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10화
소원권을 마시며 ‘진실’을 깨달은 후.
내 몸은 붕괴되었으며, 필사적으로 그 몸을 욱여넣은 호 이사의 보안팀 제복은 도리어 역효과를 일으켜 나를 괴사하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죽음의 목전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서명만 하면 되네.
나는 청 이사가 내민 근무 계약 서류에 사인했다.
직후, 정신을 잃었고… 다시 이지를 찾았을 때는 이미 어떠한 장소로 이송된 후였다.
삭막한 작은 방.
처음 본 것은 숫자였다.
[666]
철문에 붙은 명패다.
철제침대와 세면대로 이루어진 공간은 아주 고전적이며 적막했다.
광원은 형광등 하나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그러나 근무시간 중에는 얼마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첫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바뀐 적 없는 나의 근무는….
-오늘 당신의 근무는 별관 지하 13층 보안입니다.
지하 13층.
이 복도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별관 지하 13층 보안입니다.
그러나 아무 의미 없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창문도 비상구도 없는 이곳은 그저 철문이 나열된 복도이며, 나는 이곳을 의미 없이 걷는다.
복도를 배회한다.
붉고 푸른 불빛이 깜박인다.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층수를 표기하는 불빛이 점멸하며 숫자가 보인다.
그러나 나는 탑승할 수 없다.
버튼이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다.
나갈 수 없다.
쉬익….
검은 연기가 자욱하다.
창백한 복도의 형광등이 깜박이며, 연기가 흔들리고 피어오른다.
내 숨에서 방독면을 타고 나오는 것이다.
잠긴 채 걷는다.
유일하게 움직이는 그것을, 복도에 깔리고 흔들리는 연기를 응시하다 보면….
-당신의 근무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장 복귀하십시오. 당신의 근무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장 복귀하십시오. 당신의 근무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당장 복귀하십시오…
끝난다.
나는 계약대로 열린 666호에 다시 들어간다.
찰칵.
문이 잠기고, 침대에 앉는다.
다시 적막.
보통은 끔찍함을 느낄까?
폐소공포증이든 고립에 대한 공포든, 끔찍한 제약 회사의 지하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존재한다는 것에 공포를… 느낄까?
아마도 그랬을 듯하다.
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저 잠시 곱씹는다.
나의 근무.
별관 지하 13층의 보안담당자.
철문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고, 지정된 13층 복도를 벗어나지 않으며 보안 업무를 수행한다.
접촉 시 발생하는 이상 현상에 관하여 현재까지 파악되지 않음.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번뜩이다 뭉개지는 그 형태들.
<어둠탐사기록> 위키식으로 서술하자면 이렇게 묘사되었지 않을까.
그래.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희미하고도 검열된 상상도 길지 않다.
치지지지직-
적막이 깨진다.
흑백 화면의 빛이 철제침대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꿈과 열정이 가득한 특수개체 직원님! 백일몽 주식회사 보안관리팀에 어서 오세요!]
품질 낮은 디지털 녹음본 소리가 밀실을 울린다.
[어제는 보안관리팀이 어떤 멋진 일을 하는지 상세히 알려드렸지요? 오늘은 근무 중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알려드릴게요!]
독방 모서리에 달린 작은 구형 TV에서 비디오가 계속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보안관리팀 신입 교육 비디오>가.
같은 내용만을 알려준다.
[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
두 마스코트가 등장한다.
여우 마스코트가 복도의 엘리베이터 앞에 가만히 서서 빙글빙글 돈다.
언젠가 봤던 것 같은 형식.
그러나 어딘가 뒤틀린… 뒤틀린 것인가 저것이? 직장인의 생활 양식과 백일몽 주식회사에 대한 명랑한 교육 영상이 흑백 처리되어 방에 빛을 움직인다.
[당신은 계약된 근로자이며 근로 규칙을 어길 수 없답니다!]
마치 으레 있는 신입사원 교육용 영상 같으나, 조금 다른 지점이 있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지도 강박적으로 알려준다.
[주무세요.]
[취침 시간을 어기지 마세요. 당신은 돌아다닐 수 없습니다. 반드시 쉬어야 해요. 그게 회사 피고용인의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기묘할 정도로 밝고 쾌활한 영상의 광량이 작은 밀실에 일렁인다.
그러다가….
[이번 비디오의 교육은 여기까지입니다. 편안하시길!]
뚝.
사라진다.
“…….”
오늘의 일과가 끝났다.
그렇게 모든 광원이 없어진 작은 공간의 철문 너머에서 붉고 푸른 빛이 희미하게 들어올 뿐이다.
취침 시간.
물론 나는 잘 수 없다.
하지만 교육 비디오에 나왔다시피, 취침 시간은 어길 수 없다. 그게 근로 규칙이니까.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마치 자는 것처럼.
