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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91화


멸형급 초자연 재난.

세광특별시.

그리고 현실에서 삭제하는 봉인.

해금 요원은 우리의 설명을 꽤 차분히 들어주었다.

‘호 이사의 프로젝트’라는 특성상 관리국 요원에게 이걸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깊었지만, 결국 그편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거짓말을 하다 들키느니 신뢰를 쌓는 게 낫다.’

이미 세광공업고등학교에서의 사건으로 사건의 전말을 대강이나마 알게 된 베테랑 팀장급 요원에게 괜히 얼버무려 봤자 안 좋은 방향으로 전개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이야기를 다 들은 해금 요원은 눈썹을 꿈틀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

“…….”

“관리국이… 엄청난 결심을 했었어.”

“누님, 이거 더 윗선으로 보고는….”

“안 해. 일단은.”

해금 요원은 복잡미묘한 표정이 되었으나, 단언했다.

“애초에 이 이상 그 ‘특별시’에 대해서 아는 사람을 너무 늘리지 않는 편이 나을 거다. 인지 소거가 사실이라면….”

“…….”

“…요원님?”

“아니.”

해금 요원이 말을 끊었다.

“일단 그렇게 알아두고. …그 특별시를 탐사할 때 연락해라.”

“……!!”

“만일의 경우에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하나라도 있는 편이 낫겠지. 이 천방지축 자식들.”

“으악, 누님!”

“선배가 되어 가지고 애들만 데리고 일을 벌이고 자빠졌어. 이 자식.”

최 요원의 머리를 쥐어박은 해금 요원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각오한 듯 눈을 굳히는 청동 요원을 쓰다듬었다.

“고생이 많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포도 요원.”

…….

“그쪽은… 사람이 되려는 건가. 아니면 본래 사람인가.”

복수 정답

적어도 그렇게 희망한다.

“…그래?”

해금 요원이 씩 웃었다.

“이지가 있고, 소통할 수 있고, 측은지심이 있으면 뭐, 사람이나 다름없지.”

…….

“무엇보다 이 녀석을 썼고 말이야.”

해금 요원이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검을 툭툭 쳤다.

한번 써본 상태에서 다시 만난 사인검은, 이제 더 이상 그냥 길쭉한 은제 검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 거대하고 감당할 수 없던 파마의 힘이 내 뇌리에 새겨진 것 같았다. 뇌가 어디에 있는지는 장담 못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질문 : 세광고에서 소실한 손의 상태

“뭐, 도깨비불이 좀 더 힘쓰는 거지.”

아무래도 지금 움직이고 있는 해금 요원의 한쪽 손은 도깨비불이 대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럼 이쯤 하지. 할 일이 많아서.”

공사가 다망한 해금 요원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하면 불러라.”

그렇게 해금 요원은 연락처를 남기고 떠났다.

‘…새로운 팀원이 해금된 것 같다.’

아무래도, 세광특별시에 탐사 중에 해금 요원이 합류하게 될 듯하다.

나는 그럴 때가 아닌데도 약간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다시 복귀한 여우상담실에서는, 기존의 탐사 팀원을 만났고 말이다.

“노루 씨.”

바로 이자헌 과장이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세광고 종결에서 동행하며 물리적으로 큰 도움을 줬던 터라, 아무래도 그 이야기를 하러 왔나 싶었다.

도마뱀 과장의 방문 목적 (추론) :

탐사 결과 공유

“아닙니다.”

어?

다시 하얀 도마뱀 머리로 보이는 파충류 외계인의 주둥이가 약간의 호선을 그렸다.

“우리의 보답이 도착했습니다.”

‘우리의 보답’이라고 하면….

…!!

-저는… 사람의 몸을 되찾고 싶습니다.

-가능합니다.

그거다.

내 사람 모습.

* * *

잠시 후, 나는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설명에 따라 여우상담실을 나와서 이자헌 과장의 사택에 왔다.

그리고 식탁 위로 이자헌 과장이 ‘물건’을 올렸다.

“보답으로 요청한 물건입니다.”

포장된 사각 박스였다.

◎계란무드등◎

그렇게 물건 이름이 적혀 있으며, 전면의 이미지에서는 베이지색의 귀여운 계란형 무드등 디자인이 보인다.

