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32화
지하철 열차가 바깥으로 나왔다.
정비용 선로를 달려, 고속철도로 향하는 좁은 상승로를 지나… 지상으로 빠져나와 버렸다.
햇빛이 창밖에서 쏟아진다.
그러나 따스함은커녕 얼어붙는 것 같은 긴장감과 적막이 기관사실에 내려앉았다.
지금,
멸형급 재난 한복판으로 나왔다.
-엄마야!
-어어어어? 어어어?!
기관사실 뒤에서도 소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열차 쉘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이변을 눈치챈 것이다.
그렇겠지. 문밖에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면 아무리 신문지로 덧대어도 새어 들어올 테니까.
나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기관사석의 정면 창문.
“…….”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러나 그 아래로 시선을 내리면… 이상하다.
‘아.’
선로는 보였다.
그러나 선로 외에 보여야 할 모든 주변 풍경이 마치 다 타버린 필름이 상영되는 것처럼 기괴한 형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속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그냥 기괴한 것뿐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있으면 안 되는 무언가를 본 것처럼 참을 수 없는 불안감이 심장을 뛰게 만들고 섬뜩한 긴장감이 치민다.
그리고, 그리고….
선로 옆으로도 푸른 하늘이 보인다.
“…어?”
열차 바닥인데도 하늘이 보인다고.
‘뭐야.’
대체 바깥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거지?
나는 반사적으로 아까 봤던 일그러진 주변 풍경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들었다.
지금 저게… 뭐
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뭐…
무언가 날 밀쳤다.
“응시하지 마십시오.”
“…!”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 몸이 이자헌 과장에 의해 조종칸 아래로 밀쳐져서 창문에서 떨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자 이제 푸른 하늘과 햇살만 보인다.
쨍한 햇살만은, 일그러지지 않은 그대로의 형상으로 보인다.
“바깥을 들여다보지 마십시오.”
이자헌 과장의 세로 동공이 나를 본다.
“보이지 않는 그대로 두십시오.”
“…예.”
나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이이이잉!
빽빽한 선로를 달리는 열차의 소리가 들린다.
녹슨 것 위를 달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방금 본 잔상이 지워지도록.
고개를 돌리자, 기관사실에 들어찬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식은땀을 흘릴 듯한 표정으로 창문을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열차 선로는,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왜, 열차가 하늘에….”
“…어쩌면.”
나는 침을 삼켰다.
“선로가 있었던 세광특별시의 지형이, 이미 ‘사라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
고영은 씨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나도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할 수 있는 일.’
일단, 일단… 환경을 제대로 확인해야 하는데.
“노루야. 이거… ‘창밖을 보면 사망’ 같은 하드코어 난이도 어둠 같기는 하다만.”
“…….”
“생각보다 이 안은 안전한 것 같은걸. 아직 갑자기 열차가 녹아내리거나 하지는 않는데.”
요원들의 안배인가?
하지만 무슨 수로 이 멸형급 재난 한복판에서 열차가 ‘밖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정상적으로 달리고 있… 아.
“이 열차는, 아직 지하철 괴담의 소속으로 판정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
선로를 달리고 있는 지하철 열차.
‘결국 본질적으로 달라지진 않았어.’
이미 지하철이란 별도의 괴담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광특별시를 지배하는 멸형급 재난으로부터 한 겹 분리되는 듯했다.
마치 비교적 안전해 생존자가 있었던 지하철 역사들처럼.
“자연스럽게, 이 열차 속에 있는 저희도 아직 지하철 괴담속에 있다고 판정되는 것, 같습니다….”
이 빈틈을 구상해 내려고 요원들이 치열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고영은 씨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 창밖이 잘 안 보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열차 바깥과 안이 서로 다른 어둠이라 잘 보이지 않는 거죠.”
“좋은 추측인걸. 어쨌든 일단 달리기 시작했으니, 무사히 도착하기만 바랄 수밖에 없겠구만.”
나는 은하제 대리와 함께 조종칸의 모니터를 모았다.
남은 거리 : ■■■■■■■■□□
남은 연료 : ■■■■■■■■■□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칸은 제대로 된 숫자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았으나, 더없이 직관적이었다.
“벌써 20%는 온 것 같은데. 이 속도면 정말 세광특별시를 벗어날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 저 두 사람은…….
…….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을 받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둘은 다른 사람들에게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는데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듯이.
“어떻게 생각하나, 공무원 양반?”
