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02화


망상홈쇼핑 #4-168 스튜디오.

갑작스럽게 불이 꺼져 어둠과 적막이 내려앉은 촬영장에서, 내가 든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듣기 좋은 남성의 목소리만 홀로 울린다.

사회자님의 음성.

[그러고 보니 ‘토크쇼의 친구’, 송출료 강제징수 방식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겠군요.]

고개를 들자 공포에 찬 망상홈쇼핑 쇼호스트의 얼굴이 보인다.

이목구비의 구멍마다 확장되어 비명을 지르는 유령 같다.

[한번 알아볼까요? 지금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안 ㄷ….]

[우선은 플랫폼이 청구하는 비용이지요. 오, 심야토크쇼는 유서 깊은 ■■■■■크를 통해 송출됩니다. 동시간대 타사의 프로그램이 이런 고립된 외딴곳에서 송출에 편승하려 드는 시도의 대가는….]

다정하게 설명한다.

[흠, 이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스튜디오의 임대 보증금 정도일 겁니다.]

[안 돼!]

나는 손을 들었다.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스튜디오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시작됐군요.]

[기다려, 잠깐만 멈추라고!]

그 절규에 맞춘 듯이, 스튜디오에서 생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

마치 갓 구워 뜨거운 빵 덩어리가 차갑게 말라빠져 곰팡이가 핀 곡물뭉침이 되듯이, 스튜디오를 구성하던 모종의 활기찬 느낌들이 빨려 나간다.

저 위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하고거대하고깊고멀고더다층적인차원을향해

스튜디오가 생명이라면 지금 죽었을 것이다.

그 죽어가는 비명이 들리는 것 같더니….

곧 모든 게 싸늘하게 식었다.

[자… 스튜디오 보증금이 징수되었습니다.]

[안 돼애애애애애!]

[오, 제법 극적으로 굴 줄도 알았군요. 매번 똑같은 멘트만 반복해서 재능이라곤 없는 줄 알았는데.]

쇼호스트가 바닥에 무너진다.

팔이 바닥에 눌어붙은 채 기이하고 역겨운 공포를 자아낸다.

스마트폰 속의 이질적인 옛 목소리는 신사적으로 부드럽게 말한다.

[그럼 이제….]

…….

[심야토크쇼가 받아야 할 송출료가 남았군요.]

쇼호스트가 퍼뜩 머리를 들어 올렸다.

[내 프로그램을 광고에 이용한 대가, 내 프로그램에서 실시간으로 홈쇼핑 서바이벌을 송출해 준 이 어마어마한 행위에 대해서 말입니다.]

[오,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그저….]

[이 스튜디오를 그대로 받아가는 정도면 되겠군요.]

[잠깐! 돈을 받는다고 하지 않았잖습니까! 나는 그냥 송출하겠다고만 했지! 돈을 내는 거면 하지 않았을….]

[맙소사, 그런 당연한 건 굳이 명시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습니까?]

[…!]

자신이 했던 말을 사회자님에게 그대로 돌려받은 것이다.

쇼호스트가 허옇게 질린 채로 자신의 채무자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애걸한다.

[잠깐만, 잠깐… 브라운 씨, 아니, 사회자님.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저는 언제나 당신을 존경해왔습니다. 하하, 시대의 엔터테이너. 제가 당신의 쇼들을 얼마나 숭배했는지!]

[오.]

[제가 그간 대단히 협조적이었지 않습니까, 또, 우리는 좋은 관계였지 않습니까? 망상홈쇼핑은 심야토크쇼에 테디베어도 무상 공급한 적이 있죠!]

[아, 물론 기억이 납니다.]

순간 쇼호스트의 얼굴이 반짝 밝아졌다.

하지만.

[고맙군요. 그럼 이제 징수하겠습니다.]

[아아아아악!]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나더니.

차갑게 식은 스튜디오의 시체를 온통 불길이 뒤덮는다.

불길 속에서 절규하는 쇼호스트, 레드 프라이데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가….

[짠.]

모두 사라졌다.

“…….”

원래 없던 것처럼.

스튜디오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텅 빈 검은 공간만 있었다.

저 끝, 승강장으로 향하는 듯한 문에 붙은 A4 공고문 하나만 남긴 채.

임대 문의

■■■■-■■■-■■■■■

[여기까지. 사기꾼에게 송출료를 징수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짝짝짝짝!

나는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든 채 열심히 손등을 치며 박수를 보냈다.

세상에, 정말 멋진 솜씨였다!

그리고 이 시원한 엔딩이라니, 토크쇼에 송출되지 못해서 아쉬울 정도였다!

“다음 토크쇼에서 혹시 망상홈쇼핑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건가요?”

[하하하, 친구, 언급도 관심이지요. 우리가 괜히 지금까지 망상홈쇼핑에 대한 농담을 대본에 안 넣은 게 아닙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궁금증이 머리를 든다.

“저, 쇼호스트분은 어떻게 된 건가요?”

[흠, 징수 도중에 도망쳤군요. 아마 망상홈쇼핑 본사에 틀어박혀서 엉엉 울고 있을 겁니다.]

[자, 조금 걸을까요?]

