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2화
사라진 매뉴얼 담당자.
사라진 내 오천만 원.
그리고 사라진 선물용 혈욕조 (예정).
“…….”
더 문제는, 지금 내 가방 주머니에 선물을 요구한 당사자인 브라운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다 듣고 있겠네 X벌….’
집에 두고 다니기엔 여러모로 찝찝하고, 언제 또 괴담에 진입할지 모르니까 챙겨 다니던 건데, 오히려 역효과가 난 느낌이다.
이건 마치… 크리스마스 당일 조카에게 선물을 약속했는데 백화점에 가니 진열대에 품절 표시가 붙어 있는 걸 보는 기분이다.
근데 그 조카가 애나벨인 거지.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담당자가, 이 세계관에서 일주일간 예고 없이 무단결근이라….’
뻔하다.
이건 괴담에 휘말려서 실종이라는 뜻이다.
“그냥 느긋하게 기다려. 그게 정신 건강에 좋은 일이야.”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외계인 상점에서 혈욕조를 누가 먼저 사가는 날엔 제가 브라운과 ‘약속’한 걸 지키지 못하는 게 되는데요!
A등급 어둠을 손가락 튕기기 한 번에 태워 죽인 봉제 인형과 수틀리고 싶지 않습니다…!
‘죽겠네 진짜.’
은하제 대리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자기 자리로 복귀했고, 나는 자리에 앉아 침묵 속에서 고뇌했다.
어떻게 할까.
마음 졸이며 2개월을 기다리다가 중간에 욕조가 팔리면 머리 박고 사과를 할까.
어떻게든 대출을 땡겨볼까.
아니면…….
‘…일단, 왜 실종된 건지 알아보긴 할까.’
꼭 ‘난 최선을 다했다’라는 식의 면피로만 삼으려는 것만은 아니다. 혹시 내가 큰 어려움이나 위험 없이 담당자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어둠탐사기록>은 여전히 내 머릿속과 스마트폰 속에 있었다.
‘확인만 해보자.’
마침 테마파크 이후로 일이 꽤 한가해진 상황. 게다가 어제 괴담 하나 탐사에 서류도 끝냈다.
오늘은 대놓고 회사 밖으로 탈주하지 않는 선에선 여유롭게 딴짓 좀 해도 된다는 뜻이다.
‘상사들도 사무실에 들락날락하는 정도야.’
물론 나는 짬 최하위니까, 점심시간 이후에 한 시간 정도만 잠깐 운신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가볼 곳은….
‘역시 담당자 자리겠지.’
* * *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물론 이 방문엔 변명거리도 만들어놨다.
-노루가 담당자 사무실이라도 한번 가보고 싶대요? 아휴… 그럼 이거 들고 한번 가 봐!
마음 약한 주임이 내게 ‘딱히 지금 줄 필요는 없지만 전달해도 그러려니 할 교육 수료증’을 대신 전달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박민성 주임님….’
사이코패스가 넘치는 괴담 세상에서 이 얼마나 따듯한 선택인가.
나는 행정지원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를 줄 직원을 찾았다. 마침 빈 매뉴얼 담당자 자리 옆 책상에 앉아 있다.
“D조 박민성 주임님 서류 가져왔습니다.”
“어? 거기 둬요.”
“예. 아, 그리고 이거….”
따분한 눈으로 날 돌아보지도 않고 PC를 두드리는 사무원에게 공손히 들고 있던 봉투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설탕이 뿌려지고 바닐라 크림이 듬뿍 채워진 노릇노릇한 도넛들이 아직 따끈한 채로 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이런 일에 역시 뇌물은 필수지.’
“저희 먹을 거 사면서 같이 좀 사 왔습니다. 드시면서 하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 아, 뭐 이런 걸 다 가져오고 그러세요.”
그러면서도 아메리카노와 도넛을 받아 드는 손길이 날렵하다. 과연 직장인.
“강 주임, 이거 돌려.”
“어? 도넛이네요?”
“저분이 사 오셨대.”
“와, 감사합니다! D조 분이세요?”
나는 행정 직원들이 도넛을 베어 물며 사무실 내의 분위기가 묘하게 티타임으로 접어드는 것을 보았다.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분위기.
