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33화
오늘 세광특별시는 날씨가 아주 좋았다.
“후우.”
한빛백화점 밖으로 나온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었다.
황사도 없고, 생각보다 날씨도 덥지 않은 게 완전히 쾌적했다.
주변을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은 것 같고 말이다. 나는 옆에서 방송국 차량이 돌아다니는 것을 피해서 인도를 걸으며 웃었다.
‘오늘 왜 이렇게 컨디션이 좋냐.’
무슨 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푹 쉴 때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어쩌면 백화점에서 방금 나와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뭐, 여기가 서울보다 미세먼지가 덜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음. 어린이날 전날이라 그럴 수도 있겠어.’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서 날짜를 확인했다.
5월 4일 월요일
주말 끝나고 월요일인데, 내일만 되면 또 쉴 수 있다는 기쁨 말이다. 그것 때문에 더 컨디션이 좋은 거 아닐까?
…비록 나는 이제부터 일하러 가야 하긴 하지만.
‘점심 접대….’
아니, 다시 생각하니 저녁 접대보다는 나은 것 같긴 했다. 크윽.
그런데 이럴 거면 왜 연차를 썼지? 주말부터 연달아 푹 쉬는 일정도 아닌데, 굳이 연차 쓰고 백화점을 방문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합리적….
‘…….’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 거래처 미팅이 내가 연차 쓸 계획 이후에 갑자기 잡힌 거겠지.
그래. 중요한 건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이다.
‘접대나 하러 가자….’
나는 한숨을 참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좀 시간이 남았고, 날씨도 좋으니 지하철을 타는 대신 걸어갈 생각이었다.
점심 약속 자리로.
“김솔음 씨, 항상 말하는 거지만… 자네 사람이 참 괜찮은 것 같아.”
“하하, 에이, 박 과장님께서 좋은 분이라 저도 좋게 봐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래처 접대는 자체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았다.
애초에 저녁 접대가 아닌 시점에서 술자리가 없기에 부담이 덜하기도 했고, 원래 안면이 있던 사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플랫폼은 갑이긴 했지만, 그래도 회사 체급이 그리 밀리지 않는다면 서로 적절히 예의를 지키는 분위기다.
이럴 때는 대기업 취직에 성공한 게 정말 다행이다 싶기는 했다….
그렇다고 접대받는 상대가 갑이 아니란 뜻은 아니지만.
“어?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곳에 가도, 이렇게 비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거니 말이야. 얼마나 이 대한민국이….”
“하하하….”
돈 벌기 쉽지 않다….
아마 이 사람이 싹싹한 젊은 사람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니 굳이 저연차인 나를 접대처로 보낸 거겠지….
‘지뢰만 밟지 말자… 후우.’
나는 필사적인 생존 무빙으로 대화를 최대한 부드럽고 개인적인 화제로 끌어갔다.
다행히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 순간, 다른 이야깃거리를 찾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 애가 여길 다녀.”
“아, 자녀분 학교가 바로 저긴가요?”
나는 접대 상대가 가리키는 고등학교 건물을 보고 빙긋 웃었다.
세광공업고등학교.
시 차원에서 기술교육 연계 지원을 많이 해주는, 일종의 마이스터고에 가까운 고등학교인 듯하다.
그리고 옆 사람의 손가락이 고등학교 너머의 거대한 유리 건물을 가리킨다.
“저거 보이지? 도서관인데, 이게 학업 분위기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서 내가 마음이 참 좋아.”
“확실히 면학 분위기가 중요하지요. 좋은 곳에 보내셨네요.”
원래 상사와 높으신 분의 자식 자랑은 열심히 맞장구쳐줘야 하는 법.
나는 그 고등학교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도서관 건물을 보며, 적절한 수위로 성의껏 리액션을 했다.
보통 이렇게 진땀 빼고 있으면 나한테도 리액션이 들어온….
-이런, 훌륭한 응대입니다. 친구!
‘……?’
그런… 문구를 말하던 사람이 있었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기억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분명 어디선가 자주 들었던 건가….
