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95화
메탈 자켓의 탑승자들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4대 원소의 힘을 응축해 쏘는 고충격의 엘리마이트 빔을 맨손으로 잡아내는 인간이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메탈 자켓에서 쏟아진 엘리마이트 빔들은 모조리 지크의 손바닥에 잡혀서 거대한 빛의 구체로 변해 있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지크의 손바닥에 정확히 잡힌 것이 아니고 그의 손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전력에 의해 모조리 끌어당겨져있는 것이었다.
“좋았어―! 되돌려주마!”
지크는 다른 손으로 그 구체를 내리눌렀다. 엘리마이트 구체는 지크의 손에서 압축되어 적당한 크기로 작아졌다. 지크는 그 구체를 앞으로 내 뻗으며 소리쳤다.
“받아라앗―!!”
구체에선 메탈 자켓에서 뿜어져 나왔던 것과 같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크의 기전력이 실린 것과 10여 대의 위력이 응축되었다는 것….
파가각―!
광선은 메탈 자켓의 오른팔에 장착된 방패를 종이 뚫듯 뚫고 뒤에 서있던 또 다른 메탈 자켓의 가슴을 관통했다. 광선을 되돌려 맞은 두 대의 메탈 자켓은 탈출을 시도하려는 탑승자를 그대로 가둬 놓은 채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이 부숴졌다.
다른 메탈 자켓들은 허리에 장착된 백팩에서 메탈 자켓 전용의 톤파를 꺼내었다. 인간이 사용하는 톤파와 모양에선 크기 외엔 차이가 없었지만 100마력이 넘는 메탈 자켓의 힘으로 얻어맞고 무사할 인간은 없었다. 가장 확실하고도 잔인한 대인 병기였다. 그러나 그런 것에 관여할 지크는 아니었다. 그의 팔에만 흐르던 기전력은 몸 전체에 흐르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푸른색의 스파크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후아아아앗!!”
지크는 곧바로 메탈 자켓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릎 차기를 정확히 맞은 메탈 자켓은 곧 전신에 주먹 세례를 받고 만신창이가 되어 동료에게 부딪혔다. 톤파로 공격을 해도 지크는 교묘히 피해가며 거대한 기계 덩어리들을 우롱했다. 일곱 대를 격파할 때쯤 지크의 몸에 축적되었던 기전력은 바닥나고 말았다. 그의 기전력이 사라지자 남은 메탈 자켓들은 모든 무기의 탄을 지크에게 쏟아부었다.
은색의 빛과 함께 탄들은 모조리 공중에서 폭발해 나갔다. 폭발하고 남은 연기가 사라지고 남은 건 무명도를 들고 있는 지크의 모습이었다.
“사백 십사식… 난설(亂雪)이군.”
구경하고 있던 리오의 말대로 그것은 지크의 발도술 중 하나인 난설이었다. 이름 그대로 주위에 불규칙하게 내리는 눈도 정확하게 자를 수 있는 반 방어형 검술이다.
메탈 자켓의 탑승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흔한 구경거리는 분명 아니었다.
지크는 신이 난 표정으로 계속 메탈 자켓을 가지고 놀았고 리오는 할 일 없이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두 대라면 빨리 끝나겠군. 으음… 졸립다….”
찰칵.
차가운 감촉이 리오의 목에 느껴졌다. 검은색의 날을 한 장검이었다. 리오는 슬쩍 옆으로 눈을 돌렸다. 어느새 철가면이 자신의 메탈 자켓에서 탈출해 있었다.
“요오― 살아 있었군?”
철가면은 약간 헝클어진 자신의 장발을 손으로 몇 번 쓸어 내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굉장히 화를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후훗… 역시 방심할 녀석들이 아니군. 단둘이서 이 거대한 도시를 정찰하러 올 정도라면 굉장한 실력인 게 틀림없는데. 하지만 넌 운이 나쁘구나, 이 크리나·바리하이크에게 걸려든 것이 말이지.”
리오는 여전히 자세를 고치지 않고 편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혀 칼을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오, 그래? 너 유명한 사람인가 보지?”
크리나라 자신을 밝힌 그 철가면은 검에 힘을 가했다. 리오의 살에 검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로하가스 제국 오마 장군 중 한 명을 모르나 보지? 첩자 치고 의외로 멍청한 녀석이군….”
목에서 피가 조금씩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히 철가면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고 있지? 내 목을 날리려면 지금뿐인데 말이야. 내가 말하고 있을 동안에 빨리 내 목을 자르라고…. 빨리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네 목이 날아간다 친구.”
리오의 말을 들은 그 철가면은 눈웃음을 쳤다.
“훗,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군, 넌 말이야. 그래서 주저하는 것뿐이다. 쓸모없는 잡병이었으면 말도 안 걸었어.”
리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거 참 황송하군 그래. 그런데 어쩌지? 난 이대로 있기는 싫은데 말이야….”
철가면은 오른쪽에 장비된 또한 자루의 검을 뽑아 리오의 목에 가져갔다. 그리고 가위처럼 검을 교차시키며 리오의 목을 검으로 조였다.
“이렇게 하면 지루하지는 않겠지? 자, 넌 이제부터 내 포로야.”
그때, 누군가가 철가면의 등을 두드렸다. 메탈 자켓을 장난감처럼 다루던 그 괴한이었다.
“으윽…?!”
