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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27화


김솔음의 ‘열차 쉘터 지배 대작전’이 발족한 지 며칠 후.

“아씨.”

한 열차 주민은 2번 칸에서 신경질적으로 잡지를 대충 던지는 중이었다.

폼 잡은 연예인이 표지에 있는 그것은 이미 너덜너덜했다.

‘존나 심심해.’

오늘도 무료한 날이었다.

그는 본래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대학생 졸업반이었다. 취직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고, 차라리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긴 했다.

하지만 정말 망하고 나니 그때의 일상이 미친 듯이 그리웠다.

최소한 쇼츠는 볼 수 있었으니까.

‘짜증 나네.’

그는 몸을 일으켜서 주변을 둘러보며, 그래도 자기가 이 도시의 사람 중에서는 상위 1%의 삶을 산다는 것을 실감하려 노력했다.

안락한 2번 칸.

그보다 못한 3, 4번 칸.

더 열악한 뒷 칸들.

그리고 열차 밖은 괴물들이 판치지 않는가.

‘난 승리자라고.’

이 열차에 있다 보면 나갈 방법이 생길 것이다. 이 쉘터 만든 사람이 ‘나중에 나갈 방법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었다는 정보도 들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이렇게 앞 칸에 있으니까, 그때도 우선 순위 집단 안에 들어서 안전할 것이다.

-그냥 우리보다 좀 일찍 열차를 찾은 것뿐이잖아요! 이 열차가 당신들 것도 아니면서!

참고로 그렇게 말했던 사람은 쉘터에 아직 자리가 있을 때였는데도 쫓겨났었다.

존나 진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좀 통쾌하기도 했다.

‘선점한 열차에 비비고 들어올 거면 공손해야지? 이쪽이 봐주는 거잖아.’

자신도 여기 선배가 먼저 있던 덕에 운 좋게 들어왔다는 사실을 금세 잊어버린 이 전직 ‘대학생’은 2번 칸에서 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심심해서 뭐라도 구경할 만한 걸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다가 보았다.

4칸과 5칸 사이.

앞 칸과 뒷 칸을 가르는 틈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웃으며 수군거리고 있는 것을.

‘어?’

보통 앞 칸 사람들은 뒷 칸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학생은 인지하지 못했으나, 그건 열차에 갇혀서 공포와 무료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에 우월 의식으로 도파민을 쥐어 짜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은 묘하게 그런 기색이 덜했다.

왜지?

‘저거….’

뒷 칸의 고등학생은 밝은 얼굴로 앞 칸의 중년 여성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뭔가를 서로 보여주고선, 고개를 꾸벅거리며 뒷 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중년 여성은 뭔가 감추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꾸며내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뭘 주고받은 거야?’

대학생은 즉각 중년 여성에게 따라붙어 말을 걸었다.

“아줌마, 뒷 칸 사람하고 무슨 이야기 했어요?”

“응? 뭐, 안부 좀 묻고 그러는 거지….”

대충 그렇게 얼버무리려는 상대의 눈에서 지나가는 감정을, 대학생은 똑똑히 목격했다.

우월감.

나는 안다는 자부심.

즐거움.

그런 것들이 살짝 넘쳐흐르며 드러냈다가 애써 내려간다.

‘뭐야?’

대학생은 기분이 확 나빠졌다.

동시에 초조해졌다.

‘뭐가 도는 것 같은데?’

혹시 열차 내에서 서열이 바뀔 만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면 빨리 그 안에 끼어들어야 하지 않은가.

혹시라도 대세에 못 끼어들어서 밀리면 자기도 밖에 나가서 식량을 구하는, 위험한 일용직 알바 같은 짓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탈출할 때 밀려나거나!

“잠시만요, 아주머니.”

결국 그는 중년 여성에게 평소 그런 적이 없었을 만큼 자세를 낮추고 끈질기게 붙어서 비위를 맞추고 캐물었다.

‘어휴, 그런 거 없어.’ 같은 소리를 하던 중년 여성은 결국 선심 쓴다는 표정으로 귀띔을 해줬다.

