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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00화


빛이 쏟아진다.

벼린 날이 번뜩이고, 신념으로 긋는다.

양손과 하늘에서 작두가 벌이는 춤사위.

아아아아…!

파계승의 모습을 한 지네의 몸통에 우수수 작두가 꽂힌다.

반짝반짝 용궁에서 진나솔 대리에게, 혹은 꿈 배양실에서 내게 꽂혔던 악인제압용 작두가 아니다.

화려한 솔과 정교한 방울이 달린,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크기의 작두.

의식용.

사악한 ‘존재’와 대적하기 위한 무기.

으으어으으으우…!

세상진리를 설파하던, 아니, 사실은 그저 자신의 끔찍한 깨달음을 중얼거릴 뿐인, 인간의 구강구조를 흉내내어 광기를 심던 삿된 것이 몸부림친다.

그럴 때마다 꿈틀거리던 인간의 팔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오며, 재가 되어 안식을 얻는다.

위령제의 절차.

쿵.

지네가 경련하며 서낭당의 기둥과 서까래가 무너진다.

그 파편들이 금방이라도 사람들의 머리 위로도 쏟아질 것 같으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청동 요원의 단단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쏘는 유리 손포의 투명한 탄환들이 서낭당 주변 허공에 박혀, 지네를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가둔다.

일종의 부적처럼, 적합한 글자가 가운데 새겨진 탄환이 정확한 효력을 발생시킨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

“이런 무속의식류의 초자연 재난을 종결시키기 위해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절차는, 감추어진 정체를 드러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안다.

무엇인지 알아야 퇴치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재난관리국이 이 서낭당에 술단지째로 파묻힌 채 기이한 힘을 주던 저 무명찬란교의 전도사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도.

최 요원이 직접 고뇌하며 적었던 코멘트들.

-음… 사실 지부에서는 더 본격적으로 조사하고 싶어 했더라. 그런데 다른 정부 부처에서 막아서 애먹고 있더래. 마을 자체를 해산시키는 것도 반려당했대.

지금처럼 연마다 가서 구해오면 되는 것 아니냐, 실종이나 죽음에 관한 정확한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았다 등.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래도 지산 마을에서 뒷돈을 받는 관료가 있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손이 막힌 것이다.

-매년 명절 축제 기간이 돌아온다는 건 재난으로 생각하면 진짜 길고 반복적이지? 그런데 조사 기간으로 따지면 턱없이 짧아.

특히 이렇게 역사가 긴 괴담에, 의식이 변형되어 본래의 원형을 찾기 어려우면 더더욱 까다롭다.

구조요청자를 구출시키기도 바쁘게 된 상황.

그렇게 현상 유지만 간신히 해왔다.

-그래서 매번 아쉽네. 분명 원흉이 있는 것 같은데… 찾기만 하면 뭐 퇴치든 퇴마든 시도할 수 있을 거잖아. 그걸 못 해서 좀 입이 쓰지 뭐.

-잠깐만 포도야 혹시 이거 읽고 내가 마을의 비밀을 파헤쳐 보겠다 혼자 결심하지 말기! 다 같이 하기! 알지?^^

그러나….

내가 했다.

“당신이 그 정체를 찾아냈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저걸 서낭당 밖으로 꺼냈습니다. 그리고 정체가 드러난 이상.”

청동 요원이 미소 짓고 있었다.

“이 재난의 종결은 우리가 가장 잘하는 종목이 된 겁니다.”

바로….

현무팀의 전공.

“전통적 의미에서의 사악한 것. 그것의 퇴치.”

“어르신!”

지붕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최 요원이 작두를 하늘에 던지며 손에 든 도깨비불이 해처럼 밝게 타오른다.

부서진 서낭당의 밑바닥까지 훑는 불꽃.

아아아아아!

지네를 위해 조성된 어둡고 습한 음지가 타오르듯 없어지고, 밝고 따스한 양의 기운이 도래한다.

아으아으으어으!

인간의 팔을 많이 잃은 지네가 다시 입을 열지만 그 깨달음은 이제 인간의 언어로 잘 구현되지 않는다.

체계화된 현무팀의 초자연 재난 퇴치는 그것을 차근차근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첫째. 의식 공간의 정화.

삿된 것이 깃들기 좋은 환경을 몰아낸다.

그리고 둘째.

구속.

“지금!”

청동 요원이 쏴놓은 탄환이 서낭당을 옥죈다.

인간의 팔을 다수 잃고, 눈부신 환경에 노출된 지네가 흐느적거리며 발악한다.