‘…TV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
“김솔음 씨?”
“…예! 과장님.”
아차, 접대!
나는 순간 깊어지려던 생각을 접고 거래처에게 웃어 보였다. 이런 건 나중에 찾아보면 되겠지.
“그럼 자녀분이 지금 수업을 받는 중이시겠네요.”
“그렇지! 아주 학교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게, 분위기가 제대로지 않나?”
“하하하.”
그때였다.
고등학교 정문에서 누군가가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음?”
다급히 학교를 나서는 그 사람은 교복이 아닌 깔끔한 평상복을 입고 있다.
“인물이 좋네. 교생인가?”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건널목 반대편에서 뛰어가는 그 사람의 가슴팍에 ‘상담 쌤’이라는 귀여운 디자인의 명찰이 달려 있었던 것을 스치듯이 보았다.
아마 학생이 만들어준 것이겠지.
요새 고등학교에서는 전문적으로 상담해 주는 선생님도 있다더니, 아마 그런 상담 교사분인 것 같았다.
“지하철로 가시네. 자차가 없나.”
“하하하….”
남의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시는구만….
“아. 택시 저거 내가 부른 거야. 자, 그럼 난 오늘은 들어가 볼게, 솔음 씨.”
“넵! 살펴 가시길 바랍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가는 거래처 사람을 배웅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저 멀리, 지하철역 방향으로 뛰어가는 그 상담 교사라는 사람을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보게 된다.
…왠지 낯이 익었다.
그 뒷모습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
따끔거리는 통증이 손에 튀겼다.
“…!”
나는 화들짝 놀라서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정전기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저리도록 아파서 이상할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유일한 금속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은색 동전.
언제부턴가 내 품속에 있던 그 물건은, 어느새 검게 떼가 타 있었다.
‘뭐야.’
손으로 닦아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혹시 뭐 성분이 안 좋나?’
그냥 버릴까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동전의 은색 면이 햇빛에 반짝였다.
눈이 부셨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 햇빛이 반사된 유리창이 보였다.
세광공업고등학교의 창문.
“…….”
나는 이상한 기분으로, 고등학교 건물 근처로 다가갔다.
뭔가에 홀린 듯이 학교의 담벼락에 가까워졌을 때.
“저기요!”
고개를 들었다.
학교 건물의 외곽, 3층 끝 편 창문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염색모에 피어싱을 한, 교복을 대충 걸치고 있는 느슨한 착장의 학생이 내게 손짓하며 외친다.
뭐라는 거지?
“밑에요!”
나는 고개를 다시 숙였다.
다시 보니, 담벼락 근처에 쪽지가 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저 학생이 실수로 이 쪽지를 창문 아래로 떨어트린 듯했다.
“좀 주워주실래요? 구겨서 던지면 될 텐데.”
“아, 그래.”
수업 중에 친구랑 주고받던 쪽지인가? 나는 잡아서 쪽지를 다시 접어 위로 던지기 전, 무심코 내용을 읽었다.
그냥 여기 있어
“…….”
나는 쪽지가 날아가지 않도록 아주 작게 접은 후, 창문 너머로 던졌다.
“고맙습니다.”
외양과 다르게 의외로 깍듯이 인사한 염색모 학생은 단번에 쪽지를 잡아채더니,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다 마실 때까지, 어쩐지 학교 담벼락 앞에서 잠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후우!”
내 자취방은 투룸으로, 거실과 침실로 딱 나뉜 깔끔한 구성이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서도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연차를 즐기자.’
나는 일단 치킨을 시키고, 익숙한 장소에서 느끼는 편안함을 즐기며 거실 창문 앞에 앉아 살짝 창문을 열고 있었다.
“하.”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자취도 나쁘지 않다니까.’
부모님께선 분당에 살고 계시고, 동생은 그 근방에서 동네 맛집으로 유명한 디저트집을 한다.
나는 혼자 서울….
……아니, ‘세광특별시’로 발령 나서 여기서 생활하고 있고.
‘뭐, 주말마다 내려가서 보니까.’