그렇게 ‘회사 근무’에 대하여 학습하며, 나의 근로를 별관 지하 13층에서 계속 이어간다.
…….
…….
며칠이나 근무했을까.
일주일인가?
보름인가?
한 달인가?
7년인가?
■■■인가?
알 수 없고 계산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제는 없다. 계약서에 근로 기간은 적혀 있지 않으니 그저 이렇게 있으면 되리라.
또다시 근무시간이 돌아오리라.
그러면 적막 속에서 이곳을….
똑… 똑.
…….
똑 똑 똑.
소리.
소리가 들린다.
부드러운 살갗에 덮인 단단한 관절이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철에 부딪히는 소리다.
철문에 두드리는, 소리.
……
노크.
사람.
나는 문을 잡아당겼다.
“힉!”
“이이이익!”
666호 철문이 열린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복도에 넘어지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려다가….
“아아아… 읍.”
입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안녕,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신입사원입니다. 인사드립니다.”
말한다.
연습한 것처럼 경직된 목소리였으나 실제다.
나는 그것이, 지극히 오랜만에 듣는 누군가의 살아 있는 음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살아 있다고?
“괜찮으시다면, 잠시만 방문드려도….”
아니다. 죽은 소리다.
청각 기관으로 들리는 그 모든 산 사람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교육 영상에서 들렸던 것처럼 지지직거렸다.
필터를 거친 듯, 녹화된 듯, 방독면 너머에서 보이고 들리는 그 모든 사람의 말소리가 뿌옇게 개체를 식별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그리고….
“……저.”
정장 위 얼굴이 없다.
아니, 얼굴들을 식별할 수 없다.
얼굴이 있는 부위는 마치 다 녹아내린 모자이크처럼 보일 뿐이다.
손상된 필름을 최선을 다해 끌어모아 재구성한 것처럼 붉고 검게 일그러졌다.
‘왜일까.’
근로계약상 내가 볼 필요가 없는 건지, 아니면 내 붕괴한 신체가 인식 체계까지 붕괴시킨 건지는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없다.
옷차림과 체구, 억양으로 개체를 식별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상황을 파악하는 것에도.
신입사원, 정장, 3인 1조, 패닉과 당황, 가면 없음.
그리고 하나 더.
“…….”
나는 가장 처음 입을 연 자를 돌아보았다.
그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뻗었다.
“흐으으읍!”
상대의 정장 앞주머니에서 빠져나온 것을 빼냈다.
쪽지.
나는 지하13 층에 내려
666호 문에서
노크 후 안으로 들어간 다.
이건….
그렇군.
‘실험명 :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21차 시도
: 운수뽑기 상자(Qterw-E-382)를 활용하여 미션을 배당. 별관 지하를 탐색하며 해당 구역을 담당하는 보안팀 ■■■■를 조우하는 구성.
변이한 머리에서 불꽃이 튀듯 기록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가, 음미하듯 남는다.
나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알았다’.
“힉!”
쪽지를 도로 그의 앞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내 검은 장갑 낀 손가락에 닿은 자가 경련한다.
뒤에 서 있던 체구가 큰 자가 마치 진정시키는 듯이 앞으로 나오더니, 등 뒤로 다른 신입사원을 밀며 차분히 말한다.
“…회사에서 지시받은 일이었습니다.”
“…….”
“저희는, 업무를 수행 중입니다.”
그래.
오리엔테이션도 업무라고 볼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을 뿐일, 불쌍한 세 명의 신입사원을 보았다.
그리고….
문 뒤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초대하듯.
“…….”
“…….”
“드, 들어가도… 괜찮나요?”
관계자의 출입은 근무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
“감사… 감사합니다…….”
벌벌 떨면서, 눈치를 보면서 굳은 인체가, 쪽지에 적힌 것을 이행하기 위하여 666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마치 불구덩이에 발을 들인 듯 다시 문밖으로 튀어 나간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히이익!”
나는 빨리 나가기 위해 서로를 밀칠 뻔하다가 팔다리가 엮여 넘어지는 두 직원에게 손을 내밀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둘이 기어가듯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도망간다.
탈출구가 있는 것이다.
바로 엘리베이터로.
“힉, 힉!”
“잠깐, 침착하게….”
체구 큰 자가 말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나, 그들은 무언가를 연타했다.
엘리베이터 버튼.
버튼이 있었구나.
단지 보안 담당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뿐이었나.
곧,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복도에 빛이 쏟아진다.
환한 엘리베이터 내부.
“다, 닫아! 닫…!”
나는 그들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에 따라 방독면으로부터 연기가 피어오른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검은 연기가 들어간 순간.
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
머리를 울린다.
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당신은 지정된 근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
…….
아니.
이건 근로 구역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현재 이 엘리베이터는 지하 13층에 도착한 상태이며, 나는 13층의 일부로서 연결된 공간에 진입하는 것뿐이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13층 근로 공간에서 제외된다고 명시된 적은 없다.
