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03화
집.
목적지.
내가 소원권을 타려는 이유.
이 세상에서 탈출해서,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을 줄여서 그렇게 부르곤 했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라고.
…속으로만!
겉으로 떠들고 다니지 않았던 내 내밀한 사정이 갑자기 심문 자리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내 집이 어디냐고?’
나는 의자를 붙잡지 않기 위해 손에서 억지로 힘을 풀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갑자기 왜 그걸 물어보시는 겁니까.”
“…당신이 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대체 누구에게? 아니….
…….
기억났다.
-그렇게 해서 이루려는 네 소원은 뭐야.
-집에 가는 거.
최 요원이 말해줬을 것이다.
나는 택시에서 호 이사와 조우했던 그 지옥 같은 밤을 떠올렸다.
그리고 최 요원과 그 후에 나눴던 대화도.
“…….”
집.
거기까지는 내가 스파이인 것과 관련 없는 개인적인 대화로 판정된 건가.
‘그렇다고 해도 굳이 입 밖에 내려는 시도는 왜 한 거야.’
위험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걸 청동 요원이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말을 돌렸다.
“제가 어디서 출퇴근하는지 말씀드리면 될까요?”
“아니요. 그건 집이 아니잖습니까.”
…!
청동 요원이 나를 묵묵히 본다.
“당신이 모텔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 압니다.”
“…….”
“투숙 중인 방에는 개인 가구는커녕 자기 물건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거의 없다는 점도 이미 확인했습니다. …옷 몇 벌이 다더군요.”
나 혼자만 생각으로 간직하던 것이 폭로되는 느낌.
“거긴 집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아니, 일부러 당신이 그런 공간으로 방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재난관리국에서 제공하는 요원용 기숙사도 신청하지 않았죠. …왜 그런 겁니까?”
대답할 수 없는 질문.
“포도 요원.”
“…….”
“제가 지금부터 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청동 요원이 유리벽 너머에서 주저 없이 말한다.
“이 대화는 저와만 나누는 겁니다.”
“…….”
“녹음이나 별도 기록도 없습니다. 오로지 저만 들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청동 요원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쥐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을….
“저는 본래부터 집이 없었습니다.”
“……!”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보육원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잠깐만.
“거기서 먹고 자며 살고 있는데도 집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습니다. 도리어 집을 생각하면 어머니와 살았던 빌라가 떠올랐죠. 잘 기억도 나지 않고, 느낌만 남았는데도 말입니다.”
쏟아지듯 개인사가 내 귀에 들려온다. 위키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의 과거사가.
아니, 인물이 아니라….
‘청동 요원.’
지인의 이야기가.
“그러다 등교 중에 초자연 재난에 휘말리면서 재난관리국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거기서 일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웃으시더군요.”
그리고 자신의 사정을 들은 관리국에서 안전한,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관리국이 이용하는 기묘한 서점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야간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대학 과정을 수료한 후에 즉각 시험을 보고… 붙었습니다.”
청동 요원이 나를 본다.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
“이제 저는 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현무 1팀의 대기실이 떠오릅니다. 관리국의 기숙사방도 떠오르죠.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아.
“그래서 당신에게 이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청동 요원이 조용히 묻는다.
“…포도 요원. 당신의 집은,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까?”
“…!”
“본래 있었는데, 상실한 겁니까?”
그 뒤에 생략된 말이 들리는 것 같다.
‘나처럼’.
“…….”
나는 지난 심문 때처럼 결박되어 있지 않다.
자유롭게 질문을 회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예.”
“……!”
“없습니다.”
청동 요원의 눈에 빛이 돈다.
“백일몽에서 근무했던 건, 그 집을 돌려받고 싶어서입니까?”
“조금 다릅니다.”
나는 천천히 말을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입니다.”
“…….”
청동 요원이 그 말뜻을 곱씹는 듯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포도 요원.”
단호한 말이 돌아왔다.
“이미 없어진 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
“돌아갈 수 있다고 현혹하면서 당신을 이용하려 드는 자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악용하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보다 강한 사람입니다.”
아니다.
아니라는 건 내가 알고 있다.
