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49화
나는 숨을 골랐다.
호 이사를 만나러 가는 것 자체는 방법적으로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호 이사의 프로젝트 팀 소속이었으며, 단독 활동이 잦은 만큼 이사는 내게 자신의 영역으로의 자유로운 출입 권한을 줬었다.
호 이사의 잠든 프로젝트 팀원을 빼돌린 요원들과는 다르게, 내게는 아직도 그 ‘권한’이 살아 있었다.
물질적인 형태로 말이다.
여우 상담실
“…….”
나는 그 따스한 빛깔의 명패를 문신 속에서 꺼내 들었다.
“…가실 건가요?”
“예.”
두 요원은 호유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동행하지 않고 남기로 했다.
…설득 과정이 좀 압박감이 들었지만.
[정말 끈질긴 작자였습니다. 후우!]
나는 최 요원의 은신처를 나오는 험난한 길을 걸으며 브라운이 농담을 빙자한 비난을 쏟아붓던 것을 떠올리자 희미한 미소가 입가에 스치는 것을 느꼈다.
긴장이 약간 풀린다.
그래도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손이 굳지만.
“…….”
강원도의 농촌 길거리.
나는 드문드문 보이는 빈집 중 하나의 현관문에 명패를 걸고, 낡은 문을 잡아당겼다.
끼익.
햇살이 쏟아진다.
안온하고 부드러운, 잘 준비된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우상담실.
내담자를 받기 위해 정갈히 준비된 상담 대기실의 따스한 공간이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이 편안한 분위기까지도 괴담의 기믹을 구성하는 요소로 보고 의심스럽게 보았다.
이후에도 계속, 이곳에 들어올 때는 안락한 분위기에 경계심부터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건….
어쩌면 이 존재가 얼마나 상담에, 내담자에게 진심을 다하는지 체감했기 때문일까.
영원히 반복되는 5월 4일의 단 하루만으로도 말이다.
“…기척이 없는데. 들어갈까요?”
“예.”
나는 조심스럽게 내부로 발을 디뎠다.
“호유원.”
답변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차와 다과가 준비된 탁자를 지나, 안쪽의 문으로 향한다.
장기입원실
‘입원용 휴식 공간입니다’라는 설명문이 붙은 문.
우리가 세광특별시 지하철로 진입하던, 바로 그 장소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노루야…?”
…!
“오소리 주임님.”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따뜻한 인상의 체구 큰 남성이 서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박민성 주임님이었다.
반가운 얼굴이 눈동자를 떨며 나를 보다가 얼른 다가왔다.
“깼구나, 무사했어! 정말 다행이다…!”
오염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걸까. 나는 팔다리가 멀쩡하고 정상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민성 주임님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이 순간에는, 지난 293일간의 공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게 느껴졌다.
“여긴… 아, 산양 씨구나. 같이 온 거야?”
“네…. 안녕하세요. 주임님.”
고영은 씨는 부드럽게 인사했다.
그러나 나는 힐끗 본 그 얼굴에서 어딘가 오묘한 표정이 스치는 것을 보았다.
…왜지?
어딘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으나, 곧 기색을 갈무리한 고영은 씨는 예의 있는 미소를 띠고 있을 뿐이다.
도리어 박민성 주임님의 얼굴에 곧 반가운 기색이 가시며 긴장이 깃든다.
“여긴… 아니, 두 사람 다 우선은 나가는 게 좋겠어. 호 이사님이 없는 틈에….”
“괜찮습니다. 그쪽에 할 말이 있어서요.”
“그, 그것도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야…. 저, 방금 일어난 거면 소식을 못 들었을 수도 있는데… 호 이사님, 점점 상태가 이상해지는 것 같거든.”
민성 주임님이 목소리를 낮춘다.
“상담하러 들어갔던 사람들이 거의 절반은 실종됐어. 얼마 전에는… 회사 인사팀에서 높은 사람이 왔었는데, 보안 구역으로 이송돼서 다신 못 나왔고.”
“…….”
“대화다운 대화가 점점 안 되고, 이제… 거의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정도야.”
“그래도 대화해야 합니다.”
박민성 주임님의 얼굴이 굳는 듯하더니, 곧 사르르 녹는 듯 이상할 정도로 다정한 표정이 되었다.
“왜 이렇게 고집을… 선생님의 말을 듣…, 아니, 아니…!”
…!
…얼굴을 가린 채 숨을 몰아쉬던 박민성 주임님이, 퍼뜩 고개를 들더니 말한다.
약간 멍한 투로.
“저기, 나는 들어가 볼게.”
“…예?”
“세광시 지하철에.”
…?!
“그, 프로젝트, 응, 나도 탐사를 다니고 있거든. 지하철역에… 지금 비번이라서? 여기 잠깐 남은 건데, 안에서 누가 깬 것 같아서. 응? 아, 나온다.”
