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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72화


“굉장한 검인데 그래!”

리오는 감탄하며 검을 두어 번 허공에 휘둘러 보았다. 중심도 잘 맞고 가벼웠다. 미스릴 은으로 만들어진 검이라 약간의 마력도 가진 듯했다.

“태라트님은 장검을 좋아하시죠. 그분에 맞춰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걸렸나?”

“3개월쯤입니다. 원래 만들고 있던 검이라 마무리만 하면 되었지요.”

리오는 검을 보자기에 다시 싸면서 슬며시 물었다.

“파라그레이드는 꽤 오래 걸렸다지…?”

족장은 놀란 눈으로 리오를 쳐다보았다.

“아니, 어떻게 그것을…?!”

빙긋 웃으며 리오는 족장을 바라보았다.

“아르만이 나에게 자랑하더군. 내 디바이너에 대항할 수 있는 오리하르콘제의 검이라고 말이야. 그건 그렇고, 오리하르콘은 어디서 구했나? 구하기 어려운 금속인데…?”

족장도 웃으며 대답했다. 아주 먼 옛날을 회상하는 듯 그는 의자에 앉아 눈을 살며시 감았다.

“제가 여덟 살 때 일입니다…. 옛날에 제가 있던 마을의 뒷동산에 이상한 운석 하나가 떨어진 일이 있었답니다. 푸르스름한 광택의 금속이었죠. 저희 아버지께선 그 금속을 보시고 뛸 듯이 기뻐하셨답니다. ‘이것이 바로 오리하르콘이란다 얘야’라고 하시면서요. 그리고서 그때부터 아버지와 전 그 금속을 가지고 세계 최강의 검을 만들기로 마음먹었고, 그 일을 시작했지요. 몇 년 후 리오님의 디바이너를 보고 전 사실 경악을 금치 못했답니다. 오리하르콘으로 만들고 있는 우리 부자의 검보다 더 강한 검이 존재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리오님이 떠나신 날부터 전 80여년 동안 그 검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파라그레이드가 태어난 거죠. 하지만… 디바이너나 다른 여러 강검들을 따라올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이 있었던 거죠.”

“…….”

리오와 족장의 얘기는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리오는 족장의 집을 나서서 아르만의 집으로 향했다. 홀가분한 표정을 리오는 짓고 있었다. 중간에 리오는 다 떨어져 가는 나무 안내판을 볼 수가 있었다. 그는 안내판의 먼지를 털어가며 희미해진 글씨를 읽었다.

“여신의… 성지…?”

리오는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무 덩굴이 무성한 누군가의 무덤이 나타났다. 주변은 누군가에 의해서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었다. 제단도 있었다. 리오는 무덤의 앞에 있는 비석을 보며 잠시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레나…!”


드워프의 마을을 이리저리 구경하며 돌아다니던 키세레는 한쪽에서 놀고 있는 드워프 아이들을 잠시 동안 보고 있었다. 열 살이 넘었을 자신의 동생이 잠시간 떠올려졌다.

“잘 있을까…. 티퍼는.”

아버지의 뜻이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옆집의 남자친구와 수도를 떠난 것이 항상 후회되는 그녀였다. 그 후 불의의 사고로 남자친구는 목숨을 잃었고 자신만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자신이 누구라는 걸 자신도 부정한 채 그녀는 나이도 속이고서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원장은 그녀의 뛰어난 소질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수녀로서 인정해주지는 않았다. 그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고 키세레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라.”

쓸쓸히 웃으며 키세레는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녀가 나온 또 다른 이유는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게 꾸며졌다는 여신의 성지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지를 못하던 그녀는 결국 한 드워프 노파에게 그곳을 물었다.

“여신의 성지? 그곳이야 바로 저기에요. 20여년 전 여신이 떠난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긴 했지만 족장님은 무슨 정성인지 계속해서 아름답게 꾸미시더군요. 결국 우리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되긴 했지만요. 내가 듣기론 100년 전에 누군가가 그곳에 묻혔는데, 여신으로 환생해서 이 마을 사람들을 위로해주기 시작했다는군요. 저도 그 여신을 직접 보았구요. 정말 굉장한 미인이었어요, 에메랄드빛 머리결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우.”

키세레는 노파에게 인사를 하고 노파가 가르쳐준 곳으로 향했다. 나무 덩굴과 거기에 피어난 색색의 꽃들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과연 대단하네…? 드워프의 솜씨는 역시….”

구경을 한참 하고 있을 때 리오가 다른 출구로 빠져나가는 것을 키세레는 볼 수가 있었다. 그녀는 리오가 나왔던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는 묘지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누구의 무덤인데 그러지?”

그녀는 천천히 비문을 읽었다.

<레나・슈리케이트 이곳에 잠들다. 포프가스 공국력 297년>

키세레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비석에 적힌 공국에 대해 생각했다.

“포프가스 공국이면 가이라스 왕국 전에 존재했던…? 그러면 이 묘지는 100년이 되었다는 뜻인데?”

키세레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어서였다. 아르만의 집에 돌아가자 일행은 다시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싫다는 표정이었지만 시간이 촉박한 지금의 상황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출발이에요?”

“예, 키세레님도 빨리 준비하세요.”

물품을 가방에 넣으며 리오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키세레에게 말했다.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나요?”

“아, 있어요 키세레님!”

클루토가 키세레의 말을 듣고서 생각이 났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허브를 좀 사야겠어요. 아르만의 부모님께서 고원 너머의 마을에선 허브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하셨거든요.”

