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704화
“에릭튜드는?”
“주인에게 돌려주고 왔다.”
“‥크큭, 하긴. 넌 플랙시온 하나만으로 충분하겠지.”
“그렇지도 않다. 어차피 그 검은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무슨 소린가.”
“‥알게 된다. 전투에나 신경 쓰도록.”
<………………… . . . . . . . .>
차원 결계 내부의 적 기지 상공. 리오가 타고 있는 화이트 나이트는 결계 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전투를 개시한 상태였다. 적의 숫자는 일순간 리오를 아찔하게 만들 정도였고 하이드로 레이저 라이플을 꺼낼 틈도 없이 적들은 리오를 향해 밀려들어 왔다. 오로지 두 개의 오리하르콘 소드에 의지해 적들을 자르던 리오는 결국 콕핏 내에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후, 휀이 왜 날 공중으로 내몰았는지 이해가 가는군. 끝이 없잖아 빌어먹을. 좋아, 그렇다면‥!!!”
일순간 검기를 발휘해 상당량의 적들을 몰살시킨 화이트 나이트는 오리하르콘 소드를 접은 뒤 자유로워진 왼손을 불끈 쥐며 마법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사실, 모든 TDS 방식의 웨드들은 사용자가 마법을 사용하길 원한다면 특별한 요구 사항 없이 마법을 기동시킬 수 있었다. 마력 증폭기가 달린 웨드의 경우 그 효과는 극대화가 되지만 아쉽게도 화이트 나이트엔 마력 증폭기가 달려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즈 나이트의 모든 것들을 소화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화이트 나이트는 백점 만점의 기체였다.
이윽고, 화이트 나이트의 앞엔 플레어의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물론 바이오 버그들이 그 틈을 놓칠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괴성과 함께 이빨과 손톱을 앞세워 화이트 나이트에게 돌진해 왔으나, 불행스럽게도 플레어의 마법진 완성 속도는 거의 일순간이었다.
“가랏–!!!!”
리오의 일갈과 함께, 화이트 나이트 앞에 생성된 마법진에선 진홍색의 거대한 빛이 전방을 향해 분출되기 시작했고 그 영향권 안에 들어있던 모든 바이오 버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며 플레어의 빛이 지닌 가공할 열에 의해 산산이 휩쓸려 갔다. 곧, 거대한 폭발이 기지 상공 일부를 뒤덮었고 주위를 일단 깨끗이 청소한 화이트 나이트는 나머지 오리하르콘 소드마저 접은 뒤 양 손에 하이드로 레이저 라이플을 들고 다시 밀려오는 바이오 버그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대량의 적을 일일이 검으로 상대하느니 마법 플레어 이상의 높은 위력을 지닌 하이드로 레이저 라이플로 적들을 한꺼번에 밀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그 편이 탑승자의 체력을 위해선 더 좋은 길이었다.
<※※※>
“어이, 뻗침 머리!! 너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 들지 않냐!!!”
“이불 속에 드러누워 자고 싶다 바람난 얼간이!!!”
지크와 사바신은 정말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이렇게 대량의 적과 싸워 보긴 그들 역시 처음이었고, 보기도 싫은 바이오 버그의 체액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30분이 넘게 싸워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나에게는 수건이 필요해!!!! 넌 내 심정 알고 있겠지!!!!!”
지크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 그러자 사바신은 눈을 번뜩이며 영룡으로 주위의 바이오 버그들을 쓸어버린 뒤 지크에게 소리쳤다.
“핵폭탄 안고 녀석들과 키스하고 싶다 이 자식아!!!”
일순간 허공에 그어진 수십 개의 검광. 역시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로 바이오 버그들을 쓸어버린 지크는 장갑으로 얼굴에 묻은 체액을 닦으며 사바신에게 소리쳤다.
“너 오래간만에 멋진 말을 하는구나!! 지크 인용구에 넣어주지!!! ‥이봐!!! B급 녀석들이 몰려오는데, 뻑 가는 소리 한마디 해 보시지!!!!”
“좋아!!! 너희들이 B냐!! 난 F다!!!!”
“…….”
“‥미안.”
사바신은 분위기가 흐려진 것을 느꼈는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고 지크는 한숨을 후우 내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한편, 그들이 그러는 동안 B급 바이오 버그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며 포효를 하기 시작했고 그 포효 소리를 들은 지크는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무명도를 다시 잡으며 사바신에게 말했다.
“‥이제 진짜로 가 볼까. 장난할 타임은 끝난 것 같군.”
“흥,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군. 그냥 놀던 대로 노시는 게 어떤가.”
둘은 그렇게 말하며 서로의 주먹을 살짝 부딪혔고, 그 직후 몰려오는 바이오 버그들을 향해 대시하기 시작했다.
“없애주마 벌레 같은 녀석들!!! 바람이여, 폭풍이여, 대지를 뒤덮은 천공이여!!!”
지크의 몸은 곧 엄청난 양의 기풍력에 휩싸여 갔고, 지크가 뭔가 하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바신은 지크의 뒤쪽으로 돌아가 그의 백업을 맡았다.
“지금, 그 강대한 힘으로 내 앞의 적을 부수고 찢어라!!!! 신식!!! 극풍–!!!!”
