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88화
…나는 사인검이 요원의 손에서 사용되는 것을 단 한 번, 본 적이 있다.
빨간 마스코트의 탈 속에 든 것이 리조트를 습격해 올 때 해금 요원님의 손에서 보았던 광경이다.
검에서 뻗어나 온 순양의 기운이 하늘을 울리고, 벼락같이 떨어진 파마의 힘이 침입한 삿된 것을 꿰뚫어 부수던 그 힘.
부정한 것의 파괴.
그것이 지금.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 손아귀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
푸른 벼락.
세상 이치를 담아 불타오르는 하얀 순양의 힘은 시퍼렇게 달아올라, 강당의 천장을 뚫을 듯이 치솟아 정점에 달한다. 그리고 학교에 침입한 무섭고 부정한 것을 향해….
내리꽂힌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영험한 힘.
‘아.’
너무나 강력해서 삿된 세상을 태우고, 부끄럽게도 삿된 나도 태운다. 그러나 손가락 세 개가 없어진 내 양손을 쳐다볼 새도 없다.
눈앞에서 삿된 것이 무너지고 있기에.
툭.
투투투툭….
하나씩 떨어진다.
기이하게 뒤틀려 하나로 엉겨 붙어 괴물의 몸뚱이가 된 선생님들의 신체가, 불완전한 채 일부만 남은 그 몸들이 강당의 바닥으로 무너졌다.
박홍림 팀장님의 상반신과 함께.
툭.
마지막으로 중앙에 떨어진 그 신체까지. 모두가 가만히 눈을 감고 평온히 정신을 잃을 듯 쌓였다.
그리고.
“…….”
“…….”
고요함.
“…하.”
쿵. 나는 강당에 주저앉았다.
사인검을 쥔 양손에서 내 손가락과 아귀가 타버린 흰 재가 묻어나온다. 감당할 수 없는 것에 혹사당한 내 심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나, 차마 검을 놓을 엄두는 나지 않아 꽉 쥔 채.
“고생했다.”
해금 요원이 다가왔다.
“포도 요원.”
목에서 울음 같은 이상한 소리가 끓어오를 뻔한 것을, 나는 참았다.
그리고 손을 다잡으며 검을 다시 해금 요원에게 내밀었다.
“아니, 일단 패용하고 있어라. 끝난 게 아니니까.”
“…!”
정신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 같다.
‘그래.’
강당은 잠시 고요함을 되찾았다.
‘도울 호’의 유리 탄환이 이전 강당의 모습을 투영하고, 내가 ‘선생님’을 무너트려 무력화했기에.
하지만.
“아마 다시 깃들 거다.”
“…예.”
사인검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괴물을 무력화했으나 학교를 삼키는 삿된 오염 자체를 삭제한 건 아니다.
리조트에서 빨간 마스코트 본체가 사인검에 불살라져도 빨간 구역은 그대로 남아 있던 것과 같다.
세광공업고등학교는 여전히 살점에 침식되어 불길하고 기이한 분위기였다.
그러니 얼른 진행해야 했다.
남은 단 하나의 절차…!
‘봉인.’
다시 분위기가 급박해진다.
“청동 요원이 부적의 획을 전부 그으려면…. 최 요원?”
“반 시간은 더 필요할 겁니다.”
“그래. 일어나. 청동 요원에게 간다.”
나는 당장 몸을 일으켰다. 트럭에 치인 것처럼 몸의 균형이 안 맞았다. 젠장.
“이송이 필요합니까?”
“예.”
기꺼이 받겠습니다.
나는 도마뱀 과장에게 짐짝처럼 들린 채로 다급히 해금 요원을 따라 움직이려다가….
뒤를 돌아보고 멈췄다.
“포도야?”
“잠시만요.”
나는 도마뱀 과장에게 부탁해서, 무너진 ‘선생님’의 신체 더미들에 접근했다.
정확히는 중앙에 놓인 상반신에.
…찢어진 부적 절반은 여전히 박홍림 팀장님의 상반신 몸에 붙어 있었다.
“왜.”