장기 입원실의 문이 열렸다.
“…!”
그 속에서 나오는 건… 바짝 마른, 빛바랜 더벅머리의 남성이었다.
아직도 낡은 경비복 재킷을 걸친 남성.
J3.
“…제이 씨.”
“갈게.”
그리고 박민성 주임님은 도망치듯 경비반장이 나온 문을 통해 장기 입원실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아버렸다.
쿵.
…….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경비반장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입을 연다.
“저기, 차 마실래…?”
“…예?”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다과를 어딘가 서툰 손으로 꺼내놓으려고 하기에, 황급히 말렸다.
“괜찮습니다. 저, 제이 씨가 좀 드시면 좋겠습니다. 막 일이 끝나신 것 같은데요.”
“응….”
그러자 힐끔힐끔 나를 보더니, 조용히 다과를 내 쪽으로 몇 가지 내밀었다.
‘반가움의 표현이었구나….’
그래도 신기할 정도로 내가 깨어났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도리어 그래서 불쑥 입이 열렸다.
“방금, 오소리 주임님의 그건….”
“아.”
경비반장이 느릿느릿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오소리는… 음……. 계속, 지하철에 있고 싶어 하니까…?”
……!
“역시….”
고영은 씨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눈이 마주쳤다.
“사실 지하철 안에서 현재 호 이사 프로젝트 팀을 몰래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다들 나가려고 하는데 혼자 남으려고 하시는 걸 봤거든요.”
“…….”
문득, 나는 박민성 주임님과 한빛도서관을 탐사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저, 나는 그냥 여기 남아 있을까?
…그 초조한 목소리.
이제 나는 그곳 지하철에서 왜 오염된 사람들이 비교적 제정신을 차리는지 알 것 같았다.
‘5월 4일의 그날’을 기준으로 오염 없이 제정신이었던 사람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왜곡에 영향을 받아서 그 당시의 정신 체계를 되찾았던 것 아닐까.
그게 ‘괴담이 없는 세상’의 영향을 받아서 더 강화된 걸지도 모르고 말이다.
중요한 건, 박민성 주임님이 그 작용에 집착하게 되었다는 점이고.
“응…. 지하철에서는… 오염에 휘둘리지 않으니까요…. 조용하니까 좋겠지….”
“그래도… 저렇게 두는 건.”
“음, 결국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일이니까…?”
“…….”
“스스로, 조절하고 인정해야 해….”
그 냉정할 정도로 덤덤한 고찰에서 그의 옛날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 같다….
비록 이 사람은 그 ‘5월 4일’ 훨씬 이전에 오염되어, 지하철에서도 그대로였지만, 한빛 도서관에서 본 늑대 조장의 모습은 얼핏 비친다.
“……계속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계셨군요.”
“응…….”
“일이나 상태는 괜찮으십니까?”
경비반장이 모자를 매만진다.
“그렇지…. 나는 뭐… 더 나쁠 것도… 없구요….”
“…….”
어딘가, 좀 씁쓸하다.
그래도 청 이사의 밑에 있지 않았던 건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로 다행이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씁쓸함을 감추며 본론을 질문했다.
“지금 이 프로젝트 팀이 지하철에서 연구원들을 만나서 신변을… 음, 보호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난데….”
…?!
“제, 제이 씨가 보호하고 계시다는 겁니까?”
“보호보다는… 발견 및 포획…?”
“…….”
“감시했지….”
그게… 그렇게 됐나.
‘오히려 다행이야….’
그래도 경비반장이라면 일부러 해치거나 연구원에게 보복하려고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리어 곽제강이 시비를 걸었을 것 같지만… 아니, 저런 성정으로 대충 무시했을 테니 괜찮을까.
어쨌든 긴장이 좀 가신다.
“그 사람들은 잘 있습니까?”
“나름…? 근데 나 지금… 교대해서……. 돌고래… 음, 그 사람이 보고 있을걸….”
아직 성해 씨도 투입되고 있었구나….
즉각 나는 연구원들이 고치고 있었을 백일몽의 물약 제조기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경비반장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다.
“이래서 나오라고 했나…?”
“…예?”
“나를 나오게 했거든…. 아무래도 그쪽이 깨어난 걸… 알았나 본데요….”
누가…?
하지만 그 대답에 자체적으로 대답을 떠올리기 전에, 소리가 들렸다.
달칵.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안쪽,
상담실의 문이, 자동으로 열려 있었다.
다음 내담자분, 들어오세요.
“…….”
김솔음 내담자분, 들어오세요.
“노루 씨,”
고영은 씨가 식은땀을 흘리며 내 돌발 행동을 막으려는 듯 내 등을 잡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떼어냈다.