낯선 사람도 부드럽게 끼기 좋을 때다. 심지어 간식제공자라면 더더욱.
나는 적당히 눈치껏 타이밍을 골라 말을 꺼냈다.
바로 매뉴얼 담당자, ‘이병진’의 빈자리를 보면서.
“저, 이병진 과장님 자리에도 그냥 커피 하나 두면 되겠습니까? 자리에 없으신 것 같은데….”
“아아, 그냥 들고 가세요. 거기 출근도 안 했어요.”
“아, 휴가시군요.”
“휴가? 에이, 실종이지.”
낚았다.
별로 안타깝지도 않다는 듯, 옆자리 직원이 툭툭 던지듯 말하면서 건너편 직원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솔직히, 이 꼴 날 줄 알긴 했어.”
“야야.”
“아 왜, 어차피 다 말 돌걸? 거기 D조 분, 신입이라고 했죠? 이름이 뭐예요?”
“김솔음입니다.”
“…! 어, 혹시 A조 될 뻔했던 그?”
“음, 감사하게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와.”
주변 어딘가에서 ‘그게 D조 신입이었구나’ 따위의 수군거림도 들렸다.
옆자리 직원은 새삼스럽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은근히 훑어보더니, 심드렁한 기색을 슬그머니 감추며 말했다.
“그럼 어차피 여기 계속 다니면서 알게 될 것 같으니까 말해주는 건데요,”
흠.
“아니, 이 회사 다니면서도 이렇게 뭣 모르고 이상한 거 줍거나 했다가 실종되는 사람이 꼭 나온다니까요?”
“예?”
나는 일부러 고민하듯이 눈을 찌푸리다 물었다.
“혹시… 저분도 그래서 못 나오시는 겁니까?”
“맞아요. 그… 뭐더라? 족봉?”
“족자요, 족자.”
맞은편 사람이 포기한 듯이 대꾸하자 옆자리 직원이 킬킬댔다.
“아, 맞아. 족자. 무슨 자기가 재물운 터지는 족자를 샀다느니… 그거 사고 로또 2등 됐다면서 은근히 자랑했거든요.”
오.
수상쩍은 족자를 사서 금전운이 트였다고 자랑하다가 실종?
‘전형적인 중고품 괴담….’
구성이 완전 클리셰잖아.
‘흠, 좋아.’
나는 빠르게 결정했다.
‘빠지자.’
괜히 돈 좀 빨리 받겠다고 끼어들었다가 시체 꼴을 못 면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와, 거참 무섭군요! 그럼 전 이만….’ 따위의 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무튼, 이대로면 그쪽은 좀 안 됐네요.”
제가요?
“야야, 뭘 그런 것까지!”
“아니 그렇잖아. 매뉴얼 개정 심사 들어간 어둠 그쪽 거 맞죠?”
예.
“그거 실종된 이 과장님 아니면 통과하기 어려울 텐데요.”
…?!
그, 그게 무슨….
“그 과장님 원래 A조랑 친했거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소위 말하는… ‘같은 라인’.”
“…!!”
라인.
사내 정치질의 근본.
어느 윗선과 친하냐에 따라 갈리는 편 가르기식 대인 관계!
그리고 실종된 담당자가 A조랑 유독 친한, 속된 말로 ‘같은 라인’ 타는 중이었던 사람이다…?
벼락 맞듯이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래서 A조 조장이 그렇게 확신 있게 말했던 건가!’
어쩐지 매뉴얼 개정 속도에 너무 자신이 있더라니!
“새로 오는 사람이 어떨지는 솔직히 미지수인데… 같은 라인이 꽂힐 확률은 낮지. 청 이사님 쪽 사람이 올걸?”
“…….”
“거긴 A조랑 사이가 썩… 뭐.”
방금 들었나?
오천만 원 증발하는 소리가.
늦게 오는 게 아니라, 아예 사라지고 있다…!
‘안 돼!’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저 담당자분이 어디서 사라지신 건지는….”
“아니 그것도 재밌는 소리가 있는데요.”
옆자리 사람이 내게 숙덕이듯 고개를 숙여 말했다.
“회사 내에서 사라졌다는 카더라가 있어요.”
“…!”