최 요원이 내 근처로 왔다.
나는 고민 끝에, 내가 가지고 있던 남은 부적 절반을 꺼냈다.
“혹시 이걸 저 부적과 다시 이을 수 있습니까?”
“…뒤뜰에 묻혀 있던 게 그거지?”
“예.”
“일단 줘 봐.”
최 요원이 남은 부적 조각에 간단한 액 털기 같은 동작을 하더니, 팀장님의 상반신 위에 놓았다.
떨어진 부적이 하나가 되진 않았으나, 최소한 하나의 형상을 그릴 수 있게.
부서진 유리 초롱은 없었으나, 한빛도서관 도서대출표의 뒷면을 활용한 부적은 비로소 그 형체를 갖췄다.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글쎄. 나보다 영험한 분이 만든 거라 모르겠는데.”
박홍림 팀장님이 만든 부적과 바닥의 신체들을 살피는 최 요원의 눈이 생각에 잠긴 듯 어두워질 뻔했으나, 곧 평소처럼 웃더니 손으로 내 등을 밀었다.
“그래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얼른 가자고.”
“예.”
그리고 우리는 다급히 강당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학교의 침식은 여전한 상태였다.
아니, 도리어 더 진행되어 있었다.
“읍, 읍읍.”
벽에 붙어서 꿈틀대는 교복 입은 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살아 잡아먹힌 자들이 바닥과 벽마다 사지만 퍼덕이고 있는 것이, 마치 학교에 돋아난 고통 같다.
공포와 처참함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젠장.’
이자헌 과장에게 들려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다. 인간의 본능으로 발이 멈추는 일이 없어서.
요원들과 나는 이를 악물고 이동했다.
하지만 요원들은 2층의 교실로 가는 대신 1층까지 발을 옮겼다.
“청동 요원님은….”
“다른 요원들에게 맡기고 왔지. 일단 최대한 오염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말이 멈췄다.
“…….”
1층 복도도 이미 살점에 덮여 있었다.
그리고 바닥과 벽에는, 저항하다가 삼켜진 듯한 인간의 흔적들이 있었다.
유리 손포와 끊어진 포승줄을 삼키는 살점들.
그리고 삼켜진 사람들.
요원들의 튀어나온 사지.
“…고명아.”
반응은 없다.
요원들의 사지는 그저 벽에 박혀 버둥거리고 있을 뿐.
…해금 요원이 처음으로 발을 멈췄다.
“요원님. 벽에 탄환을 쓰면 혹시….”
“아니. 저건 생명 반응이 아니야. …이미 죽었다.”
“…….”
“탄환을 아껴. 이동하자.”
그리고 해금 요원의 시선이 이동한다.
요원들이 떼로 학교에 삼켜져 절명한 흔적이 남은 복도의 옆에는, 1층에서 유일하게 아직 잠식당하지 않고 비교적 멀쩡한 모습인 장소가 있었다.
1학년 4반 교실.
그 앞에는 금줄로 막혀 오염이 지연되고 있었다.
그마저도 반쯤 먹혔으나, 요원들이 어떤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드르륵.
교실의 금줄을 조심스럽게 넘어 문을 열자, 안의 광경이 보인다.
아직 살점이 닿지 않은 중앙의 책상 밑.
희미한 빛이 반짝인다.
청동 요원이 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유리 초롱에 획을 넣고 있다.
커터 칼로.
“……!”
커터 칼이 획을 넣을 때마다 빛이 튀었다. 그때마다 긋는 자의 얼굴에 음영이 진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관자놀이와 옆얼굴이 젖어 있었으나 표정은 극도의 집중으로 없다.
우리를 돌아보지도 못한다.
적합하지 않은 장비 탓인지 획이 어긋나는 걸 살로 댄 건지 손이 붉은 실선 같은 상처로 빼곡했으나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옆에 서서 우리를 돌아보는 세광공고 학생이 하나.
“김솔음.”
이결이다.
괴담에서 듣는 내 이름 세 음절에 순간 소름이 돋았으나, 그다음으로 반가움과 안도가 오긴 했다.