그러나 태생적, 오행적 약점을 송곳처럼 찌르는 대응은 그가 가진 형용할 수 없는 사악한 진리와의 연결을 끊어놓고, 취약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마지막이 다가온다.

셋째.

“봉인.”

청동 요원의 유리 손포에서 마지막 탄환이 나간다.

강력한 축사의 제례를 받아, 바리데기 세공소에서 교묘하고 능란한 장인의 솜씨로 만들어진 그것은 사악한 것의 몸에 틀어맞았다.

정확히 이마에.

픽.

그리고.

탄환이 박혀 들어간 지네의 몸 구멍에서부터, 내용물이 빨려 들어간다.

안으로.

오오오오오오!

지네는 마치 한 점으로 수축하듯이 기이한 파열음을 내며 우그러든다. 아니, 지네뿐만 아니라 서낭당과 그 밑의 땅, 주정, 지네지주에 의해 오염된 그의 영지가 빨려 들어갔다.

유리 탄환 속으로.

아아아아아!

지네의 목소리가 단말마처럼 울리더니, 이윽고….

끊겼다.

…….

툭.

검게 변한 유리구슬이 한때 서낭당이 있던 파인 구덩이로 떨어졌다.

주먹만 한 크기가 된 그 유리 탄환의 표면에는 음각으로 세공된 지네의 모습이 있었다.

거칠고 호쾌한 그 파임이 마치 무명찬란교의 신성법 경전 조각처럼 황금빛으로 번뜩이려고 했으나, 곧 봉하는 강력한 힘에 가로막히듯 사라졌다.

유리 탄환의 표면은 곧 마치 싸늘하게 식듯이 은 덩어리로 변했다.

“…….”

“…….”

청동 요원이 구덩이로 가서 은구슬을 잡아, 한번 확인하듯이 전면을 훑어본 후 복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선언한다.

“종결입니다.”

“후우!”

최 요원이 작두를 손에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람들 괜찮지?”

“예. 진정 상태입니다.”

충격적인 경험을 했던 외지인들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비틀거리며 배회하거나, 가만히 서서 멍한 상태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아마 그들에게 폭력적인 광기의 진실을 알려주었던 지네가 사라지며, 그 공허함에 일시적으로 이지를 잃은 것 같았다.

풍물놀이패들은 사물과 옷만 남긴 채 사라져 있었다.

간간이 무너진 옷 아래로 뼈와 흙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훑어본 내 눈이, 다시 최 요원의 뒷모습으로 돌아왔다.

“…….”

요원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서낭당이 사라져 패인 자국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재난관리국에서 정보를 빼돌리지 않으면 한 달 후에 사망하는 스파이.

심지어 자신도 엮여서 죽을 뻔했다.

그런데 그 첩자를 구해주려고 하루 만에 온갖 준비를 갖춰서 지방에 내려와, 목숨 걸고 지네와 싸운 요원은… 무슨 생각을 할까.

“…….”

알고 싶지 않았다.

알아차린 후에 내가 떠올릴 생각이,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피로하게 느껴졌으니까.

분명 그랬었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은 반짝, 아주 잠깐….

대답을 듣고 싶기도 하다.

무슨 생각인지.

“…포도야.”

“……!”

“와볼래?”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 요원은 나를 돌아보진 않았다.

다만 가까이 다가가자 상대가 등 뒤로 손을 내밀었다.

내 쪽으로.

“다 됐다. 돌아가자.”

…….

…….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최 요원은 내 손을 당기며 자리에서 가뿐히 일어났다.

“으차!”

나를 돌아보는 얼굴에는 이전과 같은 미소가 떠 있었다.

그리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이고, 삭신이야. 아니 겨우 하루 쉬었더니 애가 실종을 당하고 말이지. 이래서 쉴 수가 없다니까.”

“죄송합니다.”

“포도 잘못은 아니지요? 신고자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돌발상황은 어쩔 수 없지.”

“…….”

“그래도 다음에는 너무 무모한 짓은 하지 마.”

당연히 다음이 있을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예.”

이상하지만, 왠지 상황이 조금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결된 거나 진행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

머릿속이 조금 맑아지는 듯하다.

“좋아. 그래야 현무 1팀이지!”

최 요원은 내 등을 툭 치고 가더니, 청동 요원이 챙긴 구슬을 보러 그쪽으로 향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었다.

‘그래.’

일단 오늘은 잘 살아남았다.

그리고 재난관리국 요원들이 전통적 퇴마로 괴담에서 기이한 존재를 봉인하는 것까지 봤으니… 어쩌면, 나쁜 날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도 다 살았고 말이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밝게 빛나던 도깨비불은 사라졌지만, 하늘에는 해가 떠서 반짝이고 있었다.

