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73화
얼어붙은 공기 속.
괴담이 격리된 좁은 공간의 유일한 출입구, 철문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
선생님?
…….
선생님?
제가 준비해 온 교육용 자료가 있어요!
“무….”
나는 백사헌의 입을 틀어막았다. 백사헌이 반사적으로 몸부림치려다가 딱딱하게 굳는다.
나와 경비반장이 모두 미동도 없이 철문을 바라보고 있기에.
“…….”
“…….”
소리가 끊겼다.
■■부속유치원의 보육 선생님의 목소리는 거짓말처럼, 더는 철문 밖에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그 정체는 짐작할 수 있다.
‘…박민성 주임님.’
별관 프론트에서 근무하고 있던 사람이 지금, 근무지를 이탈해 지하 2층의 격리문 바로 뒤에 서 있다.
완전히 오염된 상태로.
‘…….’
섬뜩한 예감이 찌르르 소름을 타고 오른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육신의 파편을 타고 제복 안에서.
‘청 이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조심스럽게 격리 철문으로 한 발짝을 내디뎠….
삐리릭.
“…!”
문 잠금이 해제됐다.
철문이 보안팀 인증 절차로 개방된 것이다. 옆에서 경비반장이 모자를 눌러쓰며 앞으로 나서려는 기척이 들린다. 끼익, 철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불쑥 손이 하나 들어온다.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손탈 인형을 쓴.
오늘의 구연동화예요. 바로….
유치원 선생님의 손가락 움직임에 인형이 귀엽고 흥겹게 팔과 머리를 흔든다. 양 갈래 땋은 갈색 머리에 발그레한 볼을 가진….
빨간 망토.
빨간 두건을 두른 아이.
옛날옛적에 귀엽고 씩씩한 소녀가 살고 있었답니다. 할머니가 만들어 준 빨간 망토를 항상 걸치고 다녔어요.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어느 날, 소녀는 할머니 댁으로 케이크와 버터를 가지고 가는 길에….
거대하고 굶주린 늑대를 만났답니다.
나는 문으로 다가가 구연동화를 중지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처럼.
그대로.
굶주린 늑대는 빨간 망토에게 말을 걸었어요.
‘얘야, 어딜 가니?’
와이셔츠 소매를 단정히 걷어붙인 팔 하나가 더 문틈으로 나타났다. 꿍꿍이 있게 데포르메 된 늑대의 손탈이 빨간 망토와 대화한다.
늑대는 빨간 망토가 할머니 댁에 방문하는 걸 알아내고, 아이를 앞질러 할머니 댁에 먼저 가서….
할머니를 잡아먹었답니다!
검은 형체가 일렁인다.
얼마나 맛있게 한입에 삼켰는지 몰라요. 우리 ■■부속유치원의 원생들도 이렇게 편식하지 않고 잘 먹어야겠지요?
그리고 이 늑대의 식욕은 끝이 없어서, 계획대로 또 다른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어요….
바로 빨간 망토 말이에요.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분장을 한 늑대는 침대에 누워 빨간 망토를 맞이했어요!
빨간 망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답니다.
‘할머니, 팔다리가 왜 이렇게 커지셨나요?’
늑대가 대답했어요.
‘너를 폭 안아 주기 위해서란다.’
‘할머니, 귀는 왜 이렇게 커지셨나요?’
‘네 말을 잘 들어주기 위해서란다.’
‘할머니, 눈은 왜 이렇게 커지셨나요?’
‘네 모습을 잘 보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빨간 망토는 다시 물었어요.
‘할머니, 이빨들은 왜 이렇게 커지셨나요?’
‘그건….’
“널 잡아먹기 위해서지.”
검은 형상이 공간을 뒤덮었다.
돌 제단이 박살 나는 소리, 나뭇가지가 게걸스럽게 주둥이에 씹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며 모든 게 거대한 이빨 속에 삼켜 들어간다.
경비반장은 이미 거기 없다.
“■■아이야.”
