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17화
목에 노스텔지어의 붉은 털실이 감긴다.
처음 느껴진 것은 명료함.
모든 것이 뚜렷하고 제자리에 있는 감각.
“…….”
나는 눈을 깜박였다.
눈을 깜박일 수 있었다.
눈꺼풀과 눈썹. 각막을 통해 보는 시야가 명료하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고무 없이 맨 살갗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람의 손이 그곳에 있었다.
맨손을 쥐었다 피었다.
그래.
원래 이런 느낌이었지.
이런 감각이었지.
충격은 자연스럽게 흔적만 남으며 사라지며 익숙함만이 남았다.
자연스러운 감정과 감각들.
그리고 그 자리에 잊어버렸던 친숙한 기분도 들어선다.
그래. 기분.
나는 분명 이….
툭.
…….
…….
고개를 내렸다.
맨손이 없다.
거기에는 녹아내리는 부정형의 살점에 달린 신령한 발굽과 비늘만이 보이…
억지로, 장갑을 끼운다.
끼워넣는다.
끼워넣는다.
“…노루야?”
끼워넣는다.
끼워넣는다.
됐다.
사람의 손가락.
사람의 것과 비슷한 실루엣의 손가락이 보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인다.
바닥.
바닥에 다 낡아 헤진 것처럼 보이는 실 하나가 떨어져 있다.
보풀이 나고 더럽고 변색되고 이제는 더 이상 가치 없는
털실이 끊어졌다.
“…!”
“잠깐….”
착각이었다.
노스텔지어 키티가 네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네가 지금 경험하는 것이 오염이라고 생각했나? 네게 몸과 마음이 건강하던 시절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나?
무지가 주는 편안함의 품에 안겨 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나? 그것에서 힌트를 얻어, 네가 나아갈 방향을 알고 이세상을해쳐나갈방법을깨닫고목표를재설정하고사람으로돌아가고집으로돌아가고마침내집으로가는그런것을생각했나?
그런 것을 바랐나?
가능할 거라고 믿었나?
정말로?
가당치도 않은 소원을 잘못된소원을빌어서굳이몰라도될것을깨닫고기괴한몸에서깨어나고이걸경험하고육개월간지하에서홀로괴담과시체만보며지낸경험의공포가밀려온다
노스텔지어 키티를 착용한 것은 실수였다.
모든 효과는 좋은 것만을 취할 수 없다. 인간의형상만을상호작용이가능한육체만을 가질 수는 없다. 이것이뜻하는 바는그러니까무엇이냐하면 내가 사람이었다면 응당 느꼈어야 했던 감정들.
나의 공포와 절망도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번 경험한 것은 찰나에 뇌와 몸이 곤죽처럼 무너져도 사라지지 않는다.
남았다.
견딜 수 없다.
…….
연기가 피어오른다.
계속해서 피어오른다이공간은다덮고,빠져나갈틈이없을만큼채운다채울수 있다그러나부족하다….
…….
공간이,
부족하다.
“노루야, 잠…….”
나는 일어났다.
오소리 가면을 쓴 자가 자욱한 연기 속으로 넘어진다. 나는 그를 침대로 옮겨주었다. 휴식하길.
경비반장과 마주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근로 시간은 끝났으며 그에게 나를 통제할 의무와 권한은 없다.
그러니까 절
“저기….”
.
“내가… 해줄 있는 거… 없나.”
나는 격리실의 문을 개방했다.
그대로 걸어 나간다.
흘러나온 검은 연기가 격리 복도에 가득 차오른다.
붉고 푸른 불빛이 점등한다.
별관 지하 13층처럼.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복도에 알람이 울린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도.
당신은 지정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당신은 지정된 구역을 벗어날 수 없어요!당신은 지정된 구역을 벗어날 수 없
너희는 나에게 근로 이후 시간에 있어야 할 곳을 지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근무지만을 배정했을 뿐, 나의 공간은 지정하지 않았으며 육성으로도 서명으로도 암시로도 알리지 않았다.
고로.
나는 근로 시간 이후 내가 휴식할 곳을 고를 수 있다.
어디든 갈 수 있다.
당
멈췄다.
그러나 견딜 수 없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 사라지지 않지? 왜지? 왜…….
아.
그래.
나는 발을 계속 옮긴다. 연기를 타고 거리가 좁혀진다.