그러나 지크에겐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크는 손을 흔들며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 난 관여하지 않을 거야. 그냥 저 녀석에게 간다는 말을 해주려고 왔어. 어이, 리오야. 난 먼저 가볼게, 천천히 와라.”
칼로 목을 두른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가면은 그냥 가버리는 지크를 보고서 소리쳤다.
“이, 이봐! 넌 동료가 걱정되지도 않는 건가! 저항군은 동료애가 깊다고 들었는데!”
지크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시 돌아섰다.
“시끄러워. 저 녀석이 여기서 포로가 되거나 죽을 정도라면 나하고 형제가 될 이유가 없어. 다시 날 부르면 내가 네 목을 날릴 거야, 알았지 쌍칼?”
다시 가버리는 지크를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철가면은 몸을 떨었다.
“저, 저 녀석…! 저 녀석 덕분에 네 명이 줄었다, 저승에 가서 후회해라!!”
철가면은 자신의 검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오의 미소가 살기를 띠운 것도 이때였다.
“으, 으윽?!”
자신이 힘을 가하는 반대 방향으로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검이 밀려나고 있는 것이었다.
“훗…. 포로 놀이도 이젠 끝이군.”
리오는 코웃음을 치며 검의 밑으로 빠져나간 후 지크가 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빠져나간 후에도 철가면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이런!! 어떻게…!!”
리오는 가다가 말고 철가면의 귀에 속삭였다. 철가면의 숨이 갑자기 가빠지자 리오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계속 얘기했다.
“뭐야… 여자도 아니면서. 그런데 머리는 참 길군…. 넌 내 주박술에 걸린 거다. 들어보긴 했는지 모르지만. 한 시간 후면 몸이 다시 움직일 거야, 그때까지 맑은 공기나 많이 쐬어 두라고. 잘 있어라.”
철가면의 어깨를 두어 번 쳐준 뒤 리오는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리오의 발 앞에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으응?”
성벽 위에서 날아온 화살이었다. 소리도 들렸다.
“저항군이다!! 저항군의 첩자다, 잡아라!!!”
가이라스 외곽 방어 부대가 리오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리오는 날아오는 수백 개의 화살을 이리저리 피하며 무사히 달아날 수 있었다. 외곽 궁병대 대장은 자신의 활을 바닥에 던지며 짜증 나는 듯 소리쳤다.
“젠장! 화살이 어떻게 한 대도 안 맞는 거야! 이 녀석들 기합이 빠졌구나! 전원 아래로 집합!!!”
대장의 호통을 들은 궁병대는 곧바로 계단을 향해 뛰었고 곧 왁자지껄한 소리가 성벽 아래에서 울려 퍼졌다.
철가면은 매우 화가 난 눈초리로 리오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 정도로 자신에게 치욕을 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일까….
“리오라고 했나… 꼭 없애버리겠다!!”
리오가 일행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저항군 선발대는 이미 뒷편에 와 있었다. 이 정도라면 세 시간 내에 전군이 집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시간 뒤에 태라트가 이끄는 본진이 도착했고 선발대에 의해서 지어진 막사에 저항군 지도자들은 자리를 옮겼다. 그로부터 예상대로 한 시간 뒤에 최종 부대가 도착했고 전투 준비는 시작되었다.
막사 안에선 태라트와 작센이 수도 외곽의 지도를 펼쳐놓고 작전을 지시하는 중이었다.
“작전은 야룬다에서 설명해 드린 것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정찰을 해준 리오 씨와 바이나 부대장의 말을 들어보니 별다른 건 없었으니까요. 먼저 열을 정합니다. 중보병 부대가 당연히 앞열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궁병 부대, 이어서 기마부대로 이어집니다. 템플 나이트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라칸은 조용히 말했다. 언제나 엄숙한 분위기의 사나이였다.
“저희들은 기마대를 따르겠습니다. 명령엔 따를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좋습니다. 중보병 부대가 앞으로 나갈 때 적이 성문을 열고 나온다면 기마대가 앞으로 나옵니다. 궁병대는 기마대가 앞열로 나올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적이 성문을 열고 나오지 않을 때 궁병대는 중보병 부대를 엄호해주십시오. 그때 동안 중보병 부대는 성문을 열면 됩니다. 그밖에 특별한 지시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이 한창 작전을 짤 무렵, 리오와 지크, 그리고 바이칼은 셋만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으음… 우리들은 아무래도 본성 전투 때나 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사용 천막 위에 누운 지크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마 성 외곽까지 적들의 중요 인사들이 나오진 않을 거야. 본성부터 우리가 정리해야지. 그런데, 그 루브레시아 공작인가 뭔가는 저 성에 있을까?”
바이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녀석의 목표는 나야. 내가 나오지 않는 한 그 녀석도 움직이지 않아. 둘이서 조용히 결판을 내야겠지….”
셋은 그 얘기를 끝으로 각자의 구역으로 갔다. 본성 작전 전까지 그들의 임무는… 경비였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저항군 부대들은 가벼운 긴장감 속에서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화살이나 투석기의 사정거리에서 겨우 벗어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병사들은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면서 이제부터 자신들이 할 일을 머릿속에 되뇌었다. 공성전만큼 체력 소모가 큰 작전은 없다. 같은 병력이라도 성 밖에 있는 부대가 훨씬 불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사들의 투지는 최고였고 사기도 꽤 높았다. 란지크는 천천히 앞열로 나아갔다. 병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아! 시작이다 제군들! 전원 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