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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83화


“아자아아앗―!!”

지크는 양 주먹에 기를 돌리고서 달려드는 완전무장의 스켈레톤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려나가기 시작했다. 지크의 펀치를 정면으로 맞은 스켈레톤의 머리가 투구째 박살 나며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스켈레톤들은 목이 날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지크에게 덤벼들었다.

“으윽?!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완전히 박살 나거나 불에 탈 때까지 전투력이 변하지 않는 스켈레톤의 특성을 지크는 모르고 있었다. 안되겠다 생각한 지크는 빠르게 손가락을 교차하며 수인을 맺어나갔다. 진언문이었다.

“꺼져버려라앗! 마령폭화(魔靈爆火)아앗―!!”

키세레는 감방의 밖에서 들리는 엄청난 소음에 잠을 깼다. 달콤한 잠은 아니었지만 잠이 갑자기 깬 탓에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으응… 무슨 일이지? 시끄러운데….”

그와 동시에 귀를 찢는 폭음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덩이가 문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창살 사이로 혀를 날름거렸다. 그 불이 없어진 후 한 남자의 목소리가 감방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이봐! 모두 어디 있는 거야!! 저항군 아저씨들!!”

지크는 감방의 문을 모조리 열며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의 폭음 소리로 병사들이 몰려올 것은 뻔할 뻔자였다. 괜한 실수를 했다고 지크는 생각했지만 스켈레톤 무리들을 만났을 때 이미 발각된 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키세레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간단히 스켈레톤 병사들을 재로 만들며 감옥 안을 활보할 수 있는 남자의 이름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설마… 설마 진짜로…?”

옆의 감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키세레는 몸을 움찔했다. 아르만은 주문 덕택에 편안히 잘 자고 있었다.

`신이시여,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키세레는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감방의 문이 열렸을 때 그녀는 문을 열어준 그림자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리오! 설마… 저를 진짜로 구하러 이곳까지 오실 줄은…!!”

지크는 갑자기 나온 이상한 반응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리오의 이름이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여성의 입에서 나오자 씁쓰름한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어… 잠깐 눈을 떠보시면 안 될까요? 리오는 밖에 있는데요.”

키세레는 깜짝 놀라며 지크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지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바, 밖에 있다고요?”

지크는 끄덕이며 키세레에게 이곳에 잠시 있으라는 말을 한 뒤 다른 감옥 문도 열기 시작했다.

“리오 녀석을 만나면 똑같이 껴안아줄게요. 그대로 전해줘야 형제간의 의리를 지킬 수 있을 거 아니에요? 하하하…!”

키세레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리오를 만났을 때 고개를 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뭐야! 빨리 구해주지 않고서! 이곳부터 열어!!”

리카의 힘 있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지크는 지지 않고 받아쳤다.

“시끄러워 꼬맹이! 또 소리치면 안 열어준다!”

리카는 움찔하며 조용히 머리를 내렸다. 조금 후 지크가 감방에서 구해낸 총 인물 수는 10명이었다. 명단에 포함된 5인과 뜻밖의 인물 5인이었다. 지크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뒤통수를 긁기 시작했다.

“어, 이상하다? 분명히 5인이라고 했는데…?”

“우린 잡혀온 거라고 마른 꺽다리.”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리카가 말했다. 지크는 뭔가가 생각난 듯이 손가락을 튕기며 키세레를 포함한 다섯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럼 당신들이 리오가 말한 부하들이군! 역시, 저쪽 모자 쓴 누나가 리오 이름을 불렀을 때 알았어야 하는데….”

“우리는 부하가 아니야! 친구들이라구!!”

머셀이 앞장서서 소리치자 지크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 미안해 귀가 긴 꼬마야. 아, 그리고 진짜 다섯 명 당신들은 괜찮아요?”