“…‘상담’하고 오겠습니다.”
“…….”
“저, 제이 씨. 산양 씨의 신변은….”
경비반장의 노란 동공이 고영은 씨를 내려본다.
“괜찮아요…. 내가 있으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발을 내디뎠다.
상담실 안으로.
…….
…….
따스한 공간.
전문적으로 심리 효과를 내기 위해 잘 조성된 상담실.
그러나 본래 내담자와 똑같이 생긴 모습으로 ‘상담사’가 등장하던 통창 너머에서는 시커먼 어둠만 보였다.
더 이상 소박하고 아름다운 초록빛 뒷마당은 없었다.
캄캄한 밤.
“…….”
나는 나아가서, 창문 앞 소파에 앉았다.
등 뒤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말을 건다.
“솔음 님.”
…….
“깨어나셨군요. 아주 좋아요. 자,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말할 시간이 됐네요. 그 전에 손을 들어서….”
“안녕하세요. 선생님.”
상대가 멈췄다.
“잘 지내셨습니까? 300일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소식 없이 기다리셔서 마음이 많이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
어깨에서 손이 떨어진다.
“이게 무슨 의도일까.”
“최근 상담하신 세광특별시 시민들을 보호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직접 마주하셨을 때, 모든 걸 잊어버린 내담자들을 보고 안도와 분노를 둘 다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
“관리국에서 그런 말을 하라고 하던가요?”
“아니요.”
나는 천천히 말했다.
“저는 여기 오기까지 재난관리국 사람을 만난 적 없습니다. 프로젝트 일원이었던 분들을 제외하면요.”
“아, 잠든 프로젝트 사람들을 빼돌린 그 요원들….”
“근데 이상하더라고요.”
“무엇이 말이죠?”
“이 여우상담실은 사실 그냥 공간이 아니라 당신 자체인 곳 아닙니까.”
상대의 기척이 멈췄다.
“상담사로서의 자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한 강박 속에서 이 공간을 유지하고 계신 거죠?”
“그건,”
“그런데 여기서 무언가를 빼돌린다는 건 사실 당신의 암묵적인 허가 없이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
“……!”
“그때, 순간 요원님을 묵인하려는 스스로의 충동에 놀라셨을 겁니다. …하지만 손을 쓰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보낸 것 아닙니까?”
“글쎄요.”
“어디서 그런 충동이 왔는지 혼란스럽지 않았습니까? 왜 내담자들에게 이토록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지, 정기 상담을 해서 그 마음이 깊어지면 왜 그 사람을 외부로부터 감추는 것으로 지키고 싶은지…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지금.”
낮고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를 역으로 상담해 주시려 하는 걸까요?”
“어쩌면요.”
나는 힘겹게 웃었다.
“저는 당신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선생님.”
“…네?”
“예. 제가 경험한 당신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한 지역에 아주 오랜 시간 계속 머무르다가, 그곳 사람들에게 정이 들어서 그 내담자들을 지키려 노력했던 상담사를요.”
“지금 묘사하는 건….”
“혹시 기억나십니까? 저를 처음 상담해 주셨을 때의 일을요.”
나는 통창을 보았다.
“저는 헝그리 행맨 어둠에 오염되어서, 교육서를 소지한 채로 이 상담실에 들어왔죠. 당신은… 통창 밖에서 제 모습으로 절 상담해 주셨고요.”
그리고….
“상담이 끝나자, 저는 작은 여우가 정원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
“그것도 당신의 모습인가요?”
“어둠에게는 여러 가지 면모가 있지요. 하지만 이 대화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시간을 끄시려는 속셈일까요?”
“아뇨. 선생님께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입니다.”
-솔음 님.
왜 호유원은, 유독 나에게만 극존칭을 쓰는가.
그건….
나는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것에, 어쩐지 울컥 이는 감정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선생님은… 세광특별시 바깥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도 작은 여우의 모습 아니셨습니까?”
“…….”
“그리고 나올 때, 누군가와 함께 나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까?”
“당신,”
“선생님보다 큰 그자를 밀면서 나왔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혼자가 아니었나요?”
“…….”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각자의 시간대로 갔으니까요.”
“…….”
“당신은 몇 년 전, 재난의 날이 발생한 5월 4일 오후에 정신을 차렸고, 저는 어제 정신을 차렸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표정이 사라진 호유원과 눈을 마주쳤다.
-내가 밀어줄 겁니다…. 작은 여우를, 붙여서요. 상담실 뒷문을 통해서 살짝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처럼.
상담 교사.
내가 세광특별시에서 만난 그 존재가, 나를 배웅하도록 함께 보냈던 작은 분신이 눈앞에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왔습니다.”
여우상담실의 상담사는, 떨리는 눈으로 내 손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악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