아직 살아 있었다니.
“기억이 돌아왔어?”
“그래.”
-선생님이 종이쪽지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동급생은 자신의 손을 들어서, 스스로 적어놓은 글자를 보여주며 인상을 찌푸린다.
“이거 보고 선생님이 뭘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기억이 돌아오고, 사람들을 만나서.”
“요원분들을?”
“어. 내가 자기들을 알아보니까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잡아 가지고…. 교실에 남았는데.”
“…….”
“자기들끼리 복도로 나가더니, 방금부터 말소리가 안 들려.”
그 이유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
이결은 청동 요원을 턱짓했다.
“어쨌든 부탁을 받았어. 이 사람이 뭘 완성하면 같이 가줘야 할 곳이 있다고.”
뒤뜰이다.
‘…청동 요원이 섭외한 거구나.’
이 학교 학생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양호실의 창밖, 뒤뜰이 있는 곳이 보이지 않고 그저 검은 공백으로 보이니까.
그런데… 잠시만.
“네가 요원들을 알아봤다고?”
“…….”
“어떻게 알아본 건데.”
겉으로 보면 그냥 오류가 갑자기 다른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템이나 대화로 ‘요원’이라는 직분을 알아본 거라면.
재난관리국의 요원이라는 신분에 대해 원래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가령.
박홍림 팀장님, 그리고 이 학교를 지키기 위해 남았던 청룡팀 요원들에 대해.
“네가 기억해 낸 거, 대체 어디까지야?”
염색모와 피어싱을 한 동급생은 어울리지 않도록 지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 학교에 요원들이 찾아온 날.”
“…!”
“이 학교가 망한 날까지 기억나. 후우….”
“잠깐만.”
최 요원이 끼어들었다.
아직 획을 긋고 있는 청동 요원을 확인하며.
“우리… 그래, 이결 학생. 우리 지금은 그때 이야기 좀 해볼래? 학교가 망했다고 했잖아.”
나도 깨달았다.
학교가 망한 날.
그건….
‘세광특별시 재난의 날.’
멸형급 초자연 재난이 발발한 날이다.
등골에 소름이 쭉 돋는다.
“그게 언제야?”
“…….”
이결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5월이었어. 어린이날 바로 전날.”
5월 4일.
“1교시 시작하는데 갑자기 재난 문자가 왔어. 시청에서 테러가 일어났다고.”
“…!”
[세광특별시] 경계경보 발령. 시청 인근에서 테러 의심 폭발이 발생. 인체에 치명적인 생화학 무기로 추정.
연쇄 폭발 정황이 의심되오니 시민 여러분께서는 지시에 따라 대피할 준비를 하시며 절대로 외출하지 마십시오.
“‘세광특별시’라고?”
“어. 그럼 여기가 서울이겠냐?”
‘현재’ 대한민국에 없는 지명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던 해금 요원의 얼굴 표정이 의문을 지나 심상치 않게 굳는다.
그러나 나와 최 요원의 표정은 더 굳었을 것이다.
“TV 채널이랑 위튜브에서 계속 실시간 긴급 속보로 뉴스가 떠서 아무도 수업 안 듣고 그거 봤어. 막 사람들 도망가는 거랑, 건물 무너지는 게 나왔었는데.”
“…….”
“그러다가… 갑자기 다 끊겼고.”
곧 인터넷 자체가 안 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학생들도 어느 순간 전화가 걸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런데.
“재난 문자만 갑자기 또 오는 거야.”
[세광특별시]
경계경보 취소 테러아님 무기아님 폭발아님 안심하세요
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나와나와나나와나와나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나와
오셨어
등골이 섬뜩해진다.
“그때 교실에 처음 우는 애가 나왔어.”
“…….”
“교사들이 급하게 우리 폰을 다 걷어갔어. TV 선을 다 끊고.”
학생들은 패닉에 빠졌으나, 결국 선생님들의 지시에 따라 창문을 막고 강당 근처에 모였다고 한다.
생화학 무기라면 대기보다 무거워 아래로 내려앉아 저층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한테 눈 감고, 귀 막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하던데.”