소원권은 진짜였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지만 그건 내 상황에 맞지 않….
“집은 새롭게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
“제가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상대를 보았다.
“여기서 나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 가는 장소를 찾아서… 당신이 편안하게 쉬고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곳을 만들면.”
청동 요원이 선언한다.
“그곳이 당신의 집이 될 겁니다.”
자신이 재난관리국의 본관, 그 안락한 동아리방 같은 대기실을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경험자의 조언은 시원하도록 확실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포도 요원도 무조건 그렇게 확신하길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은 해봤으면 합니다.”
“…….”
“그럴 수 있습니까?”
나는 아주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리 벽은 아무것도 투영하지 않았다.
진실.
청동 요원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살짝 퍼졌다.
“좋습니다. 오늘의 심문은 여기서 끝입니다.”
“…….”
“오늘은… 꼭 푹 쉬셨으면 합니다.”
나도 내가 믿기지 않는다.
뭘 고려하겠다고 지금 대답한 거지?
하지만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마음은 생각보다 평온하다.
나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듯이.
그리고 청동 요원은 내 사정을 더 캐묻지 않는다.
“그리고 식사와 수면을 잘 챙기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간은 제가 심문관으로 배치되었으니, 과격한 심문은 없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휴식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필요한 게 있으면 넣어주겠다며 청동 요원이 덧붙였다. 물론 규정에 어긋나는 위험 물건은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 말에 거짓의 징조는 없다.
당장 나를 흉몽미로에 처넣을 것 같지는 않다…….
‘…후우.’
그간 심문을 위한 함정을 피하려 최대한 안전한 음식만 골라서 소량 먹고, 되도록 자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유지하던 각성 상태가 순간 탁 풀릴 뻔했다.
피로감이 파도처럼 닥쳐오려던 순간.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약간 주저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혹시 최 요원님을 원망하고 계십니까?”
“……!!”
“그러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금제를 풀자마자 갑자기 감옥으로 이송했지 않습니까. …그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말입니다.”
청동 요원의 목소리에 노기가 살짝 섞였다가 꽉 눌린 듯 사라졌다.
‘아무래도 싸웠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 기색을 티 내고 싶지 않은 듯, 청동 요원이 말을 돌렸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간 최 요원님이 포도 요원을 여기 넣어놓고 일부러 방치하려 했던 건 아닙니다.”
도리어 나와 대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심문관 역할에 지원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당신을 감옥으로 이송한 당사자인 데다가, 첫날 심문관 지원 때 객관성 항목에서 점수 미달이 나와서 막힌 겁니다.”
“……!”
“다행히 제가 통과해서, 오늘…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는데.”
청동 요원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대답을 들려주셔서 좀 안심이 됩니다.”
“…….”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청동 요원은 내게 다시 한번 건강을 챙기고 쉴 것을 당부한 후, 유리벽 너머에서 안개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나는 그렇게 다시금 도깨비불과 단둘이 유리 감옥에 남았다.
그러나 경각심으로 각성한 정신이 주는 긴장감이 아닌 한 대 맞은 듯한 멍함이 머리를 감돈다.
그리고 곱씹었다.
방금의 대화를.
‘여기서 살라고?’
집에 돌아가는 걸… 포기하고?
이곳에서 새로운 집을 만들고, 정착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다.
재난관리국 소속 요원으로서 말이다.
‘…심문용 미끼인가?’
하지만 청동 요원의 성향을 고려하면, 그 정도로까지 기만적인 심문 방식에는 협조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진짜라는 거다.
거기에는 전제된 조건이 있고 말이다.
재난관리국은 나를 악인이라고 판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계속 근무하길 바란다.
“…….”
맙소사.
‘생각보다… 상황이 괜찮은 것 같잖아.’
심문관이 청동 요원이니, 적당한 선에서 스파이를 자백하고 마무리될지도 몰랐다. 나는 도저히 말하기 어려운 온갖 비밀을 지킨 채로 유리 감옥을 걸어 나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리고….
여기서 그냥 근무할 수 있을지도.
“…….”
재난관리국의 요원으로 계속 사는 것.
