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16화
쿵. 쿵.
심장이 뛰는 소리가 거세게 머릿속을 울린다.
나는 심장께의 문신에 손을 올렸다.
그곳에 욱여넣어 정리한 오염.
내게서 분리한 괴담의 산물들을.
노루가 빈껍데기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짜가 속에 있다고? 혹시 오염을 말하는….
배심원석에서 그렇게 항의하는 듯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그리고 곧 몇몇 배심원석에 불이 꺼졌다.
계속해서 소란을 일으킬 시, 퇴정 조치하겠습니다.
“…….”
이를 악무는 소리가 짧게 들리는 것 같더니, 배심원석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1번 배심원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요원.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
김솔음.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1번 배심원의 요청에 따라, 추가 심문을 진행하겠습니다.
나와서 답변하세요.
나와서?
“욱.”
가슴팍에서부터 찢어지듯 무언가 튀어나와 이목구비를 짓누르는 감각이 선명히 격통 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이윽고….
“선생님을 불렀나요?”
[이쪽]
내 가 대 답 해 ?
-이건 무슨 일이죠? 세상에, 카메라부터 불러주시겠어요? 심문을 받는 건 분명 자극적이라 시청자분들이 좋아하실 텐데!
[이곳은 학교가 아니나, 어딘지 눈에 익은 옷들이 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염들.
내 오염들이 튀어나와서 답변하기 시작했다. 틀어막을 수가 없다 문신에서 끄집어내진 것은 구토처럼 내 위를 뒤덮고 역류한다 걷잡을 수 없이 뒤덮는다 제멋대로…!
‘집어넣어!’
문신에 도로 욱여넣으려고 했으나 드러난 진실은 재판장 앞에서 가려지지 않는다. 안…!
‘무동기 살인’ 저울 추에 입각하여 질의합니다.
선별 후보인은 무고한 제3자의 생명을 자신의 의사로 해친 적이 있습니까?
[이쪽]
-단언컨대 없지요! 무고한 시청자의 심장을 설레게 만드는 토크쇼의 제작에 영광스럽게도 참여한 적은 있지만요!
룩키마트에 어서오세요! 계산을 도와드릴까요?
아 니
“그런 어려운 어휘는 원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적이 있나요?’ 이 문장을 사용해요!”
이성도 감성도 없는 답변, 인간이 아닌 대답, 사리에 맞지 않는 집착적인 혼잣말이 쏟아진다. 나나는 저게 아니지만, 그 안에도 해친 적이 있다는 답변은 없다다행이다안도감대신토할 것 같다
배심원석이 조용하다 오로지 이 단상 위에서 오염들이 자기 멋대로 순서도 없이 제멋대로 떠드는 소리가 거대한 공간을 울린…
진술받았습니다.
됐다.
됐다 이제 끝이다!
이어서 질의합니다.
닥쳐!
다….
선별 후보인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제3자의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당연히 맹세….
[불가능하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게임이라는 것은 본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해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우리는 다른 학생의 희생을 유도해 살아남기도 한다.]
그건.
-관객… 아니, 배심원 여러분, ‘무고한 제3자’라는 표현, 과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어디 형법서에서는 나올 수 있는 표현이지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떨까요?
닥쳐.
-오늘 내가 살기 위해 한 행동이 예기치 못하게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게 인생 아닐까요?
아니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오염, 그러니까, 괴담에서 비롯된 왜곡된 생각이다.
-타인의 고난이 안타까워도 당신이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든 자기 행동의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나쁜 일이 벌어진다고 꼭 그 사람 책임이 아니잖아요.
-그러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제3자의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 누가 이런 포괄적이고 의미 없는 맹세를 할 수 있겠어요?
그건, 그건….
무 서 우 면
못 할 수 도
“…….”
장 담
못 해
목소리가 풀이 죽은 듯이 울린다.
어린아이를 위한 유원지 마스코트의 편안한 감정 표출.
확신하지 못하는 소리, 체념하는 말투, 솔직한 표현….
어딘가 친숙하게 들리는 그 감정.
-극한 상황에서 삶은 곡예입니다. 매 순간 무사히 멋진 퍼포먼스를 해낼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반복이죠. 너무 멀리 보거나 너무 과하게 책임지려고 하긴 어려운 거예요.
-프로그램이 살아남으려면 더 짜릿하고 재밌고 자극적이어야 하니까요.
살아남으려면…….
-우리가 좀 이기적이면 안 되는 걸까요? 매력적인 쇼가 되려면 자기중심적일 필요도 있기 마련인데.
“…….”
나는 내 입을 빌려 떠드는 오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내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언제부터였지?
나는 더 이상 괴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을 보며 끓어오르는 짜증이나 울분을 표출하지 않게 됐다.
내가 살아야 하니 트롤짓 하는 사람들은 별수 없지만 죽게 놔두고, 구할 수 있는 사람만이라도 구하자는 식의 내 위주의 판단도 드물어졌다.
