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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10화


“송골매 씨.”

“예?”

“7번 칸에 들어온 쪽지인데… 그쪽에게 전달해 달라고 하더군요.”

“…!”

은하제는 역무원이 다른 사람을 피해 조용히 내민 쪽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역무원의 눈짓으로 빠르게 깨달았다.

이 쪽지를 적은 게 누군지.

‘솔음이 녀석.’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8번 칸으로 휙 가서는 혼자 다른 역에서 내리더니, 쪽지를 남겼나.

“혹시 7번 칸에 있습니까?”

“아니요. 열차에 탑승하지 않고 그것만 남기고 다시 내렸습니다. 그럼 이만.”

무슨 일이지?

은하제는 칸을 떠나는 역무원을 보다가 빠르게 류재관을 호출했다.

“무슨 일입니까?”

힘쓰는 일에 차출되었다가 막 돌아온 류재관은 의외로 이 열차 쉘터에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있었다.

이 열차 쉘터의 작동 원리와 비밀을 캐내고 말겠다는 식의 노골적인 수상쩍음도 보이지 않고 말이다.

다만 바깥에 남아있을 같은 팀 사람이나 가족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건지, 가끔 눈이 어두워졌다.

‘융통성이 살짝 붙고 있는 것 같은데.’

은하제는 그것이 좋은 변화라고 판단했다. 이대로라면 잘 성장할 것이다.

…여기서 살아 나갈 수만 있다면.

‘젠장.’

아, 담배가 간절했다.

죽은 몸으로도 담배가 당길 줄은 몰랐지.

어쨌든 은하제 대리는 류재관을 툭 치며 작게 속삭였다.

“……노루 연락입니다.”

“…!”

“이렇게 좀 앉아보십쇼.”

“예.”

은하제는 다급히 몸을 돌리는 류재관의 큰 덩치를 일종의 가림막처럼 사용해 쪽지를 감추고, 내용을 함께 확인했다.

급하게 확인할 일이 생겨서 잠시 회사에 다녀오려 합니다.

혹시 연락할 일이 생긴다면 오후역의 팝업 가게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p.s 한낮역은 화재로 전소되었습니다. 종결 상태이니, 방문해도 비교적 안전할 겁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오후역으로 회사 연구원들 보내뒀으니, 만나면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종결?”

“쉿.”

은하제는 다급히 류재관의 등을 쳐서 조용히 시켰다.

아닌 척 하지만 칸 곳곳에서 시선이 느껴지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아직 외부인 취급을 받고 있기에.

그리고 이 무료한 공간에서 할만한 일 중 하나가, 남을 쳐다보며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솔직히 쪽지가 기가 막히다 못해 말문이 막히는 내용이긴 했다.

‘그 와중에 어둠을 종결까지 시켜?’

혼자 행동한 지 만 하루도 채 안 지나지 않았나?

그리고 연구원은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 미친놈들이 왜 여기 있는 건데?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냐, 노루야.’

뭐 이런 자식이 다 있나 싶은 퍼포먼스긴 했으나, 은하제는 자신의 유능한 후배를 떠올릴 때마다 입맛이 썼다.

유능한 건 좋지만, 최근에는 지나치게 무리하는 듯해서 말이다.

정이 많아 스스로를 챙기기도 벅찬 상황에서 자꾸 남한테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지.’

…그 와중에 오염된 자신의 상태에 대한 건 무기력해하는 게 은연중에 느껴져서 더 안쓰럽고 말이다.

마음이 살짝 조급해졌다.

‘…이 열차 쉘터에서 털 수 있는 정보는 모조리 털어야 할 텐데.’

그래야 지금 혼자 리타이어하지 않은 노루 녀석에게 도움이 될 것 아닌가.

‘일단 기회가 되는 대로 오후역에 가봐야겠고.’

은하제는 쓰게 입을 다시며, 쪽지를 도로 접으려다가….

‘음?’

“밑에 한 줄이 더 있습니다.”