“선생님들도 그랬어?”
“아니. 자기들은 떠들었지.”
하지만 5층 복도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뒀다고 한다.
서로 대화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그걸 고등학생들이 다 얌전히 들었다고?”
“테러났다잖아. 이상한 문자도 오고, 혹시 원격으로 폰 폭발시키나 싶었다고. 물론 안 듣는 새끼들도 있긴 한데.”
“혹시 너 포함이야?”
“…….”
시선을 피하던 이결이 실토하듯 말한다.
“그냥, 귀는 안 막고 교사들이 무슨 이야기하는지 들으려고 한 거였어. 수상하잖아.”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잘 안 들리긴 했는데, 선생님 중에 누가 나가려고 했어.”
“…!”
“자기는 확인할 게 있어서 다른 곳에 가야 한다고. 하지만 이럴 때 신고하는 곳이 있다고 하면서, ‘요원’들에게 학교에 와달라고 구조 요청을 보냈다고 했어.”
“…….”
“아마 상담 교사였던 것 같은데.”
-어떤 고등학교에는 주기적으로 학생들을 상담해 주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었고.
호유원?
“그게 전부야. 그리고….”
그 순간.
툭.
우리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책상 아래, 청동 요원이 커터날을 유리 초롱에서 뗐다.
“완성됐습니다.”
“…!”
모든 집중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요원이 조심스럽게 유리 초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정 책방에서 만들어온 종이 부적을 꺼내어, 그 초롱 바닥에 ‘제대로’ 맞춘다.
푸른 불꽃이 획을 따라 타오른다.
훅.
종의 획이 초롱의 획과 이어지며, 불꽃이 따라서 간다. 부적이 확장되며 연결되어 간다….
“……후우.”
완성.
획을 따라 푸른 불빛은 초롱 안으로 삼켜졌다.
우리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청동 요원은 초롱을 양손으로 들고 책상 아래에서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창백하다.
“괜찮… 요원님?”
“청동아.”
그제야 눈치챈 듯 우리를 보는 청동 요원의 얼굴에 안도와 놀라움이 순간 지나간다.
“다른 요원들은….”
“일단 부적부터 활성화하고 이야기하자.”
“…….”
청동 요원이 반쯤 살점에 뒤덮인 1학년 4반 교실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복도의 정적을 인지한다.
하지만 심호흡과 함께 정신을 집중한다.
“…예.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대로 뒤뜰로 가져가서 묻으면 되나? 거기 있던 거 맞지?”
나는 최대한 기운차게 대답하려 했다.
“예! 바로 양호실 창문으로….”
하지만.
-찾았다놀이끝났다
-뒤뜰을 들켰안돼안돼!
“…….”
잠깐.
“포도야?”
“뒤뜰로 다시 가져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들킨 위치니까.”
다급히 덧붙였다.
“이건… 이건 일종의 숨바꼭질 같습니다.”
“숨바꼭질?”
“예. 침입한 삿된 것에게 들키지 않도록, 부적을 숨겨놓았던 것 같은 기록들을 봤습니다.”
나는 떠올린다.
오류에게 보이지 않던 뒤뜰.
“뒤뜰은 게임에서 구현되지 않는 곳이라, 그곳에 숨긴 게 아닐까요.”
청동 요원에게 시선이 간다.
“요원님?”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오케이. 그럼 이 학교에서 비슷한 곳을 찾아내야 한다는 거지.”
비슷한 곳.
침입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숨길 수 있는 곳….
‘가장 적합한 곳이 뒤뜰이라 이미 썼다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눈에 아예 안 띄는 게 불가능하다면, 반대로….
‘터무니없이 강력한 것의 존재감으로 가려질 수 있다면?’
그리고 이미 이 학교는 그것의 일부이기도 했다.
-한빛도서관에서 찾아낸 초자연 현상 중 하나가 학교를 배경으로 하니, 이걸 이용해 보자.
한빛도서관.
“도서실로 갑시다.”
한빛도서관으로 이어지는 통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