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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8화


솔직히 말하겠다.

입사 한 달.

의외로 괴담 대기업, 다닐 만하다…!

“와 미쳤다, 또 30분 만에 클리어!”

“쟤네 진짜 C팀보다 실적 좋은 거 아니야?”

무슨 위튜브 웹드라마 엑스트라가 할법한 저 작위적인 대사를 실제로 들어볼 날이 오다니.

“야, 즐겨. 다 네 실적이야.”

점심시간.

당당하게 구내식당 A, B 메뉴를 둘 다 받아온 대리가 시원하게 말했다.

참고로 오늘 오전에도 벌써 한 건 처리한 상태다.

“노루 덕에 나도 한 달에 12번 신규 어둠 클리어 같은 미친 짓을 다 해내 보네.”

“아닙니다. 다 잘 이끌어주신 덕이죠.”

“이끌긴 뭘 이끌어? 버스 잘 타고 있구만.”

“맞아요. 제가 오늘 소고기 사겠습니다, 솔음 선배님.”

“민성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에이 왜 그러십니까! 잘 나가면 다 저보다 선배 맞잖아요.”

상사가 이런 드립을 칠 때면 기분 상하지 않게 반응하기가 의외로 힘든 법이다….

하지만 드립이 아니라 진심인지, 주임은 딱히 내 반응을 기다리는 대신 자기가 신난 얼굴로 월간 포인트 적립 내역 캡처를 보여주는 것이다.

“벌써 5000p라니까!”

그래.

[박민성 주임 / 적립포인트 : 5200p]

이게 내가 한 달 동안 번 포인트이기도 했다.

‘스피드런이 통하긴 했지….’

내 생존무빙이 이렇게 되다니.

대부분 등급이 F 아니면 D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고등급이 그렇게 자주 나오진 않는 모양이야.’

하긴, 자주 나왔으면 벌써 ‘그렇게 세계는 멸망했다’로 세계관 문 닫았을 것이다.

어쨌든 상사들은 나보다 신난 얼굴이다. 남의 일이라 더 재밌는 것 같다.

“아마 우리 회사 역대 신입 성적 중에 최단기일걸?”

“오오오!”

아, 그러고 보니 동기 신입사원들은 거의 본 적이 없는걸.

17층 연구팀 오피스만 매일 들락날락하다 보니 도리어 다른 현장탐사팀을 볼 일이 적어진 탓인 것 같다.

‘백사헌이야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고.’

사실 한번 잡았던 미친놈 컨셉을 유지하려고 가끔 일 관련해서 선 넘은 농담 같은 걸 던지긴 했다.

-너도 오늘 어둠 탐사 들어가지? 민간인 몇 명 죽었나로 내기할래?

-…….

도박하던 연구원이 영감을 줬다. 고마워요.

아무튼 백사헌이 대꾸도 안 하고 이 악물고 무시하는 걸 보니 성능은 확실한 것 같다.

‘순조로운걸.’

나는 갈비탕의 마지막 국물을 마시고 내려놓았다.

칼퇴하고, 보너스도 챙겨주고.

‘구내식당도 괜찮고.’

복지는 여러모로 취직코리아 같은 사이트에서 평점 3.5 이상이 나올 것 같은 회사였다.

매일매일 귀신 나오는 흉가에서 1박 하는 것 같은 막중한 스트레스가 온다는 걸 빼면 말이다….

‘이전이었다면 죽어도 안 했을 일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까지… 음. 평범한 직장생활인걸.’

여기에 실적을 낸다는 효능감 때문에 어쩐지 할 만하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까지 똑같구만.

“노루야.”

은하제 대리가 작고 낮게 말했다.

“이 정도면 윗선에서도 말 나왔을 거야.”

“…예?”

“네 실적 말이다.”

“…….”

“한번은 요령이나 행운일 수 있지만, 열 번쯤 되면 그게 아니지.”

대리가 눈을 찡그리며 씩 웃었다.