“7번 칸에 가 봐.”

그래서 이 대학생은 뒷 칸으로 발을 디딘 것이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7번 칸의 모습이 드러났다.

외부인 상대로 물자 교환하는 곳이라 그간은 어지간하지 않으면 안 왔었다. 이 자리에서 난리가 벌어져서 몇 명 죽기도 하고 그러니까.

하지만 오늘은 다른 의미로 난리통이었다.

“줄 서세요!”

“거 빨리빨리 좀 빠집시다!”

구석진 자리.

본래 물건 쌓아두던 가장 별 볼 일 없고 좁은 틈 앞에 열 명 넘는 사람들이 버글거렸다.

그중엔 앞 칸 얼굴들도 몇 명 보인다.

‘뭐야…?’

뒷 칸 사람들이 앞 칸으로 오는 건 암묵적으로 거의 금지였지만, 앞 칸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오고만 싶으면 뒷 칸에 꽤 왔다.

그래도 이렇게 많이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뭘 파는 거야?’

대학생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려다가, 앞 칸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줄을 섰다.

그리고 몇십 분 후에야 애가 닳은 상태로 ‘판매품’을 보게 된다.

[간식 팔아요]

박스 면을 재활용해 허름한 간판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으나, 진열된 것들은 반짝반짝 정교했다.

초콜릿바, 쿠키 세트, 팝콘… 심지어 푸릇한 채소가 든 샐러드에 핫도그까지 있었다.

‘어…??’

모든 표면에는 화려한 테마파크 같은 그림이 있었다.

“이거 어디서 났어요?”

대학생이 따지듯 묻자, 가판을 차려놓은 사람이 어깨를 움츠렸다.

안경을 쓰고 헝클어진 머리를 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 홈쇼핑, 그거 있는 역에… 새로 생겼는데… 우연히 가서….”

듣자 하니 오후역에 새롭게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것 같다.

물론 그는 처음 열차 쉘터에 받아들여진 이후로 ‘그런 일’ 같은 걸 하려고 역에 내려가 본 적도 없지만.

어쨌든 거기서 100번째 손님으로 당첨되면서 온갖 간식을 잔뜩 받았다는 것 같았다.

거기서 판매용으로 안 내놔서 일반 구매자들은 못 구하는 품목까지 말이다.

‘운 개좋네.’

대학생이 인상을 찌푸리며 상대를 힐끗 보자, 더 고개를 숙인다.

‘눈도 못 마주쳐?’

이런 찐따가 지금까지 살아남는 것도 신기할 지경이다. 아마 열차에서 내리면 보통 몰골이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이걸로 열차 주민이 되려고 비벼보겠다고?’

그럼 전부 ‘열차 쉘터를 위해’ 내놓았어야 하는데 어디서 장사 같은 걸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 정도까지 머리가 돌아가지는 않는지, 간판을 보니 소심한 문구만 적혀 있었다.

[숙박권 받아요]

‘흠.’

8번 칸에서 조금이라도 더 머무는 것만 목표인 듯했다.

근시안적이고, 소심하다.

‘X밥이네.’

약자 앞에서 강해지는 법이기에, 대학생은 편하게 말했다.

“이름이 뭐예요?”

“저, 그… 포도라고 불러주시면.”

주제에 이름도 숨기네?

어쨌든 대학생은 간식을 탐욕스럽게 보면서 말했다.

“제가 일단 좀 골라서 가져가고 숙박권은 찾아서 드릴게요. 알았죠?”

“네…? 그, 그건 좀….”

“준다는데 왜? 아하, 못 믿나 보네. 열차 사람들 못 믿으면서 왜 여기서 장사를 해?”

상대는 안절부절못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간식 2봉에 숙박권 하나예요….”

“어어.”

대충 대답하며 대학생은 얼른 간식을 골랐다.

앞 칸에 식량이 쪼들리지 않긴 해도 맛의 즐거움을 누리긴 어려웠다.

구해오는 품목에 한계가 있으니까!

