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76화
세광공업고등학교.
보름달이 뜬 밤, 잠에 드는 것으로 진입하는 기묘한 공포 게임 속 고등학교.
그 명칭에서 분명 세광특별시와 연관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이렇게 바로 맞닥뜨릴 줄은 몰랐지만.
[출입문이 닫힙니다.]
“……갈까.”
“예.”
우리는 우선 열차에서 내렸다.
승강장은 깔끔하고 서늘했으며, 기이한 괴현상 같은 것은 당장 목격되진 않았다.
특이점은 하나뿐이었다.
세광공고 졸업식
4번 출구로! →
승강장 기둥에 붙은 이 A4 용지.
활자 안내문.
문제는, 이런 A4용지 자체는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2번 출구의 에스컬레이터는 공사 중입니다. 다른 출구를 이용해주세요.
소화전 단수 안내
열차 고장 / G155■
고양이 지갑 잃어버린 분은 역무실로
기둥과 벽면마다 A4 용지와 메모장이 즐비하다.
광고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단정하고 정보성 문구들이며, 각기 다른 이유로 적힌 듯 필체와 형태가 어지럽게 다르다.
활자의 지시문들.
세광 지하철 노선도
– 세광역 (임종의 숲길)
– 자정역 (신체 카지노)
– 한밤역 (한빛도서관)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 (미등록)
위키가 갱신된다.
한밤역 (한빛도서관)
공공도서관에 의하여 재단장된 세광특별시의 지하철역.
재난의 날 이전, 해당 구역은 본래 공업고등학교와 주택가가 위치한 곳이었으나 특별시로 재개발되며 도서관용 부지로 선정되었다.
아직 정식 개관하지 않은 도서관은 몇 년간 인근 시민용 일부 구역을 제외하면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으나, 재난의 날을 맞아 그 문을 열며 아낌없이 지식과 정보를 베풀었다.
이 일을 후회하도록 만들지 말라.
…괴담답게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최소한 누가 끔찍하게 죽는다는 식의 설명은 없었다는 거지.”
“예.”
내가 전달한 ‘이번 역의 정보’를 들은 일행들은 약간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지식과 정보를 베풀었다는 게 좀 마음에 걸리는 표현이긴 한데…. 어둠에서 정보 얻는 게 꼭 좋지만은 않잖냐. 흠.”
“안 찝찝하면 그건 괴담이 아니죠, 대리님.”
“그건 또 오소리 말이 맞지.”
애초에 우리는 세광특별시의 상황을 파악해야한다는 호유원의 목적을 토대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팀이니, 이번 역에서 여러모로 필요한 걸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말이다.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음?”
“입장 비용이 무료일 것 같다는 점입니다.”
“…!”
괴담은 본래 모티브가 되는 원개념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그건 보통 법칙에서도 동일하다….
“그래. 공공도서관이면 돈을 받진 않지.”
“예.”
우리는 승강장 계단을 올라갔다.
목매단 시체가 대롱대롱 매달린 숲, 신체를 가져가던 카지노까지 경험한 상태.
보안팀 두 사람도 이미 관련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에, 계단 위 대합실이 대체 어떤 광경일지는 아무도 큰 기대가 없었다.
‘A4 용지로 도배된 지하철 시설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긴장감이 가득한 채로 발을 디딘 순간.
“…!”
…우리는,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보게 된다.
“…동굴?”
계단 위로부터는 무수한 책이 꽂힌 작은 동굴이 이어졌다.
‘맙소사.’
마치 고전 환상 문학의 삽화 속 같다.
책장으로 만들어진 인공 동굴.
다만 그 재료만은 21세기에 신축된 도서관이다.
합성 소재, 가공 목재,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책장들이 퍼즐처럼 맞물리며 동굴을 만든 것이다.
‘각기 다른 서고에서 온 건가…?’
곳곳에서 작은 무드등이 붉고 따스한 빛을 서고에 비추고 있으며, 빽빽이 꽂힌 책들이 사각 통로의 벽면을 채우고 어둠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천장까지 책 꽂힌 책장이었다!
[오,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이 떠오르는군요.]
[동시에 옛 모험 이야기 속 숨겨진 탐험 장소 같지 않습니까? 친구의 탐험을 기다리는 미지의 공간이라! 시기를 좀 잘못 찾아온 것 같지만 말입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승강장 아래의 현실적인 시설을 돌아보자, 위화감이 더 강렬해졌다.
“대기하십시오.”
이자헌 과장은 몸에 밧줄을 묶은 채로, 책장으로 이루어진 동굴 안쪽으로 전진해서 모퉁이를 돌았다가….
다시 멀쩡히 걸어 나왔다.
“확인된 함정은 없습니다.”
“후우.”
우리는 진입을 결심했다.
밧줄 대신 실을 통로의 끝, 계단 난간에 묶은 후, 천천히 풀면서 안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현장탐사팀의 가면이 있는 사람들은, 만일을 위해 나란히 가면도 착용했다.
