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75화
“놓치지 않을 거야!!”
슈도 그를 뒤쫓아 몸을 날렸다. 바이나는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쉬며 드래곤 킬러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주지 않았다.
“읏?!”
그녀의 목에 노끈이 휘감겨 오더니, 강하게 죄는 것이었다. 뒤에 또 다른 암살자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바이나의 정신이 다시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컥―!!”
피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팔꿈치를 휘둘러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아까 흡입한 최면제 때문에 그러기도 힘들었다. 사람들이 뛰어오는 소리만이 어렴풋이 들릴 뿐이었다.
“기다려! 더 이상 움직이면 네 머리를 날려버릴 거다!!”
란지크와 샤먼이 병사들을 이끌고 마차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암살자는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우리 둘을 구해주지 못해…. 후후후…. 난 세상에는 미련이 없다. 하지만 너는 있겠지? 괴로울 거야, 후후후….”
암살자는 웃으며 뒤로 길게 늘어져 있는 자신과 바이나의 그림자를 보았다.
“자아…, 어서 살려달라고 해 봐. 누가 아나, 그림자가 널 구해줄지. 후후후….”
“크읏…!!”
바이나의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다. 얼굴도 새파랗게 질린 상태였다. 그녀의 동료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거 아나, 변태 양반?”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암살자는 움찔했다. 하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바이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사람들은 확실히 아니었다. 자신의 말을 들었을 리가 없어서였다.
“지금은 정오야, 이 사람아….”
“…헉!!”
암살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쭉하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에서 정체불명의 손이 튀어나와 자신의 척추로 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피할 여유는 없었다.
우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손은 암살자의 척추에 박혔고 미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척추의 신경을 직접 조종하려는 듯했다.
“흐으윽…!!”
암살자의 팔에서 힘이 풀렸고 바이나는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군인들이 바이나를 부축해 의무병에게 넘겨주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본 암살자는 분에 겨워 몸을 떨었다. 란지크와 샤먼을 비롯한 나머지 군인들은 그림자에서 지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지크는 암살자의 귀에 속삭였다.
“자살이냐, 죽음이냐.”
암살자는 이미 살 가능성이 희박했다. 척추가 완전히 늘어나 있어서 정상적인 행동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암살자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죽일 거 아니냐…!!”
답을 들은 지크는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나서 암살자의 척추에 박혀있던 자신의 손을 뽑았다. 그리고… 오른손의 잔상이 암살자를 스쳐갔다. 암살자는 신음 소리를 내었다.
“흐으으…!”
지크의 손에는 이미 푸른색의 반사광을 내고 있는 무명도가 번뜩이고 있었다. 암살자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지크는 마차에서 내려오며 무명도를 집어넣었다.
“육백 칠이식, 일광(日光)―.”
언제 그어졌는지 모를 수많은 검광이 암살자의 몸에서 떠올랐고 그의 몸은 곧 산산이 분해되어 마차의 바닥에 흩어졌다. 그 광경을 본 군인들은 비위가 상한 듯 뒤로 돌아섰고 란지크와 샤먼은 눈살을 찌푸리며 옆에 다가오는 지크를 바라보았다.
“다음부터는 청소하기 쉬운 기술을 좀 써주면 안 되나…?”
지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 바이나는 괜찮아요?”
“응, 목에 가벼운 찰과상이 있을 뿐이야. 나머지는 괜찮아.”
암살자를 뒤따라갔던 슈도 곧 돌아왔다.
“그쪽은 어때요?”
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거의 다 잡았는데…. 예전에 지크의 말처럼 자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돌아왔죠. 지크 쪽은 문제없었죠?”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빨리 갑시다. 휴식도 거의 끝났을 테고 말이죠. 이제 얼마나 남았지 황소 아저씨?”
란지크는 인상을 약간 찡그리고는 대답해 주었다.
“아마, 걸어서 이틀이나 하루 정도? 이틀로 하지, 그 정도야.”
“좋아, 콧수염 아저씨는 병사들에게 출발 신호를 보내줘요. 난 저 마차나 청소하고 있을게요.”
샤먼도 목소리를 깔며 지크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봐, 자네 또 놀면서 갈 생각인가? 청소나 하겠다니…! 지금까지 논 걸 생각하면 식사 당번을 시켜도 할 말이 없을 텐데 말이야.”
지크는 환히 웃으며 샤먼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에이∼ 왜 그러셔, 농담 좀 한 것 가지고. 그렇게 일 시키고 싶으시면 할 일이나 줘요. 뭐 하라고 말도 안 했으면서.”
셋은 너무나도 태연한 지크의 행동에 웃음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 지크를 만났다면 그가 사람을 종잇장같이 자르는 장면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샤먼은 아직 시체가 있는 마차에 손가락을 폈다.
“자, 그럼 마차부터 청소하게.”
“내가 한다고 한 거잖아요.”
