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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54화


다시 진입한 세광특별시 지하철.

“이쪽입니다.”

“넵!”

나는 이성해 대리님과 함께 손전등을 들고 선로를 걷고 있었다.

지하철이 접근하면 옆으로 붙어 설 정도의 자리는 충분히 있었으며, 혹시 치여서 죽어도 바깥에서 깨어날 수 있으니 걸음은 차분했다.

그러나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을 염려해 귀는 곤두세운 채로, 나는 이성해 대리님과 대화를 나눈다.

잠을 잔 덕분에 머리 회전이 전보다 또렷했다.

최 요원과의 대화를 복기할 때도.

나는 분명하게 깨달았다.

‘…처음부터 안 믿었던 거였구나.’

-그러니까, 너는 초자연 재난에 휘말려서 여기 떨어진 것 같다는 거지.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고, 장비가 생겼고.

이전에.

내가 최 요원에게 다른 세상에서 왔으며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상대의 차분한 반응을 보고 안도했었다.

내 상황을 인정해 준 줄 알았다.

그런데 인정이 아니라…….

‘그냥… 경계였어.’

이때도 이미 나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정했던 거였나.

‘…왜?’

분명 인어무덤에서… 반짝반짝 용궁에서도, 다른 세상에서 온 아이들을 봤지 않는가.

평행세계 같은 것도, 이 괴담 세상에서는 그렇게 낯선 개념이 아닌데.

그 정도는… 믿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

왠지 정신이 어딘가 멍하다.

그 속으로 이성해 대리님의 또렷한 목소리가 깨끗하게 울렸다.

“그간 잘 지내셨나여?”

아.

“열차 쉘터에서 도시 위로 떨어지시고 못 깨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러면서 또 사람들 구하셨다면서여!”

나는 흐리게 입꼬리를 당겼다.

“그건, 사실 제가 구했다기보다는 산양 씨와 청동 요원님께서 구하신 겁니다.”

“엥, 세 분이 같이 구하신 거죠!”

여기까진 훈훈했다.

“근데 그 쉘터 사람들이 그렇게 착해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져…. 음, 그쪽에서 못된 몇 명이 대신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예?”

“청동 요원님도 아직 못 깨어나셨다구 들었거든여.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좋겠구 그래요.”

와. 충격으로 명했던 정신이 바짝 들었다.

맞다, 이성해 대리님은 이런 분이셨지….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런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열차 쉘터 사람들은… 대부분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뒷말을 덧붙였다.

“원래 극한 상황에서 사람은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니까요.”

그 말을 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도 그렇게 보였던 걸까.

매번,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게…….

“그렇긴 하져!”

마치 그 대답처럼 이성해 대리님이 말한다.

“그런데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망했다! 싶은 행동을 하면서도… 그 틀린 선택도 착한 사람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

“노루 님처럼여.”

“제가요? …그러진 않을 겁니다.”

“아녀. 노루 님은 마스코트 님일 때도 정말 좋은 분이었어여. 자기가 착할 필요가 없는 순간에두요.”

“…….”

“그건 정말 대단한 거에여.”

“…감사합니다.”

그 이상할 정도로 주관적이고 단호한 말은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아무튼 마스코트님 가게는 잘 있으니까, 사실 실종되신 동안에도 전 그렇게 걱정하진 않았어여!”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어쩐지 마음이 편했다.

뭐랄까, 묘하게도 극단성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수틀리면 나도 나쁜 사람이라고 칼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간 식은땀이 좀 났었는데, 지금은 이 사람이 참 명료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질문이든 거침없이 답을 준다는 점에서.

그래서 이걸 물어보게 되었다.

나와 관련 있고 예민한 것이라 그간 물어보지 못했던 질문을.

“저, 돌고래 님의 소원이 뭔지 여쭤봐도 됩니까?”

“저여?”

“네. 소원권을 타면 빌고 싶은 소원 말입니다.”

이성해 대리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묘한.

“솔직히 말씀드려볼까여?”

“…그럼, 감사하죠.”

“좋아여….”

다가온 사람이 귓가에 속삭인다.

“사실 소원권 살 포인트 다 모았어요.”

‘……!!’

“50만 포인트. 전부요.”

나는 경악 어린 눈으로 이성해 대리님을 돌아보았다.“

상대의 입은 여전히 웃고 있다.

“다른 분들은 이 프로젝트 성공하면 소원권 받기로 계약하셨져? 저는 그냥 나오는 꿈결 용액 등급으로 포인트 책정해달라고 했거든요.”

게다가 통상 업무로 워낙 고등급 괴담을 많이 들어가서 더 빨리 모였다고.

그래서 거침없이 모은 포인트가 바로 일주일 전에, 50만을 넘겼다고 한다….

“…….”

“아, 나비 대리님도 거의 다 모으셨을걸여? 저보다 포인트 자체는 더 많이 모으셨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래도 이 회사 특효 진통제 사시느라 포인트를 많이 쓰시나 보더라구요!”

