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30화
기관사실 안.
차장은 내가 입은 요원복과 소란스러운 바깥을 시퍼런 안색으로 번갈아 힐끗거리며 나에게 더듬더듬 모든 걸 불기 시작했다.
이 열차에 대해.
“원래도… 원래도 아시잖습니까, 그, 지하철 열차는 희한하게 원래부터 안전했어서….”
아무래도 ‘열차에 들어오면 다친 사람도 멀쩡해진다’라는 기믹은 재난 당일부터 거의 모두가 깨달은 모양이었다.
“열차에 들어가려고 밀치고, 자리싸움하고… 싸움 나고, 사람 죽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이 열차에도 본래 그렇게 사람들이 선점해 있던 겁니까?”
“아닙니다! 이 열차는 갑자기 나타났죠!”
…!
“원래 없던 열차가 이튿날 갑자기 운행한다고 하더니, 역으로 들어와서 문이 열리지 않습니까!”
나는 그 광경을 상상할 수 있었다.
열차에 타지 못한 채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나마 안전한 승강장에 모여 있는데, 새롭게 빈 열차가 등장하며 문이 열리는 모습을.
“…그리고 그 안에 초개 요원님과 다른 요원분들이 타고 있었겠군요.”
“마, 맞습니다.”
눈을 굴리던 차장이 분위기를 잡으며 애써 그럴듯한 어조로 말한다.
“하지만 저는 이 열차를 알아봤습니다. 이거, 고장 열차였던 겁니다!”
“…!”
“왜, 운행 중에 앵꼬나면 아예 차고지로 빼두는 게 아니라 옆선으로 빼두는 거지요. 보통 이제 지하철 영업 끝나면 역에 숨겨진 측선에 열차를 세워두는데, 아마 거기 있었을 겁니다.”
“…….”
“뭔 수로 수리한 건지는 모르지만, 그걸 떡하니 몰고 나타나서 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데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초자연적 장비나 능력을 사용해서 고장 열차가 제 기능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애초에 초자연 현상에 삼켜졌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겠지.
“저는… 예. 혹시 열차 운전 경험 있는 사람 있냐고 하셔서, 예. 제가 초개 요원님을 많이 도와드렸지요. 하하하….”
결국 이 사람은 본래 이 열차의 기관사도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차장이라고 불렸던 건가.’
“물론 지하철이 요새야 거의 자동 운전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 전문가가 있고 없고가 차이가 크지 않습니까.”
“네. 초개 요원님의 판단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나는 조종칸 옆에 붙은, 이름 수십 개에 X가 처져 있는 종이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전문가가 자신이 없어진 후에 어떤 행동을 할지 기대하시는 바가 달랐을 것 같군요.”
“아니… 요원님, 요원님! 진짜 이건 이해해 주셔야 하는 일입니다, 이만한 사람들 데리고 몇 년 살기가 어디 보통 고역입니까?”
차장이 다급히 말한다.
“요원이라던 분들이 어? 역에 물자 구하러 가서 하나씩 못 돌아오지! 그게 다 열차에 오는 피난민들 다 데리고 가려다가 발생한 겁니다. 식량도 뭣도 부족한데 자꾸 인원수 맞게 구하려다 보니 그 지경이 된 거지요!”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럼요! 아시잖습니까. 원래 사람들이 다 같이 있다 보면 적당히 쳐낼 건 쳐내고, 어? 버릴 건 버리고 가야 시스템이 돌아가잖습니까.”
“…….”
“다~ 이 쉘터를 어? 초개 요원님의 유지에 따라서!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제가 이제 힘에 부쳐서 실수도 하고 그런 거지요!”
화가 막 치밀진 않았다.
그냥 기분이 묘했다.
사실 이 사람의 처지야말로 바로 그 ‘버릴 건 버리고 가야지’라는 판단하에 바깥으로부터 버려진 상태다.
그런데 자기가 처한 상황을 도리어 정당화 해주는 발언을 하는 걸 보자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런 사람 구하려고 요원들이 하나씩 무리하다 다 죽었구나 하는… 이상한 탈력감.
‘……이 이상은 내가 판단할 부분은 아니겠지.’
아마 열차 쉘터에 계속 있었던 사람들이 직접 하는 게 맞으리라.
그래서 나는 차장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대신, 다시 정보를 탐색했다.
“초개 요원이 실종됐을 당시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보십시오. 식량을 구하러 갔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아니 이게 괜한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절대 제가 요원님을 쫓아내고 그런 게 아닙니다!”
음?
나는 일부러 침묵했다. 그러자 차장이 더 눈치를 보며 변명을 위한 설명을 쏟아낸다.