류재관의 말에 쪽지 끝을 밀어서 폈다.

…묘하게도, 황급히 갈겨써서 덧붙인 듯한 문장이 여백 없이 들어가 있었다.

마지막에 긴급하게 적어넣은 듯이.

혹시 어디서든 ‘꿈 배양기’라는 기계와 관련된 정보를 찾는다면 가능한 빠르게 오후역의 팝업 가게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앞과 다르게 말투까지 다급해져 있었다.

‘…꿈 배양기?’

백일몽 물약 제조기의 원형이 되는 기계입니다.

“…….”

“…아시는 정보입니까?”

“아니.”

은하제는 침음했다.

뜬금없는 문장이었으나, 그래서 도리어 직감적으로 알았다.

‘뭔가 알아낸 거야.’

그렇다면, 김솔음은 대체 뭘 알아낸 거지?

* * *

나는 달려가고 있다.

세광특별시에서 나와서, 만나야 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흡.”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유쾌연구소의 목표, 새롭게 발견한 사실….

꿈 배양기 속 알의 정체.

-저 꿈 배양기의 목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라는 추론을 해봤죠. 하하하!

그 새로운 세상이… ‘괴담이 없는 세상’이라면?

유쾌연구소가 괴담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내려 했고, 성공했다면?

그게 내가 온 세상이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냐.’

터무니없는 추측이다.

대체 몇 번의 비약과 연결고리가 맞아야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아닐 확률과 경우의 수도 충분히 많….

‘그런데 왜 이렇게 싸하지?’

본능적으로 깨닫는 느낌.

앞뒤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감각.

동기와 결과가 모두 퍼즐처럼 맞물려서, 거의 영감처럼 머릿속을 번뜩인다.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부정하면서도, 이 추론을 근거로 지금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상하잖아.’

이곳이 바로 괴담위키 속 세상이었다.

어둠탐사기록.

‘괴담이 없는 세상에서, 괴담 세상을 만든 거라고.’

그런데 괴담 세상에서 괴담이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면… 선후가 안 맞지 않은가.

[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그 케케묵었지만 지혜로운 비유를 꺼낼 때가 됐군요!]

미치겠다.

누구든 붙잡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조리 털어놓고 답을 구하고 싶다.

추론해 버린 이상 확인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기에, 내 다리는 목적지를 향해서 간다.

…회피하고 싶었으나, 도저히 회피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로.

“…….”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내가 있는 곳은 지산마을.

그 버려진 시골 마을의 외곽에 있는 우물 앞에는 누군가 서 있다.

“요원님.”

최 요원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가라앉은 눈으로 우물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 사람은, 내 기척을 인지하고 이쪽을 돌아본 채로 서 있었다.

내가 다가올 때까지 한참을 주시하며.

나는 숨을 삼켰다.

…최 요원은 홀로 세광특별시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 알았다.

같은 팀의 동료 요원이 죽은 채로 그 멸형급 재난 안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한 게, 나였으니까.

“……너.”

최 요원은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걸 편지라고 남겼….”

“죄송합니다.”

나는 일단 고개를 숙였다.

“사과하라고 한 게 아니라….”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해결하겠….”

“솔음아.”

“…….”

“네가 사과할 건, 지금 쪽지 하나만 남겨놓고 너 혼자 해결하겠답시고 안 나온 거야. 알아?”

반박할 말이 무수히 떠올랐으나 나는 다급히 말했다.

“예. 죄송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방금 특별시 안에서 뭔가 발견했습니다. 지금 꼭 확인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이 판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수치심과 죄책감이 올라오려다가도 다급함에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결국 말을 꺼냈다.

“꿈 배양기… 어디에 있습니까?”

“…….”

“요원님도 보셨던, 맨홀 뚜껑으로 감춰진 지하 연구소 말입니다. 꿈 배양실이요.”

상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 사람은 분명 내가 사라진 이후에 그 배양실에 어떤 조치를 하거나 관리국에 넘겼을 것이다.