“아침에 출근하는 이 과장을 로비에서 만났다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근데 사무실로 들어오질 않은 거예요.”
“…중간에 사라지신 겁니까?”
“뭐, 사실은 모르죠. 아무도 장담 못 하잖아요. 사라지는 걸 직접 본 사람도 없는데.”
“…….”
본 사람이 없다… 라.
‘사람은 없어도, 다른 건 있을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사무실 한구석에서, CCTV의 빨간 빛이 빛나고 있었다.
* * *
CCTV.
만일 정말로 사내에서 실종됐으면, 당연히 저 기기에 기록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보통 이 정도 크기의 회사에서 쓰는 경비용 CCTV라면… 2주쯤 보관하려나.’
그렇다면 아직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오천만 원을 제때 챙기려면 실종자의 행방 파악은 시급했다.
…문제는 말이다.
‘이 회사에서 CCTV 기록을 관리하는 건… 경비팀이라고.’
그리고 경비팀은… 음.
———————=
사살 면책권 있음. (전직원 대상)
———————=
그렇다.
그래서 여러모로 안 마주치고 싶었으나….
‘어차피 입사한 이상 평생 안 보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번 기회에 정보 수집 겸해서 확인해 보자.
나는 주머니 속 브라운을 한 번 더 의식하며 1층으로 향했다.
바로 경비팀이 있는 안전관리실로.
“여기서 지하로 가면 되는 건가.”
1층 외곽에는 분리된 지하 공간으로 향하는 관계자용 문이 있었고, 거기서 조금만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이 철문이 보이는 것이다.
[안전관리실]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똑똑.
-…….
똑똑.
-들어오든가…….
“…??”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전형적인 시설사무실 같은 좁은 공간에, 중앙에 놓인 낡은 소파가 보였다.
그 위로 사람 하나가 널브러져 있었다.
낡은 군청색 유니폼을 입은 경비 직원이다.
……?
“안녕하십니까….”
나는 재빠르게 해당 사람의 유니폼 명찰을 스캔하듯 보았다.
[경비 3팀 반장 J3]
“실례합니다, 반장님. 혹시 일주일 전 CCTV 기록 확인이 가능할까요? 실종된 분이 계셔서….”
“…….”
천천히 대답이 돌아왔다.
“CCTV 보고 싶다고요….”
“예.”
“아….”
상대는 만사가 지치고 귀찮아 보인다.
자기소개도 생략한 채 낡은 소파에 늘어져 있던 3팀 반장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원래 보고 싶으면 CCTV 열람 청구서를 넣어야 하는데…….”
아.
“이 회사가 그런 걸 언제부터 신경 썼다고… 그냥 보십쇼.”
“…….”
이걸 친절하다고 해야 할지, 직무유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부탁하는 입장이니, 남은 간식부터 뇌물로 찔렀다.
“간식 겸 드시면 좋을 것 같아….”
“아, 도넛.”
기력 한 점 없던 얼굴이 반짝 밝아지더니, 냉큼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서 봉투를 낚아채 갔다.
“도넛 좋아하는데, 회사로 배달해 주는 데가 없어서요… 낮엔 밖에 못 나가서, 별로 자주 못 먹거든…….”
그러시군요.
‘의외로 그렇게 폭력적으로 보이진 않는데.’
하지만 괴담에선 ‘안 그래 보이는 데 사실 귀신임’ 클리셰도 있는 법이다.
나는 여전히 경각심을 유지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제가 이대로 CCTV실로 이동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근데요.”
뒷머리를 긁적인 직원은 고뇌하듯 도넛을 바라보며 한참 말이 없더니, 천천히 운을 뗐다.
“경비원 하나 남는데, 대동하고 보세요……. 위험할 수도 있고…….”
“아, 감사합니다.”
나는 상대가 무전기 등으로 경비원을 호출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미동도 없다.
“…?”
“…?”
“경비원분을 붙여주신다고….”
“저요…….”
상대가 스스로 가리켰다.
“그게 저라고요…….”
…….
“아… 예.”
‘엮이지 말자.’
얼른 CCTV만 보고 나가야겠다.
“일주일 전이라고 하셨죠….”
“예예.”
어쨌든 경비반장과 CCTV실로 들어가서 녹화본을 체크했다.
