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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22화


생방송 토크쇼가 시작되기 직전, 백스테이지는 분주하다.

말 없는 스탭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도 실시간으로 상황을 체크하고 대처한다.

“휴우.”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 그들의 표현을 구체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얼굴 없는 자들의 속삭임을.

-5번 조명 추가.

-사회자님 구두 교체 요망.

-게스트용 쿠션 위치 확인.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좋은 쇼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그리고 사회자는 개개인에게 공치사를 아끼지 않는 타입이기에 분위기는 더욱 쉽게 고조되었다.

정말 괜찮은 직장이었다. 동료들의 얼굴이 없는 것도 처음에는 조금 꺼림칙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적응한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환경의 동물인가.’

괴담 들어가는 건 그렇게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으니, 어쩌면 정말 브라운의 말대로 적성 문제도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괜찮아.’

나는 내가 은반지를 끼고 있다는 것을 습관처럼 한번 체크한 후, 드디어 스테이지로 올라왔다.

“…후.”

오늘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브라운의 심야토크쇼’에서 한 코너에 출연하는 날이.

[솔음 씨!]

이미 준비를 마친 사회자가 다가왔다.

[의상이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그래요… 이런! 메이크업, 여기 문신을 더 제대로 가려봅시다.]

사회자는 내 손목 부근의 정장 소매 아래에 드러난 문신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순식간에 손목의 문신이 흔적도 없이 지워진다.

그리고 나는 생방송 시간이 되기 전에 무사히 지정된 자리로 가서 착석했다.

[좋습니다. 좋아… 자. 솔음 씨. 이제 곧 카메라에 불이 들어올 겁니다.]

“네.”

[그리고 곧장 관객들이 앉아있게 될 테니,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자, 시작하는군요….]

눈앞의 고전적인 프롬프터에서 카운트다운이 돌아간다.

3.

2.

1.

0.

[안녕하십니까! 이 밤의 즐거움, 매일 만나는 새로운 얼굴, 그리고… 친근한 당신의 사회자!]

브라운의 심야 토크쇼

밴드 사운드와 함께 스튜디오가 반짝인 순간.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어어?”

“엥?”

“뭐, 뭐지….”

관객석이 가득 찬다.

어느새 앉아있는 관객들은 잘 준비를 하던 도중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눈부신 촬영장에 기겁하거나 놀란 표정이다.

“나 옷 왜 이래?”

다들 각양각색의 출근 복장을 한 채 앉아있는 모습이 과연 직장인 특집 같았다.

[반갑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 여러분. 여러분을 위해 오늘은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섬뜩하도록 재밌는 토크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짝짝짝….

사회자는 홀로 박수를 치다가, TV 머리에 머쓱하고 슬퍼하는 이모티콘을 띄운다.

[…박수는 없는 겁니까? 하나도?]

짜, 짝짝짝짝짝!!

얼결에 관객들이 박수를 보낸다.

“이게 대체 뭐야….”

“일단 잘생겼잖아. 하자.”

내 옆에서 지인으로 보이는 직장인 둘이 서로 숙덕이며 다시 박수를 보낸다.

사회자는 관객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다.

어딘가 섬찟한 구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재밌고 즐거운 농담과 들어본 적 없는 끔찍하고 신기한 소식들.

“아.”

이윽고 긴장이 풀리고,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공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마치 마술사나 SF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컨텐츠에 익숙한 사람들의 마음은 현실과의 경계가 무너지며 흐릿해진다.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다.

[오늘의 게스트는… 아, 지금 나오는군요!]

별 모양으로 박힌 전구가 반짝이는 화려한 문이 열리고, 게스트가 나온다.

내가 선정한 게스트다!

바로….

아장아장.

헝겊 곰 인형이었다.

짝짝이 단추 눈이 달려있으며 누덕누덕했지만 제법 귀여웠다.

[참 귀엽지 않습니까?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게스트… ‘해피엔딩 곰돌이’!]

소파에 앉는 작은 곰 인형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저게 대체 뭐냐, 진짜 귀엽다, 움직이네, 여기 어디야? 꿈인가? 이거 무슨 토크쇼… 아, 내가 여기에 방청 신청을 했었지!

어지러운 수군거림은 곧 잦아들며, 하나로 귀결된다.