게다가 식량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괴상한 것부터 거칠고 투박해서 먹기 힘든 생채소 같은 음식까지 가져오는 판이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간식 품목이란 식량 이상의 자극이었다.

무슨 키링이나 마그넷 같은 것도 있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초콜릿바와 팝콘.

그렇게 교환해 황급히 패딩 안주머니에 쑤셔 넣고, 대학생은 숙박권 하나를 적당히 구해왔다.

앞 칸 사람과의 갈등을 꺼리는 뒷 칸에서 숙박권 하나 공짜로 쓱 가져오는 거야 쉬웠다.

그리고 얼른 ‘포도’라는 멍청이의 가판으로 돌아가서 내밀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포도’가 두 손으로 고개를 숙이며 숙박권을 받아 가려는 순간.

“아니, 감사하면 서비스.”

“예?”

휙 숙박권을 도로 가져온 대학생은 얼른 가판에서 캔디 몇 개를 웅켜집었다.

“이거 하나 주면 되겠네.”

“아, 안 돼요!”

하지만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

“그만 하세요.”

“그래. 왜 저래.”

…뒷줄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그를 말린다.

그 중엔 앞 칸 사람도 있었다.

‘…X발.’

이 분위기는 뭐지?

원래 이 정도는 다들 했잖아.

하지만 결국 그는 눈치를 보다가 캔디 뭉치를 놓았다.

무안함에 포도를 향해 악감정이 생기려는 순간.

“저기… 지금 저한테 간식 사시면, 추첨권 드리고 있거든요….”

“추첨?”

“네. 여기 목록….”

포도가 간판 뒤를 돌려 ‘당첨 상품 목록’을 보여주었다.

7등 – 캔디 1개

6등 – 완벽한 단추

5등 – 팝콘(小) 1봉

4등 – 완벽한 마그넷

3등 – 쿠키 1박스

2등 – 완벽한 키링

나름 화려하게 장식한 1등은 이거였다.

1등 – 완벽한 솜인형

‘장난하나.’

저놈의 완벽 시리즈는 뭐야?

아무래도 받은 경품 중 간식이 아닌 건 안 팔리니 저렇게 털어내는 듯했다.

“해보시겠어요?”

“예. 뭐.”

제발 간식이 나오길 바라며, 그는 포도가 내미는 상자 안에 손을 넣어 뽑았다.

하지만….

“축하합니다, 2등이에요…!”

2등 – 완벽한 키링

그의 손에는 황금빛 키링 하나가 안착했다.

‘X발 진짜.’

분홍빛 토끼 인형의 귀여운 머리가 새겨진 금속 키링은 정말 쓸모없어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저거….”

뒷줄에서 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포도’라는 가판 주인도 놀라움과 새삼 다시 봤다는 식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마치 엄청난 사람이라도 봐서 기가 죽은 듯이.

“추, 축하드립니다….”

어라?

게다가 몸을 돌리니, 줄 선 사람 중 몇몇이 자신을 갈망어린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좋은 건가?

‘그럼 챙겨야지.’

대학생은 당장 키링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선 2번 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후로는 지인들의 눈을 피해 몰래 초콜릿바를 하나를 다 먹을 궁리를 하며 보내느라 그 황금빛 키링에 대해서는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대학생은 꿈을 꿨다.

-아하하하!

자신이 멋진 황금빛 유원지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내는 꿈이었다.

리조트는 고풍스러우면서도 럭셔리 했고, 끝내주게 즐거웠다.

뭔가이상한것들이돌아다녀좀 유아취향이지만 그래도 테마파크는 원래 이런 맛 아니겠는가.

그는 황금빛 유원지의 곳곳을 누볐다. 꿈이라서인지 앞뒤가 모호하고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도 많았지만 즐거움은 확실했다….

그런데 그 순간.

딸랑.

거짓말처럼 아주 현실적이고 선명한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마차 모양의 스낵 키트.

♬♬♩♪♬♬♩♪♪♬-

연한 핑크색과 황금색이 어우러진 그 가판에서 어떤 존재가 자신을 보면서 손짓하고 있었다.

