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10화
호 이사의 프로젝트팀.
성공만 하면 모든 팀원에게 소원권을 준다는, 파격적이기 짝이 없는 보상의 기밀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나는 거절했지.’
너무 리스크가 컸고 수상했기 때문이다.
근데 휴직한 은하제 대리가… 거기서 일하고 있다고?
“노루 표정 좀 봐라. 그래. 네가 제안을 받았는데 아주 뻥 차버린 것도 알고 있지.”
은하제 대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잘했다. 앞으로도 들어오지 마. 골 아픈 팀이더라.”
“…….”
근데 대리님은 거기서 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거기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말 못 하지.”
“…….”
지를까?
지르자.
“사실 제가 프로젝트 팀장 후보로 제안을 받았었는데요.”
“뭐?!”
“물론 그냥 동기 부여용이셨던 것 같고, 거절했….”
“아니, 잠깐만. 너 괜히 나중에라도 혹할까 봐 이거 말해두는데….”
은하제 대리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호 이사는 미친놈이야.”
“…!”
“난 이 프로젝트에서 다른 팀원들이 뭘 하는지 몰라. 호 이사가 아예 담당이 다른 직원들끼리는 대화도 못 하게 하거든.”
대리가 침을 삼켰다.
“내 생각엔… 날 여기 끌어들인 것도 내가 휴직 신청서를 내서 같아. 남들 눈에 안 띄고 프로젝트에서 일할 수 있어서 오퍼를 넣은 거지.”
“…그래서 숨어 다니셨던 겁니까?”
“맞아. 그걸 요구하더라.”
그래서 네 사택에도 몰래 조용히 침입했던 것이라며 은하제 대리는 혀를 찼다.
“혹시 네 룸메이트 녀석한테 들킬까 봐 걱정했는데.”
“그건 걱정 마십시오. 사택에 없습니다.”
“그랬냐? 젠장, 괜히 용썼네.”
백사헌은 그 연차에 용케도 1월 1일에 붙여서 휴가를 썼거든. 지금 그 집에 없다.
“아무튼 정말로 더는 말 못 해줘. 그렇게 알고 있어라.”
그리고 은하제 대리는 정말로 이어지는 내 모든 질문(소원권이 왜 필요한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섭외된 건지)에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원래 미친 새끼들 뒤 캐는 걸로 밥 먹고 살았던 사람이야. 뭘 새삼.”
그건 인간이고 이건 괴담이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잖습니까, 대리님…!
“너나 조심해라, 너나.”
은하제 대리는 곧 쓴웃음을 지었다.
“노루야. 남한테 너무 신경 써주지 마라.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그것만큼 네가 피곤해지는 길도 드물다.”
“…….”
“네가 신경 써줘서 이득 본 나 같은 사람이 이런 말 해서 우습겠지만, 그래도 괜히 하는 말은 아니야.”
“아뇨. 전혀 우습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짜식, 여전하긴.”
은하제 대리는 별관에서 나오면서도 몇 번이나 내게 신경 끄고 스스로나 챙기라는 말을 남겼다.
“다시 한번 고맙고, 기억해라. 1월 2일.”
그리고 별관 앞에서 마치 사라지듯이 순식간에 떠났다.
“…….”
호 이사의 프로젝트 팀이라.
‘듣기만 해도 위험하게 느껴졌는데.’
당장은 내 코가 석 자라 신경 쓸 순 없지만, 기억은 해두자.
-어쨌든 재밌는 발언을 많이 확보했군요! 1월 2일, 노루 씨를 둘러싼 음모의 소용돌이라….
-어떻습니까, 친구. 사망 선고를 피할 재밌는 계획이라도? 물론 곤란할 때는 언제나 당신의 착한 친구브라운이 옆에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응. 고맙다.”
-별말씀을!
그렇게 내겐 신년 첫 번째 계획이 생겼다.
1월 2일에 내가 진입할 어둠에서, 무슨 수로 탈주할지 방법을 찾아내기.
그리고 이 계획은 새해 첫날 공휴일 하루 내내 꽤 성공적으로 실현되었고….
정상 출근날이 다가왔다.
* * *
1월 2일.
정말로 출근하자마자 내게 새로운 어둠 탐사 임무가 주어졌다.
다만, ‘나한테만’.
“…그러니까, 조장님께서는 오늘 오후에 간부 회의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빠지셔야 한다는 겁니까?”
“예.”
“혹시 저 혼자 어둠에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3인 1조의 매뉴얼을 준수하기 위해 지원 인력 2인이 오후에 할당될 예정입니다.”
예,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곽제강이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
‘이상한 직원들을 떠넘기듯이 엮는 거 아닌가?’
조별과제 빌런은 언제나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가 주니까 말이다….
‘각오해야겠는데.’
하지만 상황은 기묘하게 돌아갔다.
우선, 1월 2일 자에 내게 어둠이 할당되기도 전에 공고가 먼저 떴다.