검은 실루엣이 끓어오르고 그 속에서 울룩불룩 튀어나온 수많은 눈과 이빨 달린 주둥이가 바닥을 덮고 날카로운 거대한 발톱이 눈알을 굴리며 먹잇감을 고른다.문틈으로 빠져나온 인형을 손째로 집어삼킨다아■■■■악■■■살■■그■■■■■완벽한 선생님은 비명을 지르지 않아요 혼란, 먼지, 고통, 공간을 삼키는 끈적한 타르 같은 짐승의 체액과 울렁이는 소리와 수많은 눈알.
덕지덕지 부적합하게 꿰맨 네발짐승의 거대한 몸이 좁은 격리실에서 터지듯 밀려 나온다.
타르에 푹 젖은 듯, 검게 타 버린 끈적한 체액을 흘리는 거대한 늑대.
주둥이가 벌어진다.
머리 양쪽에서.
“■맛있■ ■■■■.”
“도망■얼른■■.”
검열된 파열음이 공간을 울린다.
눈알을 굴린다.
어떻게든 좁은 구석으로 도망가려는 안대 쓴 남자를 잡아채려 발톱을 굽히는 거대한 앞발. 반쯤 열린 철문 넘어 복도로 나가려 주둥이 끝을 문틈으로 끼워 넣으려는 녹아내린 머리….
그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나는 당장 검은 연기를 쏘듯 문 앞으로 쇄도해 거대한 짐승의 주둥아리를 틀어막았다.어렵다 주둥아리는 두 개다.
동시에 다른 한 줄기로는 발톱에 달린 수많은 눈의 시야를 봉쇄하려 했다.눈알이 연기 밖으로 비집고 튀어나오려 한다. 연기 속에서 침을 흘리는 주둥이가 느껴진다. 놓치는 순간 파멸이라는 아찔한 감각, 어떻게든 경비반장님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틀어막고….
꿀꺽.
……?
으적, 으적,
씹는 소리. 삼키는 소리, 숨을 들이켜며 마시는 듯한, 찌꺼기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소리….
연기 속에서 들린다.
늑대의 한 주둥이가
내 검은 연기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
나는 그 주둥이를 다시 틀어막았다. 이 더럽고 한물간 역겨운 짐승이 나를 먹고 있다! 감히 ■■에게 이런 삼류 쓰레기가, 그러나 폭력과 식욕의 압도적 감….
‘닥쳐!’
뭐지? 방금의 반감은 뭐지? 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다시, 다시…, 아니! 경비반장님을 어떻게든 멈추려면….
아.
위키를 읽어서 지운다.
그래, 결국 그것뿐이다. 이 거대하고 기이한 짐승은 곧 나를 ‘씹어먹어’ 틈 사이로 빠져나가 박민성 주임과 백사헌을 통째로 삼킬지 모른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나도 못 버틴다! 그 전에 어떻게든 진정시키려면, 부작용을 감수하고서 내가 읽어야….
…….
……!!!
깨달았다.
‘청 이사라면.’
이것까지 노렸을 것이다.
‘능력을 쓰는 것…!’
내가 갑자기 ‘누군가의 지시처럼’ 몸을 쓰지 못하다가, 애가 타고 급박할 상황에 갑자기 움직일 수 있게 된 이유.
‘그래야 급박하게 움직이느라 섣불리 위키 능력을 써버릴 테니까…!’
그러면 나는 다시 130666의 상태로 돌아온다.
김솔음의 감성과 인간의 판단력을 상실한 채, 근로 계약에 의거하여 특수부서 직원으로서의 판단만 내릴 수 있는 공허한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나는….
-청 이사님이 알아차리셨습니다.
…저 바로 밖에서 이 사태를 조장한 자에 의해, 다시 이지를 잃고 좋은 장기말로 근무하게 될 것이다.
130666을 호 이사의 휘하 프로젝트에서, 단번에 자기 발로 나오게 만들기에 너무나 좋은 방법이다.
‘안 돼.’
그 속수무책의 사태는 피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다가 박민성 주임이나 백사헌이 죽는다면? 그게 아니라도 분명 같은 층의 보안팀이 출동할 상태라 도저히 사태는 수습할 수 없을 지경에 접어들 것이다.
막다른 길로 한 수에 몰아넣어진 상태.
‘망할.’
게다가…….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마지막 의문.
‘청 이사는, 내 상태를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내가 괴담 속 존재를 제압해 무력화시키려 하면 김솔음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시간도 없다.