선동하거나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만나도, 약간의 죄책감 속에서도 감사하다고 되뇌며 환호하지도 않게 되었다.
괴담에서 분위기를 휘어잡으려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거나 겁을 주는 것도, 그 사람들이 악인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안 하게 됐다.
어차피 다 같이 살아 나가는 일이니 협조 좀 부탁드린다고 속으로만 비명을 지르면서 했던 모든 일들이.
없어졌다.
“…….”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람의 손이 보였다.
내가 130666의, 곤죽의 상태일 때 그토록 원했던 원래의 내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전의 김솔음일까?
나는 사람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다.
더없이 매끄럽고, 사람다운 결정만 하려고 노력하며 지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나인가?
배심원석에서 은하제 대리님과 청동 요원님은 각자 완전히 다른 주장을 했다.
개인의 경험, 개인의 이기심, 개인의 돌출된 부분들에 기반한 판단들.
나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오염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괴담과 겹치는’ 내 유별난 특성들을 모조리 오염으로 치부한 것이다.
무서우니까.
오염의 영향이라면, 사람이 아닌 무언가로 붕괴한 몸에 이어 정신도 붕괴한 그 상황으로 돌아갈 것 같으니까.
그래서 문신에 쑤셔 넣은 오염에 그것까지 포함시켜 틀어막아 놓은 것이다.
두려웠으니까.
…….
처음 여우상담실에서 치료를 받았던 날, 브라운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난 지금의 내가 더 편하고 좋다.
-내 판단 기준이 갑자기 종이 뒤집히듯이 변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나는 오염이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라 두려워했다.
그래서 오염 자체를 잘라내는 것에 급급했던 건데, 그게 역으로 나를 잘라내는 꼴이 됐다면.
“…….”
나는 손을 들었다.
“……1번 배심원님께 발언하고 싶습니다.”
허가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 요원을 보았다.
“배심원님의 말이 맞습니다.”
-자신의 그릇된 욕망, 그릇된 생각, 극단적 감정, 비정상적인 모든 판단을, 자기 안에서 분리하고 격리한 다른 인격들에게 넘겼습니다.
“제 안에 있는, 썩 보기 좋지 않은 욕망, 생각, 극단적 감정, 비정상적인 판단….”
나는 말했다.
“전부 제가 가진 게 맞습니다.”
오염은 터져 나온 그대로였다.
“직전에 제가 했던 발언 중 몇 가지는 충동적이고 부적절한 발언이겠지만….”
심호흡한다.
“…한 번쯤 생각해 본 말이기도 합니다.”
한빛 도서관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책을 구성하는 모든 페이지가 나 자신인 것을.
우주 쇼핑몰에서 들었던 조언이 떠오른다.
내 안의 오염을 파괴하지 말라는 그 충고를.
‘그래서 문신을 골랐던 거였지.’
나는 가슴팍의 문양에 손을 올리며, 이 달빛문신의 설명 문구를 떠올렸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
가장 원초적이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마음에 수많은 정체성과 번뇌가 있으면 하나로 모아 다스리기 어려운 법.
각각 색인표를 달아 접합 부위를 주자.
언제든 원할 때 정리하고 짜맞출 수 있도록.
접합 부위.
정리하고 짜맞추는 것.
욱여넣고 자물쇠를 달아놓는 게 아니라, 색인을 달고 정리한다.
“…….”
나는 문신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원형의 띠로 구성된 그 문신이, 가운데 축을 따라 회전하고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달빛타투샵에서 커버 타투를 말린 이유를 알 것이다.
나는 이 타투의 기능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인정하겠습니다.”
정리된 오염이 회전한다.
새겨놓은 글귀, 쑤셔 넣어둔 오염들이 다시 재정립된다.
정말 내 것이 아니라 감염 수준의 이상한 정체성은 저 외각으로, 나머지는 심장 가까이로.
원래 내 것이었던 감정과 판단들이, 오염과 만나 다르게 발현한 변화들을 더 중앙으로.
거북한 느낌이 부딪힌다. 불안함, 이기심, 충동, 공격성, 파괴욕, 기만 심리, 연기, 우월 의식, 겁쟁이, 탐구욕, 설렘…
극단적이고 뾰족한 감정들이 안에서 부딪히고 생생히 몸에 들어온다.
하지만 곧 친숙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원래 내 것이었기에.
“…….”
나는 손을 뗐다.
터져 나왔던 오염들의 충동성과 나약함, 돌출된 특이함들은 내 머릿속에 여전히 있다.
하지만 괜찮았다.
원래 거기 있던 거니까.
“그 모든 게 제가 맞습니다.”
…….
1번 배심원, 발언하세요.
1번 배심원은 다시 손을 들고 나를 보고 있었다.
선별 후보인의 진술 타당성을 확인했습니다.
저자를 악의 저울에 달아볼 수 있는 온전한 하나의 상태로 인정합니다.
그가 미소를 짓는다.
이제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배심원의 얼굴 윤곽이, 조명에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그건….
그의 심장을 다시 추출해, 저울에 다는 것을 건의합니다.