비현실적으로 진행되는 토크쇼에 대한 흥미와 집중.

[망상홈쇼핑의 협찬을 받았습니다. 오, 이제는 판매하지 않는, 1999년 한정 에디션 제품이자 업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반려 인형이지요.]

[자신을 죽을 때까지 소중히 가지고 있는 소유자에게는 편안한 잠과 같은 ‘인생의 엔딩’을 만들어주며, 버리는 자는 한밤중에 방문해 자신과 같은 인형으로 만들어줍니다!]

브라운이 다가가서 테디베어에게 마이크를 대어준다.

[기분이 어떠십니까? ……오, 너무 긴장된 나머지 첫 번째 주인의 무덤을 찾아가서 통곡하고 싶은 기분이라는군요.]

“으하하핫!”

반응이 좋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귀엽고 친근하지만, 인간이 아닌 무생물이 자아를 가지고 움직이며 보복한다는 섬뜩함은 유구하게 먹혔지.

나도 그래서 착한 친구를… 아니, 그만.

‘어쨌든 관객 반응이 좋으면 시청자 반응도 좋은 경우가 많으니까.’

안심이었다.

인간이 아닌 시청자들은 마치 리액션 영상을 보는 것처럼, 관객 반응 자체도 즐길 수 있도록 토크쇼 구조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흥미롭다. 역시 이야기는 한 발짝 벗어나 있을 때 즐겁고 안심이 된다!

[자, 그럼 우리 게스트의 사연과 근황을 들어보지요!]

쇼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해피엔딩 테디베어’는 자신의 상냥한 주인과의 마음 아프지만 따듯한 헤어짐, 그리고 끔찍한 주인의 피가 얼어붙는 학대와 시원한 복수에 대해서 사회자의 입을 빌려 말했다.

그리고 당시의 소품과 사진, 그림 자료를 보여주며 몰입과 분위기를 띄운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아, 그래서 당신에게 담뱃불을 지지고, 당신과 놀던 아이를 구타하던 아버지가… 저 관객석에 있다는 거군요!]

[그자는…… 당신입니다!]

빰!

스포트라이트가 한 관객을 비춘다.

[올라오시지요… 하하하! 두 번째 게스트를 박수로 맞이해줍시다.]

관객 중에 심어둔, 해당 인형을 버린 지난 주인이다.

무대 위로 모셔서 ‘해피엔딩 곰돌이’가 직접 그 관객을 테디베어로 만들어주는 과정까지 시연했다.

비명과 피가 난무했지만 몰입한 관객들은 조금 끔찍해하면서도 통쾌해했다. 맨 앞줄에서 스탭에게 우의까지 받아 입은 사람들은 박수까지 쳤다.

마치 재밌는 괴담을 읽듯이 말이다.

[아, 좋습니다. 귀여운 테디베어가 하나 더 생겼군요.]

[정말 좋은 일이지요. 훌륭한 부가가치 창출까지 해주는, 우리 해피엔딩 곰돌이 게스트에게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아!

해피엔딩 곰돌이는 부르르 떨면서 사람들에게 기쁘게 인사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그럼 다음 코너로 넘어가지요. 질의응답!]

브라운이 귀를 기울이듯이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스피커 부분에 가져다 댄다.

[거기 있나요? 내 친구!]

지금이다!

“여기 있어요. 친구!”

나는 손을 번쩍 들며 관객석 중간에서 일어났다.

주변에 앉은 사람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내 머리 위로 빛나는 사인.

브라운의 친구에게

알려주세요!

[100초간 내 친구가 관객분들께 토크쇼에 대한 감상을 묻거나 재밌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답변해 주신 관객께는 멋진 경품을 드리니, 도전해봅시다. 자….]

브라운의 TV 얼굴에 시계가 나타났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우르르.

관객들이 손을 든다.

나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저기, 제 소개고 질문이고 안 듣고 손부터 드시는…?”

웃음소리.

“아, 시간 없다고요? 알… 았… 습… 니… 다아아아아.”

나는 일부러 엄청나게 천천히 말을 끌며 말하기 시작했다.

웃음이 더 커졌다. 좋아.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 쇼에서 가장 재미없었던 순간은?’”

[친구!!]