“분명 너 찍어서 한번 보려는 윗사람이 생길 텐데, 그럼 꼭 우리한테 말해라. 조장님한테도.”

흠.

일반적인 회사였으면 실적 뺏기인가 고민하다가 슬쩍 말 안 하고 넘길 각을 봤겠지만.

여긴 괴담 세계관에 내가 목숨 구해줬던 전적이 있는 상사의 말이니까.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래. 저래 봬도… 아니, 그냥 보기에도 우리 조장님이 좀 비범하잖냐.”

우리의 시선이 먼저 식사를 덥석덥석 끝내고 식당을 나서던 이자헌 과장을 향했다.

“너 혹시라도 얼토당토않은 제안 받아도 한 번 정도는 부탁하면 커버해 줄 거야.”

저 도마뱀이?

“…예.”

“오케이. 하여간 노루가 말귀도 잘 알아듣는다니깐.”

사실 그다지 납득하지 않았는데 고개만 끄덕였다는 건 앞으로도 비밀로 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윗선에서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라.

나는 식판을 정리해 일어나며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지.’

그건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초상화에서 튀어나와 상반신만 기어다니는 광대를 봤다간 이미 졸도했을 테니까….

하지만 믿는 구석도 있다.

‘신입한테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을 주긴 어렵지?’

이 수준을 넘어가면 짬처리가 아니라 핵심 업무를 주는 게 되는 거니까.

입사한 지 한 달 된, 경력직도 아닌 신입에게 부서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게 한다?

무슨 위튜브에 나오는 미친 X소도 아니고. 그건 또 대기업 내 사회적 불문율상 택도 없는 일이었다.

난 그냥 내 일감이 ‘매뉴얼 없는 괴담’쪽으로 디벨롭되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이대로 만성화되면 아 얘는 그쪽에 특화됐구나, 하고 익숙해지면서 넘어갈 확률이 더 높지.

“그럼 복귀할까?”

“예.”

나는 결론을 내리고 식기를 반납했다.

다만, 이 순간에는 세계관과 직장인 라이프에 익숙해져 매몰된 나머지 하나를 잊고 있었다.

사회생활 불변의 진리 말이다.

바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

* * *

같은 시각, 연구 1팀의 오피스.

‘또 1시간대로 탈출….’

D조의 기록을 보며 월급을 축내던 한 연구원은 이를 씹었다.

‘지금까지 한 5000p 번 건가?’

한 달 만에 저 속도라면, 정말로 몇 년 안에 최단 기록을 경신하면서 소원권을 받아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이야 좋겠어?”

연구원은 투덜거렸다.

“누군 연구실에서 온갖 끔찍한 꼴 보면서 일해도 위험수당 하나 안 쳐줘서 달에 500p 모으기도 힘든데.”

“…….”

“누군 신입이 한 달 만에 5만 포인트….”

“어허, 그만합시다.”

연구원은 꽉 입을 다물었다.

이 상황에서 불만을 이야기하지도 못하는 현실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됐다.

‘운 좋게 좋은 무기 뽑아가지고 다니면서 쉽게 포인트 버는 놈도 있는데.’

누군 포인트도 접근 권한도 없어서 꿈도 못 꾼다는 게 말이다.

‘몸으로 구르는 현장탐사직보다 연구직이 더 엘리트고, 더 잘 대우받아야 하는데 이게 맞아?’

정말 불공평했다.

연구원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본인이 현장탐사팀 직원들을 실험용 쥐라고 부르며 비웃었던 것은 편리하게 잊어버린 채였다.

“뭐, 타이밍이 맞으면 또 이렇게 어둠탐사가 잘 풀리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거든.”

곽제강 과장이 웃으며 연구원에게 툭 말을 던졌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대단하긴 하지만.”

“…….”

연구원이 똥 씹은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드는 것을 못 본 척한 곽제강은 다시 서류를 팔락거렸다.

“아, 이번 어둠은 10명 이상 투입해야 한다며?”

“…….”

“이 주임?”

