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31화
나와 청동 요원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서로를 보고 있었다.
열차 쉘터.
이곳의 진정한 진가가 기관사석 의자 아래에서 드러나 있었다.
‘탈출용 부적…!’
하지만 전율이 지나간 다음에는 급박한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잠시만요. 하지만 애초에 그 부적으로 나갈 수 있었다면 진작 나가시지 않았겠습니까?”
“……!”
요원들이 하나씩 죽으면서 버틸 이유가 없었다. 대체 왜….
-그냥 본인이 뭐 이 열차엔 더 필요한 게 있다고 계속 찾으러 나다닌 거란 말입니다!
아.
‘부족한 게 있었구나.’
뭐지? 뭐가 부족했던 거지?
그 순간, 기관사실 문밖에서 누군가 발칵 문을 열었다.
“노루….”
“산양 씨!”
고영은 씨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간 피해 다녔던 것과 현 사태에 대한 해명보다 먼저 튀어나온 말이 있었다.
“탈출 시도 흔적을 찾았습니다.”
“…!!”
나는 얼른 사람들을 모조리 기관사석 안으로 부른 후, 이자헌 과장님이 문을 닫고 보초를 서듯이 기대서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은하제 대리님과 함께 두 분이 고영은 씨까지 데려오신 모양이었다.
좁은 기관사실이 꽉 차서 누가 앉아 있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으나 지금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이 열차가 고속철도 선로 위에 놓인다면, 달릴 수 있을까요?”
“선로 위요?”
고영은 씨는 ‘그건 왜요?’라고 되묻는 대신 무언가 퍼뜩 감을 잡은 듯 경악하며 되물었다.
“잠시만요. 설마 이 지하철로 고속철도를 달리려는 생각이세요?”
“저희가 생각해 낸 게 아닙니다.”
“무슨….”
곧 고영은 씨의 시선이 나와 청동 요원의 시선을 따라, 넘어진 의자 아래 부적에 닿았다.
“이 열차 쉘터를 만든 요원분들은, 애초에 이 열차를 탈출용으로 사용하시려고 계획했던 것 같습니다.”
“……잠시, 잠시만요….”
고영은 씨는 쏟아지는 정보를 소화하듯이 몇 번 숨을 들이켜고 내쉬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노루 씨.”
“예?”
“대체 왜 제가 이 지하철 열차의 고속철도 호환성까지 알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
그간, 하도 정보성 도움을 많이 받아서… 일단 반사적으로 혹시 아실까 해서 여쭤본 건데, 부담을 드렸다면 죄송….
“근데 알긴 해요.”
“…!”
“…여기서 살면서, 고모한테 최대한 많이 들어놓으려고 했거든요. 지하철이랑 철도 관련 지식이요.”
지하철에 갇혔으니까.
“그리고 ‘소문’으로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도 들은 게 있기도 하고요.”
나는 필사적으로 소문과 정보를 모아, 갑자기 극한 상황의 생존자 집단에 들어간 상황에 적응하려 했을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럼 답변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예.”
고영은 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일단 선로의 규격은 똑같을 거예요.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선로 위에 맞물려서 서 있을 거란 말이죠.”
“…!”
“잠깐만. 근데 지하철이랑 고속철도는 속도부터가 다른데… 움직이는 원리가 다르지 않나?”
“맞아요. 전류가 다를 거예요.”
은하제 대리의 말에 고영은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지하철은 직류를 쓰고, 고속철도는 교류를 쓴다고 했어요. 쉽게 설명하자면 고속철도 쪽이 훨씬 큰 전압을 쓰는 거죠.”
“그건 호환이 안 됩니까?”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일단 이 세광특별시 지하철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
고영은 씨는 이 정보를 관련 직종 종사자인 본인의 고모와의 문답을 통해 알아냈다.
‘그렇다면, 요원들도 가능했을 거야.’
우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면.
-그냥 본인이 뭐 이 열차엔 더 필요한 게 있다고 계속 찾으러 나다닌 거란 말입니다!
“그거였던 것 같습니다.”
“예?”
“이 열차 쉘터를 만든 요원분들이 당장 탈출 시도를 하지 못하고, 준비물을 찾아다니신 이유 말입니다.”
전류.
이 열차가 달리도록 만들 연료, 혹은 동력…!
그건…….