“그! 식량이 안 부족했는데 왜 그 타이밍에 나갔냐, 이걸 말씀하시려는 거 아닙니까.”
[알아서 털어놓는군요.]
“절대로! 제가 일부러 그 요원을 쫓아내려고 뭔 수를 쓴 게 아닙니다. 그냥 본인이 계속 내렸어요, 뭐, 이 열차엔 더 필요한 게 있다고 했던가?”
…‘이 열차에 더 필요한 게 있다’.
“정확히 뭐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까?”
“그게, 제대로 대답도 안 했지요. 그냥 웃으면서 기다려보라고 하고. 뭐 웃을 일도 없는데 자꾸 그러니까 이 사람도 신경질이 나게 되고….”
나는 차장의 말을 끊었다.
“그럼 초개 요원이 남긴 말은 없었습니까? 평소에 강조한 말이나, 떠나기 전에 남긴 말 말입니다.”
“…뭐, 열차 사람들한테 희망을 주려고 하셨죠. 그런 말들 말입니다. 언젠가 탈출할 수 있을 거다, 방법을 찾고 있다….”
뻔한 말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굴리는 게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 요원님이 엄청나게 고생하셨겠군.’
재난관리국 요원들도, 아니 요원이라서 더더욱 잘 알았을 것이다.
수많은 시민이 떼죽음을 당한 지상 아래, 이 도시의 지하철 괴담 속에 얼마나 더 생존자들과 갇혀 있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봉쇄됐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을 거야.’
어쩌면 굿이나 의식에 정통한 요원은 인신 공양됐다는 정황까지 어렴풋이라도 잡아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티 낼 순 없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개인에게는 버겁도록 많은 생존자를 다 안심시키고, 이 쉘터가 계속 아비규환에 빠지지 않도록 안정시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
“아, 그, 그렇지! 초개 요원님이 남기신 물건이 있습니다! 소지품인데 이제 유일한 유품이라고 할 수 있죠. 저기….”
“움직이지 마십시오.”
차장은 눈치를 보며 일어나려다가 내가 어깨를 잡자 다시 굳었다.
나는 한 손은 그대로 어깨를 꽉 누른 채로, 차장이 가리킨 곳을 열었다.
조종칸 옆에 있는 작은 서랍.
여는 순간, 텅 빈 공간에 있던 작은 물건 하나가 먼지와 함께 드러났다.
“…….”
탈출용 오방색 끈이었다.
이곳에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원의 지급품.
그것은 가지런히 신발끈 모양으로 묶인 채 겉에 먼지가 쌓여 들어 있었다.
…끝이 약간 닳아 있었다.
누군가 자주,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매만진 듯이.
“…….”
나가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언젠가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희망의 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깨닫는다.
‘뭔가 했을 거야.’
-그냥 본인이 뭐 이 열차엔 더 필요한 게 있다고 계속 찾으러 나다닌 거란 말입니다!
분명 단순한 생존 이상의 구조 행위를 기획했을 것이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바깥에서 시민들을 구조하게 만들 시도라도 해보려고 하던 게 있을 것이다.
세광고의 요원들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
“이, 이제 다 답변드렸으니까 요원님….”
“쉿.”
나는 기관사석을 계속 살폈다.
열차의 핵심 시설이라면 당연히 여기일 것이다. 대체 이 열차에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조종칸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복잡해 보이는 기기와 모니터링 화면들을 과연 요원들이 전문가의 대동 없이 건드렸을까?
한다면 어디에….
-선생님.
-시설이 아니라 이용자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이용자.
요원 본인은 일상적으로 접근하고 이용하며 지킬 수 있는 장소.
그러나 이 기관사실에 출입할 다른 자는 알아차리거나 우연으로도 만지기 힘든 곳.
“…!”
나는 차장을 돌아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식겁하던 차장은 내가 어깨를 잡고 있던 손 말고 다른 손까지 뻗자 기겁한다.
“어? 어어억… 어?”
나는 차장을 그대로 들어 올려서.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가 앉아 있던 의자를 뒤집었다.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의 자리를.
“…!!”
* * *
얼마 후.
“여, 여러분!”
기관사석에서 뛰쳐나온 차장은 양손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토끼 인형은 완벽한 인류의 친구입니다! 당연히 열차 리폼을 허가합니다!”
“와!!”
도파민의 최고조!
마치 스포츠 경기에서 이긴 것 같은 승리감이 열차 내부에 가득했다. 내러티브에 젖은 사람들이 다 같이 차장을 데리고 토끼 숭배교 대표에게로 간다.