지크의 몸을 휘감고 있던 기류는 일순간 그의 오른손에 압축되었고, 그의 내뻗는 동작에 맞추어 귀곡성에 가까운 굉음을 일으키며 바이오 버그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지크의 손바닥 모양을 갖춘 채 날아가던 기류 덩어리가 바이오 버그 한 마리에게 적중한 순간, 사방 수십여 미터 내에 있던 모든 바이오 버그들은 마하 단위의 폭풍에 휘말리며 갈기갈기 찢어지기 시작했다. 범위 바깥에 있던 바이오 버그들도 일부는 그 폭풍에 빨려 들어가기도 했다. 지크의 신 기술 중 하나인 극풍의 놀라운 위력을 본 사바신은 휘파람을 휘익 불며 지크에게 소리쳤다.
“호오, 죽여주는데!!! 그런데, 꼭 그렇게 길게 말해야만 나가는 기술이냐?”
“멋있잖아. 자, 너도 한번 멋진 거 보여줘 봐!!! 관람료는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하핫, 기다리고 있었다!!!!”
사바신은 곧 영룡을 땅에 박은 후 자신의 양손을 모아 염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고, 그의 염력이 급격히 올라감에 따라 주위의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 지크는 움찔하며 사바신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의 강력한 기술이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든 탓이었다.
“주문은 생략!! 토룡(土龍)–!!!!”
염력이 응축된 주먹으로 사바신이 지면을 내려친 순간, 무언가 기분 나쁜 생각이 든 지크는 공중으로 몸을 띄웠고 사바신 역시 영룡을 잡고 공중으로 높이 뛰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사바신이 내려친 지면을 중심으로 수십 미터의 지면이 순식간에 흙으로 변할 정도의 진동에 휩싸여 갔다. 물론 그 범위 내에 든 바이오 버그들의 몸 역시 부숴진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하하하핫–!!!! 어떠냐, 이 사바신님의 힘이!!!!”
“이 자식, 나까지 죽일 뻔 했잖아!!!! 그런 기술이라고 말을 해 줬어야지!!!”
하지만, 둘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바이오 버그들이 또다시 무더기로 둘에게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바신과 지크는 정말로 울고만 싶었다.
<※※※>
“제 이름은 넬슨. 더 이상 당신들을 안쪽으로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슈렌과 레디 쪽은 수비하는 저급 바이오 버그들이 거의 없었기에 어렵지 않게 기지 근처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기지 입구 쪽에 인간형 바이오 버그 하나가 팔짱을 낀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슈렌은 그 바이오 버그가 피부색과 구성 물질만이 인간과 다를 뿐, 다른 건 인간과 같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바이오 버그는 놀라운 사실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지크가 이쪽으로 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군요.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의 말에, 슈렌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에게 물었다.
“‥이유라도 있나.”
그러자, 넬슨이라는 바이오 버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대답했다.
“지크‥그는 ‘J 계획’의 첫 성공체로서 만들어진 바이오 로이드입니다. 저와 ‘헤럴드’는 실패작으로 버려졌으나 MOTHER에게 구조되어 강화가 된 행운아들이죠. 전 그저 ‘완전체’를 만나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 순간, 슈렌과 레디의 얼굴은 굳어지고 말았고 슈렌은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거짓말.”
그 말을 들은 넬슨은 고개를 저으며 덤덤히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증거로 J-001로 이름 붙여진 그에게 지크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은 J 계획에 참여하고 있던 처크·캔트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J 계획이 중간에 취소되자 제거 대상이 된 지크를 급히 고아원에 입양시켰고 그 후 자신이 다시 그 아이를 되찾으면서 J 계획에 대한 모든 것을 베일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지크가 바람 대신 자기 자신의 힘‥바이오 로이드의 힘인 기전력을 썼다는 것인가. 그전까지.”
“‥일명 기전력이라 불리는 그 생체학적 전류 발생 현상은 바이오 로이드가 가진 특별한 구조의 근육이 필요 이상의 긴장 상태가 될 때 전류가 발생하는 것일 뿐입니다.”
넬슨의 얘기를 들은 슈렌은 오른손에 든 그룬가르드를 왼손에 옮겨 든 뒤 눈을 감으며 넬슨에게 다시금 물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누구 누구인가.”
“저와 제 형제 헤럴드. MOTHER, 그리고 와카루 Father입니다. 처크·캔트도 끼어야 하겠지만 그는 죽었으니 빼야 하겠‥지요.”
넬슨은 중간에 잠시 말을 흐리고 말았다. 바로 슈렌에게서 느껴지는 무서운 기운 때문이었다. 슈렌에게서 이런 정도의 살기가 느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레디 역시 상당히 당황하고 있었다. 슈렌은 그룬가르드의 끝을 오른손으로 잡은 뒤, 아랫 쪽으로 약간 비틀며 레디에게 말했다.
“지금 이 일은 누구에게도 비밀이다, 레디. 지크에게만은 절대 말하지 말아줘. 부탁이다.”
“응? 아, 알았어.”
“‥알고 있는 자는 네 명뿐인가. 그럼 너부터 없애도록 하지. 그 스토리를 알기엔 지크는 너무 감수성이 높거든.”
그러자, 넬슨은 피식 웃으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째서인지 전 알 수가 없군요. 고작 바이오 로이드 한 명의 마음을 그렇게 감싸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슈렌은 대답 대신 일차적으로 그룬가르드에서 수라도를 빼 들었고, 사방으로 개방된 화염의 기운에 레디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수라도를 든 슈렌은 곧 눈을 부릅뜨며 넬슨에게 말했다.
“너에겐 고작 바이오 로이드겠지만, 나에겐 형제다. 그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