“도깨비불.”
나는 청동 요원을 돌아보았다.
“도깨비불이 있으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아예 전류가 아니라 초자연적 존재를 동력으로 삼는다면.
“가능합니다.”
“……!!”
그래. 그렇다면 모든 게 연결된다.
“하지만 당시 이 열차의 요원들에게는 그 도깨비불이 없었던 겁니다.”
만일 도깨비불이 있었다면, 한빛 도서관에서처럼 ‘요원이 건드리면 알아볼 수 있는 흔적’ 같은 것을 분명 남겼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 역으로 나가셨던 걸 겁니다.”
“…소지자를 찾으러!”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깨비불을 소지하고 들어왔던 다른 요원들을 찾아다니신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요원을 발견하기는커녕 소모되다가 결국….
…….
우리는 자연스럽게 뒷말을 삼켰다.
“……그럼 도깨비불을 구해오면, 이 탈출법을 바로 시도해 볼 수 있겠군요.”
순간 고영은 씨의 눈에 희망이 스쳐 지나갔으나.
“잠시만요! 그렇게 물리적으로 달려서 빠져나갈 수 있는 거면, 이미 지하철 바깥에 있던 사람들도 많이 탈출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잖아요.”
몇 번이나 탈출에 대한 희망이 좌절되어 온 그 사람은, 최대한 침착하게 계속 사태를 점검하려 했다.
“맞는 말씀입니다.”
“아니면 가능한 방법인데, 밖에 사람이 이미 다 죽은 상태라 아무도 시도도 못 한 걸 수도 있지.”
“…….”
“뭐, 그냥 내 추측이다.”
은하제 대리의 말은 우리 상황에는 희망적이고 세광특별시 상황에는 대단히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의구심도 있었다.
‘세광특별시의 봉쇄는 단순히 안에서 밖으로 괴담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수준이 아니잖아.’
그걸 위해 세광특별시 주민들이 희생되는 구조의 봉쇄 의식이었다. 그러니 시민들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과연 고속철도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이 열차 쉘터 요원분들은 대체 어디까지 짐작하고 준비한 거지?
‘일단… 최 요원님과 해금 요원님부터 모셔야겠어.’
세광특별시를 아는 베테랑 요원들의 의견도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누가 죽으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확실하게 준비하고 점검한 뒤에 시도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네.”
고영은 씨의 얼굴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또 기대감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려는 듯, 표정을 가라앉힌다.
그 사이로 바깥의 소란스러운 열차 쉘터 사람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서 들리고 있었다.
“…….”
“…….”
“저기, 그런데.”
고영은 씨의 얼굴이 묘하게 떨떠름해졌다.
“노루 씨. 설마 며칠 전에 열차 안에 토끼 애호가가 늘어날 거라던 말씀이… 지금 밖에서 일어나는 저 세레머니를… 말씀하셨던 건가요.”
앗.
“고의는… 아니었습니다만.”
고영은 씨의 표정이 더 떨떠름해졌다.
“그, 고의가 아닌데 토끼 인형 애호가가 늘어날 거라 예측하실 수 있나요?”
“…….”
“…….”
“죄송합니다. 기관사실을 탐색할 틈을 찾느라고…. 수습…하겠습니다.”
시선이 굉장히 따갑다….
나는 열차 쉘터 거주자들과 이자헌 과장님(왜?)의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고영은 씨의 떨떠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이 쉘터 사람들이 다 같이 즐거워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긴 해요. 좀… 월드컵 같은 분위기더라고요.”
예….
‘다행이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근데 아까부터… 좀 이상하게 조용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요?”
“예?”
“아니 바깥이 굉장히 소란스럽다는 건 아는데…. 이상하게요.”
‘왜지?’라고 중얼거리며 고영은 씨가 자꾸 기관사석 창문 밖의 칸을 힐끔거렸다.
사람이 거의 없이 텅 빈 1번 칸은 한적하긴 했지만, 그 너머 칸에서 들리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는데 말이다.
‘무슨 말씀이시지?’
“조용하다는 게 어떤 의미십니까?”
“모르겠어요. 저도… 그, 허전하다?”
허전?
‘무언가 빈 것 같다?’
있었던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의미다. 하지만 열차에서 청각적으로 그렇게 느낄 만한 게….
…….
아.