예전에 수도 공방전에서 붙잡혀 사형 집행일만을 기다리던 다섯 명. 제1 기마대장 로먼, 제3 궁병대장 파이크, 마법사 론, 군사 작센, 돌격 기마대 부대장인 랄톤. 이렇게 다섯 사람은 오랫동안의 감방 생활로 매우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요새의 특수한 감옥이라서 공격 주문은 사용이 불가능한 곳이라 론의 정신도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그들은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긴 했지만 과연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흠… 다섯 명은 제게 가까이 와 주세요. 오래가진 않지만 약간의 힘을 불어넣어 줄 수는 있어요.”

지크의 그런 말에 수염을 덥수룩히 기른 파이크가 먼저 다가왔다. 예전의 저항군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용맹을 떨치던 인물이었다.

“그 말… 진짜요?”

지크는 파이크의 뒤로 돌아가며 걱정 말라는 듯 그의 양 어깨를 꽉 잡아주었다. 그리고 나서 오른쪽 검지 손가락으로 파이크의 등을 몇 차례 찌르기 시작했다. 파이크는 곧 입에서 피를 토하긴 했지만 약간뿐이었고 얼굴에 생기가 점차 돌기 시작했다. 파이크는 자신의 손을 꽉 쥐어봤다.

“이, 이럴 수가… 옛날처럼 힘이 솟잖아!! 정말 대단하군!!”

“몸에 있는 혈도를 몇 개 연 것뿐이에요. 아마 두 시간 후면 힘이 다시 빠져나갈 겁니다. 그전에 탈출을 해야 해요. 자, 어서 나머지 분들도….”


엘리게이터의 거대 검 공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한번 지면을 헛칠 때마다 진동이 엄청나서 근처에 있던 상가 건물의 간판을 수십여 개나 떨어뜨리고 있었다. 건물에 매달린 간판이 그 정도인데 땅을 밟고 있는 사람은 어땠을까. 제대로 서있는 사람은 근처에 리오 한 사람뿐이었다. 리오도 처음에 엘리게이터의 힘을 얕봤다가 발이 땅 깊숙이 박혔을 때부터 피하기 시작했다.

“젠장! 무슨 먹이를 주길래 힘이 남아도는 거지?”

하지만 단번에 죽일 상황도 못 되었다. 그러긴 어렵지 않았지만 단번에 엘리게이터를 쓰러뜨린다면 병사들과 한바탕 더 싸워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하나와 싸우는 것이 사실 리오로서는 더 편했다.

그러다가 조금 후, 엘리게이터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말이 병사들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

“큰일이다! 전 병사들은 제2 지구로 집합해라! 반복한다, 제2 지구다!!”

리오는 아차 싶었다. 제2 지구란 바로 감옥이 있는 장소였다.

“빨리 안 가고 무슨 구경인가! 저 빨간 머리 녀석은 엘리게이터가 처리해줄 거니까 모두 뛰어라! 제일 나중에 오는 녀석은 알아서 해라!!”

병사들은 각자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지휘관과 함께 제2 지구로 뛰기 시작했다. 리오는 이를 악물고 엘리게이터를 쏘아보았다.

“이런, 하필이면 탈옥이람, 한창 재미있게 싸우고 있었는데 말이야.”

“누가 아니래? 어쨌든 저항군 녀석들도 끈질겨, 아직도 탈옥할 마음이 있는 건지… 가이라스 왕국이 단 만 명으로 어떻게 무너진단 말이야.”

계속 잡담을 늘어놓으며 구보를 하고 있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날아갔다. 그 물체는 곧 병사들의 맨 앞 열에 정확히 떨어졌고 앞 열의 병사들은 기겁하며 멈춰섰다. 그들의 앞에 떨어진 거대한 물건… 바로 엘리게이터의 잘려진 머리였다.

곧 그들의 앞에 붉은 악몽이 다시 나타났다.

리오는 슬쩍 어디선가 나타나 병사들의 앞을 다시 한번 가로막았다.

“자아, 파티는 아직 안 끝났다….”


제2 지구는 금세 피 천지가 되고 말았다. 압수한 물건을 되찾은 일행들은 오는 병사들을 남김없이 쓰러뜨리며 탈출구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병사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휘익―!

