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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14화


떨어진다.

알고 있었다.

내가 백일몽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눈을 뜬 후, 나는 원래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표백되듯 잊어 왔다.

김솔음으로서의 삶에 대해서.

가족도 친구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 감정과 소중함은 기억하지만, 구체적이고 세밀한 것들이 점점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악의 저울에, 사랑하는 것이 나타나야 하는 자리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까.

오로지 집에 대한 느낌만 남았다.

무섭지 않은 곳, 일상적인 곳, 원래 내가 오롯이 나로 존재하던 곳.

그곳에 돌아가고 싶다는 내 마음만이 남았으며, 그 강렬한 집착은 결국 하나로 수렴된 것이다.

그립톡.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눈앞에 보이는 방법.

후보인의 심장에 윤리적, 도덕적 판단에 우선하는 심리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음을 악의 저울을 통해 판명했습니다.

그립톡이 담긴 오른쪽 저울이 바닥에 떨어진다.

내 가슴에서 적출된 은빛 심장이 담겨 있던 왼쪽 저울이 급격히 위로 치솟는다.

이는 현 상황상 계도가 불가능한 악인으로, 재심사를 영구히 종료하며

심장이 거대한 저울 밖으로 튕겨 나간다.

인도적 처형을 선고….

“잠깐만!!”

줄에서 빠져나온 누군가가 재판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저울에서 튕겨 나가는 장기에 꽂힌 칼손잡이를 허공에서 잡아챘다.

“…!”

심장을 도로 저울에 올린 그가 소리친다.

“저도 요원입니다!”

청동 요원이다.

202■관리 370616번 선별 후보인….

스피커가 말을 멈추었다.

재판장 앞에 선 류재관의 죽은 얼굴이 드러난다.

사망자.

후보인 자격 요건의 흠결을 확인했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은 후보인이 될 자격이 없다.

202■관리 370616번 류재관의 선별 후보인 자격을 박탈합니다. 즉시 재판소를 떠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청동 요원이 저울을 가라앉은 눈으로 보다가 스피커로 고개를 돌렸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요원입니다. 이 선별 과정에 관여할 자격이 있습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아무리 재판을 지켜봐서 뭔가 캐치했다고 해도 너무 과하다. 아니, 혹시 이걸 노리고 들어온 건가? 본인은 심사 대상자가 아니기에 안전할 거라고?

‘그러지 않을 텐데.’

도리어 괴담에 종속될 확률만 높아 보인다! 차라리 지금 나가면 된다. 은하제 대리님과 청동 요원 모두….

“제 요원명은 청….”

“이분은 세광특별시 소속은 아닙니다. 서울시 본부의 요원이십니다.”

나는 끼어들었다.

“선별 과정에 관여할 자격이 없습니다. 관할이 다르니까….”

“아뇨, 있습니다.”

“…!”

청동 요원이 스피커를 바라보았다.

이미 생각을 마친 눈이다.

“세광특별시 지부에서 서울 본부에 지원을 요청했지 않습니까.”

“…!!”

젠장.

“저는 그 요청에 답변받고 온 것이기에, 이 재판에 관여할 자격이 있습니다.”

“요원님,”

나는 다급히 청동 요원을 붙들었다.

“그런 식으로는 이 초자연 재난에 종속될지도 모릅니다, 그만하십….”

“아, 그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최 요원!

“저희 서울 현무 1팀 요원들입니다.”

그리고 나와 청동 요원에게 어깨동무했다.

“뭐 하는 겁니까.”

“조용히 해.”

최 요원이 저울에 놓인 내 심장을 회수하고 싶은 듯이 훑었으나 곧 위험성을 가늠하듯 시선을 떼고 말한다.

“…거기 스피커로 말하는 선별관 요원님, 나와서 저희랑 이야기 좀 하죠! 악의 저울이 오용되는 것 같아서 말이죠. 원래도 뭐 썩 좋은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했긴 한데.”

최 요원이 씩 웃는다.

“이런 비상시에 사람 극한으로 몰아가면서 추궁하면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아니, 고문으로 얻은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거 모르시나?”

스피커는 무서울 만큼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 요원은 더 목청껏 외쳤다.

“지금 은심장이 나왔는데도 부적합이 떴잖습니까. 저희가 초자연 재난 볼 때도 이 정도면 이례적 사태로 봅니다!”

“예.”

맞장구치는 청동 요원의 목덜미에선 식은땀 대신 죽은 이의 살갗 색이 보인다.

“그러니까 관계자로서 건의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민의 구조 자격을 판단하는 건 안 됩니다.”

왜 저러는 거지?

어차피 나는 인도적 처형으로 죽어도 세광특별시 바깥으로 나갈 확률이 높다. 다시 준비해서 진입하면 된다. 본인들의 처지를 더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혹시 내가 이 괴담에서 ‘영구히’ 죽을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건가? 저 유리 아래 시체 더미처럼 말이다.