“하품이 나오다 못해 내가 하는 게 더 나았겠다 싶었던 순간은?!”

계획된 절묘한 리액션에 관객 사이에서 또 간헐적 웃음이 터졌다.

맨 앞에서 테디베어가 된 전 주인의 피를 뒤집어쓴 사람들 몇몇은 더 열정적으로 우의를 벗어서 흔들었다.

나는 얼른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마이크를 댔다.

“지금이요.”

[오오오!]

다시 폭소가 터졌다. 나는 일부러 상대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냐는 배신감 어린 표정으로 보다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앞 코너가 재밌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반응이 내 걱정보다도 훨씬 좋았다.

거의 홀릴 정도였다.

‘재밌…는 건가?’

어쩐지 조금 들떴다.

100초는 순식간에 흘러갔고, 시간상 거의 마지막인 순서인 관객에게 마이크가 넘어간 순간이었다.

“이 토크쇼에 딱 하나를 부탁할 수 있다면, 그게 뭡니까?”

내가 신나게 외친 질문에 관객이 신나게 외쳤다.

“제가 저 곰돌이를 데려갈래요!”

아.

“안 됩니다.”

…….

순간, 객석이 싸늘해졌다.

무대 위도.

“…….”

내, 내가 왜 그랬지? 아니, 일단 수습부터.

나는 마치 일부러 단답한 것처럼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짐짓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친애하는 게스트 곰돌이님이 야근으로 바빠서 시간도 없는 직장인과 진지한 관계는 싫다셔요.”

“예?!”

해피엔딩 곰돌이가 아니라는 듯이 소파에서 황급히 양팔을 저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관객에게 전달했다.

“역시 싫대요.”

“…?!”

곰돌이가 넘어졌다.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농담이고요. 기쁘게 가겠다네요.”

“와! 너무 좋아요. 자연사가 제 꿈이었거든요.”

“진짜요? 저도요.”

나는 웃으며 관객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휴우. 어떻게든 잘 넘어갔다.

‘다음!’

그리고 얼른 다음 질문을 위해 고개를 돌렸다. 가장 빠르게 손을 든 다음 사람은….

익숙한 차림새였다.

“…!!”

나는 순간 그 모습을 멍하게 보았다.

가면을 쓰고 정장을 차려입은 직장인.

‘…백일몽 주식회사 현장탐사팀이다.’

내가 다니던 직장.

그중에서도….

‘…D조 사람들이야.’

내가 알던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저 셋이, 아니, 분명 이제 D조에는 도마뱀 조장만 있는데, 무슨 수로….

[땡! 시간이 다 됐습니다.]

아.

[자! 그럼 친구에게 물어보지요. 오늘의 MVP 관객은 누굽니까?]

“오늘의 MVP는….”

나는 마지막 관객을 지목했다.

“게스트 입양 지원자십니다.”

“오오오!”

[하하하! 행복하게 자연사하시길!]

선정된 관객은 멋들어지게 포장된 선물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리에 앉았다.

해피엔딩 곰돌이가 그 관객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

그렇게 내 코너는 마무리되었고, 나는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문으로 퇴장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해냈다.’

그리고 그쯤에서.

[다음 게스트를 소개해 드리지요. 아, 잠깐 그 전에….]

[광고 보고 오시겠습니다!]

으아아악!

야유하고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웃으며 브라운이 인사하면서, 중간 광고 타임이 돌입했다.

휴우!

[솔음 씨!]

브라운이 얼굴 가득 거대한 웃는 이모티콘을 띄우며 백스테이지로 오더니, 감격스러운 이모티콘 바꿔서 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마치 자랑스러운 것처럼 어깨를 두드려 준다.

[친구. 아주 잘했어요! 첫 진행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훌륭함입니다. 아주 인상 깊은 100초였어요. 아, 정말 감탄스럽군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이건 빈말도 아부도 아닌 순수한 감탄입니다. 당신이 이 쇼에 열정을 가지기 시작하니, 더 좋은 성과를 내는군요.]

기쁜 일이었다.

“저, 그런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관객 중에 아는 얼굴이 있거든. 대화 좀 하고 와도 될까? 쉬는 시간에 잠깐만. 길지 않게…….”

[아.]

사회자가 멈췄다.

그리고….

