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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85화


가이라스 왕실은 초비상 상태였다. 수도를 지키는 마지막 길목인 야룬다에서 지원군을 요청할 정도이니 더욱 그러했다. 성의 회의실에선 9명의 사람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가이라스 국왕과 이블셔먼, 무도가대 대장, 비스트 테이머 발렌트, 암살 부대의 수령, 이상할 정도의 요기를 내뿜고 있는 네크로만서, 두건을 쓴 정체불명의 여성, 검은색의 정장을 입고 있는 중년의 사나이, 그리고 왕비였다. 원래 자리에 앉아야 할 각 기사단의 단장들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 리오란 녀석! 왜 사사건건 우리들의 앞을 가로막는 거지! 그 녀석만 아니었어도 공주와 태라트의 목숨은 우리의 손에서 놀아날 수 있는데 말이야!”

털가죽 옷을 입은 발렌트가 이마에 핏줄을 세우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블셔먼 나자리크도 동참했다.

“리오란 녀석만이 아니고 정체불명의 이상한 녀석도 문제야. 그 녀석도 못지않게 강하다구. 데스 버서커를 그렇게 간단히 눕힌 녀석은 처음이야.”

“그 리오란 사나이, 타르자님이 내주신 히드라와 메탈골렘도 혼자 물리친 강적이에요, 아마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와 대결할 수 있는 분은 루브레시아 공작님뿐일 겁니다.”

루브레시아 공작, 정장을 입은 중년의 사나이다. 옷의 오른팔 부분이 쑥 들어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쪽 팔이 없는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공작은 자신의 이름이 왕비의 입에 오르자 눈을 뜨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동자는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전 바이칼이라는 용제를 만난다는 전제하에 왕비님을 도와드리는 겁니다. 저에게 명령을 내리실 수 있는 분은 가스트란 황제뿐이십니다. 그걸 명심해주십시오 왕비님.”

왕비는 그 말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루브레시아 공작은 절대 아군이란 생각이 안 들었다.

“아, 알았습니다 공작님. 템플 나이트들은 언제쯤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까?”

네크로만서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어제 전갈을 받고서 바로 출발했으니 오늘 저녁쯤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왕비님. 그런데 말입니다… 템플 커맨더 중 저튼이란 자가 2일 전에 암살당했답니다. 템플 나이트 내부의 소행이라고 생각되지만 증거가 없어서 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템플 나이트 단장인 라칸·펠바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부대를 보내는 것이….”

왕비는 부채로 입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네크로만서는 당황하며 고개를 들었다. 왕비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전 다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요새에서 그들은 저항군과 함께 가루가 되어버릴 겁니다. 호호호호…!”

그들이 떠들고 있는 동안에 왕은 아무 말하지 않고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의 눈이나 입가에는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죽은 자의 표정과도 거의 흡사했다.

왕비는 가이라스 3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왕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머… 대왕마마, 일이 풀려가기 시작하는데 안 웃으시면 어떡하나요? 웃어보세요 마마… 호호호….”

왕은 빙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웃기 시작했다. 단 두 사람, 루브레시아 공작과 두건의 여인만이 그들의 조소에 동참하지 않았다.

“자아… 이 세계의 반이 이제 우리들의 손에 들어옵니다. 누구라도 이 일을 방해할 수는 없겠지요. 설령 그 녀석이 가즈 나이트라고 해도…!”

왕비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아래로 가이라스 수도의 정경이 들어왔다. 그 모든 것, 그 이상의 것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는 기대감에 그녀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웃는 동안 가이라스의 상공을 거대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구름이 조금 끼어있어 수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단 한 사람, 뾰족한 귀의 청년만이 그것을 눈치챘을 뿐이었다. 그 청년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제국이 움직이는군, 드디어.”

그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수도를 빠져나갔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청년은 등을 굽혔다. 그러자 그 청년의 푸른 망토에서 날개가 돋아났다. 박쥐의 날개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비늘과 가죽이 섞인 형태였다. 마치 용의 날개를 연상시켰다.

“이 왕국의 일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 기다려라 리오!”

청년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는 향했다.

남쪽으로….

야룬다 요새가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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