격리 복도가 곧 끝난다. 대여창고 프론트가 나온다. 탈출한 격리 개체 제압을 위해 장비를 준비하고 무장하려 자리를 비웠기에 경비팀은 소수만이 제자리에 있다.
알고 있다.
그들의 계산에 문제가 있을 거란 점을.
격리 개체(130666)에게 비현실적으로 빠른 이동 능력은 관찰되지 않았으므로, 대여창고에 도달할 때까지 족히 3배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오판이 초래한 참사.
이런 식으로 기술될 수 있을 상황이다.
“안….”
몇 남은 보안팀 직원이 연기 속에서 가라앉는다.
나는 그들 중 하나의 품에서 열쇠를 찾아, 대여창고의 문을 열고 나왔다.
계속 걸어, 중앙 엘리베이터에 도착할 때까지.
땡.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나는 그것을 탐승했다.
가야 할 층은 정해져 있다.
-17층은… 특히 새 어둠 물색하는 연구직들이 있는 곳이지.
17층.
[문이 열립니다.]
한때 다른 모습으로 방문했던 말끔한 유리와 대리석의 사무공간이 나타난다.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웠던 연기가 사무공간을 짓누르듯 밀려 나간다.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아아아악!”
“도망쳐! 도망….”
가운을 입은 자들이 비상구로 달려갔다. 연기를 들이마신 자가 쓰러진다. 울며 통곡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린다. 절한다.
그 모든 녹아내리는 모자이크들.
나는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찾던 것이 나올 때까지.
이미 알고 있던 사무실을 향해서.
[연구 1팀 A]
가장 끝에 있는 깨끗하고 넓은 공간의 곳으로.
도망치기 전에.
숨기 전에.
복도 전체로 뻗어나가던 연기를 갈무리하여 발밑에 고이게 만들고, 위로 솟구치게 하여 복도 한 구간 전체를 덮는다.
그렇게 연구 1팀의 사무실을 격리한다.
연기로.
…….
이제 이 안에 든 자는 도망칠 수 없다.
어둠과 고요함이 복도 앞에 고인다.
그 속에서, 문을 개방한다.
“아.”
그곳에는 단 한 사람만이 밤 근무 중이었다.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대피경보. 고등급 어둠 격리 실패…]
요란한 경보 속에서도 그저 황홀한 눈으로 CCTV 영상을 훑어보던 자.
격리실부터 내가 오던 길의 복도 CCTV까지 확인하던 곽제강이, 열린 문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무언가를 깨달은 자의 표정.
“자네… 아니, 당신.”
…….
“김솔음이었군요?”
다가간다.
“그릇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던 거야. 처음부…!”
목을 잡았다.
허공에 끌어올려지는 자의 발밑으로 흰 연구 가운이 늘어진다.
“죽이려고? 화가 나서? 하하….”
공포와 두려움이 눈에 들어차는 것 같더니, 곧 희열과 궁금증이 차오른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습니까?”
…….
“난 도저히, 당신이 뭔지 모르겠단 말이지. 어떻게 꿈결을 채취한 건지, 무슨 수로 어둠과 인간을 오가는 건지….”
곽제강의 안경 너머 눈이 나를 본다.
웃고 있다.
“사실… 당신도 모르는 거 아닌가?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
…….
“회사에 묶여 있기 싫으신 거겠지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청달래 이사? 알게 뭡니까. 연구자는 연구자다워야지! 근원을! 진리를! 이해를 추구해야지!”
광기에 찬 목소리가 외친다. 확신과 열망이 터져 나온다.
“당신이 왜 이곳에 부름을 받았는지, 왜 그 형태인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하는 거라면 전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아니, 협력하게 해주셨으면 하고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황홀한 눈.
“여기서 이렇게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역시 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참을 수가 없단 말이지….”
…….
나는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손안에 잡혀 있던 목이 바닥에 떨어진다.
“윽!”
하지만 곽제강은 불평도 없이 희열로 번뜩이는 눈으로 나를 본다.
“그렇지! 현명한 선택….”
나는 그의 눈앞에 다리를 굽혀 앉았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며, 연기로 말했다.
싫은데?
“…!!”
믿을 수 없는데?
“저기.”
연기가 글자를 그린다.
믿을 수 없는 것
: 삭제 대상
“…! 잠깐.”