섬뜩함과 긴급함이 뒤엉키며 찰나와 같은 순간에 그 모든 생각이 지나간다.
하지만 제압할 다른 방법은….
“읍!”
재빠르게 다시 최대한 검은 짐승과 연기가 없는 곳으로 이동하던 백사헌이 노스텔지어 캔디 한 알을 떨어트렸다.
나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눈깔사탕이 입안에서 녹고 있는 동안엔, 과거 10년 중 몸과 마음이 가장 건강했던 시기의 모습으로 복용자를 고정해 준다.
이전보다 묘하게 더 큰 사탕 알맹이가 손에 잡힌다.
“잠깐! 쓰지 마! 효과가 있을 리가 없잖아! 저거 완전 괴물이라고!”
안다.
130666인 내 목에 걸렸던 노스텔지어 키티가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끊어졌을 때를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게 통했던 다른 방법을 쓸 정도의 시간만.
‘빈틈만!’
나는 나를 씹어 삼키는 짐승의 주둥아리에 간신히 노스텔지어 캔디를 던져 넣었다.
덥석.
……꿀꺽.
본래 한동안 입안에서 굴릴 수 있어야 할 노스텔지어 캔디는 짐승의 혀 위에서 마치 소금을 맞은 민달팽이처럼 녹아 버렸으나….
그 순간, 깜박이며 드러난다.
인간의 형상이.
‘…!’
하지만 다음 순간 없어졌다.
나는 다시 노스텔지어 캔디를 꺼내서 거대한 짐승의 이빨 사이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한번 깜박이는 인간 형상에 맞춰….
딸랑.
내가 가진 여분의 옥 방울을 꺼내서 그 살갗에 꽂아 넣었다.
이지를 되찾게 해주는 재난관리국의 귀물이 청명한 소리를 내며 방울을 울린다.
“■■! 끝■■■!”
나처럼 본질이 변할 만큼 심하게 오염된 상태라면.
‘나와 똑같은 방식을, 쓰면 된다…!’
이성을 되찾게 만들어야 했다.
거대한 네발짐승이 두 주둥이와 수많은 눈동자와 타르가 뚝뚝 떨어지는 검은 이빨을 벌리며 몸을 뒤흔들다가… 감전된 듯이 얼어붙는다.
그리고 나는 방울을 하나 더 꺼내어 늑대의 몸통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계속 흔들며, 그 소리가 들리도록 만들었다. 다시 다음 방울을….
“하지 마.”
내 손을 잡아챘다.
거대한 발톱이 달린 사람의 팔이.
“더, 하면,역효과….”
그리고 늑대의 현상이 녹아내린다.
문틈 밖으로 주둥이를 빼내던 형상이 끈적한 검은 액체로 녹아내리고, 다 타 버리고 꿰맨 짐승의 형체가 흔들리며….
경비반장이 나타났다.
“…….”
아직도 관자놀이의 눈알들이 사방으로 먹잇감을 찾듯 굴러가며, 철문을 찍어 내리는 날이 선 발톱은 폭력적인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동시에 경비반장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어, 자신의 배에 찔러 넣었다.
진정제처럼.
하지만 액체가 아니라….
‘…돌?’
이윽고 경비반장의 몸에서 점점 힘이 풀린다.
익숙한, 기력도 의욕도 없는 모습으로 천천히 줄어들어 본래의 인상을 찾아간다….
그러나 나는 떠올렸다.
방금 노스텔지어 캔디로 드러났던 모습을.
‘경비반장의 지금 모습과 달랐던 것 같다….’
늑대 가면을 쓴 정장 차림의 남성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
다 망가진 돌 제단 격리실의 한복판.
경비반장은 고요히 가라앉듯, 뜬 눈으로 멈췄다.
…제압, 성공이었다.
털썩.
“허억.”
옆에서 백사헌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 문틈에서 잘린 양팔 단면으로 피를 끝없이 흘리며 교육서를 읊는 박민성 주임의 오염된 목소리가 들린다.
간신히, 나는 몸을 일으켜 박민성 주임에게 다가갔….
“참 지저분한 꼴이군.”