바로 D조의 정예팀 재편성.
[현장탐사팀 조직 개편 안내]
청 이사의 파격적인 제안이 드디어 물 위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하던 이 사태가 정말로 ‘D조 자체를 정예팀으로 편성한다’라는 파격적 개편인 것을 알게 된 현장탐사팀이 한번 발칵 뒤집혔다.
게다가 정예팀 D조의 남은 자리 하나는 일반직원도 정예팀 대우를 받으며 단기로 근무할 수 있다니!
누구에게든 해당 인사에 대해 물어보고 싶던 사람들은… 마침내 관련자들 중 가장 직급 낮고 짬 덜 찬 사람을 발견했다!
응.
바로 나다.
“…….”
지잉, 지잉, 지이이잉!
[안녕하세요 주임님~^^ 정예팀되신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혹시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봐도….]
[단톡방에서만 뵙고 이렇게 연락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다름이 아니라 정예팀 나머지 한 자리….]
‘정말 부담스럽다….’
벌써 일곱 통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주임따리가 인사권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음? 친구, 분명 같이 일할 동료 직원을 고를 기회가 있지 않았습니까? 당신이 재밌는 제안을 받던 순간이 생생히 떠오르는군요!
그건… 이미 떠난 버스지…….
독이 든 사과를 안 먹고 거절했으니 이제 남 일이다.
‘아무튼 난 권한 없음.’
대충 ‘제가 무슨 권한이 있겠습니까 저도 따가립니다.’를 정중한 회사 언어로 바꿔서 답장을 보내며 오전을 보냈다.
어쨌든, 그 덕분에 깨달은 게 있긴 했고 말이다.
‘이번 탐사 막 보낼 수 없겠는데?’
오늘, 1월 2일 자의 새로운 어둠 탐사 자체에 묘한 상징성이 있으니까.
정예팀 D조의 첫 시범 운행!
현장탐사팀 직원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데, 괜히 어중이떠중이를 나한테 붙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다간 성공적인 정예팀 새로운 조의 출범 이미지 자체가 흐트러질 테니까.
‘곽제강이 수작 못 부릴 것 같은데.’
나는 의아해했다.
‘대체 동행 직원 2명으로 누가 올까?’
…그리고, 오후 2시.
“오, 잘 부탁드림다. 노루 주임님!”
나는 D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발랄한 음성의 직원을 보고 식은땀을 흘릴 뻔했다.
C조 돌고래 주임이다.
정예팀!
“아, 다른 직원은 누군지 아세여? 궁금하다!”
“…예. 저도 정말 궁금합니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분 후.
약속된 시간 정각에 문이 한 번 더 열리며, 그 예감은 현실이 된다….
“둘 다 시간 개념이 있네.”
툭 열린 문 아래로 들어오는 호쾌한 구둣발.
딱 맞는 정장, 하나로 높게 묶은 머리, 그리고 화려한 나비 가면.
A조의 진나솔 대리였다.
‘맙소사.’
정예팀 둘을 붙여줬잖아!!
게다가 오랜만에 보는 능력 지상주의 상급자에 눈앞이 아찔해졌지만, 당장 머리 박고 인사부터 하려던 순간이었다.
“대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응. 너, 호 이사님 제안 깠다며.”
“…….”
“바보 같은 선택을 또 했는데도 정예팀이 됐네? 다 너처럼 유능하면 일이 편할 텐데. 최소한 오늘은 누가 징징 짜는 꼴은 안 보겠어.”
…예.
저도 참 반갑습니다 대리님….
“칭찬 감사합니다.”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넋이 나갈 것 같다.
하지만 입은 착실히 사회인의 응대를 하고 있었다.
“뭐야? 이번 탐사는 지방이잖아. 귀찮게.”
“예. 대신 회사에서 교통비를 좀 넉넉히 지원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
이번 C등급 괴담은 무려 목포로 가서 처리해야 한다.
‘드디어 지방 출장인가.’
사실 도시전설이라는 게 사람 많이 모여 사는 곳에 생겨나기 마련이다. 수도권에 빈도수가 많은 건 세계관 설정상 개연성에 어긋나진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거의 서울 근교로만 어둠 탐사를 다니긴 한 건… 좀 기묘할 정도인데.’
어쨌든 나는 열심히 정예팀 두 선배의 눈치를 보며 회사에서 나와 이동했다.
돌고래 주임은 제법 살갑게 말을 붙여주기도 했다.
“아직 위층으로 이사 안 하셨네여! 곧 하실 거죠? 정예팀은 개인 사무실 주는 게 좋더라구요, 프라이버시 존중도 되구!”
“예. 기대됩니다.”
“아 말 편하게 하세요! 저희 같은 직급이니까요.”
“그래도 선배님이시고,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 폐를 끼칠 수도 있는데 벌써부터 그럴 순 없죠. 더 예의 지키겠습니다.”