자연스럽게 인파가 몰리며 썰물처럼 사람들이 3번 칸 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파를 조용히 따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이자헌.
워낙 눈에 띄는 체격이기에 그를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은 이 난리통에도 그를 한 번에 포착해냈다.
“과장님?”
“송골매 대리.”
은하제 대리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서 속삭였다.
이제 외부인이고 나발이고 토끼 인형 배지 차고 있으면 사회적 용인이 가능한 분위기가 일시 조성되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약간 유쾌하게 말했다.
일부러 자신이 죽은 사실은 언급도 하지 않으며.
“토크쇼 괴담에서 알바하셨다면서요. 뭘 하셨습니까?”
“방청객 안내, 게스트 시중, 스탭 보조, 짐꾼을 수행했습니다.”
“…네 가지를 동시에 하셨다고요? 아니 잠깐만, 혹시 하나 하고 있으면 누가 와서 막 화내거나 한숨 쉬더니 다른 거 시키지 않았습니까? 맞죠?”
그러자 멀뚱한 표정으로 이자헌이 즉답했다.
“예.”
“으하핫!”
은하제는 폭소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리 오래 웃지는 못했다.
저편에서 헤매는 동행인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 저기 있네.”
당혹스러운 얼굴로 토끼 인형 숭배교와 중앙 벨벳함에 모셔진 봉제 인형을 보면서 ‘핑크…?’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청동 요원 말이다.
식량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며칠, 장허운… 그러니까 화각 요원이 있는 곳에 방문했던 그는 갑자기 변한 기차 아수라장 사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간 열차에서 나가서 죽은 몸이 썩지 않도록 관리하고 주의하느라 다소 씁쓸했던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
청동 요원은 다급히 달려와 본론부터 꺼냈다.
대체 왜 여기에 없던 저 도마뱀 직원이 있는지는 몰랐어도 당장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거, 포도 요원이 들고 다니던 그 인형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입….”
“그 인형의 복제품입니다.”
“…….”
청동 요원은 말문이 막혔으나,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럼 이게 혹시… 포도 요원 짓입니까?”
“예.”
“…!! 어디 있는지 보셨습니까? 당장 찾으러 가야겠….”
이자헌 과장은 청동 요원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
-과장님. 혹시 청동 요원을 뒷 칸에서 찾아와주실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의 요청을 모두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얼마 후.
똑똑.
기관사석 문은 짧은 노크와 함께 다시 한번 열리게 되고, 이자헌 과장이 자신이 찾아온 인선을 기관사석 안으로 밀어 넣어주었다.
“…포도 요원.”
“청동 요원님.”
청동 요원은 다급히 다가왔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설마 지금 이 기관사실에 들어오려고….”
하지만 말을 멈췄다.
김솔음이 긴장과 초조함,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자신을 보며 입을 움찔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원님, 혹시 뭘 좀 확인해 주실 수 있습니까?”
“예?”
“여기,”
김솔음이 조종석 앞 의자를 뒤집어 보였다.
“…여기에 부적이 있습니다.”
“……!”
“이 열차를 쉘터로 만든 요원분들이 붙인 것 같은데, 저는 부적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원님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청동 요원은 하려던 모든 발언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뒤집힌 의자 아래에 있는 문양을 다시 보았다.
직선.
막힌 문양.
반복과 구속.
무엇인지 모를 다 탄 재를 점성 있는 액체에 개어 내서 그린 게 분명했다. 없는 환경에 어떻게든 짜내어서 만든 이 간신히 구색만 맞춘 의식적 요소들.
그러나 부적이 맞았다.
그리고 그는 이미 이런 부적으로 임시 방통을 하려고 했던 요원들을, 이 세광특별시의 고등학교에서도 봤었다.
청동 요원은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푸른 눈을 빛내며 그 부적의 의미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
“…….”
그리고 반 시각이 지난 후에야 몸을 일으켰다.
“…어떤 부적입니까?”
“…….”
의자를 극도로 조심스럽게 원위치시켜놓은 청동 요원이 입을 열었다.
“이건 벽사 부적이 아닙니다.”
“예?”
“삿된 것을 쫓아내는 용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건 반대로, 무언가를 끌어오는 부적입니다.”
…!
“기복 부적, 그러니까… 복이나 운수, 상황을 끌어오는 용도의 부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합격 부적 같은 것 말입니까?”
“예. 하지만 종류가 좀 다릅니다.”
청동 요원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건, 따지자면 인연 부적입니다.”
…인연?
“이 열차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부적이라는 겁니까?”