‘음.’

그리고 고개를 내리자, 텅 빈 서낭당 구역 옆에 쓰러진, 내 인간가마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셋뿐이다.

‘백사헌.’

나는 구조신고자가 서 있던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 가마 중 한 사람이었던 백사헌은, 본래 서낭당 왼쪽 옆에 서 있었는데….

‘음.’

어느새 자리에 없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순간부터 도망친 듯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아니, 이 경우에는 오히려 가장 현명한 판단이기도 했다.

그래도 기력이 좀 돌아오니 얄밉게 느껴지긴 한다.

‘누군 저 자식이 자기 대신 죽을 자리에 밀어 넣어서 개같이 고생했구만….’

그래도 들킬 위험 무릅쓰고 밤새 마을 관련 지식을 알려준 건 확실히 도움이 되긴 했다.

‘이제 그 자식도 여기 돌아오지 않아도 되겠지.’

-아니, 여기 매년 와야 한다고요. 그냥 도망가 봤자 미쳐서 목맨다고!

백사헌이 새벽에 했던 말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이 지산마을에 방문해야만 ‘세상진리’의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듯했다.

아무리 지네를 술에 절여놓고 누름돌로 누르고 서낭당에 모셔둬도, 이미 너무 많이 접촉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이젠 원천인 지네지승이 없어져 버렸으니, 모르긴 몰라도 좀 낫겠지.

‘흠.’

나는 시선을 떼려다가, 뭔가 묘한 것을 발견했다.

백사헌이 있던 자리에 뭔가 있다.

“…….”

나는 아주 약간, 자리를 옮겨서 해당 물건을 주웠다.

쪽지… 아니, 종이접기로 완성한 작은 종이배 같은 무언가.

‘남긴 건가?’

나중에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챙겼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나를 쳐다보고 있던 최 요원과 눈이 마주쳤다.

“…….”

“…….”

최 요원은 미소 지은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리더니, 태평하게 말했다.

“늦지 않게 와서 다행이지? 진짜 준비 마치자마자 달려왔잖아.”

“요원님이 설악산에 있지만 않았다면 더 빨리 왔을 겁니다. 대체 하루 연가를 내고 왜 거길 가신 겁니까?”

“하하하…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요양할 겸? 아, 어쨌든 저기 있네! 우리가 포도한테 제시간에 도착하게 해주신 일등 공신 말이야.”

최 요원이 어느 장소를 가리켰다.

그 끝에는… 은하제 대리가 있었다!

“예. 서낭당 위치를 바로 알려주시더군요.”

“…!”

은하제 대리가 마을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들을 보자마자 바로 서낭당으로 목적지를 알려준 것이다.

그 덕에, 요원들은 내가 지네지승에게 홀려 그것의 팔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인도 업무로 바쁘실 텐데.’

고마웠다.

나는 멍하니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청동이를 알아보시더라고. 오, 인사하신다.”

은하제 대리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머리를 까딱해 보인 다음,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정확히는, 본인은 그랬다고 생각했을 테고 나도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눈이 기가 막히게 좋은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았나 보다.

혼이 나간 듯 멍한 사람들 사이에서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쉿.”

입가에 손을 대고 가만히 그것을 들여다보던 최 요원이 살짝 눈을 찌푸린다.

“폐가 쪽으로 가시네. 흠.”

그가 작두를 넣으며 얼른 옷을 정리한다.

“따라가 보자. 목적지가 독특한데… 기자라고?”

“그렇습니다.”

“그게 참, 잠입할 때 써먹기 좋은 직업이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추리.

‘대리님까지 들키면 안 되는데.’

은하제 대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도, 최 요원을 이 이상 호 이사의 손아귀에 밀어 넣고 싶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파국 아닌가.

“음.”

청동 요원과 말을 주고받던 최 요원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를 찬찬히 살피는 것 같더니, 이렇게 말했다.

“포도는… 나가서 좀 쉬고 있어도 괜찮고.”

안 돼.

“저, 괜찮으시다면 같이 이동하고 싶습니다.”

“그래. 같이 가자.”

“…….”

눈치챘을까?

눈치를 못 챘다고 해도 그 호의에 위가 뒤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나는 이동하는 요원들을 따라 발을 재촉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우물터를 덮은 목재를 반쯤 뜯어낸 채, 그 안을 들여다보던 은하제 대리를 볼 수 있었다.

“…아니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시민님? 지금 뭔가 찾고 계십니까?”