[물론입니다. 쉬는 시간 아닙니까, 편하게 대화하고 오시죠.]

휴우.

허락을 받았다! 다행이었다.

“그럼 가볼….”

[잠깐.]

어깨가 잡혔다.

[단, 다른 관객이 위화감을 느낄 만한 발언은 해선 안 됩니다…. 오, 잊지 마세요. 카메라가 꺼져도 관객은 여전히 당신을 쇼의 출연진으로 보니까요.]

“…알겠어.”

TV 머리가 가까워진다.

[명심했지요?]

“…명심할게.”

[좋습니다!]

나는 뒷걸음질 치며 사회자에게로부터 물러났다.

그리고 무대에서 내려와서 마치 관객들에게 불편한 점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스탭들을 대동하며 감사 인사를 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익숙한 가면들이 모인 자리에 도착했다.

아는, 가면들이다.

“노루야…?”

“…대리님.”

이자헌 과장, 은하제 대리, 그리고… 심지어 박민성 주임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와.’

이렇게 있으니 묘한 느낌이었다.

헝그리 행맨 어둠에 들어가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모습들이었으니까.

“여기서 볼 줄이야! 반갑습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세요?”

도마뱀 조장과 은하제 대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박민성 주임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안색이 약간 창백해 보이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였다.

많이 나아져서 이런 밤에는 편하게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가? 정말 다행이었다.

“그래. 우리야 잘 지내는데… 노루야. 넌 괜찮은 거야? 어떻게 지내고 있어?”

“아.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건 장담할 수 있다.

다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근데 오늘이 제 첫 출연일이라… 혹시 어떠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좀 긴장되는데요.”

침묵.

“아주 좋았어.”

“…감사합니다.”

휴우.

침묵이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은하제 대리님이 빈말하시는 성정은 아니니 괜찮겠지.

“그러고 보니 오늘 식사는 했어?”

“식사요? 식…….”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밥을 안 먹은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러니까… 방송 준비하기 전에?

여기 이직하기 전에 기차에서 먹은 게 마지막이었던가? 비슷하다.

어쨌든 몸은 더없이 건강하니 괜찮지!

토크쇼 쉬는 시간에 하기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안 해도 괜찮아요.”

“…….”

박민성 주임님이 빠르게 주머니를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노루야. 그래도 말이야. 지금 쉬는 시간 맞는 거지? 간식이라도 먹는 게 어떨까? 이거….”

“아, 죄송합니다. 관객분께 선물을 받는 건 공식 통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깨끗한 운영을 위해서요.”

나는 박민성 주임이 내미는 예스러운 캔디를 정중히 거절했다.

노스텔지어 캔디를 들고 있는 주임의 표정이 흐려졌다.

“아….”

…뭔가 잘못했나?

나는 열심히 생각하다가, 대안을 떠올렸다.

“걱정 마세요. 제가 가진 캔디 중에 똑같은 게 있으니까, 그걸 먹겠습니다.”

“…!”

“그래.”

은하제 대리가 손을 뻗어서 나와 악수했다.

손이 뜨거웠다.

“꼭 먹는 거야.”

“…….”

“노루 씨.”

아.

도마뱀 과장이 나를 보고 있다.

“버튼, 누르십시오.”

“……?”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당황한 티를 내는 건 프로답지 못한 일이겠지.

“네. 꼭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어쨌든 쇼 즐겁게 보시길 바라고요. 푹 주무시고 내일도 화이팅입니다.”

오늘의 방청이 힘든 그들의 일상에 작은 즐거움이 됐었으면 좋겠다.

이게 쇼 크리에이터의 마음인가? 브라운이 말하던?

나는 세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표정이 잘 안 보이는 것 같….’

잠깐만.

가면을 쓰고 있다면, 혹시 지금 어둠 탐사 중이기도 한 걸까?

그렇다면 안심시켜 주자!

“아. ‘일’ 때문에 들어오신 거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그냥 즐겁게 쇼를 즐기시다가 돌아가시면 돼요.”

“…그래?”

“네! 여긴 아주 안전합니다.”

이렇게 클리어가 쉬운 어둠도 드물 것이다. 오히려 화요토크쇼 때보다 쉬워지지 않았는가.

‘일반 관객은 아무도 죽지 않으니까!’