나는 어느새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정장 차림의 거대한 신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직원을 칭찬하듯이 내 어깨를 두드린 상대는 어둠 속에서 텅 빈 ‘망상홈쇼핑 스튜디오’가 있던 자리를 걸었다.

구둣발 소리와 함께.

그리고 텅 빈 그곳의 벽에, 흑백 포스터 한 장이 어느새 나타난다.

당신을 위한 금요일 선물

기적의 가격! 마법 같은 신제품!

망상홈쇼핑

[본래 망상홈쇼핑은 주로 금요일에 무작위로 방영되곤 했던 광고 프로그램이었죠. 어느 순간부터 정체성을 잃어버린 모양이지만 말입니다.]

포스터는 가죽 장갑을 낀 손이 한번 쓸어내리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새로 지은 스튜디오도 잃어버렸으니, 이제 자기 주제를 깨닫고 겸손하게 영업할 겁니다.]

[그래요. ‘초심을 되찾는다’, 얼마나 듣기 좋은 울림인지.]

“정말 멋지네요, 사회자님!”

[이런,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친구. 나는 당신의 친구 브라운이니까요!]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표시하고 싶은 건 당연한 것 아닐까?

잠시 마음이 벅차올랐으나, 곧 중요한 것들을 다시 생각해 냈다.

“저, 스튜디오에 있던 단기 계약직 직원들이나…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오, 심야토크쇼에서 이 스튜디오의 고용 계약서도 함께 인수했으니, 곧 토크쇼 스튜디오로 옮길 겁니다.]

“그럼, 여기 묶여있던 세광특별시의 주민들도 심야토크쇼 크루가 되나요?”

[열심히 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기회는 열려 있지요!]

정말 다행이다!

‘심야토크쇼에서 일할 기회를 준다니, 그리고 세광특별시에서도 탈출하는 거잖아!’

재미도 보람도 없었을 망상홈쇼핑 스튜디오에 종속되어 힘든 시간을 보냈을 세광특별시 시민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그럼 저희 일행들도?”

[토크쇼에서 하루를 근무하면 임금과 함께 집으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오, 고용 계약대로 대우해야 마땅하지요.]

“감사합니다!”

나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잘됐어.’

모두들 심야토크쇼에서 즐겁고 보람찬 하루까지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

‘어?’

이상한 위화감이 뱃속을 뒤튼다.

뭔가 잊어버리지 않았나?

[자자, 친구. 이제 포상을 즐겨야지요. 잊어버렸습니까? 당신은 1등입니다!]

“아!”

나는 탄성을 뱉었다가 약간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사회자님, 이미 스튜디오가 텅 비어서… 약속받은 상금은 아마 받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망상홈쇼핑 본사에 찾아가서 소송이라도 걸지 않는 이상 어렵지 않을까?

“아쉽네요. 판매 대금의 일정 퍼센트면 꽤 큰 돈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사회자님께 빌렸던 돈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사회자님께서 선물을 모조리 사주시지 않았던가! 그것도 갚아야 할 텐데….

[맙소사! 그건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답니다. 천천히 갚아도 괜찮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친구, 그리고 선물은 정말로 선물로 치지요. 자….]

딱.

손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없던 빈 공간에 열린 창고 문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은… 망상홈쇼핑의 판매 물건으로 가득했다.

“…!”

[자, 이 스튜디오에서 징수한 물건입니다. 이 중에 당신의 상금만큼 가져가세요.]

맙소사.

[대금은 내가 망상홈쇼핑으로 청구하지요. 그럼 원하는 물건들을 어서 골라보시죠!]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심장이 뛴다.

물건이 다양했다. 위키에서 읽었던 걸로 유추되어 가슴이 뛰는 물건부터, 용도는 확신할 수 없지만 신기해서 꼭 열어보고 싶은 것까지.

일단 눈에 들어온 것!

‘해피 메이커.’

필수품이다. 나는 그것을 황급히 한 다스 챙겨 넣었다. 그리고, 그리고….

‘…미친.’

거대한 것이 창고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혈욕조.

그건 내가 샀던 아담한 족욕 에디션이 아니었다.

검은 격자무늬의 곡선형 몸체, 우아하고 새하얀 세라믹 욕조는 윤기가 흘렀으며, 그 발은 황금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황금빛으로 무겁게 반들거리는 수전에서 금방이라도 뜨거운 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것.

비닐로 포장된 젊음의 욕조가 사람 발을 잡아챈다.

‘…챙길까?’

사회자님에게 선물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억지로 고개를 떼어냈다.

‘이, 일단은 탐사에 도움이 되는 걸 골라야 해.’

그래. 세광특별시 탐사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들 말이다. 일행들과 함께 더 안전하고 빠르게 비밀을….

…….

아.

“사회자님.”

[내 친구가 나를 부르는군요.]

“…죽은 제 일행들은, 어떻게 됩니까?”

[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겁니다. 계약서대로 하루만 근무하고 귀가해도 좋고, 아니면 심야토크쇼에서 계속 근무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지요.]

[계약이 끝나며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면 말이죠!]

“…….”

잠깐.

잠깐, 잠깐잠깐…!