흔히 카카오톡 선물하기 페이지에서 생일 선물로 주고받는, 중저가의 무드등처럼 보였다.

말랑말랑한 재질의 귀여운 캐릭터나 형태로 만들어진 것 말이다.

하지만 이게 보답이라는 건, 그런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거겠지.

‘아이템’.

괴담으로 판정되는 초자연 현상으로, 내게 사람의 형상을 돌려줄 것이다.

그리고 ‘우주 쇼핑몰’ 출처라면 치명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것까지 보장되어 있다.

130666의 상태 : 고마움

“예.”

질문 : 사용 방법

“동봉된 설명서를 통해 습득할 수 있습니다. 육성으로 설명을 고지받길 원합니까?”

우선 보류

“예.”

나는 당장 박스를 개봉해 맨 위에 놓인 설명서를 들고 읽었다.

햇살편집숍의 계란(繼卵)무드등 시리즈를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무드등의 은은한 빛과 그림자를 통해 알 속에서 생명의 성장과 탄생을 지켜볼 수 있는 신비한 제품으로, 탄생한 결과물은 단독 이용도 가능합니다.

관찰한 생명체의 신경과 근육을 직접 사용해 보세요! 그리고 멋진 특수효과도 즐겨보세요!

※주의 : 결과물을 절대로 깨우지 마시오.

아, 이거.

위키에는 없던 괴담이다.

‘내가 읽기 좋아하는 종류이긴 한데.’

회사에서 시간 때우는 용으로 딱 좋은 물건 괴담이라서 말이다.

그리고 읽어 보니 대충 어떤 종류의 괴담인지는 클리셰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알 모양 무드등이 아니라 정말로 무언가 탄생하는 알인 건가.’

그리고 이 무드등 알 속에서 자랄 생명은….

탄생한 결과물은 단독 이용도 가능합니다.

관찰한 생명체의 신경과 근육을 직접 사용해 보세요!

내 육체로 쓸 수 있는 듯하다.

‘…좀 묘사가 징그럽게 보이긴 한다만.’

하지만 지금 내 상태가 더 징그러울 거다. 이 괴담 세계관에서 살아남다 보니 이 정도는 이제 버틸 만한 것 같기도 하고.

‘크흡.’

그리고 다음을 읽으려고 장을 넘기자, 그 장의 내용을 가로막는 스티커가 보였다.

‘음?’

그건 일종의 품질 보증서였다.

<망상홈쇼핑 보장 정품!>

그렇게 적힌 스티커는 요란한 색과 폰트로 설명서와 대조되며 눈에 확 띄었다.

‘그 동네 제품이었나!’

그럼 정말 효과가 눈에 확 띄긴 할 것이다. 거기서 소개되는 상품은 드라마틱한 변화, 혹은 아주 매력적인 요소를 중점으로 광고하곤 하니까.

가령 내가 브라운에게 사준 혈욕조 같은 것처럼 말이다.

-오, 물론 기억합니다, 노루 씨! 친구의 첫 선물이었지요. 기념할 만한 물건이었습니다.

-다만… 흠. 그래요. 또 ‘그’ 홈쇼핑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물품이 노루 씨의 손에 들어오다니.

왠지 브라운의 말투에서 어딘가 탐탁지 않아 하는 투가 느껴진다.

‘둘이… 꽤 괜찮은 관계 아니었나?’

같은 방송계 괴담이 아닌가.

심지어 그 홈쇼핑 출신 테디베어까지 심야토크쇼에 초청해서 나왔다.

토크쇼에 완전히 오염된 내가 그 테디베어 섭외에 관여했던 것까지 기억나려고 한다….

-오 물론입니다. TV쇼와 광고, 상부상조하는 관계지요. 물론 그 속에서도 엄연히 위치가 있지만 말입니다.

-주연 배우의 자리를 배경 소품이 대체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심야토크쇼가 주역이고 광고는 고작 배경 소품이라는 거지?

