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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08화


오색찬란한 물약이 내 손안에서 물결친다.

꿈결의 색.

소원을 들어주는 약.

…소개문이, 그 투명한 유리병에 음각으로 아로새겨져 속에 든 물약이 파도처럼 빛을 흔들 때마다 드러난다.

나는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 백일몽 물약 :

소원

EX (miraculous)

병을 양손으로 들어 올리세요.

당신의 간절한 소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후…

눈을 감은 채, 병에 든 액체를 한 번에 섭취하세요.

어떠한 소원이든 이루어질 겁니다.

이 사용법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고민했었다.

어떤 문장을 사용해야 하는가.

소원권을 쓸 때, 대체 어떠한 한 문장으로 내가 빌 소원을 표현할 것인가.

침대에 누워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일 때마다, 사무실에서 탐사 보고서를 쓸 때마다, 괴담에서 간신히 살아나와서 퇴근길을 걸어갈 때마다 생각했다.

가장 처음에 떠오른 건 그거였다.

원초적 욕구.

-집에 보내주세요.

간절했다.

그러나 보류했다.

‘집’은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거주 공간이 한두 곳도 아닌데,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소원권이 발동할지는 알 수 없었다.

자칫하면 백일몽 사택으로 나를 보내버릴 수도 있는 문구다.

…재난관리국에 잠입해 있을 때 최대한 ‘집’이 아닌 모텔을 전전했던 것도 여기서 파생된 거부감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나는 모든 여지를 차단해야 하니까.

‘실수하면 안 돼.’

소원권이 절대로 엉뚱한 방식으로 내 소원을 들어주게 해선 안 된다.

‘원래 살던 곳으로 보내주세요’? 마찬가지로 추상적이다. 기각.

‘괴담이 없는 세계로 보내주세요’? 그게 내가 있던 곳일 거란 보장이 없다. 자칫하면 죽어서 천국에 가면 괴담이 없는 세계지… 같은 미친 해석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몇 번이고 버려가면서, 그렇게 신중하게 골랐다.

시공간을 정확히 지정할 수 있는, 완벽한 한 문장을.

그리고 정했다.

나는 양손으로 물약을 꽉 쥔 채, 입을 열고 말한다.

“내 소원은.”

바로.

“내가 백일몽 주식회사에 입사하기 하루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원래 살던 세상이면서 팝업 스토어에서 룰렛을 돌리지 않은 시점.

완벽한 지정이었다.

-훌륭하군요!

‘됐어.’

나는 사회자의 감탄을 들으며, 침착하게 소원권 물약의 뚜껑을 개봉했다.

빛이 터져 나왔으나 손으로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물약을 입에 흘려 넣었다.

“……!”

마시는 꿈.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공감각적인 기묘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찬란한 것이 뱃속을 가득 채운다.

무형의 힘, 초월적 권한, 넘치는 신비.

황홀함과 경이가 나를 이끈다.

그래. 나는 이동 중이다!

‘맙소사.’

온몸이 어딘가로 빨려든다.

아주 깊이, 아주 멀리….

내 소원이 닿는 곳으로.

마치 숙원을 이루기 위한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초월적인 힘이 나를 옮겨준다.

그래.

그래!

나는 이대로 안전한 내 집으로 돌아가….

…….

…….

……?

“쿨럭.”

나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먼지투성이의 더러운 바닥에 몸이 구르며 기침이 터져 나왔다.

퀴퀴한 공기.

눈을 떠도 새카만 어둠만 보인다. 눈을 깜박여도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다.

고요함.

고요함.

이게 뭐지?

환상적인 감각은 끝났다. 소원권은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는 건….

여기가 내 목적지라는 뜻.

“…….”

머리에서 피가 빠져나간다.

멍하다.

“흐윽.”

나는 바닥에 몸을 비틀며 일어났다. 날카로운 조각이 내 팔과 손을 긁으며 찌릿한 통증을 남긴다.

숨을 몰아쉬며, 아직도 한 손에 들고 있던 빈 병을 들었다. 남아있던 소원권 액체 한두 방울이 희미한 잔빛을 비춘다.