“그럼,”

나는 침을 삼켰다.

“왜… 퇴사하시지 않은 겁니까?”

“…….”

다른 곳으로 흐르듯 이야기하던 이성해 대리님이 말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본다.

“아직 소원을 결정 못 했거든요.”

이게 무슨 소리야.

“…소원이 있어서 입사하신 게 아닙니까?”

“으으음, 그러니까 마음속에 소원은 있구, 근데 그걸 어떻게 이룰 건지는 아직 고민 중인 거져.”

아.

“소원권은 한 문장으로 빌어야 하니까요?”

“넵! 그리구 저는 진짜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거든요. 그냥 제가 소원이 이뤄진 세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여.”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그렇죠! 저도 그게 고민이라니까여!”

선로를 거침없이 걷는 이성해 대리는 그만큼 말도 거침없이 한다.

자신의 소원은….

“저는 세상에 착한 사람들만 남았으면 좋겠어요.”

“……!”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나쁜 사람이 아무 대가 없이 착해지는 건 뭔가 불공평한 것 같기도 해서… 원래는 나쁜 사람이 모두 사라지는 걸 빌려고 했거든여.”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저, 혹시 나쁜 사람이라는 기준은….”

“비도덕적이구, 비윤리적인 사람들 있잖아요! 어둠에서 막 남 밀쳐서 살려는 사람들? 한 절반 정도 되는 것 같아여!”

“…그, 소원을 비시면 그 사람들이 다 사라지는, 겁니까?”

“넹!”

거의 광기가 느껴진다.

혹시 내가 집에 가겠다고 했던 것도 이런 느낌으로 들렸던 걸까?

본인은 더없이 진심이지만, 밖에서 듣기에는 미친 소리처럼 들리는 건가?

그, 그 정도인가?

아니, 이건 이성해 대리님께도 실례인 것 같, 아니, 지금 지구 인류의 절반 정도를 미련 없이 날리는 소원을 빌려던 사람에게 실례했다고 해도 되나….

“그런데 그냥 나쁜 사람이 없어진 세상으로 가는 거면 좀 별로예요. 저는 지금 여기 있는 나쁜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거든요.”

와.

“…환경을 깨끗하게 해달라는 소원은 어떠십니까? 그, 지속 가능한 에너지자원의 개발처럼 말입니다….”

“오, 좋네여! 그럼 장기적으로도 지구에 이롭겠구요.”

예…….

하지만 이성해 대리님은 ‘그걸 제 소원으로 할래요’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도저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하….’

[오, 내 친구는 역시 인터뷰어로도 재능이 있단 말이죠! 또 어떤 걸 질문할 겁니까?]

이제는… 그쪽 이야기는 안 하려고….

나는 조용히 숨을 삼키며 선로를 걸었다.

“열차가 옵니다.”

그리고 몇 번, 우리 뒤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보낸 후.

“…….”

“저긴가요?”

“네.”

나는 마침내 열차 쉘터가 빠져나갔던 ‘정비용 선로’로 향하는 선으로 연결된 지하철 주박 구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역의 주박 구역과 다르게 눈에 익은 점이 보인다.

가령, 저기 선로가 이어지는 구간 저 너머를 손전등으로 비치자 멀리 끝자락 쯤에 보이는 것.

정비 시 안전제일

작업자 2인 1조 필수

저 통로를 통해, 열차 쉘터는 세광특별시 지상으로 빠져나갔었다….

“…….”

나는 힐끗 이성해 대리님을 보았다.

아무래도 아직 세광특별시 바깥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는 축약된 이야기만 들으신 모양인데….

“그럼 진짜로 가기 전에 루트 점검할 겸 들어가 볼까여?”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 가보겠습니다. 어디서부터 바깥으로 카운트되는지 모르니, 아주 조심스럽게….”

“엥? 어차피 조심할 거 같이 하져!”

그리고 이성해 대리님은 성큼성큼 정비용 선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니….

나는 뭐라 말하려다가, 결국 포기한 채 황급히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도저히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잘 보다가 낌새를 눈치채도록 하자.

그렇게 직선을 뻗은 선로를, 위로 향하는 경사각 있는 길을 걸었다.

선로의 패인 홈 덕분에 도리어 안정적으로 발을 걸고 위로 걸을 수 있다.

“오히려 편하기도 하네요. 이제 뒤에서 지하철 오는 거 신경 안 써도 되구.”

“……예.”

터벅터벅.

어두운 선로 속에 우리의 발소리가 울린다.

위로, 더 위로.

지상으로.

“…….”

나는 압박감을 떨치기 위해 천천히 물었다.

“저, 새로운 프로젝트 팀에서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야 잘 지냈져! 아는 얼굴도 많아서 어색할 것도 없긴 하구. 근데 좋은 사람들이 많이 없어져서 아쉬웠어요.”

으음.

“아! 경비반장님이랑 간식 같이 많이 먹어여! 오소리 님은… 음, 사실 지하철에서만 대화를 주로 받아주시더라구요.”