가끔 동생이 무슨 유행 디저트 때문에 바쁘다고 하면 주말에 일꾼으로 고용되어서 동원되기도 한다….
-와 김솔음 니 진짜 일 잘하네. 걍 회사 때려 치고 와서 여기서 취직해라.
그리고 내가 쥐어박으면 ‘취소!! 취소! 형님!’이라고 외치는 게 바로 어제 같다. 음. 훈훈하군.
생각해 보니까 어제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어제였다. 나는 주말에 분명 내려갔을 테니까.
‘넓어서 숨통도 트이고.’
그러고 보니 내 자취방 말이다. 세광특별시가 서울만큼 집값이 미친 것도 아니라 좀 더 넓은 곳을 구했어도 좋았을 텐데. 왜 굳이 여길 계약했지?
…뭐 돈 아끼려고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정장 재킷을 벗어두고 샤워할 준비부터 하려 했다.
하지만 첫 동작부터 손에 무언가 푹신한 것이 닿아 잡게 됐다.
“…….”
나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을 꺼냈다.
분홍빛 토끼 인형.
은색 동전은 그렇다고 쳐도 진짜 이건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
가능성으로만 따지자면 아마 백화점에서 구매하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 오늘 연차까지 내고 백화점은 왜 간 건데.’
진짜 알 수가 없네. 충동성이었나?
이제 보니 인형은 대단히 고급형으로 보였다. 푹신하고 부드럽고… 약간 무서울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어딘가 정감이 갔다.
나는 인형을 돌려서 생김새를 살폈다.
몸통의 텍에는 정교한 황금색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한글이 아닌지 읽을 수는 없었다.
토끼 인형의 배를 꾹 눌러보았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아, 진짜.”
뭘 기대한 건지 모르겠다. 배 누르면 소리 나는 인형 유행이 끝난 지가 언젠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미안. 내가 바보같이 굴었다.”
나는 토끼 인형의 코를 눌렀다. 맨들맨들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고민하다가, 손을 다시 한번 잘 씻은 후에 집에 있던 쿠션과 담요로 협탁에 작은 자리를 만든 후, 토끼 인형을 올려놓았다.
부드러운 전등 불빛에 토끼 인형의 까만 코가 반질거린다.
“…편해?”
당연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묘한 어색함을 느끼며, 샤워를 하러 도망치듯 떠났다.
잘 씻고, 도착한 치킨을 받아서 TV 앞에 앉았다.
사실 TV라기보단 그냥 OTT 출력 서비스에 가깝지만 말이다.
“좋아.”
추리 스릴러 드라마였다.
약간 잔인한 장면을 넘기기만 하면 보는 건 무리 없었다. 뭐, 귀신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근데 이상하게도 전보다 보기가 거북했다.
왜지?
특히, 사람 팔다리가 잘리거나… 누구 대신 죽는 사람들 볼 때마다 기분이 급속히 안 좋아졌다.
잘린 단면이 대놓고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러냐.
‘오늘 컨디션 좋은 줄 알았는데.’
접대로 기 빨려서 날씨 약빨이 다 됐나 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OTT를 껐다.
그리고 조금 일찍, 오늘이 지나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켰다.
“…….”
뭔가… 이러면 항상 보던 게 있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뭐였지?
‘쇼츠였던가?’
하지만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인터넷을 뒤적거렸으나, 그렇다할 편안함이나 도파민을 얻지 못한 채 스마트폰을 껐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다가 기겁했다.
거대한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벽에 있었다!
“악!”
…하지만 다시 보니, 협탁에 둔 토끼 인형의 그림자였다.
“하.”
아무도 없는데 너무 쪽팔린다….
이게 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도 아니고.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후, 다시 그 토끼 인형의 그림자를 보았다.
창문 밖에서 밀려오는 가로등 불빛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이, 꼭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게 다였다.
인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히.
“…….”
잠이나 자자.
나는 어깨를 으쓱한 후,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이상하게도 아쉬운 듯이 남은 여운을 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5월 4일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