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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43화


오싹한 마트 괴담에서의 며칠.

정신이 오그라들고, 팔이 잘리고, 식은땀과 긴장, 놀라움, 공포로 가득한 하루하루.

‘아.’

팔이 아프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이제 거기서 나왔으니까.

지금부터는 안심하고…….

아닌 것 같은데?

…….

어?

아직 거긴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음산하고 기괴한 불 꺼진 마트의 2층 푸드 코트가 보인다.

나는…… 아직도 거기 서 있었다.

“…….”

아직도 여기라고?

탈출하는 건 꿈이었던 건가.

탈출은…… 불가능한 거였나?

내가 판단을 잘못했나.

그럼 나는 왜 팔을 자른 거지?

난….

-어이쿠, 악몽을 꾸는군요. 친구!

“…!!”

나는 눈을 떴다.

햇살이 눈을 찌른다.

말끔하고 평화로운 병실이다. 맑은 늦겨울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치고 있었다.

…마트가 아니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평화롭다.

‘…현실이야.’

그래.

나는 룩키마트에서 성공적으로 나온 다음, 재난관리국에서 보내준 구급 차량에 이송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아, 깼네.”

“…?!”

고개를 돌리자, 간병인용 의자에 앉아 사과를 깎는 요원복 차림의 사람이 보였다.

……?

“잠은 좀 잘 잤어? 악몽 꾸는 것 같던데.”

멀쑥한 직장인 같은 외관이었는데, 기묘하게도 목 부근의 흉터가 요란한… 낯선 인물.

누구지?

나와 눈이 마주친 상대가 다 깎은 사과 한 쪽을 내밀며 눈을 찡긋거린다.

“반갑습니다 후배님~ 덕분에 룩키마트 들어갔다가 3분 만에 나오는 경험을 다 해봤어요.”

“…!”

아.

“맞아. 후배님이 호출한 요원이 바로 나야.”

마트 영업을 재개시키기 위해 고등학생 하나에게 재난관리국에 구조 요청 문자를 보내게 했었다.

‘그것 때문에 출동했던 게….’

바로 저 사람인가 보다.

“이야기 들었어. 후배님이 ‘마트 문을 열게’ 만드는 역발상을 떠올렸다며? 그게 진짜 이런 일에 필요한 재능이지.”

“…….”

“에이, 민망해하지 말고.”

내가 조용히 시선을 내리자, 빙긋 웃은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일단 내 소개를 해볼까? 음, 요원 별칭은 쑥스러워서 잘 안 쓰는데….”

잠깐만.

이 대사는….

“그냥 최 요원이라고 불러.”

“…….”

맙소사.

‘그 요원이잖아.’

/녹음 기록 시작

최 요원 : 그러니까 저는 지금 3층이고요. 4층 가는 문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떠올렸던, 4층과 관련된 거의 유일한 구체적 탐사기록의 주인공.

최 요원 : 룩키마트에 어서오세요!

원래 룩키마트 4층을 탐사하다가 끔찍하게 실종당했던, 재난관리국의 요원.

‘초창기 네임드…!’

그래.

세계관을 확장하면서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요원은 별칭으로 불린다’라는 설정이 생기기도 전의 네임드였다.

최 요원.

아직 어둠탐사기록에 다른 기관의 자료 없이 정부의 탐사기록만 있을 시절, 많이 활약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저 목의 흉터.’

저것도 왜 생겼는지 기억난다. 그게… 냉동창고 괴담이었지.

나는 침을 삼켰다.

‘유명한 초기 탐사기록에 단골로 등장하던 요원인데….’

그 최후가 비록 끔찍한 실종이었어도 말이다.

초창기 네임드를 그렇게 끔찍하게 사라지게 만들어도 괜찮냐고 난리였으나, ‘제대로 괴담 세계관답지 않느냐’라며 반발과 눈물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었다.

그런데….

‘…바뀐 거 아닌가?’

나와 고영은 씨의 경험담이 전해지는 순간, 4층으로 가는 계단참은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될 것이다.

‘안내문에도 권고가 붙겠지.’

그럼 시간선이 달라지는 것이다.

최 요원은 굳이 4층 문을 열지 않게 될지도 몰랐다.

당장 이번에는 룩키마트에 진입했다가 ‘그냥’ 3분 만에 나오기까지 했으니까.

‘맙소사.’

초창기 네임드의 운명이 달라졌다.

나는 순간 기이한 감흥을 느끼며 상대를 보았다가, 가까스로 뒤늦게 반응했다.

“예, 최 요원님.”

“최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은데.”

눈을 찡긋한 최 요원은 곧 싱글벙글 웃던 기색을 내 잘린 오른팔을 보며 살짝 가라앉혔다.