이성해 대리님은 밝은 목소리로 보안팀과 A조의 소식을 들려줬다.

“A조 사람들은 원하시면 이번에 노루 님이 차출해서 쓰실 수 있을걸요? 호 이사님이 반드시 협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구요.”

“…그렇군요.”

나와 공통 지인인 사람들은 대부분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물론 밝은 목소리로 밝은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 조랑말 주임님도 잘 지내시긴 하는데, 자꾸 재오픈한 신체 카지노에 기웃거리시더구요. 제 생각에는 오래 못 살 것 같아여!”

“…예.”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만들겠다는 뜻은 아니시죠?

어쨌든 일상적인 근황을 듣는 것은 침체되어 있던 정신 상태를 본래의 선로로 돌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나는 어두운 선로를 걸으며 계속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걸어 올라간 어느 순간.

“…….”

“…….”

“손전등,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햇살이 내 머리로 비친다.

직선의 선로 저 끝에서 출구가 보였다.

지하가 끝나는 시점.

소름이 쭉 돋도록, 그곳에서 찌르듯 들어오는 자연광이 지하의 선로로 비쳐 내 눈에 닿는다….

‘…저기다.’

반사적으로 알았다.

저 출구가 바로 세광특별시 지상과 지하를 가르는 구간이었다.

하지만.

“손전등이 왜 필요 없는데여?”

“…예?”

이성해 대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손을 들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출구를 살짝 가리켰다.

“…보이십니까?”

“음….”

손전등을 흔든 이성해 대리님이 어깨를 으쓱했다.

“새카만 출구? 같은 게 보이긴 해여.”

“…….”

아무래도 햇살은 나에게만 보이는 듯했다.

‘내가… 지상에 한번 가본 적이 있어서인가?’

맞으리란 예감이 든다.

나는 ‘바깥’에 속해본 적이 있기에, 저걸 인지할 감각이 트여 있는 것 같다….

“가볼까여.”

“잠시만!”

또 앞질러 가려는 이성해 대리님의 어깨를 기겁하며 잡아채는데 성공했, 아니, 왜 이렇게 힘이 세신 거지?

“같이 갑시다. 천천히, 조심해서요.”

“넵!”

나는 걸어 나갔다.

손전등은, 혹시 몰라 끄지 않은 채로 들고 있었다.

“…….”

점점, 그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이상한 인력과 충동이 느껴진다.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봉쇄에서 빠져나간 나를 부르는 건가.

“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여…. 저 너머에 뭐가 보이시나여?”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성해 대리님께는 봉쇄의 영향으로 저 바깥의 지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듯하다.

인지 불가의 상태.

‘후우.’

긴장감에 손전등을 쥔 손에서 땀이 흐른다.

“…돌고래 님. 혹시 여차하면 저를 뒤로 당겨주실 수 있습니까?”

“당연하져!”

나는 천천히,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지 확인하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갔다.

터벅, 터벅.

내 키만큼만 출구와 거리가 남았다.

그러자 햇살만 보이던 출구에서 일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상하게 왜곡되고 가려진 바깥의 전경이다.

마치 지상으로 빠져나갔을 때 열차 쉘터에서 창 바깥을 볼 때처럼, 선로 출구 너머로 풍경이 보인다.

하지만 그때보다 뭔가 옅다.

언뜻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요동, 치고 있는 것 같다….

‘…봉쇄가 풀리고 있어서 그런 건가?’

나는 몸을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그 앞에서 확인을 끝마쳤다.

‘나가면, 확실히 세광특별시 지상일 것 같다….’

됐다.

그리고 뒤로 몸을 빼려던 찰나였다.

요동치던 출구 밖 전경에서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

나는 발을 멈췄다.

‘바깥’을 보는 것에 익숙해진 내 눈이 그 왜곡된 전경 가운데에서 어떤 실루엣을 구분해 낸 것이다.

사람이다.

체구가 큰, 익숙한 자의 실루엣.

“…과장님?”

이자헌 과장.

D조의 도마뱀 조장이 통로의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

잠깐만, 왜 여기에….

내가 환각을 보는 건가 싶었지만, 응시할수록 실루엣은 뚜렷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뒤에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 역시 분간할 수 있었다.

잠깐, 두 사람이라면….

‘…대리님과 요원님!’

예측되는 정체에 하마터면 출구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에 굴복할 뻔했다.

안 돼!

“얍!”

…나는 내 뒤를 당겨준 이성해 대리를 돌아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넵! 아, 혹시 바깥에 뭐가 있나여?”

“…네.”

주먹을 쥐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심호흡하며 고민한다.

소통할 방법이 없나? 소리도 안 들리고 입 모양도 읽을 수 없는데…… 아!

나는 펜과 종이를 꺼내어 글을 썼다.

-노루는 여기 있습니다.

“…….”

그리고 종이를 뭉쳐서, 햇살 밖으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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