‘안 그럴 것 같은데.’

괴담 파훼법을 떠올려서 시도하시는 것 같은데, 내 재판 이후에 하시는 게 차라리 안전할 것 같단 말이다.

나는 아주 조용히 요원들에게만 들리도록 낮게 말했다.

“저기, 정말 괜찮습니다.”

“입 다물라고.”

“정말입니다. 원래 그냥 저울을 부술 생각이었거든요.”

“……!”

한낮역 주택가에 그냥 불을 지른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판단 방법이 없어지면 종결할 수밖에 없잖아.’

그리고 쉽게 부서지진 않을 테니, 온갖 오염을 꺼내 가며 깽판을 칠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분명 죽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 봤고 말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 예상하고 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괜찮….”

“아뇨. 당신은 안 괜찮습니다.”

청동 요원이 말을 끊었다.

“당신이야말로 이 초자연 재난에 종속될 확률이 높습니다.”

뭐라고?

“정신적으로 몰리고 공황에 빠진 자만큼 초자연 재난에 그대로 잡아먹히기 쉬운 조건도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

“저는 공황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포도 요원.”

청동 요원이 눈짓으로 저울 위에 놓인 그립톡을 본다.

“저게 왜 소중한 겁니까?”

왜?

말해도 되는 건가?

순간 경계심이 들었으나, 이미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최 요원이 옆에 있다는 걸 깨닫고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다.

어차피 저 사람이 다 공유하겠지.

그러니까….

“…집에 돌아갈 방법입니다.”

“…….”

“아니, 그 방법의 상징 같은 겁니다.”

말할수록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서 애써 다듬었다.

“제가 새롭게 알아낸 거라서, 또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줄 몰랐기 때문에….”

“…….”

“사실 집에 대해서 이전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집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신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 점이 이상하게 보일….”

“아니요.”

“…!”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게 아니라….”

청동 요원이 묻는다.

“그럼 왜 돌아가고 싶은 집이 아니라 그립톡이 저 위에 올라온 겁니까?”

……!

그건,

“당신의 기억이 희미하다고 해도 분명 집이라고 느껴질 상징들이 있었을 겁니다. 아까 보시지 않았습니까. 최 요원님의 저울에 올라간 것 말입니다.”

현무 1팀 대기실의 풍경.

사실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그게 무엇을 내포하는 의미인지는 최 요원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포도 요원은 지금, 집이 아니라 집에 갈 방법만이 저 위에 나타났습니다.”

…….

그립톡.

“앞뒤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머릿속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다.

‘잠깐만.’

나는 저울 속 그립톡을 다시 보았다.

그래. ‘집’보다 ‘집에 돌아갈 수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상하다….

저울이 잘못된 거 아니야?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치솟아 올랐으나, 이번에는 편하게 그 의문을 따라가는 대신 억지로 누르고 생각하기 힘겨운 질문을 꺼내봤다.

‘그럼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걸까?’

가령… 어둠탐사기록 그 자체?

‘아냐.’

그랬다면 저울이 엎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연구원들을 떠올린다.

그들과 내가 어둠을 보는 시각이 비슷하다는 것에 기이한 기분이 들었던 건, 나는 현실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걸 흥미롭게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도치되진 않았어.’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난 그냥 집에 갈 수 있다는 상황 자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달콤했기 때문에.

집에 갈 방법이 눈앞에 보이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꿈 배양기에서 진짜 소원권 원본을 뽑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 순간이 나를 붙잡은 것이다.

‘아.’

꿈 배양기에 물약 버튼이 조립될 때의 충격.

계산과 카타르시스.

엄청난 갈망감.

…….

혹시 지금의 나는….

‘그 강렬한 인상에… 과도하게 사로잡혀 있는 건가?’

“…….”

“포도 요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일행들의 표정.

그 복잡한 생각들.

이 초자연 재난과 내 상태에 대한 걱정, 저 뒤로 줄을 선 장기실종자들에 대한 우려, 긴장감….

긴장감.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땀에 젖어 있고, 손이 약간 떨린다.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힘을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흠. 숨을 크게 들이켜고 천천히 내쉬어볼까요? 코로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면 됩니다. 간단한 진정법이지요. 자….]

나는 그렇게 했다.

[좋습니다, 친구!]

심호흡.

…….

숨을 따라 어깨와 가슴, 사지 말단까지 맥박치던 것이 가라앉는다.

나는 손을 내려트렸다.

머리가 잠깐 핑 도는 듯하다가, 맑게 가라앉는다.

‘그래.’

…내 상태가 좀 이상했던 건가.

그 꿈 배양기의 버튼 정체를 안 이후로, 완전히 눈이 뒤집혀서 그 외에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온 것 같다.

‘하는 줄 알았는데.’

못 했다.

다잡아야 한다.

‘내가 지금 정상 판단을 못 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어떻게든 저울이나 부수고 나가고 싶다는 충동에 정신을 맡기지 않으려 애썼다.