내가 있는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깨진 유리 파편 위.

“…!”

고개를 돌리자, 내가 엎어진 곳이 보인다.

텅 빈 유리관이 깨져있다.

나는 그곳에서 먼지 구덩이의 조각난 유리 위로 넘어진 것이다.

‘…왜?’

내가 저 안으로… 이동된 거지?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친다. 불길함이 머리를 잠식하기 전에, 나는 그 기기의 실루엣을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확인했다.

마치 대용량의 용액을 보관하던 기기 같다. 그런데….

…기기가 낯이 익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텅 빈 유리관 아래로 버튼과 키보드 패널이 있는, 2000년대 스타일의 낡은 실험 기계.

그건, 그건…….

꿈 배양기다.

망가지고 깨진, 유쾌연구소의 꿈 배양기.

…….

나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에 적응한 눈이 소원권 찌꺼기에 의지해 주변을 드디어 식별한다.

여긴.

유쾌 연구소의 프로토타입 꿈 배양실이다.

“……!”

뭔가 잘못됐다.

뭔가, 잘못됐다.

왜 여기로 왔지?

“아니야.”

침착하자. 침착, 나는 분명 입사 하루 전에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왜 여기에, 잠깐만. 아니, 아니다.

“거기가 아니야!”

다르다!

그래. 그 연구실과 구조는 똑같지만 다르다. 묘하게 실루엣이 달랐다.

다른 기계와 문서들이 보인다. 녹음 테이프와 빈 시약병들까지. 그리고 컴퓨터들도….

‘컴퓨터에는 먼지가 없어.’

……이상하다.

나는 비틀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힌트, 힌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실험일지.

“…….”

피와 오물에 절어서 모든 기록이 꼼꼼하게 지워지고, 오로지 ‘우리가 속았다’가 미친 듯이 반복되던 그것.

깨진 꿈 배양기의 유리관 옆에 있었다.

내가 지난번에 꿈 배양실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

나는 그것에 다가갔다.

낡은 종이는 피와 오물에 젖어있지 않았으나, 갈색으로 그을려 있다.

떨리는 손으로 넘긴다.

불에 탄 듯 거뭇거뭇 자리가 없었으나 읽을 수 있었다.

첫 장의 타이틀부터.

이름님 초대 연구

숨을 들이켰다.

연구 목적 : 목표로 하는 ……의 확인.

…적 존재의 현세 강림 및 계약의 진행.

선행 연구에서 파생되어 최근 성행 중인 모 컬트 집단이 섬기는 신의 명칭을 따와 해당 연구의 부제로 삼았다.

이는 유쾌연구소의 마지막 연구가 될 것이다.

심장이 불길하게 뛴다.

페이지를 미친 듯이 넘겼다.

수많은 실험 기록이 적혀있다.

데이터로 등록되지 않기에 형식이 제각각이며, 시행자도 여럿이다.

각종 시도와 준비.

실패, 꿈 배양기 21번 폐기.

실패, 실패.

뭔지 모를 끔찍한 재료와 극단적 방식들이 반 이상 지워진 채 남아있다.

뭔가를 탄생시켰다가, 소환했다가, 폐기한 것들.

그러다가….

성공.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왔다.

실험 #316

투입 용액량 : 1200L

재료 : Qterw-A-4…의 …룡, ……-…326, 인간의 혈액, ……, 그 외 합성 원소 13가지.

이름님의 정신을 유리관 안에서 깨우는 것에 성공.

계약 실패. 용액 속에서 형체 붕괴.

용액의 부족으로 추측, 해당 연구를 토대로 변인을 조절할 것.

그리고 점점 더 정교해진다.

실험 #322

투입 용액량 : 2300L

깨어난 이름님은 유리관 안에서 괴성을 지르며 …… ………후 생명 반응 소실.

자신의 신체조직 변이를 인지 후 거부반응으로 재료 결합이 붕괴하여 덩어리화한 것으로 추측.

이름님의 정확한 외양을 반영한 매개를 준비하기 위한 재료 비율의 변화 요청.