은하제 대리와 사람들의 시선이 청동 요원에게로 향한다.
“…확신할 수 없으니, 알아보겠습니다.”
청동 요원은 계속 검게 타오르는 부적을 묵묵히 들여다보며,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제가 부적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위험할 수 있으니, 모두 기관사실에서 나가서 기다려주십시오.”
“…음. 그래.”
은하제 대리는 묘한 기색으로 청동 요원을 훑어보았으나, 곧 고영은 씨의 어깨를 두드리며 발을 옮겼다.
“네 고모분 찾아봐야겠는데. 거, 사람들이 어쩌고 있는지 확인해야지.”
“아… 아! 네.”
고영은 씨가 정신을 차리고 또렷한 눈으로 당장 기관사실을 나갔다.
그리고 이자헌 과장까지 문밖으로 나간 순간.
나는 나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요원님.”
청동 요원은 부적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 연료를 넣지 않았는데도 남은 연료가 표기되고… 열차가 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제 짐작을 말해보겠습니다.”
나는 부적을 보았다.
세광고와 달리, 어딘가 불길하게도 검게 끓어올라 타오르는 획들을.
“아까. 선로가 바뀐 뒤에 나타난 표지판에 문구를 읽었는데….”
정비 시 안전제일
작업자 2인 1조 필수
2인 1조 필수.
“혹시, 그것처럼 이 기관사실에도 요원 두 명이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래서 두 명의 요원이 부적과 가까이, 조종칸에 서는 순간 부적이 효능을 발휘한 거죠.”
왜 그랬을까.
“혹시 한 명이 죽어도 다른 사람이 역할을 계속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 역할은 무엇이 있는가.
“…….”
“요원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이 열차는 기관사실에 있는 요원을 연료로 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도깨비불을 찾고 찾아도 없을 경우를 대비한 최후의 방법.
하지만 마지막 한 사람, 초개 요원만 남으며 더는 쓸 수 없게 된 방법.
“요원님은… 지금 부적을 보고, 거기까지 짐작하셨던 것, 아닙니까.”
요원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획이 이렇게 타오르는 식은, 보통 시전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면 얼른 나가십….”
“포도 요원.”
청동 요원이 휙 손을 뻗더니, 침착한 움직임으로 조종칸 옆에서 공책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공책에 부적의 획을 따라 베끼며 말한다.
“이 위에서 열차가 멈추면, 다 죽습니다.”
“…!”
“그리고 요원 중 누군가가 이 칸에 남아야 한다면… 이미 죽은 사람인 쪽이 당연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찾으면….”
“포도 요원.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챙기는 쪽이 더 많은 사람이 살아 나가는 길입니다.”
뭐라는 거야.
“그럼 둘 다 기관사실에 있으면 됩니….”
“안 됩니다. 당신은 확실히 살아야 합니다.”
청동 요원이 자신이 베끼는 획의 문양을 점검하면서 말한다.
“포도 요원은, 나가서 이 재현도를 관리국으로 전달해 주셔야 합니다.”
“…….”
“그래야… 제 일도 의미가 있는 겁니다.”
청동 요원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서 나를 보았다.
그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있다.
“제 기대보다 보람찬 마지막입니다. 최소한 의미 없는 죽음은 아니니까.”
안 돼.
재난관리국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세광특별시를 봉쇄한 게 아니다!
이 일을 계획한 윗선의 누군가는 이 시민들이 나오는 걸 달가워 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럼 정말 의미 없는 죽음이 될지도 모른다….
목 끝까지 그 말이 치밀어 올랐으나, 말하면 안 된다는 상황판단이 막는다.
이 열차 시민들을 모조리 인신공양했으니, 탈출해서 걸리면 못 나오도록 도로 돌려보낼지도 모른단 말을 해 봤자 지금 상황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미치겠네.’
“나가십시오. 얼른.”
“안….”
“여러분! 우리는 선택받았습니다!”
…!
나는 고개를 돌렸다.
1번 칸으로 행진해서 들어오고 있는, 토끼 인형 숭배교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맨 앞자리에 서서 의기양양하게 토끼 인형의 완전한 형상을 들고 걸어오는 자가 보인다.
차장.
“보세요! 아니, 이 열차가 햇살 아래로 달려 나온 건 다~ 제가 그, 솜 든 몸님에게 허락을? 어? 축복을 받은 증거다 이 말입니다!”
위험신호가 울린다.
‘저 자식 뭘 하는 거지?’