우물 밑을 보던 은하제 대리가 고개를 들더니 우리를 보고 약간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와서 뭘 평범한 공무원처럼… 거참. 댁들 그… 만화에 나오는? 그런 거 아닙니까.”

“만화….”

“기왕이면 007은 어떠십니까? 하하, 여기 요원님은 그 표현을 마음에 들어하시는데 말이죠!”

“…하.”

최 요원이 넉살을 부리며 청동 요원의 등을 치더니, 이내 입가에 검지를 댔다.

청동 요원이 눈을 질끈 감았다. 요원님….

그 꼴을 보던 은하제 대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어디 가서 말할 생각 없으니까 걱정 마십쇼.”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요원들이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는 것을 보았다.

아마 이 마을에는 곧 재난관리국 주작반 요원들이 들이닥쳐서 ‘정리’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무해한 대규모 기억 소거도 진행될 것이다….

대리님이 부디 그전에 나가시길 바란다.

식은땀이 난다.

그리고 그사이 요원들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왜 그 우물을 보고 계시던 겁니까?”

“뭐, 여기에 이상한 전설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말이죠. 어디 신비한 곳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던가.”

은하제 대리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를 꺼냈다가 얼른 다시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이 마을 축제 때 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들어서 와본 건데….”

우물을 손가락으로 툭 친다.

“뭐. 딱히 특이한 점은 없어 뵙니다.”

“아하.”

최 요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대리님의 조사를 도울 것처럼 품에서 광원을 꺼내 든다.

도깨비가 깃든 호롱.

붉게 번뜩이는 그 빛에 우물터의 그늘이 순간 밝아졌다.

“자자, 비춰 드리죠!”

“…굳이 그걸로 말입니까?”

“예예.”

최 요원이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이 등불로 말할 것 같으면, 위험을 감지하는 역할까지 해주는데 말이죠!”

“아하.”

“보세요. 색이 변하죠? 이렇게 붉게 깜박깜박거리는 건요.”

“거리는 건?”

“인간이 아닌 게 주변에 있다는 거지.”

“…….”

“…….”

“넌 누구지?”

정적.

“아까 우리를 안내해 준 건 분명 사람이었는데, 너는 사람이 아니잖아.”

“…….”

은하제 대리의 형상을 한 것이 고개를 든다.

그 얼굴의 살짝 부드러운 미소.

“눈치가 빠르시네요.”

“……!”

“안녕하세요, 요원분! 저희는 구면이죠?”

“최 요원님!”

청동 요원이 황급히 방비하려 들자, 최 요원이 손짓으로 막는다.

그 와중에도 은하제 대리는 평소 절대 지을 리 없는 온화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아. 제가 이분께 부탁드린 건 분명 다른 일인데, 이상한 장소로 이동하시는 것 같아서요. 직접 도와드리는 중이랍니다.”

호 이사.

둔갑한 건지, 아니면 조종 중인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것이었다.

호 이사가, 은하제 대리의 모습을 한 채 우리의 앞에 서있었다.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

안 돼.

‘일부러 부추기는 거야!’

여기서 호 이사와 더 말을 이어가면 안 된다. 청동 요원이 이 자리에 있었다.

‘최 요원이 금제를 어길 확률이 너무 높아…!’

그게 아니더라도 청동 요원까지 끌어들이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은하제 대리를.

또, 반복되는 것이다.

‘안 돼.’

나는 이를 악물고 끼어들 타이밍을 노렸다. 그리고 어떻게든 말을 꺼내려던 순간.

“마침 잘됐네. 더 쉽겠어. …누군지 알면 말이야.”

최 요원이 작두를 들어서 가리켰다.

…나를.

“…?!”

“포도야.”

“최 요원님, 지금 무슨….”

찰랑, 찰랑.

“힘들었지?”

“…….”

“이제 괜찮을 거야.”

찰랑, 찰랑.

“네 금제.”

“……!?”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아니, 지금 그걸 그렇게 말하면…….

…….

‘…잠깐만.’

나는 깨달았다.

그래. 최 요원은 금제 때문에 아무에게도 지난밤의 경험에 대해 발설하지 못하는 건 맞다.

내가 스파이라는 것.

이 재난관리국에서 정보를 빼돌릴 계획이라는 것.

또, 자신이 금제가 걸렸다는 사실조차도.

‘모두 금지사항이지.’

하지만 말이다.

“고민해 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더라고.”

나에 대한 금제는 예외다.

‘우리 팀 요원에게 초자연 존재에게서 비롯된 이상한 금제가 걸려 있다’라는 사실은, 금제 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걸 풀어주려는 시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설악산에서 용한 분 찾아내느라 진짜 애먹었네.”

최 요원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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