안내방송이 들리지 않고 있었다.
“…….”
“지금, 저희가 몇 분쯤 대화를 나눴죠?”
“5분? 10분….”
“11분 12초입니다.”
잠깐만.
나는 이자헌 과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세광 지하철의 역별 간격이,”
“8분에서 10분쯤, 인데….”
진작에 안내방송이 한 번은 나왔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아니, 내가 청동 요원과 부적을 대화하고 대화했던 시간까지 합치면….’
지금은, 이상한 상황이 맞았다.
“열차가 역에 도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
……!!
“요원님!”
청동 요원이 나와 거의 동시에 의자를 다시 확 뒤집어서 부적을 확인했다. 잿물로 만든 그 획들은….
끓듯이 검게 타오르고 있었다.
“…….”
잠깐, 잠깐만!
“이거 지금… 부적이 발동한 겁니까?”
“예??”
“아니, 왜 갑자기??”
“청동 요원, 해당 아이템은 타인에게 발각될 시 작동되는 형식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부적을 썼으면 이 모양이 나올 수가 없….”
하지만 청동 요원이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젠장!
나는 당장 조종칸 앞 창문 너머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유리창에 머리를 처박고 이미 지나쳐온 구간을 돌아본다.
‘낯설어.’
뭔가 어색하다. 지하철이 달리는 환경을 창밖으로 몇 번 본 적이 있으나, 분명 지금보다….
덜 어두웠던 것 같다.
“…….”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손전등 기능을 켜서 유리창에 대고, 열차 뒤를 보기 위해 애썼다.
광원은 소용없었다. 뒤편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스치는 표지판을 보았다.
정비 시 안전제일
작업자 2인 1조 필수
…이 선로는 정식 운행하는 지하철 노선도가 아니다.
정비구역.
외곽으로 빠지는 선.
‘열차가… 직선으로 달리고 있다.’
더 이상 선로는 곡선으로 순환하지 않는다.
우리는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지나쳐온 것이다.
선로 전환기를.
부적은, ‘어떤 우연한 사고 끝에 선로 전환기 건드려’ 이 열차의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열차가 지하철 순환선 선로를 이탈했습니다.”
“잠깐만요.”
“그럼 이거 목적지가….”
이자헌 과장이 가만히 고개를 들고 있다가 선언했다.
“고도가 상승 중입니다.”
“……!”
지상으로 나가고 있었다.
“지금부터 지나치게 전방을 응시하지 마십시오. 지하공간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
“현재 이 팀은 탐사 이력이 없는 어둠으로 진입 중입니다.”
그리고 이 지하철의 밖은, 멸형급 초자연 재난의 공간이다.
바깥의 고속철도를 향해 열차가 달리고 있었다!
“열차를 세워야 합니다.”
“노루 씨…!”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상황입니다.”
아니, 설득할 시간 없다. 젠장! 나는 얼른 조종칸으로 가서 비상 정지 버튼을 누르려고 했….
“안 됩니다! 이미 부적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방해하다가 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잘못될 수 있습니다!”
망할!
“요원님, 이게 잘못되지 않고 멀쩡히 탈출해도 문제입니다!”
만약, 만약 이 열차가 정말로 세광특별시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이대로 탈출이 성공한다고 해도….
저 두 사람은 죽는다.
이미 죽었으니까.
나가면 죽은 채로 괴담에 오염되어 움직이는 무언가가 될 뿐이다.
‘안 돼.’
대안!
나는 내 어깨를 잡은 청동 요원의 손을 뿌리치고 당장 기관사석의 옆문을 붙잡았다.
“야!”
“요원님! 대리님! 문을 열 테니까 내리십시오! 내려서 선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십시오!”
안 열린다. 젠장! 나는 조종칸에 미친 듯이 시선을 두었다. 기관사석의 열차문 개방 장치, 개방 장치…!
‘어디야!’
문외한이 찾아낼 만한 힌트가 없었다. 망할, 망할….
“과장님! 기관사석 문 잠금장치만 부수….”
“그만.”
“…….”
“우리 둘 살리려다가 열차 부숴서 다 죽겠다. 좀, 노루야.”
고개를 돌렸다.
은하제 대리님이 쓰게 웃고 있었다.
“…이미 늦었어. 봐.”
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기관사석의 창 너머로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지상.
세광특별시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