그리고….
“네 것도 챙겨왔지.”
“……네!”
은하제 대리가 웃으며 박민성 주임에게 현장탐사팀의 가면을 내밀었다.
박민성 주임님이 약간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가면을 받아서 착용한다.
익숙한 오소리 가면.
어딘가 마음이 찡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나는 동시에 유일하게 가면이 없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괜찮은데……. 이거….”
경비반장은 식별 저하용 가면을 건네려는 이자헌 과장을 거절하고, 대신 그냥 낡은 덴탈마스크를 꺼내어 덮어쓴다.
‘…….’
[저렇게 비루할 수가!]
어쨌든, 그렇게 준비를 마친 우리는 ‘도서관 동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아, 혹시 모르니 우선은 필담을 기초로 대화하는 게 좋겠습니다.”
“도서관은 보통 정숙이니까?”
“예.”
펜과 종이를 챙긴 일행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맨 뒤에 선 나는 천천히 실을 풀어, 돌아올 길을 확인하면서 움직였다.
뚜벅, 뚜벅….
서고의 길은 모퉁이를 돌아 계속 이어진다.
때로는 갈림길이 나타나기도 했으나, 그게 도저히 우리가 갈 수 없을 만큼 작은 개구멍 크기인 경우도 관측된다.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는 걸로 법칙을 정할까요?
-예.
이자헌 과장은 왠지 습격당하기 딱 좋은 구도의 개구멍 근처에서는 일행을 가로막듯이 걷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전진하고, 멈추고, 주변을 살핀다.
그 와중에 내가 확인한 특이 사항은 딱 하나뿐이었다.
빽빽한 책장 사이, 책이 없는 작은 틈으로….
창문이 있던 것.
“…!”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확인했다.
창밖은 깜깜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한밤중처럼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가득 낀 야밤, 가로등 불빛 하나 없으면 이런 느낌일까.
다만 그 너머로 보이는 딱 하나의 광원.
세광공업고등학교
고등학교 정문에 있는, 명패.
이상하게도 보인다.
나는 창문에 비치는 내 얼굴너머 그 어두운 바깥을 더 보려 잠깐 애썼으나, 곧 멈췄다.
뒤에서 이자헌 과장이 내 목덜미를 잡았기 때문이다.
“…….”
-멈추십시오.
옙.
그래. 괴담에서 도 넘는 탐구 열정은 미친 짓이다.
‘배드엔딩 하나 더 수집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야.’
아무리 죽어도 현실에서 깨어난다지만, 실종되면 답 없다. 연구팀이나 좋아할 짓은 하는 거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일행들에게 짧은 보고 이후에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속에 찜찜함을 둔 채.
“…….”
“…….”
하지만 다른 특이사항은 나타나지 않는다.
표지판도, 층수 표시도, 하다못해 나가는 출입구 표기도 없다.
‘…얼마나 넓은 거지?’
그 끝없음에 사람이 현실감각을 잃고 질리게 만드는, 압도당하게 만드는 이상함.
이상한 꿈을 꾸는 것 같은 답답한 몽롱함.
그리고 말이다.
-도서관 이용 수칙 같은 건 왜 안 나오냐.
우리가 탐사를 시작한 지 족히 40분은 지났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표시가 없다.
하다못해 혈흔이 남은 책장, 수상하게 글자가 뒤틀린 책등 같은 것마저 없는 것이다.
그저 물리법칙을 위반하듯 천장까지 짜맞춰진 책장의 동굴만이 끝없이 이어질 뿐.
-오소리야 네가 총대 메고 책 하나 건드려 봐라
-농담이죠 대리님?
-당연하지
맞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굴 수도 없지.
그나마 다행인 건 박민성 주임님이 긴장, 혼란, 기쁨 같은 강렬한 감정을 지나 이제는 거의 익숙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일까.
다만….
‘…D조일 때 같다.’
현실에서 보안팀인 것을 무의식중에 외면하는 것처럼, 박민성 주임님은 그 옛날 D조 소속일 때와 완전히 동일한 태도로 행동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간 듯이.
‘…….’
경비반장님이 괜히 신경 쓰인다.
나는 바닥을 보며 느릿하게 걷는 경비반장님을 계속 체크하며 걷다가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
후우.
그런데 경비반장은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다.
‘…!’
-혹시 바닥에 뭐가 있습니까?
“…….”
경비반장님이 느릿느릿 흐르듯 악필을 써내린다.
-그런 것 같기도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두운 통로, 책장과 책의 그림자 사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바닥의 통로를 눈으로 훑어 올라가면….
이상한 무늬가 있다.
“……!”
나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의미로 일행의 어깨를 두드린 후, 다급히 바닥 근처의 책을 옆으로 살짝 옮겨서 무늬를 완전히 드러내 확인했다.
무드등의 빛과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