둔갑에 관련된 어둠 확인 중.

손이 떨린다.

불길한 추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실험은 계속해서 반복되며 조건이 점점 구체화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초대 및 계약을 위한 필요조건은 다음과 같다 :

1. 이름님의 기존 정체성 유지.

2. 기존 애착 관계의 망각.

3. 생존 목표 제공.

4. 모든 위화감 제거.

강력한 금제를 통하여 해당 필요조건의 충족이 가능할 것으로 여기고 여러 방안을 제시 중.

그리고….

유쾌연구소의 기존 발명품이 거론됨.

현재는 폐기된 발명품으로, 이면 세계의 존재를 인형에 일부 깃들게 하여 계약자에게 우호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청하는 제품이다.

제한 버전이 모 보드게임에서 기념품으로 배부 중이며 이는

그것은.

‘착한 친구’라는 제품명으로 불린다.

“…….”

나는 간신히 다음 장으로 넘겼다.

마지막 실험 기록.

실험 #444

투입 용액량 : 39999L

재료 : #443와 동일.

결과 : 성공.

폐기된 발명품에서 사용했던 의식을 활용하여 이름님의 완전한 초대가 이루어짐.

……에 깃듦. 안정화.

깨어나는 즉시 꿈결 용액에서 분리 후 간단한 문답을 진행할 예정.

거기서 페이지는 끝났다.

하지만.

“…….”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찢어진 종이 한 장이 끼워진 것이 보였다.

마구 구겨서 뭉쳐버렸던 것 같은 흔적.

마치 누군가가 버린 종이를, 또 다른 자가 잘 펴서 도로 실험기록에 맞춰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위에도 휘갈겨 쓴 글이 있다.

문서처럼 정교하던 필체가 다 망가진 채로.

백일몽이 알아냈다 들이닥쳤다 또 속임수였다 이름님을 빼앗기기 전에 빼돌려 가장 사람이 많을 장소에 숨겼다

부디

글은 거기서 부자연스럽게 끊겼다.

그리고 ‘가장 사람이 많을 장소’라는 글 밑에는 누군가 굵게 줄을 쳐놓고, 다른 필체로 글자를 적어놓았다.

신입 오리엔테이션?

마치 글을 보고 추리한 듯이.

“…….”

안 돼.

머리가 거부했다.

그러나 이미 추측은 끝났다.

아니, 추측할 것도 없었다.

너무 분명했다.

‘백일몽 주식회사에 입사하기 하루 전에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세요.’라는 내 소원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이 깨진 꿈 배양기 속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 실험 일지의 연구 목표였다.

착한 친구.

유쾌연구소에서 초대한 이면 세계의 존재가 깃든, 합성된 무언가.

봉제 인형에 투영되었던 사회자 브라운처럼.

꿈 배양기에서 만들어낸 ‘무언가’에 투영된,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김솔음의 의식.

…이라고?

“……아냐.”

아니야.

뭔가, 뭔가 다른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금제가 뭐라고 했었지? 나는 거기 해당하지 않는다.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니까, 내 집에 돌아가서,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정확히 누구지?

“…….”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분명, 막, 입사했을 때만 해도 분명히 기억했는데.

부모님과 친구들과 나눈 대화도 기억했지 않은가. 그리고 친구들이랑, 가족이랑, 연락처도 살펴보고 기록도 뒤져보고 알아봤…….

……던 게, 맞나?

그냥 ‘알아봤다’라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채 넘어간 거 아닌가?

구체적으로 무슨 연락처를 살핀 건지, 이전에 살던 어떤 주소에 찾아가 봤는지.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했다는 확신만….

“…….”

그럼 나는,

내가 있는 이 몸은,

김솔음이 아닌 건가?

입사 전에 있던 곳이 여기라면.

이 몸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 거라면.

꿈 배양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거면.

사람이… 아닌 건가?

“안 돼.”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안 돼]

안 돼요!

그 만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몸이 울룩불룩 튀어나온다.

문신이 무너진다.

내가 사라진다. 사람의 몸이 붕괴된다.