지금처럼 현무 1팀과 근무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 힘들면, 내가 무섭다고 완전히 솔직히 말하면 다른 팀으로 발령 내 줄지도 모르지.
그렇게 이 괴담 세계관에서도 비교적 안전하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일상을 꾸려갈 수 있는 것이다.
‘나쁠 것은… 없지 않나?’
아니, 도리어 괜찮게 느껴진다.
집을 새롭게 만드는 것…….
‘아냐.’
나는 소리가 나도록 스스로 허벅지를 때렸다.
당장 몸과 정신이 힘들어서 나 좋을 대로 판단하는 실수를 하면 안 된다.
‘지금 청동 요원은 내가 사고나 재난으로 집을 잃어버렸다고 가정하고 권유한 거다.’
나는 착각하면 안 된다.
‘내 집은 멀쩡하게 있어.’
돌아가는 게 어려울 뿐이지 아예 현실을 거스르거나 불가능한 것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게다가 말이다.
사실 알고 있다.
이 <어둠탐사기록>의 세계에서 아예 살겠다는 건 정말로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가? 그 위키의 부제목을 말이다.
종말예언 : 어둠탐사기록
그렇다.
‘오래 있으면 안 돼.’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애초에….
-이런.
정중하고 유쾌한 남성의 목소리.
-머리가 복잡한가 봅니다, 친구.
“…!!”
몸을 벌떡 일으켰다.
‘환청?’
-환청이라니, 이렇게 선명한 환청도 있답니까? 오, 물론 이 브라운이 그리워서 무심코 착각한 것이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요. 그렇고 말고요….
유려하게 흐르는 말솜씨는 내 상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확실하다. 나는 황급히 옷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그것을 꺼냈다.
작은 토끼 봉제인형.
‘…….’
오싹한 감각이 등을 스친다.
‘어떻게 말을 하는 거지?’
이 유리감옥 안에서 비일상적인 초자연 현상들은 모두 차단….
아.
‘초자연적 존재도… 존재는 할 수 있다고 했지.’
마치 지금 벽에 붙어서 벌벌 떠는 도깨비불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착한 친구’는, 그 매개체를 통해 이곳에 있는 존재는 그냥 말하는 봉제 인형이 아니라 하나의 지성체로서, 존재로서 인정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일상에서도 곧잘 대화를 나눴지 않습니까! 친구 간의 긴밀한 대화를 허튼 술수로 취급할 수는 없지요. 노루 씨, 이토록 서운할 수가!
유쾌한 투로 말하던 사회자는 마지막 추임새를 넣다가 멈칫거린다.
인지하듯이.
-그래요…. 서운하군요.
…….
–친구는 내가 반갑지 않은가 봅니다. 일주일만의 대화인데도 말이지요.
-나는… 친구가 같은 요일에만 찾아오는 프로그램을 손꼽아 기다려 마침내 시청할 때처럼 즐거워할 줄 알았습니다만….
“…….”
그렇다면.
이 봉제 인형은 자의적으로 일주일간 거짓말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
-또 그렇게 부르는군요. ‘봉제 인형’.
목뒤로 소름이 돋았다.
-흠. 상관없긴 하지. 위대한 토크쇼의 사회자, 쇼 엔터테이너는 그 어떤 별칭과 멸칭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법입니다. 그것이 대중의 선택이라면. 또 내 친애하는 친구의 선택이라면!
사회자의 목소리가 경쾌히 유리구를 울린다.
마치 마이크의 에코처럼 반향음이 들어간다….
-좋습니다. 지치고 고된 며칠을 보낸 내 친구에게 멋진 쇼를 보여줘야겠군요.
-서프라이즈! 고개를 들어보십시오. 친구!
나는 뻣뻣하게 머리를 움직였다.
내 눈앞에 있는, 청동 요원이 서 있던 유리벽에서….
-그럼 소개합니다…. 바로, ‘유리감옥 탈출법’!
영상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액정처럼.
“…!”
-함께 보기로 했던 아동용 만화보다 멋지지 않습니까? 하하 이런! 친구, 당황했군요. 괜찮습니다. 오? 초자연적 현상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TV를 보는 건 더없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자, 그럼….
-시청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