . . . .
“요오, 이게 진짜란 말이지? 진짜 잘 됐는데!!!”
지크는 무엇이 그리 신이 나는지 동룡족과의 동맹을 대 찬성하는 듯했고, 그의 반응과 마찬가지로 리오 역시 찬성을 했다.
“음음… 근거리 공격에 강한 서룡족과 원거리 공격에 강한 동룡족이 연합을 한다면 아무리 원·디바인 크루세이더라 해도 쉽게 이쪽을 이길 수는 없을 거야. 물론 서룡족의 전룡단과 같은 수준의 특수부대가 동룡족엔 적다는 것이 문제지만…. 어쨌든 우리로선 대 환영이지.”
회의실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둘과는 달리, 휀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동룡족 측의 수뇌부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지크는 마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손가락을 비비며 안절부절했고 지크의 그런 모습을 본 리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근데 너 뭘 기다리는 거야? 동룡족 수뇌부 사람들에게 뭘 꿔 준 것도 아닐 텐데….”
“… 후훗, 황새의 큰 뜻을 참새가 어찌 알리오. 그 올파드 아저씨를 만나면 반드시 배울 거야. 그 교차식 이도류의 비밀을…!!”
“… 아아, 그렇겠군. 너나 올파드 모두 도검술을 쓰니 기술이 뛰어난 올파드에게 네가 배울 것도 있겠지. 하지만 그의 교차식 이도류는 의외로 쉬운 건데….”
“… 뭐라? 그럼, 너 그거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는 거야?”
“흐음… 대충은. 하지만 실전에 응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눈에 익혀두기만 하고 있어. 사용하는 검부터 차이가 나고 게다가 난 두 팔이 멀쩡하잖아.”
“… 이 녀석!!! 가르쳐 줘!!!! 너에 대한 비밀을 여자들에게 말하지 않을게!!!!”
“이, 이봐. 난 수치스러운 비밀 따윈 없다고.”
둘이 한참 투닥거리는 동안, 쥬빌란을 비롯한 동룡족 수뇌부가 제궁에 도착했다는 신호가 들어왔고 곧 휀은 눈을 뜨며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아더에게 물었다.
“전하. 전하께선 이번 동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산용 복장을 벗고 오래간만에 정식 복장을 입은 아더는 여유 있게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음, 이번만큼은 믿어도 된다 생각하네. 게다가 미지의 적으로서 이번 작전에서 지명했던 적이 아군이 된 만큼 이쪽으로서도 환영할 일이지. 이제 숫적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이쪽이 유리하니 전투의 결과는 아마 메타트론과 와카루가 있을 마지막 장소에서 완전히 결판날 걸세. 그 마지막 장소에서의 승패는 가즈 나이트, 자네들에게 달려있으니 자네도 이제부터 마지막 장소에서의 전투를 고민하는 게 좋을 걸세.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동맹을 말일세.”
“…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휀이 말이 끝나자마자, 곧 바이칼과 함께 동룡족 수뇌부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고 바이칼과 함께 쥬빌란이 나란히 앉은 것을 시작으로 서, 동룡족 역사상 네 번째의 동맹 회의는 시작되었다.
※※※
“뭐라고? 자네 지금 팔과 손만으로 여덟 개의 검을 동시에 사용하겠다고 했나? 허헛, 그런 무모한 짓을…. 나도 두 개의 칼을 동시에 쓸 때 그러진 않는다네.”
회의가 끝난 후 올파드에게 교차식 이도류의 방법을 묻고 자신의 방법을 말하며 해결책을 찾으려는 지크는 올파드의 답변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지크를 바라보던 올파드는 곧 자신의 손을 펴 보이며 지크에게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잘 듣게. 도검이라는 것은 형태상 뽑을 때의 속도가 리오나 다른 가즈 나이트들이 쓰는 소드 계통의 검과는 다르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뽑을 수 있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자네가 만약 열 개의 칼을 동시에 사용하겠다고 하면 난 그냥 웃고 말지 이렇게 설명을 하진 않네. 물론 자네의 손가락이 여섯 개씩 열두 개였다면 모르지만 말일세. 내 이론상 분명 자네가 개발하고자 하는 교차식 팔도류는 가능하다네. 왜냐, 인간과 용족의 손가락은 다섯 개씩 열 개니까.”
그 순간, 지크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굳어졌고 올파드는 이해가 빠른 청년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올파드는 아직 지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흐음…. 아, 아무래도 자네에겐 실습이 더 빠를 것 같군. 자, 나와 함께 칠두지룡으로 가세. 내가 외팔이어서 여덟 개의 칼은 사용할 수 없지만 네 개의 칼은 사용해 보일 수 있을 걸세. 물론 좀 느리겠지만.”
“오, 그래요? 하핫, 그럼 진작 그렇게 해 주시지. 자자, 어서 가요 아저씨.”
지크는 올파드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정답게 걸어가기 시작했고, 올파드는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 지크를 데리고 칠두지룡으로 향했다.
………………. . . . . . . . .
“당신이 정말로 아더왕이십니까? 아아,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제 스승께 말로만 전하에 대한 말씀을 들은 탓에 미처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조촐한 식사를 하는 도중, 바이칼에게 아더에 대한 얘기를 들은 쥬빌란은 그제서야 왜 그 노인이 자신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또 인간이면서 서룡족의 수뇌부가 되어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쥬빌란과 아더의 첫 만남은 바이칼과 아더의 첫 만남보다 훨씬 나은 편이었다.
‘흥, 세상에 어느 누가 전설의 왕이 등산복을 입고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제궁 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생각하겠나. 옷 제대로 입은 지금은 훨씬 알아보기 쉽지.’
바이칼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동안, 쥬빌란과 잠깐 얘기를 나눈 아더는 곧 바이칼과 쥬빌란 둘 모두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동룡족과 서룡족, 두 종족에게 평화와 타협이란 단어는 사실 계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사라진다네. 하지만 자네들이 알다시피 변방에 있는 작은 마을들은 아무리 두 종족이 붙어있다 하더라도 싸움이 일어나는 일은 없지. 아니, 오히려 친하게 지내지. 물론 지금 자네들에게 영원한 평화와 타협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세. 이것은 신룡 브리간트님께서 자네들 종족에게 내려 준 가혹한 운명이니까. 하지만 잘 알아두게. 브리간트님께서 그런 운명을 자네들에게 내려주신 이유는 살아있는 생물 중에선 최고인 용족이 다른 타 종족에게 최고의 지위를 넘기게 하지 않게 하려는 깊은 뜻이 담긴 것이니까 말일세. 선의의 라이벌이라는 것은 서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거든.”
“….”
“자네들은 오늘 최고의 선택을 해 주었네. 비록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건을 계기로 두 종족이 이곳에서 싸움을 벌이긴 했지만, 그 싸움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힘을 합하기로 했으니까. 젊기 때문에 자존심이 기 뭐고 다 버리고 그랬을 수도 있지만, 분명 오늘의 일은 잘못된 것이 아닐세. 자네들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나.”
아더의 말을 듣고 있던 바이칼은 순간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옆으로 털며 퉁명스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흥, 요구를 받아준 제 쪽이 더 자랑스러운 것 아닙니까.”
그러자, 쥬빌란은 바이칼에게 시선을 돌린 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용제님, 쓸데없는 말씀으로 힘든 일을 결정한 제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 말 다했나?”
“당신과 저는 동급. 밑질 것은 없다 생각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갑자기 풍겨오는 전의에, 아더는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하며 둘을 제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더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두 사람이 아직 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