헐떡거림이 커진다.
나는 고지한다.
경고 3
사유 : 근로자를 향한 모욕 발언
누적 경고 : 3 / 징계까지 0
검은 방독면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곽제강의 머리를 감싸도록.
“잠시,”
그가 뒤로 물러난다.
나는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연기는 따라간다.
그리고 그의 이목구비를 감싼다….
서서히 숨이 막혀가는 연구원이 켁켁거리며 괴로운 신음과 숨을 뱉다가, 필사적으로 한 마디를 간신히 뱉는다.
“…그럼!”
아직 자유로운 팔을 뒤로 더듬거려, 몇 번이나 손가락이 미끄러지며 겨우 자신의 서랍장을 잡는다.
황혼 등급 어둠을 임시 보관하는 곳.
그 속에서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꺼낸다.
“이거, 이걸…… 쓰면 어떻습니까?”
내 눈앞에 간신히 내밀어진다.
…붉은 실.
내가 방금 썼던 것과 대단히 유사한 형태.
연기가 꿈틀거린다.
그러나 털실이 아니며 가느다랗고 얇다는 것을 상기하며, 가라앉힌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사용 용도를 지녔다는 것도, 깨닫는다.
“배신할 수 없도록, 믿음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 설명에 해당하는 것은 하나다.
빨간 손가락
: ‘새끼손가락 고리 걸고 꼭꼭 약속해’라는 동요 말을 그대로 실현하는 어둠.
단 하나의 약속을 맹세하며 새끼손가락 끝마디에 실을 걸 시, 그 맹세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어기려고 하면 죽기 때문에.
“사용법은….”
입을 달싹이던 곽제강은, 내가 그것의 포장을 뜯어내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당기자 웃는 건지 흐느끼는 건지 모르는 소리를 냈다.
“아시는… 어둠인가 봅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없다.
서술된 것이라면.
나는 붉은 실을 잡아, 곽제강의 새끼손가락에 묶었다.
곽제강이 식은땀을 흘리며 웃는다.
“맹세합니다. 음… 당신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그를 보았다.
불가.
사유 : 부정확함
“…전적으로 협력하겠습니다?”
불가.
사유 : 부정확함
나는 느릿하게 연기를 바꾸었다.
누적 실패 : 2
남은 시도 : 1
곽제강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맺혀 떨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을 맹세할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괜히 또 만들어 내려다가 수상해 보여서 죽으면 여러모로 곤란하니까!”
…….
연기가 문장을 그린다.
제안 :
나는 앞으로 당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곽제강의 눈이 흔들린다.
문장에 내포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의미를 깨달았기에.
그러나 입이 열린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나는, 앞으로 당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푹.
나는 붉은 실을 당겼다.
실이 감겨 있던 연구원의 새끼손가락 끝마디가 잘려 나간다.
피가 튄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자신의 새끼손가락 끝마디가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보며, 피가 솟아오르는 왼손을 붙잡은 채 곽제강이 웃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6분 후.
나는 직접 격리실로 돌아간다.
문밖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으나 상관없다.
보안팀 두 팀원이, 사라졌어도, 괜찮다…. 무사히 돌아갔다는 뜻이기에.
그저 이 새로운 상황에 대해서 생각했다.
털실에 감기는 경험이 내게 돌려준 것에 대하여.
공포와 견딜 수 없음에 대하여.
…그리고 결론 내렸다.
‘알아야겠다.’
내가 왜 이런 형태로 이곳에 존재하는지.
대체 누가 나를 불렀는지.
그러려면 일단 이 회사의 비밀에 대해서 알아내야 한다.
본관 지하에는 무엇이 있는지.
유쾌연구소는, 대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알아낸 난 후에도 아무런 방법이 없다면….
…….
그때는, 포기하자.
그리 결정짓는 순간이었다.
[그것 참 흥미진진한 계획입니다. 친구!]
‘……!’
나는 몸을 일으켰다.
…내가 홀로 누워 있던 침대에 무언가 있었다.
복슬거리는 몸. 분홍빛 사랑스러운 귀, 까만 눈, 그리고 목에 건 나비넥타이.
그리고.
[노루 씨.]
부름.
‘…브라운?’
[아, 친구가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르는군요. 이토록 반가울 수가!]
착한 친구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