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56화
은하제는 먹던 아이스크림을 뱉을 뻔했다.
TV에서 격식 있고 유쾌한 목소리가 짝짓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시청자 여러분. 오늘 밤, 가장 강렬한 사랑의 결실이 당신을 찾아갑니다.]
[막 결혼식을 앞둔 이 멋진 신랑 후보들을 만나보시지요!]
화면에서는 로파이 처리된 듯 음질 낮은 오케스트라 밴드 사운드와 함께, 하트 형태의 효과 안으로 흰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남성들의 모습이 지나간다.
[과연 이들 중 누가 신부의 마음을 사로잡을까요?]
훤칠하고 말쑥한 생김새들은 과연 연애 TV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해 보였다.
그중에 직장 상사가 있지만 않았더라도 말이다….
심지어 화면을 보고 멋들어지게 웃고 있다.
“X발.”
반사적으로 욕이 나왔으나, 불쾌함이라기보다는 미친 당혹스러움이다.
‘저 양반이…,’
오염됐나?
강렬한 어처구니없음이 지나간 자리에 싸한 느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은하제는 쌍욕을 참으며 아이스크림을 팽개쳐 두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화면에 눈을 고정해 둔 채로.
[결혼식은 바로 다가오는 내일! 하지만 일곱 명의 후보 중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이 하얀 신부의 신랑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이들 중 과연 누가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화면에 집중할수록 기이한 점이 눈에 띈다.
경쾌한 템포로 순식간에 지나가듯 소개되는 프로그램의 참가자 프로필들처럼.
이름 : ■■■■ ■■■
키 : 37cm
몸무게 : 4kg
취미 : 첼로, 낭독, 질식사
각오의 한 마디 : 죄송합니다 제발 그만해주세요 신부에게 키스할 신랑은 나!
키와 몸무게 란의 이상한 수치, 비고란의 수많은 사과와 애원의 글귀, 초점 없는 프로필용 사진의 얼굴.
그래.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집중하면 눈치챌 수 있다. 그건 마치 죽은 시신을 단장해 놓고 찍은 것처럼….
[예선 탈락자들의 응원도 빼놓을 수 없지요!]
스치듯 지나가는, 마치 방청객이나 참가자를 응원하는 그들의 지인 같은 컷에 나온 자들도 멀쩡한 몰골이 아니었다.
결손, 고문, 개조의 흔적을 분장으로 감춰놓은 듯한 그들이 그린 듯 웃는 얼굴로 환호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밝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물 흐르듯 지나가 버리며, 프로그램 소개는 이제 막바지에 이른다.
연예 프로그램의 정석.
전문 연예인 사회자 소개.
[그리고 자랑스럽게 소개합니다! 우리 프로그램의 사회자!]
신랑 후보가 식장에 들어서는 컷, 맨 뒤에서 따라가던 근사한 남성이 뒤를 돌아 카메라를 보며 윙크한다.
이자헌이다.
“크흡! 큽!”
[지금까지 신랑 후보로 잠입해 참가자들과 모든 교육 과정을 경험했다는군요. 그래요. 바로 접니다!]
[경험에서 오는 통찰력으로, 오늘 아주 자극적이고, 위험천만하고, 또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의 서바이벌 코스를 구성했지요!]
은하제가 사레들린 목을 미친 듯이 가다듬을 때.
[그럼 시작합니다!]
화면에서는 각자 멋진 포즈를 하며 오프닝의 끝을 장식하는 신랑들과….
중앙에서 양팔을 들어 올리며 맵시 있게 인사를 하는, 하얀 정장 차림의 이자헌이 보였다.
“이런 미친.”
오염이다.
은하제는 당장 스마트폰을 들었다.
재난관리국 요원들이 줬던 직통 번호를 누르는 손이 빠르고 정확했다.
김솔음은 우주쇼핑몰과 접선하며 의식 없는 무방비 상태가 될 자신의 상태를 재난국에 변명하며, 동시에 만일을 대비한 모니터링을 두 요원에게 부탁했었다.
연결음 두 번 만에 전화가 연결되었고, 은하제는 다짜고짜 물었다.
“솔음이 멀쩡합니까?”
-예?
“확인해 봐야 합니다. 당장.”
건너편에서 김솔음이 지내는 재난관리국의 보호 공간을 확인하는 듯 잠시 기척만 들렸다.
그리고.
-심박이나 호흡, 체온에 이상 없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
아니, 그….
은하제는 뭐라 설명하려다가, TV 화면의 신랑 후보와 눈이 마주쳤다.
이름 모를 3번 후보는 바이올린을 켜며 꽃을 입에 물고 가련한 척하는 개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
-시민님?
“일단 멀쩡하다면 됐습니다.”
은하제는 혹시 일 터지면 전화 달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괴담은 맞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극단적이거나 심각하진… 않은 것 같기도.
‘이거… 혹시 솔음이 녀석이 또 탈출하겠다고 기상천외한 짓을 벌이는 건가?’
대체 상황이 위험한 건지 아니면 솔음이 녀석이 괴상하게 뒤틀어 놓은 건지 모르겠다.
은하제 대리는 도로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고 심란한 표정으로 TV를 봤다.
일단 이자헌 과장의 신변에는, 음,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긴 했다….
[첫 번째 대결은 시 낭송입니다.]
[예식장 곳곳에 숨겨진 책갈피에 적힌 시를 가장 멋지게 조합해서 우아한 한 편의 시를 낭송하는 후보가 승리합니다!]
프로그램은 자극적이었다.
후보 하나하나를 조명하고, 그들을 비웃거나 응원하게 만든다.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시를 만든 후보 둘에게 귀엽고 우스운 배경 음악이 깔리며 온정적인 반응이 돌아가기도 하고.