“그거부터 하라고.”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루를 가져와 시체를 담기 시작했다. 거리낌 없이 담는다는 게 상상이 가질 않는 장면이었다.
“정이라는 게 없나…?”
슈가 생각하는 리오와 같다고 생각되는 점 한 가지였다. 적과 대면했을 때는 적의 가족 유무를 따지지 않고 일격에 날려버린다. 사람이건 괴물이건 무조건적으로. 게다가 지크의 경우에는 더 심했다. 암살자의 경우에는 만나기만 하면 시체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아무리 냉혹한 전사라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시체를 다 치운 직후. 부대는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디엔가 시체를 묻어 두었는지, 버렸는지는 몰라도 지크는 약간 늦게 군대를 뒤따라왔다. 지크는 샤먼에게 의무병 마차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응? 세 번째 열에 있을 거네. 근데 뭐하게?”
“티퍼가 감기에 걸려 누워있잖아요. 보러 가게요.”
샤먼은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뿐인가?”
“예. 고마워요 콧수염 아저씨.”
지크는 뒷열을 향해 달려갔다. 샤먼은 말 위에 올라선 채 지크를 돌아보았다.
“관심이 없나…?”
밤새도록 고열에 시달리던 티퍼는 슈의 간호 덕분에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여성 의무병 두 명 중 한 명이 티퍼가 일어나자 그에게 다가왔다.
“괜찮니? 더 누워있으렴, 아직 낫지 않았으니까.”
티퍼는 아직 머리가 아픈 듯 고개를 끄덕이며 병상에 누웠다.
“어? 바이나 아니에요?”
그의 옆에는 바이나가 목에 붕대를 두른 채 누워 있었다. 그녀는 의식이 회복되어 마차의 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티퍼가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자 바이나도 티퍼를 바라보았다.
“왜, 꼬마. 난 오면 안 되니?”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무슨 일 있었나요?”
바이나는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엄마하고 만날 뻔했어. 그것뿐이야.”
티퍼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마차 안으로 누군가가 가볍게 뛰어들어왔다. 두 여성 의무병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지만 티퍼는 오히려 반가워했다.
“아, 지크!”
“여어, 오늘은 괜찮냐, 꼬마?”
지크는 몸을 굽힌 채 티퍼의 옆에 앉았다. 바이나는 조용히 이불을 머리에 덮어썼다. 상종하기도 싫다는 표현이었다.
“슈는요?”
“장교 마차에서 자고 있다더라. 그러고 보니 넌 참 여복이 많다. 의무병도 여자고, 옆에 누워있는 빨간 사람도 여자니까 말이야.”
놀리는 투로 지크가 티퍼에게 말했다. 티퍼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둘은 알지 못했다. 옆쪽의 이불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는 것을….
“헤헤, 그건 맞네요.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요? 바이나가 갑자기 제 옆에 누워있더라고요. 누가 침입해 왔나요?”
지크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 부대에서 피부가 제일 빨간 여자를 잡으러 암살자들이 왔었어. 물론 이 바람의 지크님이 다 격퇴했지만. 그런데 표적이 된 여자는 어디 있나? 이불에 가려서 안 보이나…?”
참다못한 바이나는 이불을 걷어차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말 한번 잘했다, 이 말라깽이 녀석! 오늘은 내가 기필코 널 없애버리겠어!!”
바이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지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얼마간 전진하던 바이나의 몸은 어느 정도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으윽…?!”
지크의 오른손이 어느새 바이나의 목을 살짝 조르고 있었다. 지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티퍼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간 그 상태로 있은 뒤 지크가 입을 열었다.
“그 암살자는 그 여자의 목을 노끈으로 이렇게 졸랐지….”
같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의무병들은 잠시 후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티퍼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군요. 잘 알겠어요 지크.”
완전히 놀림감이 되어버린 바이나는 잠시 무표정한 얼굴이 되더니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웃고 있던 의무병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고 티퍼의 얼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크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아… 하하…. 오늘로만 두 번째네…. 진짜 미안한데?”
지크는 뒤통수를 긁으며 멋쩍어했다. 바이나는 듣고 있지 않다는 듯 계속 울기만 했다.
“아, 다시 한번 써보자. 아까 전에는 확실하게 하지 않아서일 거야.”
지크는 바이나의 옆으로 살짝 돌아 앉고 그녀가 뒤집어쓰고 있는 이불을 걷으려고 했다. 그러나 바이나는 이불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어이, 잠깐 얼굴 좀 보여봐.”
지크는 팔에 힘을 가해서 이불을 걷어 내었다. 힘이 너무 세어서인지 바이나까지 이불과 함께 걷어져 버리고 말았다.
“왜 이러는 거야! 나하고 무슨 원한 있어!!”
지크는 살짝 웃으며 그녀에게 접근해 갔다. 코앞까지…. 의무병들은 다시 한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티퍼는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지크는 낮은 목소리로 바이나에게 속삭였다. 바이나의 붉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갔다.
“귀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