-하하, ‘고작’이라니. 다소 거칠지만 위트 있게 말할 줄 아는군요, 친구! 그래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TV쇼의 다음 코너까지 시청자를 안달 나게 만들고, 쇼의 제작을 위한 예산을 댄다…. 그게 바로 광고의 본질적인 역할이 아니겠습니까. 이 브라운도 쇼의 겸손한 진행자로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런 광고에는 충분히 감사하고 있지요.

-하지만 최근에 그 홈쇼핑 프로그램은 다소 자기 본분을 잊어버려서 말입니다.

‘그, 그렇구나.’

아무래도 망상홈쇼핑이 이 전설적인 사회자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짓을 저지른 듯하다….

일단 넘기자. 더 듣다가는 ‘토크쇼에 방문해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겠습니까?’ 같은 이야기로 흐를지도 모른다….

‘되도록 그 홈쇼핑에서는 구매를 자제해야겠네. 그래도 일단 이 설명문 내용을 계속 볼게. 오래 기다렸던 거라서.’

-물론입니다. 노루 씨. 나도 기대되는군요!

후우.

나는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떼어내어 빈 공간에 붙이며, 가려진 설명서의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이제 정말로 설명서다운 내용이 시작되고 있었다.

준비물 :

배양할 생명체의 혈액 2ml

배양할 생명체의 체모 3㎝

식염수 100ml

‘배양할 생명체의 신체 조각?’

흐음.

질문 : 생명체 지정의 한계 유무

“없습니다. 특정한 신체 조건을 갖춘 생명체의 혈액과 체모가 필요합니까?”

그게 말입니다.

‘남의 육체를 멋대로 배양해서 쓰기는 좀 그런데.’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대로 말이다.

나는 힐끔 도마뱀 과장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왜 세광고에서는 사람으로 보였던 거지.’

그리고 왜 검은 머리였을까. 그런 의문이 순간 스치고 지나갔으나, 당장은 다른 고민이 깊어서 말 그대로 지나만 갔다.

‘일단 지금 내 피와 머리카락은… 좀 그렇지 않나?’

일단 이걸 피와 머리카락으로 봐줄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체액과 부산물 아닌가…?

그렇다고 과거 내가 ‘김솔음’이라는 몸을 가지고 있을 때의 피와 머리카락을 찾아올 수도 없지 않은가.

‘사람 상태일 때는 내 피와 머리카락을 따로 보관해 두겠다는 발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고.’

아무리 괴담 세계관이라도 말이다. 아니, 도리어 괴담 세계관이니까 더 그렇다. 그걸 분실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물론 애초에 멀쩡한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

흠.

‘있을지도.’

곽제강.

아무래도 회사에 한 번 방문할 때가 온 것 같다.

* * *

“직원님!!”

툭툭.

나는 이동장 안에서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표기했다.

야밤. 이자헌 과장님을 통해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방문한 연구팀의 사무실에는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곽제강만 있었다.

“하하, 이게 얼마만의 방문인지! 저번에 별관 들어가셨을 때 이후로 처음 아닙니까?”

맞다.

거기서 청 이사 만나서 진짜 X될 뻔했지….

그러고 보니, 청 이사가 온다는 걸 알려준 게 바로 이 곽제강이었지.

질문 :

청 이사의 보복성 조치 여부

“예? 아, 저 말입니까? 하하하! 이것 참, 걱정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뭐, 별일 없긴 합니다만.”

흠.

“아셔도 저처럼 일에 충실한 연구원은 그냥 일하게 두실 겁니다. 그런 부류의 상사다 보니.”

웃는 곽제강의 얼굴에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의, 연구에 돌아서 다른 건 눈에 안 뵈는 과학자 특유의 광기가 있다.

그 연구가 괴담만 아니었어도 정말 사회에 이바지했을지 모르지만, 하필 괴담이라는 게 문제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성향에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게 인생의 아이러니지.

요청 :

(전) 현장탐사팀 D조 김솔음 주임의 혈액 및 머리카락

“음? 무슨 말씀이신….”

곽제강이 천연덕스럽게 반응하려다가 멈칫했다.

쿡.

내 연기가 자신의 사라진 새끼손가락을 찔렀기 때문이다.

“……뭐, 입사 과정에서 신체검사를 하면서 가볍게 수집해 놓는 거지요. 어디까지나 연구 목적으로 말입디다!”