망가진 철문이 완전히 개방된다.
몸을 웅크린 채 피를 닦으려 드는 새싹반 ■■■의 옆에서 걸어 나오는 자.
구둣발 소리와 함께, 그 목소리가 울린다….
“이게 무슨 소란인지.”
청달래 이사.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자의 눈이 주변을 훑으며 나를 본다.
“회사에 보고되지 않은 이런 침입은 징계 사항인 건 알고 있나? 찾아온 프론트 직원까지 훼손하다니.”
…….
“이번 일은 징계를 피할 수 없겠어. 그 가당치 않은 프로젝트팀에서도 아쉽지만 빠져야겠군. 자네.”
망했다.
불길함이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나는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청달래 이사의 손이 뻗어 나와 내 머리로 온….
똑똑.
“…!”
열린 문 너머, 맞은편 격리실 문.
그곳에서 정중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거짓말처럼 문이 열린다.
여우상담실이다.
햇살이 쏟아지는 것을 역광으로 삼은 채, 호유원이 거기서 걸어 나왔다.
“이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호가호위하다 보니 자기 신세를 착각하기라도 했나?”
“청달래 상무이사님.”
호 이사가 다가온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정말 당혹스럽네요.”
그리고 내 옆에 서서 어깨를 잡는다.
“130666님은 제 요청 때문에 잠시 순찰을 오신 건데, 갑자기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나서 제압해 주신 것 같네요. 누가 그런 사고를 일으킨 건지. 정말, 갑작스럽게 프론트 직원분이 극도로 오염된 채로 나타나셨나 봐요.”
“…….”
“그러고 보니, 청 이사님께서는 보안팀의 오염을 이용하는 방법을 선호하신다고 들었는데.”
“자네는 아예 특수부서 직원을 프로젝트팀에 멋대로 인사이동을 시켰고 말이지.”
“완전히 다른 경우죠!”
호 이사가 안타깝다는 듯이 목소리를 부드럽게 낸다.
“백일몽 주식회사의 직원을 프로젝트로 차출할 수 있는 건 제 임원으로서의 권한이랍니다. 회사와 계약하신 분을 마치 개인 몸종처럼 사적으로 이용하려 하셨다면 이것도 불편한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요….”
“사적 이용이라.”
청 이사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호 이사.”
“…….”
“요즘 말이야….”
그 눈이, 아까 호 이사가 통로로 이용한 격리실의 문을 본다.
“여우상담실이 자주 비어 있다는 보고가 들리던데.”
호 이사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 물론 여우상담실과 자네는 특별히 관련이 있지 않겠지. 다만 올해 자네의 거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소리도, 슬슬 들리고 있단 말이지….”
“…….”
“올해 자네의 실적이 기대돼. 과연 같은 개발부 이사라는 말을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군.”
청 이사의 시선이 다시 내게 닿는다.
“내 직원을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지도 말이야.”
침이 있다면, 삼켰을 것이다.
“기른 짐승도 주인을 물지 않는 법인데, 내가 내민 계약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직원이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군….”
“…….”
“뭐, 그래도 수습은 도와주도록 하지. 그것이 내 회사를 위한 일이기도 할 테니.”
청 이사가 손을 뻗어서….
박민성 주임의 머리를 잡아 올린다.
여전히 교육서를 발작적으로 읊고 있는 새싹반 선생님을.
“자, 보안팀을 호출해서 이쪽을 보안팀 교육용 구역으로 옮겨주도록 할까.”
잠깐.
“오염에 잠식된 꼴을 보니 한동안 근무는 어렵겠고, 재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물론 교육 서비스는 임직원용 특가로 제공되겠지만 깊이를 봐서는….”
청 이사가 내가 지혈하려 했던 양팔을 보며 말한다.
“아마 상당한 빚이 또 쌓이지 않을까 싶은데….”
“…….”
“여기서 내가 관대한 조건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말투에서, 알아차린다.
청 이사는 정확히 알고 있다.
박민성 주임이 내게, 호 이사에게 협력해 준 것을.
내가,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운 나쁜’ 이 별관 프론트 직원을 위해, 새로운 근로 계약서를 특별히 준비해야겠는걸….”
“자네가 받았던 것처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