…….
…….
다시 조용해졌다.
“악! 자, 잠시….”
나는 다시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문이 닫힌다.
쿵.
엘리베이터 내부에 검은 연기가 들어찬다.
“아, 아아아아■■.”
“오오오, 오, ■■님, 그, 그그■”
옆에서 직원들의 신음과 중얼거림이 들린다. 연기를 들이마시는 게 괴로운 걸까? 나는 숨을 멈추고 검은 연기를 방독면으로 빨아들였다.
연기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얼굴의 모자이크에 투명감이 어린다.
눈코입에서 체액을 흘리는 듯하다. 그래도 숨은 안정된 것 같다….
나는 최대한 연기를 벽으로 보내어 고정하려 했으나, 내 시선을 받던 한 사람이 떨면서 입을 연다.
“조… 조용히 하라는, 그런 뜻이신가요?”
뜻?
연기를 움직이는 내 행동에 뜻이 있단….
아.
“…….”
이렇게… 하는 거였던가.
의미 없는 표현
“하, 한글!”
내가 연기로 만들어 낸 글자에 모자이크들이 흔들리고 경악한다.
노이즈 속에서도 묘한 반가움이나 안도가 읽힌다.
“저, 저기… 저희를, 공격, 공격하실 건가요…?”
현재 상황 : 부정
“아…!”
목소리가 한결 밝아진다. 친숙함이 주는 안도감, 미지의 것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을 보일 때의 기묘한 공감.
알았던 감정들.
한숨을 쉬는 소리가 둔탁한 음질로 내 귀를 스친다.
그리고 또 질문.
“그럼, 어디로, 가, 가실… 건가요?”
“…….”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들을 보았다.
지하 13층 복도에서는 확인할 수 없던 것들.
그중 신입사원들이 누르려고 내 눈치를 보며 손을 뻗는 버튼이 보인다.
1층.
“…….”
안 된다.
나는 현재 지상에 발을 디딜 수 없다. 엘리베이터를 벗어나는 것은 완전한 근로 구역의 이탈로서, 내가 거부할 수 있는 편법의 끝이다.이탈할수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는가.
“…….”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나는 손을 뻗었다.
* * *
엘리베이터 안에 얼어붙은 채, 젠체하던 신입사원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이게 무슨 일이지?
지금 엘리베이터에 자욱한 검은 연기와, 그 연기 사이로 보이는….
가스등 같은 노란 눈빛.
‘X발, X발…!’
거대한 나뭇가지나 갈비뼈 같은 뿔들이 방독면 위로 솟아나 있다. 살점 하나 드러나지 않는 검은 전신 제복을 입은 것은 인간의 실루엣에 구겨 넣은 악몽 같았다.
가슴팍에 달린 ‘보안팀’이라는 명찰은 마치 섬뜩한 농담 같다.
지하 13층 666호에 있던 것.
‘예, 예의 바르게 행동하면, 살 확률이 높을 것 같다며…!’
그는 자신을 ‘장허운’이라고 소개한 팀원을 보며 속으로 비난과 욕을 쏟아냈다.
장허운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기는커녕, 괴물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아직도 침착한 척하긴!’
실제로 현재 죽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자신을 이런 상황에 집어넣은 게 아니라는 점은 편리하게 원망을 위해 잊어버린 상태였다.
동시에 왜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죽어 있었는지 그는 무심코 깨달았다.
‘다 엘리베이터로 쫓아왔던 거야…!’
하지만 같이 탑승하고 있던 건… 없었는데.
그는 침을 삼켰다.
설마 탑승하지 못해서 화풀이로 죽인 건가?
‘그럼 이건… 어, 어떻게 탑승한 거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종의 소통이 가능한 것 같다는 점이었으나… 젠장.
‘저걸 데리고… 1층 로비에 돌아가도 되는 거야?’
공포 영화에서는 이러면 로비에 있던 사람들까지 다 죽던데. 식은땀이 턱 끝에 맺혀 떨어졌다.
그러나 생존본능이 먼저였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갈 거다. 이 끔찍한 지하의 미친 공간을 탈출할 것이다!
‘그래, 그래!’
안 죽은 게 어디야!
로비에 있는 새끼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살라고 해! 나만 여기서 죽을 순 없다고!
그는 거의 정신이 나간 채 손을 뻗어 1층을 눌렀….
눈이 마주쳤다.
“아.”
노란 눈빛이 연기 속에서 자신을 본다.
신입사원은 다시 얼어붙었다.
그러나 등불 든 기묘한 자는 1층을 누르는 신입사원을 말리지 않았다.
대신 그 역시 검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툭, 지하 12층을 버튼을 눌렀다.
“어…?”
지하 11층, 10층, 9층, 8층… 1층까지.
그 모든 버튼을.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주르륵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