홀린 듯이 다가가자, 푹신하고 둥그렇게 생긴 발을 내민다….

그 육구 안에 든 쿠키.

그것만은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귀여운 데포르메, 초콜릿으로 선을 따라 넣어 분홍빛 토끼 인형이 정교하게 묘사된… 설탕 쿠키.

대학생은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쿠키를 내밀고 있는 어떤 존재의 푹신한 손을 잡으려던 순간….

잠에서 깼다.

“…!”

화려한 테마파크도, 신나는 음악과 도파민도 없다.

다시 적당히 밝은, 추레하고 답답한 열차칸일 뿐.

‘뭐, 뭐야.’

순간 그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며 상반신을 확 세웠다.

그러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트렸다.

툭.

황금빛 키링.

분홍빛 토끼가 그 속에서 미소 지으며 그를 보고 있었다….

‘…….’

꿈속에서 봤던 그 쿠키 속 인형이었다.

“…!!”

대학생은 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거기서 팔던 거지.’

그는 당장 7번 칸으로 뛰어갔다.

드르륵!

거칠게 문을 열었지만, 7번 칸 안은 장을 서는 시기가 아닌 듯 한산했으며 가판도 없었다.

하지만 포도는 닫아놓은 자신의 가판 옆에 앉아서 눈을 감고 가만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이 그를 부르기도 전에 번쩍 눈을 떴다.

“오셨군요.”

“…!”

포도는 이전과 어딘가 인상이 달랐다.

‘어?’

전에 봤던 비굴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확신에 차서 빙그레 웃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약간 숭배심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뭐야.’

그리고 대학생이 가타부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자신에게 숙박권 하나를 내미는 게 아닌가!

“이걸로 간식을 구매해 주세요.”

“…….”

“그렇게 간식을 고르시고, 추첨을 뽑아주시겠어요?”

장사가 아니라, 일종의 정결한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네.”

대학생은 왠지 바짝 긴장해서, 엄청난 일을 앞둔 것처럼 쿠키 세트 둘을 얼른 고르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 추첨권 박스 안에, 손을 넣었다….

기분 탓인지 바로 손에 쪽지 하나가 달라붙듯 들어온다.

운명처럼.

대학생은 손을 빼내어,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열었다.

1등.

“여, 역시!”

기쁨과 경악에 찬 반응이 옆에서 터져 나왔다.

“알고 있었죠. 지난번에 방문하셨을 때부터 뭔가…! 솜 든 몸께서 당신을 인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솜 든 몸?”

“그분의 몸을 보셨나요? 푹신한….”

잠깐만.

푹신?

“그쪽도 그… 꿈을 꿨습니까?”

“그럼요!”

하지만 곧 민망한 듯 목소리가 작아진다.

“사실 저는 그렇게 자주 꾸지 못합니다. 듣기로는, 저기 5번 칸에 있는 어떤 고등학생분은 거의 매일 꾸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순간 대학생의 머리에 벼락같이 지나가는 사실이 있었다.

‘이거였구나…!’

앞 칸과 뒷 칸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던 것.

그리고 자기들끼리만 알던 건 바로 이거였다.

꿈속의 유원지!

“보통은 바로 꾸시는 건 아니고, 솜 든 몸님과 연관된 물건을 지니시면 가끔 꾸시기도 하는 것 같은데….”

“아하.”

대학생은 애써 별 거 아닌 것처럼, 마치 걱정하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이걸 지니자마자 꿨는데.”

“대단하십니다….”

대학생은 자신의 마음에서 우월감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찌질해 보였던 상대에게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 특별한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거니까.

그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선택받아 새롭게 태어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 당첨은 솜 든 몸님의 뜻인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포도는, 옆에 세워둔 박스 속에서 무언가를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꺼냈다.

최대한 고르고 골라 가장 좋은 푹신한 옷 위에 올려둔 듯한 그것은, 손바닥보다 좀 더 큰 크기의….

1등 – 완벽한 솜인형

완벽한 솜인형이다.