경비반장이라면서 기기 조작이 그리 능숙해 보이지 않아 의심이 깊어졌으나, 중요한 건 다른 거다.
“찾았다.”
담당자가 찍힌 녹화본을 찾았다.
나는 로비로 들어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중년의 남성을 확인했다.
사내망에 등록된 담당자, 이병진 과장의 얼굴과 일치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길쭉한 물건.
‘저게 족자봉인가.’
회사에 들고 올 만한 물건은 확실히 아니었다. 어딘가 오싹하다.
“잘 찾으시네요. 경비원 해도 되겠다….”
그런 무서운 말씀마십쇼.
“감사합니다. 실종되신 분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집중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실종자라구요?”
“예.”
상대가 좀 당황한 듯이 말이 없어졌다.
아무래도 아까 내가 한 말을 대충 들어서 지금 처음 인지한 것 같다.
사내에서 사람이 증발한 걸 경비팀에서 모르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이걸 놓쳤네…….”
“많이 곤란하십니까?”
“아뇨……. 제 근무 시간도 아니었고.”
“…….”
“지들 알아서 하겠죠….”
예….
명쾌한 교대근무 직장인 논리, 잘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어서 엘리베이터 CCTV까지 확인한 결과, 실종된 담당자가 내린 곳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담당자는 위층으로 올라간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하로 내려갔군요.”
이 안전관리실보다도 아래층.
[B2]
지하 2층에서 비틀거리며 내리는 모습이 CCTV에 분명히 잡혀 있었다.
…섬뜩한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왜 갑자기 행정직 직원이 홀린 듯이 지하로 내려갔다는 말인가.
‘거긴 보안관리부만 출입 권한이 있는 곳이잖아.’
심지어 보안관리부에서도 순찰만 돈다고 들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텅 빈 엘리베이터에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이제부턴 내가 CCTV 보는 것도 위험할 것 같은데.’
지금까진 가라로 대충 어떻게 봤다고 쳐도 여긴 안 될 것 같다.
괴담에서 원료를 얻는 기묘한 제약회사의 지하층.
심지어 일반 직원은 접근 권한이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장소?
‘<어둠탐사기록>에서도 무슨 나폴리탄 괴담처럼 묘사되어 있었다고!’
안 되겠다. 손 털고 일어나자.
나는 CCTV를 최대한 외면한 채 경비반장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럼 이만….”
“……화장실.”
“…?”
“그쪽이 찾는 사람이요. 지하에 안 쓰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
“안 나왔어요. 일주일 내내.”
나는 필사적으로 CCTV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경비반장은 이미 실종자가 드나든 지하 4층을 자기 임의로 훅훅 체크한 것 같았다.
“화장실, 가볼래요……?”
“저에겐 지하층 출입 권한이 없습니다.”
“전 갈 건데….”
예. 그쪽 근무지니까 그렇겠죠 뭐.
가서 실종자 찾아주시면 정말 감사…….
“같이 가죠……. 경비팀 신입이라고 하고, 뭐.”
예?!
“아니 그렇게까지 해주시진 않아도,”
“가봅시다….”
아니!!
* * *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됐을까.
‘유니폼까지 받았네.’
나는 경비팀 일반요원의 군청색 제복을 입은 채로 정비용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신이 혼미해진다.
‘설득당했다….’
-괜찮아요. 현장탐사팀은, 가끔 지원 근무 오기도 하고요…….
그건 징계 아니냐?
어쨌든 내가 지하로 들어간 게 말이 나오더라도 별 큰일로 번지진 않는다는 게 하필 인증되어 버려서 말이다.
나도 아득바득 D조에 연락해서 정식 지원 근무로 처리는 해놨으니, 징계 문제는 없을 거다….
상사들을 향한 사회생활이 빛을 발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혼미하네.’
혈욕조 하나 사겠다고 여기까지 왔다.
이 정도면 오천 못 땡겨도 브라운이 인정해 줘야 한다.
띵.
엘리베이터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지하 2층.
분명 똑같은 소리인데도 어딘가 음산하게 들렸다. 모습을 드러낸 건….
평범한 사무실이 늘어선 복도.
“…….”