병사들의 사이로 잔영이 지나가고 병사들은 몸에서 피를 뿌리며 길바닥에 쓰러졌다. 지크의 육백 칠이식 일광이 할퀴고 간 흔적이었다. 뒤에 따라오던 열 명은 피 비린내에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은 키세레와 리카였다. 그렇게 많은 시체들을 갑자기 본 것이 정신적 충격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다섯 명의 저항군 장군들도 이 광경만은 눈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생각해도 너무나 잔인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지크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쳇, 이거 너무 떼로 몰려오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내 특기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모두 제 앞으로 한 발자국 이상 나가지 말아요. 그렇게 되면 고깃덩이가 될 테니까요. 흐읍…!”

지크는 다시금 수인을 맺은 후 진언을 외우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병사들이 무기를 든 채 맹렬히 뛰어오는 모습이 이제는 확실하게 보였다. 코앞까지 그들이 다가오자 지크는 수인을 풀며 공중에 소리쳤다.

“대 진언법, 풍룡대승천(風龍大昇天)!!!”

병사들은 갑자기 불어오는 강풍에 눈을 가렸다. 그 바람은 점점 더 거세어지기 시작했고 곧 후열의 병사들은 앞에 벌어진 광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갑자기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회오리의 크기는 시간이 갈수록 거대해졌고 근처에 있는 병사들을 모조리 빨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요새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가 있었다. 리오는 멍하니 바라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런 바보 녀석…!”

이 난동이 5인을 구출하기 위해서 행해진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좋아! 여기까지!!”

회오리의 크기가 적당해졌다고 느낀 지크는 다시 양손을 합했다. 그러자 끝도 없이 커지기만 하던 회오리는 놀랍게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깨끗이 흩어져 사라졌다. 회오리가 사라지자 빨려 올라갔던 병사들은 다시 지면으로 추락했고 그들의 비명 소리는 요새 안을 가득 메웠다. 탈출하는 일행은 모두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당신은 인정도 없나요? 병사들을 이렇게 무참히 살해해도 되는 거예요!”

참다못한 키세레가 결국에는 지크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지크는 쓸쓸히 웃으며 키세레를 슬쩍 피해 앞으로 걸어갔다.

“훗… 난 이 요새에서 사람을 죽인 적 없어요. 칼을 맞은 병사들도 모두 쇼크로 기절했고 술법에 말려든 병사들도 그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져 죽지는 않아요. 재수가 없는 병사면 모를까… 못 믿겠으면 남아서 확인해 보시오.”

지크와 키세레는 한참 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 사이엔 불꽃이 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였다. 키세레는 곧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믿어보죠.”

지크는 표정을 풀며 다시 그들을 인도하며 요새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는 방향은 리오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 무렵, 리오는 병사들을 다시 땅바닥에 눕히며 지크 일행의 돌파구를 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둘의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주었다. 하지만 리오와 지크도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 한참 병사들을 눕히고 있던 리오는 앞쪽에서 지크와 다른 일행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다시 놀란 얼굴로 바뀌었다. 그 일행에 키세레를 비롯한 자신의 일행도 섞여있는 것이었다. 리오는 그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다섯 명을 보고 내심 미안해했다.

“리오! 역시 구하러 와줄 줄 알았어요!!”

클루토가 리오의 목에 매달리며 기뻐하자 리오는 그의 등을 몇 차례 토닥거려주었다. 아이들은 모두 리오에게 매달려 리오는 잠시 동안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이봐! 인사는 나중에 하고 어서 탈출이나 해!!”

아이들을 반 강제로 몸에서 떼어내고 다른 일행들도 성문 쪽으로 뛰어갈 때쯤 요새의 안쪽에서 바레로그의 노호성이 들려왔다. 그도 잠에서 이제 깨어난 모양이었다. 리오와 지크는 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엔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었으나 곧 둘의 얼굴색은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둘이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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