“그러니까, 그… 고용 계약이 끝나면, 죽는 겁니까?”

[음? 하하하, 친구, 다시 죽을 수는 없을 겁니다.]

[이미 죽었으니까요!]

피가 식는다.

[죽은 상태로 근무 중이었으니, 끝나면 원상태로 돌아간다고 봐야겠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의지가 없는, 자아가 없는… 시체로 말입니다.]

“…….”

마치 리조트에 고용된 장허운 씨처럼, 괴담에 고용되어 스스로도 괴담이 되거나.

죽은 상태로 돌아가거나.

하지만 심야토크쇼에서 그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세광특별시 밖에서 죽는 거잖아…!’

그냥 죽음이다.

끝.

‘안 돼.’

그럼 그냥 토크쇼에서 계속 근무하시면 되는 거 아닐까? 아니, 그건… 아냐!

나는 심장께에 손을 올렸다. 오염, 오염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심야토크쇼의 크루로서 오염된 상태로 터무니없는 판단을, 내가….

[이런… 너무 애쓰지 맙시다, 친구.]

사회자님이 내 등을 두드린다.

그리고 따뜻하게 말씀해 주신다.

[이미 충분한 성과 아닙니까. 멋진 쇼맨쉽, 그리고 아찔한 클라이맥스, 폭죽처럼 터지는 카타르시스까지! 훌륭했습니다.]

[이 성과를 즐기란 말입니다, 친구!]

[…어쩌면, 이게 바로 한 챕터의 마무리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진정한 일터로 복귀하는 엔딩을 맞는 것 말이죠.]

“…….”

[물론 이런 공간에서 축하를 즐기긴 어렵겠지요. 자, 크루들이 환호하면서 파티 준비를 하고 있답니다. 우리도 이만 토크쇼 스튜디오로 돌아갑시….]

“싫어.”

나는 오염을 도로 문신에 욱여넣었다.

거죽이 벗겨지고 살갗이 뜯겨나가는 것 같은 압도적인 반발감과 압박감.

“…!”

심야토크쇼의 오염이 우악스럽게 정리된다.

마법처럼 반짝이던 행복, 편안함, 기대감, 치솟던 열정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공허, 공포, 염려와 고통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빈 임대 공간처럼.

“허억.”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건…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브라운. 나는… 여길 계속 탐사하고 싶어.”

[…….]

“탐사해서, 진실을 알아야겠어.”

유쾌연구소와, 이 멸형급 재난에 엮인 내 소환의 진실을.

그리고 갇혀 있는 사람을 빼낼 방법을.

…….

[좋습니다.]

브라운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말했지요. 당신의 모험, 여정에 언제나 착한 친구가 동행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래.”

하지만 동시에 빈틈만 보이면 내 여정을 끝장내고 토크쇼 엔딩으로 끌고 가려고 하고 말이다.

‘장면의 재미’를 해치는 것 같다면 내가 빌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항상 그렇겠지.’

예전에는 그것에 혼란이나 공포,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 TV 머리의 친구는 괴담이다.

그건 변하지 않을 진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친구인 것도 잊지 말자.

“…별개로 말이야.”

나는 말했다.

“오늘은 고마웠어. 너도 좀 재밌었지? 우리 손발 꽤 잘 맞던데.”

[당연한 말을 하는군요! 당신의 쇼맨쉽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잊었습니까? 바로 이 브라운에게 배운 것 아니겠습니까….]

아슬아슬하지만, 잘 밸런스를 유지해 가자.

신뢰와 우정을 잃지 않도록.

‘후우.’

그리고 나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혹시 1등 상금 말인데.”

[음?]

“여기 있는 물건 말고 다른 것도 고를 수 있을까? 가령… 고용 계약서 같은 거 말인데.”

[…고용 계약서라 함은?]

“일용직 계약서 말이야. 노동력도 재산으로 쳐서 가져간 거 맞지? 그럼 상금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이 말고….”

두 사람.

“…청동 요원님과, 송골매 대리님의 계약서를 받고 싶어.”

[이미 죽은 자들이로군요.]

“…….”

[그래요. 친구. 무슨 발상인지 알겠습니다. 당신이 고용 계약서를 받아서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겠다… 그런 거군요! 이 봉쇄된 도시에서 죽음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뭐?

[노루 씨. 당신은 스튜디오가 아닙니다. 당신이 운영하는 장소가 이 고립된 곳에 없는데, 어떻게 그들을 ‘이곳에서 풀어줄’ 겁니까?]

눈앞이 새하얗게 변한다.

[불가능하지요! 그들은 그냥 죽은 몸에 남은 정신이 되는 겁니다.]

[더는 죽음으로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로. 오, 그렇습니다….]

“…….”

[당신이 그들을 이 스튜디오였던 빈 장소에 다시 불러와서 고용 계약서를 찢어도, 그건 변하지 않을 일이지요.]

“…그럼.”

나는 허옇게 질린 채 입을 열었다.

“갇힌 거라고?”

[그렇죠. 정답입니다.]

청동 요원과 송골매 대리님은 이제 세광특별시의 악몽에서 깨어날 수 없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