“아, 예. 그렇더라고요. 10명이 모여야 어둠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흐음.”

곽제강은 웃으며 펜 하나를 챙겨 들었다.

“그럼 이번에는 팀플이겠네.”

-A조, D조, Y조 투입.

“…….”

연구원은 곽제강이 현장탐사팀의 구성도를 꺼내서 해당 팀들에 체크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였다.

“이 주임.”

“예?”

“혹시 현장탐사팀의 알파벳 순서가 무슨 의미인지 아나?”

몰랐다.

자기 일만 가라로 처리하며 자리보전만 하는 중인 사람이 타 부서의 조직 구조에 그리 해박할 리 없었다.

곽제강은 웃으며 서류를 툭 쳤다. 어쩐지 묘한 웃음이었다.

“한마디로, 성적순이지.”

“…!”

“왜, 애들 학교에서도 그런 거 있잖아. 우등반, 일반반, 보충반 같은 거 말이야.”

연구원은 퍼뜩 떠올렸다.

“그럼… D조는 우등반인 겁니까?”

“아니.”

단호한 부정이 돌아왔다.

“A부터 C. 여기가 엘리트지.”

곽제강이 펜으로 해당 조들을 탁탁 쳤다.

“나머지는 다 소모품이야.”

“…아아.”

왠지 기분이 살짝 좋아지려던 찰나였다.

“근데 뭐. 우리끼리 있으니까 하는 이야기지만… D조가 워낙 실적이 좋아서 말이야. 이대로 쭉 가면 다음 발령 때 어떻게 잘 된다는 카더라도 있더라고? 하하.”

“…!”

사내 가십이 그렇듯, 터무니없이 파격적인 소리는 보통 믿을 만한 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연구원은 어쩐지 초조해졌다.

‘뭐 안 좋은 소식은 없나?’

그 기대를 충족하듯. 곽제강 과장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짐짓 안타깝다는 투였다.

“근데 또 하필 이렇게 걸리나. A조랑 같이 들어가다니… 흠.”

“…! 어, 엘리트팀과 함께 들어가면 안 좋습니까?”

“아무래도 그렇지? 왜, 이 주임도 알잖아.”

곽제강이 턱을 만졌다.

“희생이 있어야 탈출로가 뚫리는 어둠도 있는 법이거든.”

특히….

대인원이 필요한 어둠이라면 더욱더.

곽제강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탐사기록엔 여러모로 이야깃거리가 생기겠어.”

* * *

며칠 후.

지난 한 달처럼 자연스럽게 콜을 받고 17층으로 올라간 D조는 예상외의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

연구 1팀의 오피스에 선객이 있었다.

각종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들.

‘현장탐사팀 다른 조들인가?’

나는 빠르게 머릿수를 세었다.

대충 일곱 명 정도.

그중엔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까.

입사환영회에서 소원권을 두고 그렇게 질문했던 신입사원이다.

소 가면을 쓴 해당 신입사원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책상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약간 음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회사에서 복장 문제로 눈총을 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남자치고 장발이다.

물론 이 자리에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아.”

“이거… 흠.”

D조 선임들이 오피스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감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짧은 리액션을 할 무렵.

“오오, 우리 D조도 드디어 도착했네. 어서 오시고~ 자자, 오늘도 브리핑 들어갑시다.”

곽제강 과장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이끌고 부속 회의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옮기며 대리가 질문하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조와 같이 진입하는 겁니까?”

“맞아요. 맞아.”

“…….”

대리는 쓱 주변을 둘러보더니, 곧 내 근처로 돌아와서는 주변에 들리지 않을 크기로 작게 말했다.

“저기 금색 마크 찍힌 가면 쓴 직원들 보이지?”

“예.”

“그쪽이 A조다.”

알고 있다.

‘거긴 정예팀이잖아.’

백일몽주식회사는 누군가 괴담을 클리어해야만 원료가 나오고 회사가 돌아가는 구조였다.