‘이제부터는… 계속 점검하면서 판단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

“좀 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청동 요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에 안도감이 살짝 깃드는 것 같다.

그 순간.

거대한 회색 천칭 저울 위에 올라간 작은 그립톡이 일렁이며, 깜박인다.

“……!”

꿈결 배양기, 소원권, 팝업스토어로 추측되는 추상적 전경, 스마트폰 화면, 저울 속 이미지가 뒤흔들리다가….

고정되지 않고 계속 바뀐다.

“보세요, 실시간으로 변하잖습니까! 여기가 재난관리국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현장 요원 말 좀 들어주라니까?”

최 요원이 목청이 터지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작두와 철뱃지를 꺼내 아예 흔들고 있다.

“옛다! 요원 신분증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피커는 묵묵부답이었다.

“확인해 보시….”

그 순간.

확인 불가

“…!”

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가확인불

스피커의 목소리가 뒤틀린다. 왜곡된다. 이상한 소리가 재판장을 메운다.

“…보류 나왔을 때랑 비슷한데.”

“아무래도 요원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러게.”

두 사람이 내 양옆에 서서 긴장한 눈으로 스피커를 올려다본다.

증거물을 제출하세요증거물제출창구확인자부재요원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인사망확

뚝.

현재 세광특별시 ■■■■국 지부에 관계자의 신원 증거물을 확인할 인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원들의 어깨가 굳는다.

관계자 승인 요청을 불허….

“그런데 관계자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뒤에서 구둣발로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 요원은 아니고 그냥 한마디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은하제 대리님의 목소리.

“이게 어쨌든 재판은 맞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최소한 법원에서 재판 형태로 진행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

맞다.

-음. 그렇다면 전진합시다. 이것은 심판, 아니, 재판을 받기 위한 한 걸음이라!

브라운의 말을 떠올린다.

머리가 더 명료해진다.

“그렇다면 항소도 가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변호사도 선임하고, 증인도 부를 수 있어야 하고요.”

정답이다.

“노루가 보통 이런 식으로 파훼하던데… 뭐, 이건 내가 너보다 잘 아는 분야라서 말해봤다.”

날 보고 웃은 은하제 대리가 스피커를 본다.

“절차상 맞지 않습니까?”

202■관리 370617번 선별 후보인….

“예예. 나 죽은 거 맞습니다. 뭐 소개를 좀 더 해봐요? 기자였습니다. 행선일보 아시죠? 제가 거기 출신입니다.”

은하제 대리가 내 어깨를 잡으며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대충 이 사람 증인이라고 칩시다.”

대리님….

“이 후보인은 특수 사례니까 이렇게 약식으로 처리하지 말고, 제대로 된 공판을 요구한다 이 말입니다. 좀 제대로 된 정식 제판 좀 합시다.”

목소리가 재판장을 울린다.

“댁들이 관계자 확인 안 된다고 강짜 부리니까 뭐, 그럼 그냥 여기 사람들이 이 사람 변호인 겸 증인이라고 생각해 주십쇼.”

…….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멈췄다.

우리 뒤에 서 있을, 이 저울 재판소의 장기 실종자들도 이상할 정도로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그리고 침묵으로 멈춘 재판장에서, 마침내 선고가 울린다.

확인했습니다.

“…!”

저울의 변동 및 증언을 참작해,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 김솔음의 선별 작업을 취소하고 정식 재판으로 회부합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재판장이 어지럽게 뒤틀리고, 배경이 일렁이며 오로지 회색 저울만이 선명히 남아 있다….

눈을 깜박인 순간.

사방에 어둠이 깔렸다.

“…!”

나는 암흑 속에 홀로 서 있었다.

그리고.

투투투투툭.

핀 조명 멀리서부터 하나씩 떨어져 내린다.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아까 전 재판장과 유사하지만, 양옆으로 사람이 앉는 공간이 있다.

수십 개의 공석들에 의미 없는 듯이 조명이 비추었으나, 내 인근의 자리에는 양쪽으로 일행이 앉아 있다.

굳은 안색으로 서로 시선을 주고 받는 요원들과 대리님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툭.

조명이 내게 떨어진다.

그리고 저 맞은편에는 여전히 거대한 저울이 위치해 있고, 내게서 적출된 심장이 올라가 있다.

스피커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허공에 울린다.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 김솔음의 정식 재판을 개정하겠습니다.

“됐다.”

하지만 여기서 은하제 대리님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진다.

배심원들은 모두 입정해 주십시오.

“……!!”

수십 개의 빈자리에서 어두운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요원복을 입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형체가 일그러지고 도저히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기이한 몰골이 된 자들, 상반신이 아예 없거나 불에 탔거나 형용할 수 없는 몰골이 된 자들.

“이 자식들… 배심원제를 쓰네.”

후보인, 앞으로 나오세요.

죽은 세광특별시의 요원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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