“저희는 탈출하는 겁니다!”
“정말요?”
“세상에!”
사람들의 환호와 되물음, 불안과 기대 찬 목소리가 고양되어 칸을 울린다.
나는 나와 눈이 마주친 차장의 눈에 무언가 계산을 끝낸 기색과 비열한 흥분 같은 게 깃들더니, 나를 손가락질한다.
“원래 이 토끼 인형님을 모셔야 하는 사람이! 저렇게 팽개치고 저기 짱박혀서 쉬고 있었지만!”
이 새끼가.
나는 이게 무슨 짓인지 깨달았다.
‘내가 탈출 방법을 찾아낸 걸 안 거야.’
그리고 어차피 탈출하는 마당에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여론전을 시도하는 것이다.
가령, 탈출하는 순간 나를 죽이고 입막음하는 식으로 가기 위해.
‘이….’
“하지만 저런 사람도 다 이 열차 덕에 축복받았지요. 토끼 인형! 어? 이분이 저희를 구해주신 겁니다. 그렇….”
“저기요!”
그 순간, 인파를 헤치고 한 사람이 나온다.
고영은 씨.
자신의 고모인 역무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앞으로 나온 것이다.
“그쪽이 대표인가요?”
“그, 그쪽? 영은이 너 어디서 말버릇 그따위로 배워먹었어, 어? 아주 발랑 까져서….”
“아니, 그냥 대표시냐고 묻는 건데요.”
고영은 씨는 지난날 앞 칸에서 차장과 대화했던 때처럼 안색을 확 붉히며 물러나는 대신 침착하게 대꾸한다.
“아니신가 봐요. 그렇게 화내시는 걸 보니까.”
“뭐?”
“보통 찔리는 게 있으니까 사람이 화내잖아요.”
고영은 씨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그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걸 보았다.
“애초에 대표가 아닌데 왜 그쪽이 앞장서서 인형까지 들고 있는 거죠? 들어보니까, 여기 이분이 대표시라는데요.”
그리고 고영은은 내가 골라둔 대학생을 인파에서 가리켰다.
“아니, 지금 내가 이… 솜 든 몸님께 선택을 받았다니까! 이 사람들을 다 여기서 탈출시켜주고 있는데!”
“그러신가요.”
그러자 고영은 씨가 팔짱을 끼며 말한다.
“그럼 지금 당신한테 막 반박하는 저한테 토끼 인형님이 천벌을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요.”
“그런 분이 아니야!”
“그럼 어떤 분이신데요?”
차장의 말문이 막혔다.
“사실 모르시는 거 아닌가요? 그냥… 사람들이 솜 든 몸님 이야기를 하니까, 그냥 자기가 한 것처럼 말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게 확!”
“굉장히 폭력적이시네요. 솜 든 몸님은 그냥 보기에도 안 폭력적인 분이신데 말이에요.”
“…!”
고영은 씨의 말에 차장이 멈칫한 순간.
“차장님.”
‘토끼 인형 숭배교 대표’ 대학생이 냉큼 나섰다.
“솜 든 몸님께서 보시기에 안 좋은 일을 자꾸 하시는군요.”
“아, 아니!”
“아무래도 우리 모두에게 토끼 인형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는데, 또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하고 계셨나 봅니다.”
대학생이 혀를 찬다.
“꿈에서 솜 든 몸님을 만나신 적도 없는 분이, 갑자기 열차를 움직이실 리가 없죠.”
그리고 차장을 안타깝다는 듯이 보더니, 휙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솜 든 몸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맞다!”
“역무원님의 말씀으로는, 간밤에 솜 든 몸님께서 창밖을 보지 말라고 하셨다는군요. 저희는 이 열차가 저기, 토끼 인형께서 인도하신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명상하며 잠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차장을 내버려둔 채, 사람들이 우르르 1번 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중앙에 모여 정말로 명상을 하려는 게 분명했다.
그 뒤를 역무원과 고영은 씨가 따라붙었다.
이 모습을 넋 나간 듯 지켜보던 차장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더니, 고영은 씨의 머리채를 잡을 듯이 따라붙으려 들었다.
“이…,”
퍽.
나는 차장에게 주먹을 갈겼다.
그리고 기관사실 앞에 대충 던져놓았다.
‘미친 새끼.’
차장은 기절한 채로 구석에 널브러졌다.
나는 무사히 인파를 따라가서, 다시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뭐라뭐라 말을 꺼내는 고영은 씨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정말 대단했다.