진실을 깨달은 자아가 인간 신체의 형태를 거부한다. 몸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뭔지 모를 신령하고 기괴한 합성된 모습이 내 안에서 튀어나왔다.

비늘과 뿔이, 발굽이, 가시가, 갈비뼈를 뚫고….

“안 돼!”

목소리가 기이하게 공간을 울린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모든 아이템을 다 정리했다. 내 문신은 텅 비어있…!

아 니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문신 속에 하나 남아 있다.

내 것이 아닌, 빌린 장비가.

“…!”

나는 변이하는 손을 허겁지겁 문신 속에 욱여넣어서 장비를 꺼냈다.

보안팀 수트.

그리고 그 수트를 미친 듯이 껴입기 시작했다.

변이하던 몸이 인간의 형체 속으로 쑤셔 넣어지며 고정된다. 기이한 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가 전신을 감싼다.

그렇게 간신히 인간의 사지를 되찾는다.

도망가야 한다.

나는 비틀거리며 연구실의 문을 찾았다. 노란 등불 같은 눈이 번뜩였다. 불빛이 문고리를 찾아냈다.

간신히 그것을 잡고 기대듯 밖으로 나오자….

실내등이 보인다.

“……!”

평범한 사무실 복도.

언젠가 봤던 풍경.

‘…백일몽 지하.’

경비반장이 말해줬던, 회사 지하에 있다는… 유쾌연구소.

-유쾌연구소… 아직 우리 회사 지하에 있어요…….

-더 지하로 내려가도… 똑같은 사무실 복도가… 계속 반복되거든요….

여긴 대체 지하 몇 층인 거지?

어떻게 나가야 하지?

‘엘리베이터….’

머리도 몸도 무겁다.

이상하게 전신에서 격통이 밀려온다.

나는 발을 질질 끌며, 어떻게든 복도의 끝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때.

“훌륭해.”

…….

“애사심이 투철하군. 다시 돌아오다니.”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나타난 정장을 입은 누군가가 나를 정면에서 응시하고 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인상, 냉철하고 말끔한 외양, 딱 떨어지는 쓰리버튼 정장을 입은 검푸른 머리의….

청달래 상무이사.

“벌써 유니폼까지 갖춰 입고 있나. 아주 보기 좋아.”

검은 동공이 나를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건 적합한 유니폼이 아니군….”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성대가 수트 안에 구겨져 있는 것 같다.

미친 듯이 불편한 옥죄이는 감각이 더 강하게, 더… 아프다.

“그래. 그건 인간을 괴이로 보이게 해주는 것 같군. 새로 개발한 버전인가?”

“…….”

“하지만 진짜 괴이가 입었을 때는 그냥 몸을 억지로 구겨 넣는 틀일 뿐이야. 자네도 알다시피, 사회에는 계약을 해야만 효력이 발휘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가. 그런 거라네.”

선언된다.

“그대로면 자네는 곧 괴사할 거야.”

“…….”

“그게 싫다면 이런 길도 있긴 하지.”

청달래 이사가 품에서 정갈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계약서야.”

…….

“서명만 하면 되네. 아주 인도적인 대우를 약속하지. 흡족한 근무가 될 거야…. 보안팀에서 말이야.”

몸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타고 피가 떨어진다.

“자.”

“…….”

“선택하게.”

죽을 것 같다.

무너진 몸이 구겨지며 의식도 구겨지기 시작했다. 이제 비틀거리며 걸을 수조차 없다.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힘조차 없는.

막다른 길.

“…….”

나는 떨리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계약서에, 흐르는 피로 서명했다.

“좋아.”

서명이 끝나는 그 순간,

몸이 급속히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약속을 지킨 듯, 알맞은 물의 양만을 잔에 따른 듯.

전신에 평온함과 미지의 힘이 뻗어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뚜렷한 금제와 함께.

“…….”

나는 내 상사를 보았다.

“자네는 이제부터 아주 훌륭한 직무를 맡게 될 거야.”

그렇게.

나는 회사를 다시 다니게 되었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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