하지만 여전히 미소 띤 얼굴이다.

“팔은 걱정하지 마. 우리가 다 ‘조치’할 거니까.”

“…….”

“일단 푹 쉬고 있으라고. 아니, 잠시만!”

그러더니 내가 있던 병실 문을 휙 열고, 밖에 앉아서 대기 중인 것 같은 누군가를 밀어서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청동 요원이다.

옷매무새를 정리한 듯 요원복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고 있었으나, 왠지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깨어나셨군요. 다행입니다.”

“네.”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최 요원은 넉살 좋게 청동 요원의 등을 두드리며 내게 다시 깎아놓은 사과를 권유했다.

“재관이, 아니, 청동 요원이 널 현무 1팀에 바로 박았다며? 고지식한 녀석이 왜 갑자기 절차 무시하고 신입을 데려왔나 했는데, 역시 보는 눈이 있으셔.”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현무 1팀에 잘 왔어. 넌 의미 있는 근무를 할 거야.”

“…….”

“자자, 역시 편하게 선배님으로 부르고 싶어졌지?”

음….

그거 말이다.

“아뇨. 저는…….”

나는 일부러 겁먹고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제발, 소속을 옮기고 싶습니다.”

“…?!”

죄송하지만 이걸 노렸습니다.

‘구조반 탈출 기회…!’

* * *

솔직히 이미 출동구조반에 등록까지 된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많지 않았다.

그냥 현대 사회에서도 직장에서 배정된 부서 마음에 안 든다고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리면 고문관으로 찍히지 않겠는가.

‘그럼 진짜 스파이로서 최악이다….’

하지만 초자연 재난관리국에서는 특성상 빠져나갈 구멍이 하나 있었다.

바로… 충격적 경험!

‘괴담 탐사의 맹점이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점 말이다.

그런데 신입이 첫 괴담부터 자기 팔을 자르는 극단적 시도까지 하면서 겨우 탈출했다?

트라우마를 토로하면 빼줄 정도의 인정머리는 있는 기관인 것이다.

‘이건 무조건 될 거야.’

문제가 있다면.

내가… 생각보다 일을 좀 더 잘한 것 같다는 점이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해보자!”

초창기 네임드 요원이 무슨 우는 인터넷 밈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를 설득하고 있다….

“이건 네 적성이야! 지금 이레귤러 사태에서 살아남으면서, 요원에 민간인 하나 더 건져서 왔잖아! 이거 말도 안 되는 성과라고!”

쓸 만한 인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울부짖음처럼 들렸다.

만성적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공무원답다. 앞서 느꼈던 여유롭고 사회성 좋아 보이던 사회인이 사라졌다….

이제 아예 내 잘린 팔을 가리키기까지 한다.

“그리고 팔 자르는, 아니, 신체 훼손을 무릅쓰는 결단력도!”

음.

“그거요.”

나는 창백한 얼굴로 숨을 몰아쉬었다.

“미친 짓이었습니다.”

“…….”

죄송하지만 양심 공격 좀 하겠습니다.

“제, 제가 무슨 심정으로 그런 건지, 저도 모르겠어요.”

안다.

“조금… 죄송합니다. 나약해 보일 거란 건 알지만, 저는 못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다 정해진 말인데 말이다.

말할수록 진심이 실린다.

“이러다가는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습니다.”

나는 남은 한 손을 꽉 쥐면서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애들 죽을까 봐 너무 조마조마했어서….”

“…….”

최 요원은 결국 입을 뻐금거리다가 닫았다.

“전 도저히 더는… 못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병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음…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최 요원이 약간 더 차분한 기색으로 능숙하게 간병인 의자에 앉아서 말을 한다.

“그런데 이미 소속이 정해진 상황에서 첫 임무 만에 소속을 옮기면 너한테 별로 좋지 않아. … 방출당한 걸로 오해하고 고문관 취급받을 수도 있거든.”

침착하고 염려 어린 목소리가 미래를 걱정한다.

그리고 은근한 어조로 잇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잘리진 않겠지만 앞으로 소문이….”

“당신의 본 신분을 원복시켜 놓겠습니다.”

“재관아!”

“아직 소속을 배정받지 않은 임시 요원 말입니다.”

류재관이 끼어들더니 최 요원의 판을 깼다.

그리고 나를 힐끗 보다가 어두운 안색으로 시선을 피했다.

“…원하시는 대로 다른 반에서도 근무해 보시고. 마음 가는 소속을… 3주가 끝난 후에 제게 말해주시면 됩니다.”

“…!”