사실 더 자극적으로 가고 싶다면 화요 토크쇼처럼 더 끔찍한 벌칙을 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도리어 인과응보로 당하는 것을 보며 다른 관객들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분위기다.

나는 브라운에게 짧게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박민성 주임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일로 온 건 아니야.”

어?

“…널 만나러 왔어. 노루야.”

……나를?

“노루야. 대체 어쩌다가 이런 상황이 됐….”

[이런, 친구!]

“…!”

사회자가 스테이지에서 손짓한다.

그래. 곧 광고가 끝난다. 그 말은, 쇼가 다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아! 이번 건 정말 재밌을 것 같은데… 편하게 관람해 주시면 됩니다.”

“그….”

나는 대답을 듣지 못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무대로 뛰어갔다.

조명이 눈부셨다.

* * *

토크쇼는 오늘도 엄청난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끝났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오후 11시 33분에 또 뵙죠, 여러분!]

브라운은 능숙하게 방송을 끝내고, 언제나처럼 조명이 꺼진 무대에서 스탭과 관계자들을 챙겼다.

나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는 텅 빈 관객석을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치하를 받았다.

[어땠습니까, 생각보다 재밌었지요, 솔음 씨?]

“그래. 음… 생각보다 좋았어.”

[아주 기쁘군요. 좋아. 앞으로도 솔음 씨가 주에 한두 번 정도는 출연해 보는 걸로 작가진과 이야기 해두겠습니다. ‘브라운의 친구’!]

“아, 응.”

인정받은 탓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기쁘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사회자가 지나가듯이 묻는다.

[아. 예전 직장 동료들과의 대화는 즐거웠나요. 친구? 관객석에서 말을 거는 걸 봤습니다.]

“…! 응. 오랜만에 보니까 좋더라.”

[그렇군요. 어떤 즐거운 대화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아, 내가 식사를 했는지 챙겨주시더라고.”

[아하, 우리 쇼는 항상 스탭들의 식생활을 위한 전용 케이터링 서비스를….]

TV 화면이 흐려진다.

[…그간 식사에 손도 대지 않았군요. 노루 씨. 개인 케이터링 서비스도 신청하지 않았어요. 이럴 수가! 첫날에 알려줬건만.]

왠지 귀찮아서 말이다. 나는 머쓱하게 목 뒤를 매만졌다.

“안 먹어도 괜찮더라.”

[맙소사! 나를 식사도 챙기지 않는 악덕 동업자로 만들다니. 아니, 내 불찰입니다. 신입 크루는 적응에 바빠 놓칠 수도 있으니 이 브라운이 친구로서 더 신경을 써야 했죠….]

브라운이 손을 내밀었다.

[영감과 아이디어는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지요.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합시다.]

글쎄다. 별 차이는 없었고, 오히려 컨디션이 좋았는데….

“음. 노력할게.”

[이런, 내 친구가 안 좋은 업계식 말버릇까지 배우다니!]

브라운은 살짝 농담하듯 타박했으나 그 이상 내게 강요하듯이 말하진 않았다.

이제 휴식 시간이었으니까.

[혹시 휴식도 잊을까 봐 말하지만, 최고의 쇼를 만들기 위해선 충분한 휴식도 필요합니다, 솔음 씨!]

“알았다니까. 그럼, 잠시 후에 보자.”

나는 잠깐 브라운과 헤어졌다.

그리고 스탭들을 지나, 백스테이지를 돌아서 내 대기실로 향했다.

달칵.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손목을 걷고 팔을 보았다.

분장에 덮여 보이지 않는 내 문신들.

“…음.”

신기하다. 아무래도 보이지 않도록 덮어놓은 문신은 작동하지 않는듯했다.

‘이제 생방송이 끝났으니 분장을 지워도 되겠지.’

나는 문질러서 분장을 지웠다.

: Socius :

: 恩主 :

그리고 인벤토리 역할을 하던 문신에 손을 집어넣어서, 물건을 꺼냈다.

‘이것도 오랜만인가.’

내 손에 들린 것은 노스텔지어 캔디다.

‘먹겠다고 말은 했으니까.’

음… 뭐, 딱히 배가 고프거나 힘이 없진 않지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캔디 한 알을 열어서 입에 넣었다.

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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