그 행방을 알아내야 한다.

“그건 또 왜.”

“당장 필요합니다. 저,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렸을 때….”

“어디에 쓸 건데?”

“…….”

최 요원이 얼굴을 마른세수한다.

“후우, 이게 뭔….”

“…….”

나는 침을 삼켰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포도야.”

최 요원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좀 가서 쉬어.”

“……예?”

“어디에 쓸 건지 말하면 내가 딱 하고 올게. 이럴 때 바통 터치해야지.”

잠깐, 잠깐만.

“꿈 배양기라고 했지? 그거 어디에 쓰고 싶은데?”

나는 우선 숨을 고른 후,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열차 쉘터 한 구석에 나사처럼 말려 숨겨져 있던 편지.

“…그건?”

“특별시에서 찾아낸 겁니다.”

오~ 이걸 알아봤어?

그럼 이 꿀팁을 읽을 자격이 있지ㅋㅋ

그렇게 시작하는 이야기.

‘이강헌’이 남겨놓은, 숨겨진 편지였다.

“…….”

“그 편지, 혹시 누가 쓴 건지 알아보시겠습니까?”

최 요원의 눈이 종이 위를 빠르게 훑듯이 움직인다. 표정 없이 모든 내용을 탐독한 그가 눈을 떼고 나를 본다.

그리고.

“모르겠는데.”

“…….”

“이강헌이라는 이름 때문에 나한테 가지고 온 거구나. 하지만 나도 진짜 이강헌이 누군지는 모르거든. 짐작도 안 가니까 써먹고 있지. 어쨌든, 네가 꿈 배양기를 왜….”

“최 요원님.”

나는 조용히 말했다.

“거짓말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

“요원님이 정말 모르신다면 ‘누가 적은 건지 알아보겠다’로 대화가 흘렀을 겁니다. 당신은 배후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니까요.”

최 요원이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처럼 화제를 바꾸는 건, 이미 배후로 짐작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

“…그 쪽지, 요원님이 적은 겁니까?”

최 요원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쪽지를 다시 들여다보며 말한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

“…몇 가지, 내가 글 남길 때 쓰는 버릇 같은 게… 잘 보이는데. 단어 선택, 말투, 자음 크기….”

쪽지를 훑어보는 눈이 빠르고 기계적이다. 스캔하듯이 의구심이 드는 맥락들을 잡아내는 시선.

“글씨체야 다른 손으로 적으면 그만이고.”

“…….”

“내 기억에는 물론 없지.”

최 요원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인지가 봉쇄된 지역에서 발견됐으니까, 내가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거야.”

그리고 쪽지를 본 상태로 접어서 자신이 챙겼다.

“잠….”

“하지만 확신은 아니다?”

그리고 날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내가 이런 내용을 알고 있다는 가정부터 이상하니까. 그리고 포도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쪽지 하나를 믿으면 되겠어?”

“…….”

“이 내용을 믿어?”

그럼 백일몽 주식회사가 베껴 간 꿈 배양기를 어떻게든 빼돌려

그걸 아직 남아있는 유쾌연구소 시설에 설치해 봐

“무슨 의도로 적은 건지도 모르는 걸 시도하고 싶어?”

“요원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도를 해봐야 무슨 의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

“무작정 다 해보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기 직전까지만 가보고 싶단 겁니다.”

“직전까지?”

“예.”

나는 쪽지의 내용을 가리켰다.

“보시면, 사실 여기서 의미하는 건 그냥 꿈 배양기가 아닙니다.”

그건.

“백일몽이 베껴 간 버전을 요구하는 겁니다. 즉, 회사에 있는 물약 기계를 훔쳐 오라는 것 같은데….”

나는 침을 삼켰다.

“그 대신, 일단 원래 유쾌 연구소에 있던 것과 동일한 꿈 배양기를 세광특별시에 설치해서, 한번 정상 작동하는 걸 관찰해 보자는 겁니다.”