‘회사가 망해야 정상이라는 설정 구멍이 없으려면, 비인간적으로 실적이 좋고 잘하는 현장탐사팀도 필요하지….’

그래서 <어둠탐사기록>에서 유난히 네임드가 많은 곳이기도 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A조는 각각 기묘한 나비, 사마귀, 청둥오리 가면을 쓴 셋이었다.

그때, A조의 청둥오리 가면을 쓴 사람이 알은체했다.

장년 여성의 기운찬 목소리다.

“아, 그쪽이 그 김솔음 사원이야?”

“예. 안녕하십니까.”

반사적으로 꾸벅거리면서도 식은땀이 났다.

‘그’ 김솔음이라니, 대체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 겁니까.

“그래그래. 혹시 기회 되면 한번 봐요. 앞날이 창창한 청년이네.”

그리고 스쳐 지나가서 자기 자리에 착석했다.

…저 사람이 A조의 조장이겠지.

대리가 이어서 설명했다.

“그리고… 금색 마크 없는 가면 쓴 쪽들이 Y조다.”

“…….”

금색 마크가 없는 가면을 쓴 셋, 그리고 나와 안면이 있는 소 가면의 신입사원까지.

어딘가 음울한 기운이 감도는 조였다.

“Y조 조장은 과장이 아니라 평사원인데, 일단 그러려니 하고 가만히 있어.”

“예.”

그것도… 알고 있다.

주임이 내게 속삭였다.

“음… 노루야. 오늘 본 다른 조 사람들, 특히 Y조는 웬만하면 그냥 적당히 대하는 거야. 알겠지? 이유는 나중에 알려줄게.”

“예.”

나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알려주는 내용이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근데 갑자기 옆자리에 앉던 주임이 감동했다.

“하. 난 진짜… 네가 눈치가 빠른 버전의 과장님 같아서 너무 좋다?”

“나도.”

“…….”

칭찬… 맞는 거지?

“자자, 모두 앉아주셨으면 브리핑 딱 시작하겠습니다.”

곽제강이 프롬프터도 켜지 않고 회의실 보드 앞에 섰다.

“오늘 진입할 어둠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했지만!”

곽제강 과장이 허허 웃었다.

“사실 우리도 아는 바가 없어요.”

“…??”

“그게 무슨 뜻이야, 곽 과장.”

“민간인 탈출 정보가 딱 하나뿐이라는 거지요!”

“……허.”

침묵 속에서 서류가 배포되었다.

나도 거의 쪽지나 다름없는 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강원도 한마음가득 펜션에서 동아리 MT 중 보드게임을 하던 대학생 전원(12인) 실종.

해당 보드게임은 ‘유쾌 테마파크! ~즐거운 판타지랜드 여행~’이라는 상표로, 유쾌연구소*의 개발작으로 추정됨.

생존자는 해당 보드게임이 ‘펜션 안에 이미 배치되어 있었다’라고 설명.

펜션 주인은 해당 사실을 부인함.

결과: 17시간 후 일부 인원 귀환.

‘보드게임 속 테마파크에서 지냈다’라고 증언. 정신착란, PTSD 반응, 가벼운 신경증 등 다양한 양상을 보임.

-생존 4, 실종 1, 사망 7

다음 장에는 ‘보드게임 속 테마파크’에 대한 진술이 생존자별로 짧게 기재되어 있었다. 정신적 외상이 심한지 서술이 아주 파편적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친숙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이거 나올 때가 되긴 했지.’

드디어 왔다.

대규모 인원 참가가 필수인 어둠!

“보드게임 플레이 정원이 10명이 넘나보군요? 이래서 인원을 크게 맞춘 거였나.”

“예예,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조성해 봤습죠.”

곽제강이 눈을 찡긋거렸다.

“그래도! 이 악조건에서 우리 팀원들이 확실한 진입 방법을 파악해 놨다는 거 아닙니까.”

“그냥 보드게임 가져오신 거 아닙니까?”

“하하! 섭섭하게 말하시네, 진 대리. 게임법도 다 알아왔구만.”