“그 정도는… 제 선에서 해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야, 그래도 최소한 우리 어르신은 만나보고… 에휴.”

최 요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3주는 다른 소속도 경험해 보고… 그게 맞긴 하다.”

그렇게 정리되었다.

-김솔음 요원은 신입답게 3주간 여러 경험을 해본 후, 원하는 소속을 청동 요원에게 보고한다.

-청동 요원은 선임의 권한으로 윗선에 김솔음이 원하는 소속을 적극 추천하겠다.

…이렇게.

“생각해 봐. 우리 진짜 좋은 팀이야.”

최 요원은 나에게 계속 ‘가능성을 열어 두어라’라고 말하며 몇 가지 어필은 계속했다.

너는 잘할 거라는 둥, 우리 반 사람들이 다 개성 넘치고 재밌다는 둥, 업무가 정말 보람찰 거라는 둥….

그러다가 마침내 이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네가 구한 애들 말이야.”

“…!”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

우리가 이번에 구조한 학생들 말이다.

최 요원이 류재관을 툭 치며 내게 민다.

“말해주세요, 청동 요원님.”

“……셋 모두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아.

청동 요원은 차분하게 내게 셋의 행방을 설명했다.

다친 곳은 잘 치료받았으며 가족들과 눈물의 재회도 했다.

그리고 내가 담당했던 고등학생은 적극적으로 재난관리국의 인터뷰에도 참여하며, 룩키마트에서 내가 얼마나 큰 도움을 줬었는지 피력하는 모양이다.

“…당신이 무사한지 계속 물어보던데, 이제 제대로 답을 들을 수 있겠군요.”

이지를 잃어버릴 만큼 정신적 충격이 컸던 이수빈 학생도 가벼운 기억 소거 조치를 받고 괜찮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생이 먹고 있던 노스텔지어 캔디에 대해, 청동 요원은 자신이 입수했던 괴담 유래 식품이라고 정부에 변명까지 해준 모양이다.

하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넘어가서 놓칠 뻔했다.

‘…고마운걸.’

“세 사람 모두, 당신을 직접 보고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관리국 지침상 어렵다고 하자, 대신 편지를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모든 게 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고영은 씨까지.

“그리고 당신이 구한 요원도 요양 중입니다만, 곧 복귀할 수 있을 겁니다.”

“……네.”

나는 깊게 숨을 내쉬면서, 침대에 머리를 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음미했다.

다 무사하다.

모두 잘 살아 돌아왔다.

“행복하지?”

“…….”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게 네 적성… 으악!”

최 요원은 친근한 얼굴로 씩 웃었으나 류재관이 최 요원을 밀치듯 문으로 몰았다.

“악! 재관이가 사람 잡는다!”

“그럼 일단 더 쉬고 계십시오. …다른 걱정은 하지 마시고.”

“네.”

나는 침대에 앉은 채 청동 요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많이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청동 요원은 착잡한 얼굴로 나를 보았으나, 결국 고개를 문으로 향했다.

“근데 저 후배님은 진짜 현무 1팀이 딱인데… 음. 그래, 푹 쉬고!”

청동 요원이 무시무시한 눈빛을 받으며 최 요원도 입을 닫았고, 그렇게 둘은 병실에서 나갔다.

끼이이익.

“…휴우.”

잘 끝났다.

나는 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일단 침대에 다시 몸을 뉘었다.

‘출동구조반 탈출… 성공.’

훌륭한 결과였다.

다만 말이다.

‘어색하네.’

팔 없는 것도, 청동 요원과의 관계도.

‘호의를 베풀어주긴 하는데, 묘하게 감정이 상한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그래도 스파이 의심군에서는 확실히 벗어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으차.”

나는 텅 빈 오른쪽 팔의 통증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괜히 한번 소리 내서 기지개도 켰다.

그러자 저절로 아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팔은 걱정하지 마. 우리가 다 ‘조치’할 거니까.

…‘조치’라.

재난관리국에서 신체 결손 요원에게 해주는 여러 처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멋지고 기대되는 방법도.

‘뭐, 그게 너무 비싸서 안 해주더라도 최소한 이대로 방치하진 않겠지….’

그리고 말이다.

재난관리국이 조치해 주기 전에 다른 ‘방법’을 뽑아낼 기회도 있었다.

“음.”

나는 침대 옆 탁자 안에서 내 스마트폰을 찾아냈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수신된 문자를 확인했다.

[상담 일정 / 이번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솔음 선생님^^]

호 이사에게 스파이 동향을 1차 보고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업무 보고만 할 생각은 아니다.

‘뽑을 수 있는 건 다 뽑아야지.’

* * *

“이사님, 산재 신청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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