“…….”

“거기서 매커니즘을 짐작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혹시라도 무언가 보여서 성공하면.

“이 쪽지가 정말 힌트라면, 안에 갇힌 사람들이라도 빼내거나… 초자연 재난이 종결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

“최 요원님.”

나는 힘주어서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최소한 동행해서 이걸 해봐야겠습니다.”

최 요원은 나를 보더니, 쪽지를 다시 한번 보고, 치열한 고민에 빠진 듯이 말이 없어졌다.

작두의 손잡이를 주무르는 왼손이 멈출 때쯤.

“후우.”

최 요원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푸른 안광과 함께.

“그래. 그래서 꿈 배양기를 가져가서 시험해 보자고?”

“……! 예.”

최 요원이 우물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나는 바람에 살짝 휘날린 요원의 재킷 사이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제례용 장비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가슴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저 인간이 혼자 우물에 들어가기 전에 늦지 않았다는.

“…따라와.”

“…!”

나는 우물에서 멀어지는 최 요원을 따라 이동했다.

* * *

[이해하기 어렵군요. 노루 씨. 애초에 그 지하 연구실은 친구가 발견한 장소일 텐데, 왜 저 공무원이 생색을 내는 겁니까?]

아무래도 내가 스파이짓을 하다가 거기서 발견됐기 때문이지….

‘후우.’

“자.”

어쨌든 최 요원은 나를 어딘가로 연행해 강제 휴식을 권고하는 대신 꿈 배양실로 안내해 주었다.

그건… 놀랍게도 그 맨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만 무언가 주술적 행위로 민간이 인식하지 못하게 가려진 듯했다.

“관리국에 넘기셨을 줄 알았는데….”

“넘길 거였어. 내가 좀 조사해 보고 나서.”

최 요원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문을 연다.

“이런 건 넘기는 순간 보통 윗분들이 현장 요원 접근 금지 때리고 자기들이 통제하려고 하거든.”

“…….”

“자.”

문 안에는 금줄이 쳐진 채였다.

최 요원이 공간을 검사하고 정화해 둔 흔적이리라.

우리는 조심스럽게 금줄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마주했다.

정상 작동하는 꿈 배양기.

‘…있다.’

여전한 그 거대한 꿈결 용액 탱크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보인다. 황금빛 둥그런 계란형의 무언가.

알.

“……옮기겠습니다.”

“그래. 힘 좀 들겠는데. 으차.”

나는 기기에 연결된 전선을 하나씩 천천히 제거하고, 들어차 있던 꿈결 용액을 수집기에 뽑아낸 후, 전원이 꺼진 기계를 들어냈다.

도마뱀의 몸으로 온 덕에 무거운 것을 옮기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결국 수납이 문제여서 몸을 바꿔와야 했다.

무너진 형체의 130666으로.

“…회복된 게 아니었구나.”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우물로 돌아오는 것에는 몇 시간이 또 소요되었으나, 이번엔 그 시간 내내 최 요원은 내 탐사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었다.

청동 요원과 은하제 대리님이 열차 쉘터에 있다는 소식과, 각 역에서 내가 경험한 일들을 전부 토로하고 나니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어딘가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꿈 배양기에 관한 내 짐작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괴담이 없는 세계.

그저 이렇게 말했다.

질문 :

최 요원의 발상

“응?”

유쾌연구소의 목표 (추론) :

누구도 초자연 재난에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 해당 세상이 실제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최 요원의 의견

“…음. 듣기야 근사한데.”

최 요원이 평이하게 물었다.

“사이비도 똑같은 이야기로 사람을 꼬시거든.”

…….

“근데 포도야.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런 세상이 진짜 있을 거라고 말이야.”

…내가 거기서 와서.

단순한 추론 :

유쾌연구소에 남은 흔적을 토대로 진행

“오케이.”

최 요원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포도 요원, 혹시 길 가다가 누가 신수가 훤한데 조상님 덕이라고 말해도 말 섞으면 안 된다. 알지?”