왜… 지하에 사무실이 있는 거지?
‘여긴 안전 장비나 시설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조도가 살짝 어두운 사무실 복도는 아주 조용했고, 사방에 불투명한 유리문이 있었다.
사무실 A, B, C… 명패가 붙어 있다.
경비반장이 속삭였다.
“문 열지 마요….”
“예.”
그 말 안 했어도 절대로 손끝 하나 건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는 오로지 경비반장의 뒤만 보며 천천히 걸었다.
그때였다.
-노루 씨?
“…!”
-이 브라운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그런 낡은 옷까지 입다니! 정말 감동적이지만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내 친구가 이런 허드렛일을 해야 한답니까?
참 고마운 말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네가 어떻게 말을 걸고 있는 거지?’
‘착한 친구’는, 괴담 속에서만 말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나는 이미 괴담 속에 있다는 것.
“아, 도착했다.”
경비반장이 발걸음을 멈췄다.
창백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화장실 문 앞.
“문 열게요….”
“잠깐,”
하지만 내 말을 듣기도 전에 화장실 문이 열렸다.
벌컥.
불이 점멸하는 가운데, 문 너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
‘이런 미친.’
화장실은 검붉은 잉크 범벅이었다.
마치 동맥에 칼이라도 찔린 듯, 터져 나온 잉크는 마치 피처럼 화장실 거울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비명도 안 나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내 후각이 이성을 깨웠다.
‘쇠 냄새가 거의 안 나.’
저건 전부 피는 아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잉크의 냄새도 아니다. 이건….
‘…먹물?’
툭툭.
주머니에서 브라운이 나를 두드렸다.
‘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비반장이 화장실을 둘러보며 손을 뻗는다.
“만지지 마십….”
쿡.
“예…?”
조졌다.
경비반장이 검지로 잉크를 찍은 순간.
화장실에서 검붉은 액체가 파도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
나는 당장 뒤를 돌아 뛰려고 했으나, 진득한 검은 액체는 마치 수많은 손처럼 우수수 뻗어와 내 발을 집어삼켜 당겼다,
으아아악!!
‘X발, X발…!’
나는 간신히 엎어지지 않고 엎드렸다. 발버둥에 턱으로 액체가 튀어 올랐다. 욕지거리가 턱 밑까지 차올랐다.
고개를 돌려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하려던 순간, 그것의 근원이 눈에 들어왔다.
“족자!”
화장실 거울에 가운데가 난도질당한 족자가 있었다.
칼자국이 나 텅 빈 족자의 안쪽으로 피 같은 잉크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즉, 내 발도 그쪽으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는 뜻이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 잡아당기는 것마냥…… 잠깐, 살아 있다고?
피 같다고?
‘흡혈 식기…!’
나는 포크를 꺼내서 바닥에 박아 넣었다.
새하얀 은빛 포크가 부르르 떨더니, 주변의 잉크를 게걸스럽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아!”
뭔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만 한 디저트 포크가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팅.
커트러리가 튕겨 나왔다.
‘X발!’
나는 그대로, 족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허억!”
고개를 들었다.
어둡고 뿌연 시야 사이로 낡고 자글자글 무늬가 박힌 벽지가 눈에 들어온다.
낯선 곳이다.
‘…폐가?’
나는 숨을 고르며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본 건 벽지가 아니다.
부적.
다 썩은 나무로 된 모든 벽에 덕지덕지 낡아빠진 부적이 붙어 있었다.
“……!”
무겁다.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듯, 기묘한 압박감이 이 어둡고 서늘한 실내를 지배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방식으로 숨어든 쥐새끼 같은 게 된 기분.
“…….”
나는 떨리는 손아귀를 꽉 쥐었다.
그러나 잡히는 건 없었다.
‘…없어졌어.’
흡혈 식기가 사라졌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과호흡을 방지하기 위해, 천천히, 천천히, 숨을…….
“저기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거, 거기! 혹시 경찰이신가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폐가에는 나 혼자 있던 게 아니었다.
저쪽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인영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건… 아이들이었다.
‘중학생 교복.’
울먹거리는 학생들이 외쳤다.
“도와주세요! 이, 이상한 그림 같은 걸 만졌는데, 여기서 못 나가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