내 얼굴이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 포도 요원.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
악의 저울에 심장을 다시 올리세요.
“…….”
선별 후보인 김솔음.
“예,”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간신히 1번 배심원에게서 눈을 뗀 후, 얼른 저울 위에 있는 내 은빛 심장을 회수했다.
그것을 가슴팍에 도로 넣었다가….
다시 칼집을 넣어, 갈라서 꺼냈다.
문신 위로.
“…….”
이번에 찍혀 나온 심장은 아까처럼 색이 가볍지 않았다.
은빛이긴 한데, 무언가 묵직한 질감이 있는 것 같다.
‘전보다 무거워 보이는데.’
하지만 나는 저울 위에 그것을 올렸다.
‘무동기 살인’ 추가 올라간 저울 반대편이 무게로 출렁인다.
‘!’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참았다.
거대한 회색 천칭 저울은 흔들거리며 양옆으로 움직이다가….
이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
죄악의 추가, 무겁게 아래로 떨어졌다.
통과.
내 심장은 저울 위에 올라가, 온건히 허공에 떠 있었다.
아까보다 낮았지만, 분명하고 확실하게.
202■관리 370614번 선별 후보인은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규정에 의거해 징발 대상자가 아닌 시민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배심원석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들이 희미해진다.
또한 현재 세광특별시 지부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후보인 진술의 타당성을 인정하여, 구조 및 선별 업무의 공식적인 중단을 선언합니다.
탕탕.
의사봉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재판장의 모든 핀 조명이 사라졌다.
그리고 공간 전체에 어둠도 사라진다.
하얀 빈 공간.
“포도 요원!”
나는 배심원석에서 뛰어 내려오는 일행들을 보았다.
[오, 이제 이 재판장에서도 쇼가 끝났나 보군요. 모두 주어진 자리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그러게.
나는 점점 희미해지는 재판장을 보았다.
배심원석의 요원들은 하나씩 자리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죽은 요원들의 작은 원념이나 그들을 흉내낸 무언가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 괴담에서 벗어나 평온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포도야, 회수!”
아.
나는 저울에서 내 심장을 꺼내서 다시 가슴팍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악의 저울 밑에서 작은 움직임을 보았다.
“……?”
오방색으로 물든 실.
그건 스르륵 말려들어, 배심원석 끝에서 내려온 최 요원의 품으로 말려들었다.
잠깐만.
‘저 인간, 여차하면 저울 눈금을 조작하려고 했던 건가?’
자기가 무슨 횟감 사러 온 사람한테 저울 사기 치는 비양심 생선 가게 사장도 아니고 저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기가 막혔으나 동시에 약간 웃음이 났다.
…고마웠다.
하지만 동시에, 최 요원도 나처럼 1번 배심원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요원님.”
나는 다가가서 작게 속삭였다.
“혹시 1번 배심원님의 정체를 눈치채서 계속 그쪽을 보고 계셨던 겁니까?”
“……정체?”
“…포도 요원, 말입니다.”
아무래도 내 요원으로서의 자아도 배심원으로 인정받아서 저기 앉게 된 것 아닐까.
자기 자신을 심문하는 건 이런 류의 괴담에서는 또 클리셰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최 요원의 얼굴이 굳었다.
“요원님?”
“…포도한테는, 포도 얼굴로 보였어?”
그리고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로 웃는다.
“나한테는 내 얼굴로 보였는데 말이야.”
“……!”
나는 당장 고개를 돌렸다.
1번 배심원석.
그곳에 앉은 자는 가까이서 나를 보고 있었다.
포도 요원의 얼굴로.
“…누구십니까?”
입이 열린다.
이곳에 남은 투영입니다.
다음 순간.
재판장이 완전히 날아갔다.
나는 하얗게 타오르며 사라지는 의식 속에서, 1번 배심원석에 앉아있던 포도 요원의 얼굴과 옷차림이 어느새 다른 것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둔갑해 있다가 정체를 들킨 것이 본 모습을 보이듯.
…1번 배심원석에서는,
호유원의 얼굴이 미소 짓고 있었다.
* * *
나는 눈을 떴다.
여우상담실의 아늑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
‘나온 거라고?’
죽지 않고 세광특별시 밖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수한 궁금증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가장 큰 궁금증에 해당하는 자가 눈앞에 있다.
“노루님?”
“호유원.”
나는 당장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금 특별시 아침역에서 내가 본…….”
…….
잠깐만.
‘어?’
나는 손을 들어서 목을 잡았다.
가죽의 느낌, 지퍼의 느낌.
130666의 보안복.
그런데….
“아.”
…말을 할 수 있다.
“……!!”
나는 다급히 손을 내려서 확인했다.
가죽 장갑을 낀 130666의 손.
반대편 손을 들어 떨리는 채로 그 지퍼를 내려, 검은 장갑을 벗겨냈다….
사람의 손이 보였다.
“…….”
나는 머리를 잡고, 방독면을 벗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거울 속에서 김솔음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