“와. 진짜 정중하시네요!”
엄지를 치켜드는 돌고래 주임을 보니 조금 긴장이 풀어졌다.
그래. 성격이 좋은 사람 같았으니까.
‘스몰토크를 시도해 보자.’
나는 나름대로 살갑게 웃으며 적당한 인물을 화제로 꺼내 보았다.
손등 박수 보고 혼절할 뻔한 괴담에서, 돌고래 주임의 옆에 앉아 있던 C조 사람!
“표범 대리님은 잘 지내십니까?”
“아, 죽었어요.”
“…….”
“마무리팀 직원한테 인성질하다 갔으니까 자업자득이져 뭐. 포인트 낭비는 좀 아깝고요!”
“그렇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사람 도저히 일반인의 감각이 아니다.
‘살려줘.’
마침 도착한 고속철도역.
나는 속으로만 벌벌 떨며 열차에서 돌고래 주임 옆에 극도로 예의 바르게 앉았다.
그리고 주임으로 정예팀이 된 선배에 대한 모든 예우를 다하기 시작했다….
‘같은 직급이라고 절대 개기지 말자.’
그래서 인성 나쁜 사람으로 찍히는 일이 없도록 하자…!
…참고로, 우리 앞에 앉은 진나솔 대리는…….
“잘 거니까 말 걸지 마.”
“…예.”
차라리 감사했다…….
-오, 제법 개성 넘치는 동행인들이군요!
그래…….
그리고 이게 무슨 뜻이냐면.
‘회사에서 가장 잘 나가는 비간부진 직급 두 사람이 내 동행인으로 붙은 거잖아.’
다시 말하겠다.
지금 현 상황에서 가장 일머리 좋고 유능한 사원급 직원 둘이, 옆에 붙어서, 내가 뭘 하는지 다 확인하게 된다고…!
‘대리님, 대체 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어둠에 안 들어가고 탈주합니까…!’
식은땀이 났다. 세워둔 계획에 구멍이 숭숭 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예팀 둘을 붙여줄 줄은 몰랐다고.’
차라리 트롤일 경우를 더 많이 시뮬레이션 해봤단 말이다.
나는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짜내어 얼른 플랜B를 추가했다.
‘최악의 경우엔….’
화장실… 간다고 하고 도망가자.
생각만 해도 눈물 나게 수치스럽지만 목숨이 더 중요한 게 맞겠지.
그리고 나중에 복귀하면서 ‘우연히’ 다른 어둠에 휘말려서 지금 나왔다고 진술하면 될 것이다.
‘위키에서 적당한 어둠 찾고, 실제로도 등급 맞춰서 어렵지 않은 괴담 하나 찾아서 클리어하고 용액 등급 맞추면… 그럴싸하겠어.’
지방 출장이라 가능한 플랜이었다.
‘조, 좋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마침내 엮은 계획의 개연성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제야 열차 전광판에 뜬 이번 출장지를 보았다.
목포행
그러고 보니 목포는 거의 처음 가보는 것 같….
목포행
…….
어?
지지직거리던 열차 객실의 광고판 하단 목적지 문구는, 그다음 순간….
바뀌었다.
탐라행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엥? 왜 그러세요 주임… 어? 전광판?”
“예. 당장 나가야….”
…….
아니.
아니, 너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늦었다.’
이건… 열차에 타서 자리에 앉고, 행선지가 변하는 순간 끝난 일이라는 것을.
그때부턴 내릴 수 없다.
“…….”
떠오른다.
-그건 재난관리국 항목에 기록된 휴먼에러 사고 중 가장 긴 문서로, 단편 소설로 기록되기도 했던 위키였다.
이게 무엇인지.
-바로 은심장 때문에 대참사가 났던, 단 한 번.
그 기차 사고.
내가 아주 잘 아는, 처절한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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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행 고속열차 사태]
본 문서는 등록번호 ‘8008PSYA.2002.아88.’에서 일어난 변칙 사례 기록으로, 다수의 인명 피해와 관련된 충격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극적인 참사의 상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열람 신청 이전에 스스로 심리적 상태를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심각한 정신적 불안이나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기에, 반드시 안정적인 상태에서 읽기를 권장드립니다.
-초자연재난관리국
기록관리실에서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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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몽 주식회사 생존자가 단 한 명이었던 그 미친 고속철도.
‘…아.’
나는 깨달았다.
내 사망 처리가 예정된 1월 2일 오늘.
‘C등급 어둠이 문제가 아니었어.’
나에게 준비된 위협은, 회사가 지정해주고 매뉴얼이 완비된 지방 출장지의 어둠이 아니었다.
‘이 열차.’
거기까지 이동하는 교통수단일 뿐인 이 열차가, 바로 그 위협이었다.
“…….”
나는 창밖을 보았다.
바깥 대신 전광판이 비친다.
탐라행
출발
굉음과 함께 기차가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