나비 가면을 쓴 A조의 직원은 대꾸하지 않았고, 곽제강은 개의치 않으며 탁자 위로 보드게임을 올렸다.

“여기 있습니다.”

[유쾌 테마파크!]

~즐거운 판타지랜드 여행~

:팀원들과 함께 3개의 판타지 어트랙션에 가장 빨리 탑승하고 상품을 받아보세요!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박스 앞면에 알록달록한 판타지 랜드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박스를 열면, 구역별로 나뉜 테마파크의 그림지도와 알록달록한 코인들이 보였다.

“자, 이제 팀을 나누고 보드게임을 시작하면 됩니다.”

사람 절반 이상이 죽은 괴담에 얼른 들어가 보라는 말을 참 경쾌하게도 한다.

“그럼 그냥 조끼리 팀을 하면 될까요?”

“아, 그게… 여기 이 뽑기 캡슐에서 장기말을 뽑으면, 그 색에 따라 팀이 나뉘는 거라서 말이죠!”

박스 한편에 있는 작은 캡슐 같은 것을 곽제강 과장이 꺼내서 보여주었다.

“이걸 흔들면 여기 구멍에서 말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랜덤이군요.”

사람들은 결국 한숨을 쉬며 캡슐을 흔들어 장기말을 하나씩 꺼냈다.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인가.’

당연하지만, 이런 건 짬순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기에 내 순서는 거의 마지막이었다.

내가 뽑은 건….

“김 사원은 빨간색이네.”

하필 빨간 말이었다.

괴담 세계관에서 불길한 색이라 썩 기분 좋진 않았다.

‘뭐, 이 괴담은 사실 색은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똑같은 색을 뽑아도 다른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서 말이다.

나는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아무튼, 이제 진입하는 건가.

“자, 이제 게임판을 펴면 진입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자헌 과장이 대표로 게임판을 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음?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에 나는 인원을 체크했다.

노란색 네 명, 파란색 네 명.

그리고 나처럼 빨간색을 뽑은 사람은….

A조의 ‘진 대리’라고 불린 나비 가면, 그리고 Y조의 안면 있는 신입사원이다.

나까지 총 세 명.

“…….”

아.

‘빨간 팀만 짝이 안 맞잖아.’

“한 명이 부족하군요.”

이자헌 과장이 세로 동공으로 곽제강을 돌아보았다.

“11명으로는 진입할 수 없는 듯합니다. 12명을 다 채워서 다시 시도해야 합니다.”

“아 그거요?”

곽제강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더니, 휙 장기말이 든 캡슐을 던졌다.

“이 주임. 이거 받아!”

바로 옆에 서 있던 도박중독 연구원에게.

“어, 어어…?!”

얼결에 연구원이 캡슐을 잡자.

또르르.

그 안에서 남은 빨간 말이 나왔다.

“…!?”

“뽀, 뽑았다!”

잠깐만.

-판타지랜드로 출발합니다~

보드게임 판이 허공으로 휘날려 올라와, 눈앞을 삼켰다.

“으아아악!”

“하하하하하하!”

귓가에 연구원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곽제강 과장의 웃음소리도.

“…….”

나는 저 인간의 <어둠탐사기록> 위키 뒷페이지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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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매료된 사이코.

매드 사이언티스트.

아직 정보가 부족한 괴담을 탐사할 때, 죽을 게 뻔한 조합이나 행동을 부추겨 특이한 데이터를 뽑아내려는 미친 습관으로 탐사기록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일등 공신이다.

곽제강의 징계 기록은

#탐사기록(번외) 페이지에서 확인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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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경계는 하고 있었다.

“뭐야, 이게 뭐냐고!”

대인원에, A조와 Y조가 같이 왔을 때부터 짐작했지만….

‘생존확률을 일부러 조졌어.’

이거, 최다생존으로 괴담 클리어를 노리는 게 아니다.

A조 빼고 다 죽으라는 세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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