“누군가…라기보다는, 어떤 것을 만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
“그러니까, 이 열차를 어떤 것을 반드시 만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저 부적은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에 초자연적 법칙이 더해지면….”
청동 요원이 선언했다.
“그것을 만나기 위해, 이 열차가 직접 이동할 겁니다.”
……!
“예. 아마 이 부적을 제대로 사용한다면, 열차 자체가 통째로 어딘가로 이동할 겁니다.”
“…! 혹시 세광특별시 밖으로 아예 이동될 수도 있습니까?”
“그런 건 아닐 것 같습니다.”
청동 요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열차의 역할을 벗어나게 만드는 식으로 획을 쓸 순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디든 이 열차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느 곳으로 옮겨진다….”
“…….”
“그렇게, 저는 해석했습니다만.”
열차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
“…그럼 선로 위겠군요.”
김솔음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다급히 조종칸 옆에 붙어 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바로 열차의 노선도.
‘혹시 이 부적을 제대로 사용하면 반대편 선로로 가는 건가?’
지금까지 반대편 선로는 운행이 중단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편에 힌트가 있기에, 이 요원은 반대 방향으로 이 열차가 운행되도록 만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럼 순서가 어떻게 되는 거지?’
김솔음은 다급히 세광 지하철 노선도의 순서대로 역들을 다시 떠올렸다.
세광 지하철 노선도
– 세광역 (임종의 숲길)
– 자정역 (신체 카지노)
– 한밤역 (한빛도서관)
– 황혼역 (양심판매대)
– 오후역 (혈액 방송국)
– 한낮역 (낮잠용 쉼터)
– 아침역 (저울 재판소)
그리고 열심히 그 역들을 역순으로 되짚으며 읽었다. 그런데….
‘…….’
그러고 있자니, 김솔음은 문득, 또 다른 의문점 하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역명들은 하나씩 공개되었기에, 그간 이렇게 전부 머릿속에서 쭉 되새겨 본 적이 없어 느끼지 못했던 것.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던 약간의 위화감.
‘세광특별시의 지하철 역들은… 전부 시간대로 역명이 구성되어 있지.’
이상한 이름들이다.
아마 이전에는 이런 비직관적인 방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역과 특성에 따라 역명이 있었겠지.
그러나 재난의 날 사태로 오염되며 지하철도 초자연 현상으로 변이하면서 이런 역명들로 바뀐 것일 터다.
…그런데 말이다.
‘왜 세광역은 그대로 세광역인 거지?’
이상했다.
반대로, 세광역만 오염되지 않았다는 소리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분명 임종의 숲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자살명소 괴담은 섬뜩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종결시킬 엄두는커녕 도망만 칠 정도였으니까.
근데 왜 역명만 온전한가?
‘그건….’
…….
세광역.
세광특별시.
……!!
“포도 요원?”
“청동 요원님.”
김솔음은 청동 요원을 돌아보았다.
그 눈에서 기이한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초개 요원님께서 이 열차를 어디로 보내시려던 건지 알아낸 것 같습니다.”
“……!”
“여기일 겁니다.”
그리고 김솔음은 노선도에서 한 역을 가리켰다.
“세광역… 말입니까?”
“예.”
김솔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희가 지금까지 봤던 선로는 아닙니다.”
“그건….”
“요원님.”
김솔음의 머릿속이 터질 듯이 논리를 도출해 낸다.
왜 세광역은 다른 지하철역들처럼 이름이 변이하지 않았을까.
간단하다.
지하철 괴담에 완전히 오염되지 않았으니까.
그 ‘세광역’은 지하철만의 명칭이 아니었으니까!
“세광역에는 고속철도가 있을 겁니다.”
“…!!”
그렇다.
김솔음은 탐라행 열차를 탔던 서울역을 떠올렸다.
서울역에도 지하철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것이 있다.
‘고속철도…!’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선로.
“‘세광’이라는 이 도시를 대표하는 그 역은, 지하철뿐만 아니라 고속철도 역일 확률도 아주 높습니다…!”
“…그렇다면.”
청동 요원이 노선도를 보았다.
“이 열차가 저기가 아니라, 고속철도의 선로 위에 놓인다면….”
그 선로의 목적지는 저렇게 세광특별시 안에서 순환하지 않는다.
“바깥으로 가는 겁니다.”
“……!”
“요원들은 이 열차를 타고, 세광특별시 바깥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던 겁니다!”
청동 요원은 다시 깨닫는다.
여기에 열차를 위해 연료를 구해올 포도 요원이 있다.
그리고 부적과 경문에 정통한 자신이 있다면….
“지금 해볼 수 있습니다.”
열차 쉘터는 탈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