결국 곽제강은 어딘가에서 해당 물건들을 가져왔다.

“여기, D조의 샘플들이 있습니다.”

나는 곽제강이 내민 나사형 캡들을 확인했다.

샘플 박스에 보관된 그것들은 날짜와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었고, 머리카락과 혈액뿐만 아니라 가끔은 살점과 손톱까지 있었다.

‘살점은 그렇다 쳐도 대체 손톱은 어디서 난 건데.’

나는 이자헌 과장의 손톱 조각을 보며 이게 과연 도마뱀 손톱일지 아닐지 짧게 고민했으나, 결국엔 내게 필요한 것만 빠르게 집어 들었다.

D조 김솔음 / 머리카락

D조 김솔음 / 혈액

자, 이제 돌아가서 무드등을….

“사용하실 거죠? 어디에? 어떻게? 어둠에 사용하실 겁니까? 복제? 검사? 자격 증명? 저주? 정말…… 궁금한데.”

…….

“제발 관찰하게 해주십시오. 제발.”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미 곽제강은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기 때문에, 허튼짓을 하진 못한다.

‘그렇다면 전문가 입회하에 진행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지시 :

완료 시점까지

소음 및 방해 금지

“하하하, 예!”

조건 : 도마뱀 과장의 허락

“…자네. 필요한 거 없나?”

“예.”

대체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도마뱀과 합의한 곽제강은 기어코 사택까지 따라왔다.

‘어휴.’

지시 : 소음 없이 대기

“…….”

일단 조용히 시킨 후.

나는 무드등을 부드럽게 박스에서 완전히 꺼내 들었다.

말랑한 촉감의 하얀 계란형 무드등은 하단에 내부가 개방되는 홈이 있었고, 나는 그 홈을 열어서 무드등 안에 혈액과 머리카락으로 채운다.

‘그리고….’

전선을 연결하고, 작동.

이 과정은 반드시 조명이 없는 어둠, 혹은 그늘 속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 말대로, 어둠 속에서 무드등에 반짝 빛이 들어왔다.

‘…!’

마치 계란에 불빛을 비춰서 그 속에 핏줄로 유정란인지 검사하는 것처럼, 무드등의 주홍빛 사이로 혈관과 세포가 보인다.

그리고 커진다.

“…….”

마치 병아리의 성장 같기도 하고,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하는 것 같기도 하고, SF 영화에서 나오는 외계 생명체의 탄생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림자가 점점 커지면서 신경과 핏줄, 장기 등을 정교하게 보이며 무드등 속에 실루엣을 갖춰간다는 점이다.

[오, 노루 씨. 저게 손인가 봅니다. 쥐었다 펴는 동작을 보십시오!]

그건 확실히 신비하긴 했다.

마치 100년쯤 후의 생물학 교육비디오를 만 배속 해둔 것 같은 속도로, 그 안의 생명은 자라서 형체를 갖춘다.

무드등 크기만큼 작은 이족보행의 생명체.

성체로.

“…….”

곧, 녹음된 짧은 소리와 함께 무드등의 불빛이 연두색으로 변했다.

완료 표식.

‘됐다.’

나는 손을 뻗어서 무드등을 열고, 그 안의 내용물을 준비해 둔 수건 위로 쏟아냈다.

그러자.

“…!!”

무드등의 입구가 기이하게 넓어지더니, 그 안에서 실물 크기의 인간을 뱉어낸다.

김솔음.

이전의 나와 똑같은 신장의 육체.

“정말로 김솔음이로군요. 이런, 이런 방법이 있다니…!”

…….

나는 간신히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그게.

질문 : 얼굴 생김새 평가

“예? 뭐, 준수하게 생기셨죠. 하하하! 설마 김솔음의 생김새에 확신이 없었습니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러니까, 곽제강에게는 저게 김솔음의 머리로 보인다는 거지?

…….

그런데 말이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좀 다르다.

…….

‘도마뱀 머리잖아…!’

내 눈앞에 있는 것은, 파충류 외계인의 머리를 달고 있는 김솔음의 육신이었다!

‘도마뱀!’

이게 무슨 일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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