반대로 책갈피를 몇 개 찾지 못했음에도 기발한 발상으로 대단히 멋진 시 한 편을 완성한 자에게 환호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어코 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두 후보의 경우.
기숙학교 꼭대기 탑 창문에 나란히 매달린다.
[시청자분들의 투표를 받아보겠습니다.]
[누가 탈락해야 할까요? 그리고 누가 남아서 이 경쟁을 계속할까요?]
‘시청자’의 결정을 받아 탈락한다.
[리모컨의 번호를 눌러서 결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단 60초 동안, 이 신랑 후보들의 운명이 바뀝니다.]
“…….”
은하제는 리모컨을 들고 화면을 보았다.
[ 탈락자 선정 : 1번 ]
[ 탈락자 선정 : 5번 ]
자신이 리모컨 번호 버튼에 손을 올릴 때마다, TV 화면에서 번호에 해당하는 각 인물의 프로필사진이 확대된다.
‘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
심지어 실시간으로 시청자 투표율이 화면에 반영되다가….
[ 탈락자 선정 : 1번 ] 37%
[ 탈락자 선정 : 5번 ] 63%
투표 시간 마지막 10초에는 사라진다.
그리고 카운트다운.
10, 9, 8, 7…….
[아, 결과가 나왔습니다!]
박수와 아쉬워하는 효과음과 함께 탈락자의 프로필이 클로즈업되더니.
탈락자는 기숙학교 꼭대기에서 머리에 책을 맞고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밀려 떨어졌다.
[탈락!]
심벌즈 소리와 함께 과장스러운 효과와, 깔깔 웃는 소리가 삽입된다.
그리고 하객석에 앉아 있던 ‘체험 교습생’이라는 사람 중 일부도 자리에서 튕겨 나오더니, 자리에 조명이 사라진다.
창문 밖으로 던져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오답을 고른 체험 교습생들도 운명을 같이하는군요.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은 신랑 후보들을 비추며, 격려와 안도가 가득한 분위기가 조성되기까지.
[남은 신랑 후보는 6명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신부에게 한 발짝 더 가까워졌군요!]
가장 섬뜩한 점은,
그 모든 게 재밌었다는 점이다.
[옛적에 배를 사로잡는 자가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하던가요! 두 번째 라운드에 딱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바로 식사! 신부를 위한 영양 만점의 따사로운 점심 식탁을 차리는 방법을 겨룰 겁니다. 탈락자는… 오 이럴 수가, 두 명이 선정될 겁니다!]
흥미롭다.
잔인한 처분이라도 유쾌한 효과음과 익살맞은 효과가 더해지면 더는 비극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시청자와 벌어진 거리만큼 충실히 희극이 된 TV 안의 탈락 장면들은 그저 손에 땀을 쥐는 몰입감이나 헛웃음만 줄 뿐이다.
거기에 시즈닝처럼 더해지는 감정.
은근히 호감이 가는 참가자가 탈락할 때의 안타까움, 그다지 별 볼 일 없으면서도 운 좋게 살아남던 참가자가 이제야 탈락할 때의 시원함.
평가의 즐거움.
어처구니없는 탈락 방식이 주는 헛웃음과 유쾌함.
머릿속에서 윤리와 도덕의 센서가, 자연스럽게 작동하지 않도록 마비되는 도파민의 감각.
“…….”
은하제는 자신이 들고 있는, 빈 아이스크림 통을 보며 짧은 소름을 느낀다.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자연스럽게 다시 들고 있던 것이다. 정말로 재밌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듯이.
짜릿한 위기감이 뒷골을 울린다.
‘고등급 같은데.’
그러나 잘못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은 유수같이 흐르며, 갑자기 현실로 튀어나오거나 이자헌 과장이 잔인하게 죽지도 않는다.
결국 다섯 명의 신랑 후보들이 온갖 방식으로 ‘탈락’하며, 그 후보를 응원하던 체험 교습생들도 점점 하객석에서 사라지고….
그렇게 피날레를 맞이한다.
[남은 후보는 단 두 명!]
[2번과 6번입니다.]
결승전.
어느새 프로그램에 몰입한 듯, 카메라를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흔드는 두 신랑 후보를 화면이 비춘다.
[마지막 라운드입니다.]
[우승자는 바로 웨딩 로드를 걸어 신부와 만나는 영광을 누릴 겁니다!]
식장에는 어느새 결혼식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있었으며, 은은한 불빛과 피아노 연주 소리가 회장에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 결전다운 라운드 항목.
[바로 신부의 선택입니다.]
은하제는 저도 모르게 몸을 당겨서 TV를 보았다.
카메라가 돌아간다.
신랑 후보가 서 있는 하얀 벨벳 웨딩로드의 끝에서, 저 앞에 있는 주례대로.
아직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신부가 직접 나와서 신랑을 맞이하면, 결혼식이 시작될 겁니다.]
[과연 신부는 누구를 고를까요?]
다시 신랑 후보들의 기쁨과 기대, 긴장과 걱정이 뒤섞인 전신을 카메라가 비추더니, 곧 각도가 변경된다.
웨딩 로드를 길게 옆에서 비추는 각도다.
나란히 선 신랑 후보들의 옆모습이 화면 오른쪽 끝에 잡히는, 전체적으로 식장의 모습을 담는 카메라.
신부가 웨딩 로드를 통해 첫 등장하여 다가오는 모습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모두가 예감하게 만드는 미장센이다.
그리고.
[시작합니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드럼롤이 울린다.
시청자들은 신부를 상상하며, 기대감을 가지고 화면을 본다.
하지만….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뭐지?’
은하제는 TV로 약간 머리를 숙인다. 여전히 화면에서는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았으나, 소음이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웨딩로드 저편에서 무언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