“보십시오.”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정말 북실북실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고급스러운 토끼 봉제 인형이었다.

까만 단추 같은 눈, 벨벳같이 부드러워 보이는 코, 연분홍빛 통통한 몸까지.

“가장 이상적인 형상의 솜 든 몸이십니다.”

대학생은 무언가 엄청난 일이 자신을 중심으로 벌어진다는 그 감각에 취해, 그것을 강렬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동경하듯 바라보는 포도는….

‘도파민 폭발했겠구만.’

이러고 있었다.

잘 속으면서, 동시에 인성이 나빠서 속여도 안 미안할 후보를 찾기 위해 며칠을 꼬박 투입한 김솔음은 드디어 걸려든 미끼에 속으로 환호를 내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알랑거리는 듯한 미소를 띤 채로 상대를 살피는 표정이다.

그거 아는가?

사실 꿈속에 등장하는 유원지는 진짜가 아니라… 일종의 광고다!

‘굿즈를 이용해서 꿈에 재생되는 광고 영상 재생이라고 해야 맞지.’

하지만 사람들이 오염되지 않도록 기능성을 최대한 낮춰서 제작한 굿즈인데도, 생각보다 다들 엄청 생생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놀라웠다.

어느 정도는 TV쇼 호스트인 브라운을 내세웠으니, 그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어쨌든, 그는 순조롭게 ‘잘된 컬트 종교의 전형적 입문 특성’ 체크리스트를 다 채웠다!

1. 결핍을 공략할 것

2. 특별한 존재라 느끼게 할 것

3. 스스로 깨달았다고 착각하게 할 것.

이 모든 게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다만 차이가 있다.

‘이 열차 내부는 이미 사이비 종교나 다를 바가 없었어.’

앞 칸에서 가진 선민의식이 특히.

한마디로, 지금 그는 선민의식을 또 다른 선민의식으로 덮어버리는 것뿐이다…!

조금 더 광범위하게!

봐라, 눈앞의 이 작자는 6번 칸 노인분한테 괜히 시비 걸고 오후역에 식량 구해오라고 몰아내서 죽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친구!!]

브라운을 잡으려고 한다!

[맙소사!]

히이이익.

“제, 제가 모시겠습니다.”

김솔음은 랩처럼 속사포로 뱉으며 브라운을 얼른 두 손으로 들어 마치 라이온킹 장면처럼 모셨다.

브라운이 우뚝 서서 기껏 찾은 예비 교주 후보에게 소각을 갈기기 직전이었다.

“성상을 옮기는 건 저 같은 종이 하는 거고, 선택받은 분께서는 그저 이곳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확실히 의미가 있지요. 내 눈에 거슬린다는 의미 말입니다.]

‘미안하다….’

김솔음은 식은땀으로 목욕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두 친구의 대화가 들릴 리 없는 대학생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선택받은 자신’에게 취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내게 뭘 원하시는 걸까?”

자연스럽게 말을 놓네.

약간 고민하던 김솔음은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기관사석에 들어갈 혼란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으나, 그래도 열차 쉘터에 피해를 주면 안 되겠지.

‘저런 작자에게 교주 역할 비슷한 걸 맡겼으니, 잘 수습해 둬야겠어.’

아무리 자기가 추종자로 바람을 넣더라도, 다른 방향으로도 넣어야겠다.

“꿈에서 말씀해 주시겠지요.”

그리고 그날, 대학생은 꿈속 테마파크에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요’라고 외치며 율동하는 모호한 꿈을 꾸게 되었다.

김솔음은 대학생이 우수에 찬 눈으로 ‘솜 든 몸께서는 성품을 강조하시지’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후우.’

이 정도면 되겠지.

김솔음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의 바람대로, 열차 쉘터 기관사석 앞에서 토끼 인형 숭배교가 혼란을 일으키긴 하는데….

먼저 선언문이 낭독된다.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토끼 인형을 가질 자격이 있다!! 열차를 리폼하라!”

‘…!?’

뭔가 전혀 예상과 다른 구호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 해줘라!”

맨 앞에 은하제 대리님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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