마침 아르만이 문을 열고 작은 가죽제 상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바로 허브였다.

“허브는 준비했어 클루토. 이제 가는 일만 남았단다.”

아르만의 복장을 본 클루토는 깜짝 놀랐다. 마을을 들어왔을 때와 복장이 같아서였다.

“어, 아르만 아저씨도 같이 가실 건가요?”

아르만은 상자를 가방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난 저항군을 도와서 싸울 거야. 이 마을의 젊은이 몇 명도 가담했단다. 난 좀 늦은 거라고.”

리오는 헝겊에 싼 장검을 배낭의 덮개에 끼워 넣었다. 리카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 그건 뭐야 꺽다리?”

“장검이야, 태라트님을 만나면 전해달라고 족장님께서 부탁하셨어.”

리오는 장검을 꺼내어 리카에게 줘 보았다. 리카가 다루기엔 너무 긴 것이 흠이었지만 무게가 가벼워 휘두르기엔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리카는 고개를 저었다.

“태라트님께 전해달라고 부탁하신 거잖아. 내가 함부로 쓸 순 없어.”

리오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장검을 다시 받아 헝겊에 쌌다. 클루토와 리카, 이 두 아이들은 짧은 기간 동안 정신적으로 성장했다고 리오는 생각했다. 둘은 그리 느끼고 있질 못했지만…. 리오는 이상한 뿌듯함을 느꼈다. 짐을 다 챙긴 일행은 곧바로 아르만의 집을 나섰다. 아르만의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이 일행을 마을 밖까지 배웅해주었다.

마을을 나서서 북쪽으로 길을 따라 조금 걷자 일행의 앞에는 고원의 출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래저래…, 도착했군.”

리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다른 일행도 같이 해 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몇 일의 날짜가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그들은 싸워왔다. 생사의 위기를 극복하며, 동료들에 대한 믿음을 더욱더 굳혀가며….

“……!”

리오는 두 손으로 망토를 크게 펄럭였다. 그리고 뒤로 돌아선 그의 손에는 어느새 디바이너가 들려 있었다.

“좋아하기엔 이른 것 같다 친구들…!”

“예?!”

일행은 리오가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채찍을 든 한 사나이가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고원을 내가 맡은 뒤로 무사히 통과한 사람은 너희들이 처음이다. 설마 히드라까지 죽일 줄이야…!”

그 사나이의 목소리가 일행의 귀에 울려 퍼졌다. 전음의 일종이었다. 사나이는 절벽의 아래로 내려왔다.

“빌려온 골렘 일곱 마리까지 통과했다는 걸 듣고 난 솔직히 놀랬다. 그 정도로 너희들이 강할 줄은 상상을 못 했거든?”

리오는 디바이너를 어깨에 대며 비꼬는 투로 사나이에게 말했다.

“간단히 끝내자, 싸구려 조련사. 우리들은 바쁘거든?”

사나이는 리오를 노려보다가 크게 웃었다.

“우하하하! 그럼 빨리 끝내주마, 마침 내 마지막 귀염둥이도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이라고 하거든? 그녀석은 입이 더러운 녀석을 특히 좋아하지, 하하하하하!!”

리오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돋았다. 그러다가 기류가 이상하게 도는 것을 느끼고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거대한 무언가가 그들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으윽…! 뭐지, 이 냄새는?!”

냄새에 민감한 머셀이 코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일행은 하늘에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오고 있는 그 생물을 보았다.

“자, 와라 귀염둥이!! 나의 비장의 카드, 드래곤 좀비다!!”

드래곤 좀비는 곧 거대한 두 다리로 땅을 짚으며 일행의 앞에 위용을 자랑했다. 가죽의 대부분이 썩어가는 듯 검게 변질되어 있어서 블랙 드래곤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브레스나 공격력이 살아있을 때보다 약해져서 5급 정도의 성호막으로도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지는 말라구. 알았지 모두들?”

그렇게 말하며 리오는 주변의 지형을 봐두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리 드래곤 좀비가 살아있을 때보다 공격 능력이나 모든 것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전에 만났던 히드라의 브레스와 앞의 녀석이 내뿜는 애시드 브레스의 위력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신은 모르지만 다른 일행들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은 뻔할 뻔자였다.

`머리부터 날리는 수밖에….’

나름대로 작전을 짠 리오는 조금씩 드래곤 좀비에게로 다가갔다. 물론 기를 모으면서였다. 앞으로 다가갈수록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구우우우….”

바로 코앞까지 접근한 리오를 보고서도 드래곤이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드래곤 좀비는 확실했다. 그를 데리고 온 비스트 테이머도 길길이 뛰고 있었다.

“이 자식! 뭐 하는 거야!! 어서 공격하라고, 다 죽여버리란 말이야!!”

리오는 살짝 날아올라 드래곤의 머리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눈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아직 맑은 눈을 하고 있었다.

“너, 살아있는 거냐?!”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가사 상태의 드래곤에게 좀비의 주문을 건 듯했다. 일행에겐 운이 좋은 것일지 모르지만 드래곤에게는 살아있는 좀비의 고통이었다. 흐르던 피가 멈추고 육체가 썩어가는 고통이란 드래곤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제 육체는 이제 죽어버렸답니다, 너무 시간이 걸리고 말았지요. 하지만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살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태어나지 못하겠지요. 그래서 당신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리오는 아무 말 없이 드래곤을 보았다. 참으로 운이 없는 드래곤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부탁도 있었고…. 그래, 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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