…….

“왜 대답이 없어. 알았지?”

긍정

아무래도 내가 재난관리국 인증 사이비 회사 출신의 말이라 다른 의미로 들린 듯했다….

‘후우.’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우물에 도착해 세광특별시에 다시 진입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눈을 뜬 세광특별시의 승강장은 시간의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지하였지만, 그래서 오히려 거침없이 움직일 수 있었다.

맞은편 승강장의 유쾌연구소 시설로.

“치우겠습니다.”

다시 돌아온 다 타버린 사무실 복도.

나는 기존에 있던, 반쯤 망가진 채 간신히 작동하던 꿈 배양기를 최 요원과 함께 밀어내고 그 자리에 내가 챙겨온 기계를 넣었다.

“…연결할 거라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반쯤 망가진 기계와 동일한 배양기다. 그러니까 갑자기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바로 뽑아주십시오.”

“당연하지.”

나는 꿈 배양기에 전선과 파이프를 연결했다.

그리고 직원증을 대자….

반짝.

…기기가 작동하며, 불이 들어온다.

“…….”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옮기기 전처럼 고요히 작동 중인 꿈 배양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

어린이용 시럽.

백일몽 주식회사 물약의 원본 액체를 만드는 버튼들.

그리고 그 아래에 달린 버튼의 흔적.

단 하나.

버튼을 억지로 파내고 남은 부품 같은 것.

‘…여기가 소원권 자리라고 생각했었지.’

그리고 세광특별시를 탐사하면서 나는 이 버튼으로 만드는 물약의 이름을 알아낸 것 같다.

이번 초대 연구에

어린이용 낙원 시럽 사용

-> 내 의견!

어린이용 낙원 시럽.

낙원.

그렇다면….

‘이게… 진짜 꿈 배양기의 본 목적인 버튼인 건가?’

‘알’과 관련된 버튼 말이다.

나는 그것을 관찰하듯 들여다보았다.

버튼이 뽑혀있는 자리.

‘이 버튼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이것만 파손되었다는 건 명백히 부자연스러웠다. 누군가 뽑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게 기기의 핵심 기능이라면, 아예 쓰지 못하게 만들었기보다는 허락한 사람만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리라.

가령, 버튼을 숨겨 두고 자격 있는 사람만 찾아낼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숨겨 뒀다라.’

내가 최근에 누군가가 숨겨둔 물건을 발견한 케이스가 떠오르는데.

‘이강헌’의 쪽지 말이다.

생활공간과 가까운 곳에 숨겨진 위화감.

백일몽 물약 뚜껑을 재활용해서 만든 나사.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활용된 뚜껑은 교묘하게 나사의 자리에 숨겨져 있었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배양기의 버튼도 그런 방식으로 숨겨져 있었을 수도 있나.’

생각도 못 한 장소에, 아무렇지 않게.

…아무래도 그 지하의 꿈 배양실을 다시 뒤져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유쾌연구소와 관련된 시설을 다 뒤져봐야겠고.

‘혹시 어둠탐사기록에서 힌트를 얻을 만한 게 있나?’

꿈 배양실 관련해서 말이다.

나는 최 요원에게 해당 질문을 하기 앞서서,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폭넓은 정보원을 활용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다.

‘동그란 부품….’

그리고 그 내용을 살피….

…….

[친구?]

동그란 부품.

숨겨진 활용법.

생각지 못한 장소에.

아무렇지 않게.

“…….”

나는 스마트폰을 뒤집었다.

그 위에 동그라미가 있다.

내게 위키를 띄워주던 장비.

그립톡.

“포도야?”

나는 꿈 배양기를 보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어서, 떨리는 손으로 그립톡을 분리했다.

툭.

떨어진 그립톡에서 접착 부분과 장식 파트를 분리한다. 조립형인 그 파트는 양옆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립톡의 일부를 꿈 배양기의 뽑힌 버튼으로 가져다 댔다.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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