‘나도 뭔가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여기서 두 사람이 나가면 시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걸 제대로 아는 건 나뿐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해.’
나는 차장을 끌어가느라 뻗었던 손을 회수하며, 계속 고민했….
…….
손목에 있는 내 문신.
‘…인벤토리!’
잠깐만.
“대리님!”
“어어?”
나는 인파를 따라가지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던 은하제 대리에게 뛰어갔다.
“대리님, 제가 헝그리 행맨 어둠에서….”
“그래. 그 이후로 산 건 거의 덤이었지. 고맙….”
“아뇨!!”
나는 거의 윽박지르듯이 외치고 말았다.
은하제 대리님도 놀란 듯이 눈썹을 들어올린다.
“오소리 주임님을 꺼내온 방법 말입니다!”
“……!”
“그걸 제가 두 분께도 써보려고 합니다.”
문신에 넣자!
둘 다 모조리 문신에 넣어서… 잠깐만, 문신에 넣고 내가 나가도 ‘나간 것’으로 판정되는 건가?
아니야, 다시 세광특별시에 돌아와서 열어서 꺼내면 되지 않을까? 내 문신 안은 또 다른 괴담이니까, 아니, 그러면 브라운 토크쇼처럼 ‘바깥’으로 체크….
‘아냐!’
나는 세광 지하철에 팝업스토어가 있으니까, 좀 다르게 판정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
나와 눈을 마주치던 은하제 대리가 피식 웃었다.
“야. 그래. 살 수 있으면 다 해봐야지.”
“…!”
“해보자.”
“예.”
나는 당장 은하제 대리님을 잡아다가 손목에 쑤셔 넣으려 했으나, 순간 저지당했다.
대리님이 기관사실의 청동 요원을 눈짓했다.
“저 양반도 넣을 거냐?”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 끝났을 때 방심하면 노려라.”
“…! 감사합니다.”
“오냐.”
나는 그 자리에서 은하제 대리님을 문신에 넣었다.
느낌이 이상했고, 뭔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으나 참았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안에 자리는… 욱여넣으면 된다. 그러면 돼! 나는 문신에 챙겨왔던 것들을 거의 모조리 밖으로 꺼냈다. 식량과 부피 큰 물건 위주로.
그리고 기관사석으로 돌아갔다.
“나가십시오.”
“…….”
나는 일부러 그 말대로 해주었다.
청동 요원은 바깥의 소란에 신경 쓰는 대신,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꿋꿋하게 부적의 문양을 베껴 쓰고 있었다.
그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듯이.
남은 거리 : ■■■■□□□□□□
남은 연료 : ■■■■■■□□□□
거리와 연료가 줄어든다.
획이 완성된다.
나는 초조히 그 모습을 보았다.
빨리, 빨리….
“…됐습니다.”
됐다.
청동 요원이 고개를 들더니, 기관사석 밖에 있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도 마주 웃었다.
“받으십시오.”
나는 내게 종이를 내미는 청동 요원을 보고, 미소 띤 그대로 손을 뻗어….
팔째로 잡아서 당겼다.
“…!”
기관사석에 들어가며 상대를 민다.
당황한 청동 요원이 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순간, 그렇게 나는 청동 요원까지 문신에 쑤셔 넣었다.
거의 몸싸움에 가까웠다. 하지만 선공할 줄은 몰랐는지 청동 요원의 팔을 문신에 집어넣는 데에 먼저 성공하며, 나머지도 처넣을 수 있었다.
손아귀가 얼얼하고, 아마 청동 요원의 팔이나 어깨도 적잖게 긁은 것 같다….
‘하지만 됐어.’
“허억.”
나는 주저앉았다.
기관사석 옆문에 기대어 숨을 내쉬었다. 긴장감에 머리가 타오르는 것 같았으나, 어쨌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괜찮아.’
일단, 일단… 이 열차가 무사히 달려서 나가면 뭘 할지 생각하자. 탈출하면 방법이 나올 것이다.
남은 거리 : ■■■□□□□□□□
남은 연료 : ■■■■■□□□□□
‘벌써 거의 다 왔어.’
그리고 연료도 괜찮았다. 내가 여기 있으면, 어지간해서는 죽기 전에 도착할 것 같았다.
‘애초에 요원을 소모한다는 건 그냥 짐작일 뿐이잖아.’
괜찮을 거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등을 기대고 약간 긴장감을 낮췄….
달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